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16화 (40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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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구궁!

    주홍빛의 불길과 타오르는 청염의 귀화가 순식간에 합쳐지며 그의 몸을 둘러싼다.

    이강호의 일격이 곧장 날아든 카그네프를 향했다.

    후웅!

    콰아앙!

    카그네프의 워엑스와 이프리트의 창이 격돌하자 기류가 퍼져나감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힘은 카그네프 쪽이 우세.

    허나 카그네프는 그 이상 이강호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없었다.

    ‘불길이 흔들리지 않는다.’

    화염은 본디 좋으나 싫으나 무조건적으로 바람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순수 화염마법의 카운터가 괜히 바람계열 스킬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강호의 불길은 카그네프가 일으킨 거센 돌풍에도 조금도 끄덕 하지 않았다.

    마치 화염이 아니라 견고한 철옹성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루시아의 기억을 엿봐 능력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카그네프였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이 화염의 열기...

    ‘아까전도 그렇고 설마 설마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그 순간 창에서 한쪽 손을 놓은 이강호의 팔이 카그네프의 갑주를 향해 곧장 치고 들어왔다.

    잡혀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카그네프는 다급히 이강호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퍽!

    “큭!”

    이강호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델바람들이 양옆과 머리위에서 날아들었다.

    본래라면 피할 수 없는 위기.

    하지만 그 와중 카그네프는 똑똑히 봤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강호의 모습을.

    “이런! 뒤로 물러서라!”

    후웅!

    이강호가 창을 횡으로 긋자 지면에서 솟구친 불기둥이 델바람들의 전신을 뒤덮었다.

    델바람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보호마법이 발현되어 화염을 차단했지만 그건 정말 한순간뿐이었다.

    트드득!

    쨍그랑!

    “끄으으으으!”

    이에 화염에 휘말린 델바람 두 명은 공격이고 자시고 다급하게 자리에서 이탈하기 바빴다. 하지만 완벽하게 적중당한 한 명은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

    도저히 최상위 대리자라고 할 수 없는 비명이 델바람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이윽고 마치 몸이 폭사되듯 터져나가며, 델바람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코인이 터져 나왔다.

    슈슈슉-

    코인은 퍼져나갈 새도 없이 이강호의 몸속으로 흡수됐다.

    귀화에 휩싸인 그의 눈이 카그네프를 향하자 델바람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

    그들의 얼굴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단 한 번의 일격이었다.

    그 단 한 번의 일격에 최상위 대리자가 이토록 허망하게 사망하다니?

    덕분에 김주희를 몰아붙이던 델바람들도 토끼눈이 되어 잠시 물러났다.

    카그네프가 으득 이를 갈았다.

    그는 진즉부터 이강호의 화염을 조심하라고 부하들에게 신신당부해놨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명령을 믿고 잘 따르는 부하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또한 인격이 있는 생명체였다.

    무려 15대2.

    게다가 이쪽은 전부 최정예였다.

    아무리 대단한 대리자라 하더라도 이강호의 정확한 능력을 모르는 이상 솔직히 방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강호의 정보를 부하와도 공유하기 싫어 능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이 이런 사태를 발생케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놈을 잡는다면...’

    손해는 메꾸고도 남는다. 아니, 그 이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

    “방심하지마라. 확실하게 몰아붙여라. 방심만 안한다면 저놈은 결코 우리를 잡지 못한다.”

    카그네프가 녹안을 번뜩 빛내며 말하자 흔들리던 델바람들의 눈동자가 다시 견고하게 가라앉았다.

    카그네프의 카리스마와 위용은 그 정도였다.

    이에 이강호가 김주희에게 시선을 보냈다.

    ‘틈을 만들 테니 도망쳐라.’

    그런 의미였다.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강호가 창을 빙글빙글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카그네프와 이강호가 동시에 외쳤다.

    “가라!”

    “이것도 받아봐라.”

    화르륵-

    불길이 X자로 뻗어나가 지면을 갈랐다. 그러나 카그네프는 곧바로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브레스급의 화염을 그렇게 남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후웅!

    쾅!

    델바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신중하게 움직여 압박을 가해오자 이강호는 금방 수세에 몰렸다.

    화염은 강하지만 그리 빠르지 않다.

    화염은 회피하고, 창은 받아 내버리며 그들은 이강호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이에 이강호는 허리와 머리를 뒤로 젖혀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등 흡사 곡예를 펼쳐야만했다.

    카그네프의 워엑스가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쳐지나간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수도 없이 겪어온 전장의 경험과 신법이 없었더라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일이었다.

    단 한 번, 오직 단 한 번 실수하는 순간 끝이 난다.

    이강호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불길을 마구잡이로 내뿜어 댔다.

    콰과광!

    주위에 널브러져있는 과학기기들에 불이 옮겨 붙자,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렇게 마력의 남발과 목숨을 다한 사투로 인해 발생된 아주 미묘한 틈.

    김주희가 힘껏 지면에 발을 내리찍었다.

    트드드득-

    지면을 타고 흘러간 순백의 얼음이 바닥에서 융기되며 델바람들의 사이를 가르고 벽을 만든다.

    그건 정확히 한 명, 그것도 김주희의 체격을 지닌 사람 정도만이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을 폭의 길이었다.

    김주희는 그 길을 따라 곧장 질주했다.

    델바람이 재빨리 막으려 했으나, 그녀는 곧장 추가적으로 무공을 발휘해 이를 제지했다.

    빙백신공(氷白神功).

    불타고 있는 대지조차도 얼려버린다는, 북해빙궁의 가주에게만 전승되어오던 오의.

    [빙한대계(氷寒大界)]

    트드드득-

    쿠구구구!

    그녀의 발밑으로부터 뻗어나간 한기가 주위의 기온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이건 단순히 사물을 얼리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에너지 그 자체를 빼앗은 능력이었다.

    “큭!”

    여파에 휩쓸린 델바람들 두 명이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자신의 팔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 마냥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제대로 적중당한 것이 아닌, 고작 휩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니?

    ‘마력을 다 쏟아부은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의 몸을...’

    파앗-

    쿠구궁!

    김주희는 얼음벽을 계속해서 융기시켜 통로를 차폐시키며 마침내 그들의 앞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카그네프는 살짝 혀를 찼다.

    좋은 양식이 될 먹잇감을 놓쳐버리다니.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계에 달한 이강호가 바로 눈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강호가 팔을 움직이자, 불완전하게 석화되어 피부에 들러붙어있던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땅에 떨어진다.

    이강호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 네놈... 내 동료들 중 누군가의 기억을 읽은 거로군...”

    카그네프는 즐겁다는 듯 팔을 활짝 피며 포효했다.

    “크하하하하! 맞아! 이제야 깨달았나 보군! 회귀자!”

    “......”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아 봤자 네가 할 수 있는 것 따윈 없다. 너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녹안을 빛낸 카그네프가 한발 앞으로 내딛었다.

    엄청난 중압감이 기세를 타고 밀려들어온다.

    “큭큭큭.”

    주위를 둘러싼 델바람들도 조소했다.

    이쯤이면 아무리 회귀자라 하더라도 절망에 휩싸여 무릎을 꿇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강호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으로 되려 웃었다.

    “큭... 곤란하군. 네놈에게 기억을 읽히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었는데 말이지.”

    “크크크, 그러시겠지. 하지만 어쩌겠나. 난 이미 너의 동료의 기억을 읽었고,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리고 붙잡는데도 성공했지.”

    “......”

    “아, 귀찮게 붙어있던 크라베스의 망령들을 전부 태워준 거는 정말 고맙다. 덕분에 이 일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어~?”

    카그네프가 광기 어린 얼굴로 한 발 더 내딛자, 포위하고 있던 델바람들도 한 발 더 다가왔다.

    이강호가 곧장 전방위로 불길을 날려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이 합세해서 만든 용인방어술에 막힌 것.

    카그네프가 비아냥댔다.

    “네 힘에 너무 자신 있어 하는 거 아닌가? 너도 그래봐야 고작 한낱 대리자일 뿐인데 말이지.”

    “...그렇긴 하지.”

    이강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확실히 혼자서는 아무리 강하다 한들 무리를 이길 수 없다. 생명체인 이상 체력과 마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잡아먹히게 되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후후후, 나중은 없을 텐데?”

    “...카그네프.”

    “응?”

    “내가 너무 떠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

    이강호의 전신이 한순간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주홍빛의 화염으로 변모했다. 카그네프는 아차한 표정이 되었다.

    ‘큭! 저건 대체 뭐지?’

    루시아의 기억에서는 저런 걸 보지 못했다.

    “막아라! 빙계마법을 사용해서...”

    후웅!

    하지만 다음 순간 이강호의 몸이 촛불 꺼지듯 훅 사라졌다.

    당혹을 넘어선 얼굴이 된 카그네프와 델바람들이 다급하게 주위를 수색했지만 당연히 이강호는 없었다.

    카그네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크아아아아! 이게 무스으으은!!!”

    콰앙!

    다잡은 먹잇감을 눈앞에서 놓친 카그네프의 분노 어린 주먹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 * *

    “허억... 허억...”

    이강호가 모습을 드러낸 건 김주희의 앞에서였다.

    그는 김주희가 빠져나가기 전 그녀에게 피아를 식별하는 주홍빛의 불을 맡겼었는데 이를 이용해 화염동화로 빠져나온 것이다.

    카그네프가 화염동화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시연한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

    이강호는 동료들에게 화염동화에 대해 간략히 일러만 줬을 뿐, 눈앞에서 시연한 적은 없었다.

    대개 생명체가 시각에 많이 의존하듯 카그네프도 기억을 읽을 때 우선순위를 시각적인 매체에 두었기에 흘려 지나가면서 말한 능력에 대해 읽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만약 놈이 이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끝장이었겠군.’

    이강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재차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본 김주희가 말했다.

    “공간이 제멋대로라 쉽사리 추적을 해오진 못하겠지만 아마 불가능은 아닐 거예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완전히 떨쳐내기 위해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도 너무 위험하잖아요? 어떡하죠 선배?”

    김주희의 마력 잔여량은 25% 정도였다.

    이강호는 1%.

    체력도 고갈되었기에 이대로 적과 조우하게 된다면 100% 전멸이다.

    그러나 이강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나아가야 돼. 로리엔이 있는 이상...”

    그녀의 추적능력은 예사 힘이 아니다.

    이곳에서도 잘 발동 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김주희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딱 쳤다.

    “아 맞아... 걔가 있었지... 후우... 적을 안 만나길 빌어야겠네요.”

    “그렇지.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가 나름 선두에 속한다는 거야.”

    “제가 업어드릴게요 선배.”

    “아니, 여기서 그럴 여유는 없어. 내 몸은 내가 챙길게. 그보다도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날 버려라.”

    이강호는 죽음을 각오한 눈이었다. 아니, 이 남자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가자.”

    “예, 선배.”

    김주희가 전투의 여파로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이강호의 뒤를 따랐다.

    고유특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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