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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5화 (4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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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던 크라베스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잠시 망령과 교감을 나누듯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크라베스가 중얼거렸다.

“카그네프가 이강호와 만났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생긴다. 카그네프가 지금 이강호와 조우한 일은 크라베스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그간 소재를 알 수 없던 연합군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추후 중요한 순간에 난데없이 툭 튀어나와 훼방을 당할 일은 없어진 것.

‘게다가 놈들은 원래 연합군이지.’

어지간하면 같이 나아가게 될 테고, 그들은 이 연구소를 맴돌고 있을 크람베르와 마족을 견제해줄 것이다.

‘흠... 놈들의 위치가...’

크라베스가 카그네프에게 붙어있는 망령을 기준으로 하여 거리를 재었다.

꽤나 가깝다.

‘반면에...’

크라베스의 시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늦게 당도한 유세현 일행이 있는 장소였다.

아직도 1층에 있는 것이 그들은 이대로라면 길을 찾기만 하다가 모든 게 끝날 때까지 다다를 수 없을 확률이 높다.

이에 크라베스가 손으로 턱을 짚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유세현과 함께하는 연합군은 꽤나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길을 살짝 돌아오게 하며 유세현이 자연스레 마족을 상대하게 했다.아마 유세현은 스스로가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허나, 그걸 또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잘만 사용할시 좋은 대체 전력이란 뜻이었다.

아니 당최 크라베스는 어떻게든 유세현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용하고 이용한 뒤에 마지막에는 죽일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바로 영혼각인 능력의 이중성을 이용해서.

어떻게 유세현을 구슬릴지 생각한 크라베스가 곧장 그에게 붙여뒀던 망령에게 걸어둔 장치를 사용했다.

* * *

스스슥-

유세현의 옆에 붙어있던 망령이 꾸물거리더니 갑작스레 크라베스의 형상으로 모습을 변모했다.

유세현이 살짝 놀라 흘깃 바라보자, 망령에 빙의한 크라베스가 곧장 말했다.

[이 망령은 나를 투영하고 있을 뿐 나의 본체가 아니다. 그러니 안심해라.]

“...왜 다시 내 앞에...”

[그리고 이 모습과 목소리는 너에게 밖에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

크라베스가 느닷없이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순식간에 뜻을 이해한 유세현은 일단 놈의 뜻대로 입을 다물어주었다.

허나, 역시나 혼잣말이 이상했을까?

“뭐? 난데없이 무슨 말이지?”

“뭔가 있기라도 한 거냐?”

곧바로 의문을 가진 드람과 데르프푸스가 물어왔다.

유세현은 벽을 조사하는 척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을 흘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흠...”

둘을 제외하고도 많은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허나, 겉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이내 그들이 시선을 거두자 크라베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유세현, 본론을 말하기에 앞서 너희들이 있는 곳은 지상 1층이다.]

“......”

유세현이 눈빛만으로 알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자 크라베스가 곧장 말을 이었다.

[반면 지금 적들은 어디 있는지 아나? 거의 지하 3층에 다다른 상태다.]

유세현은 계속 떠들라는 듯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현재 이강호와 엘프들도 당도해 있다.]

“?!”

유세현이 일부러 살짝 놀라는 표정을 연기했다. 크라베스는 이를 보며 잠시 미심쩍어했다.

‘정말 모르고 있던 건가?’

표정은 제법 그럴싸하다.

그러나 크라베스는 결코 단언할 수 없었다.

과거 유세현에게 운 좋게 발견되어 벗어난 뒤, 힘을 되찾기 위해 협력하는 척 제단에 침투했을 때 이강호와 갈라선 유세현은 자신의 길 안내를 받지 않고도 동료에게 도달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유세현은 확신에 차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추종자들에게서 루시아를 가로 챘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특정 조건을 갖춰야만 알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쪼록 크라베스는 유세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던 안하고 있는 것이던 상관이 없었다.

길 안내는 제대로 해주되, 적이 도사리고 있을 거라 예상 되는 방향 쪽으로 길 안내를 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넌 아마 거절하지 못하겠지.’

현재 유세현은 확실히 길을 헤매고 있는 상태였다. 조금씩 전진은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제때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크라베스가 본론을 꺼내기 무섭게 날카롭게 변하는 유세현의 눈.

크라베스가 마음속으로 웃었다.

‘눈치 챘나 보군.’

[뭐,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다. 어쩔 텐가?]

유세현이 다른 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정말 미세한 마력을 흘려 손바닥에 글을 써 답했다.

-이강호와 다른 연합군이 지하에 있다는 증거는?

크라베스는 그 글을 보고 굉장히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기 위함인가. 아니면, 정말 파악이 안 되기에 그러는 것인가.

‘뭐, 상관없지.’

크라베스가 말했다.

[내 영혼을 걸고 맹약하지. 그들은 지하에 있다.]

“......”

유세현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와중 발동된 트랩.

“젠장할! 이 트랩, 정말 귀찮기 짝이 없군.”

“부숴버려!”

쿠궁!

쾅!

트랩이 순식간에 정리되어 간다. 유세현이 그 틈을 타 말했다.

“솔직히 네 제안은 나에겐 그다지 나쁘지 않아. 어차피 이 동맹은 추후 결국 무너질 동맹이니까.”

[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 봐도 되겠나?]

“아니,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떨떠름한 게 남아있다.”

[뭐지?]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네가 배신해버리면 나로선 말짱 도루묵 아닌가.”

유세현이 눈을 빛냈다.

크라베스가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오호라~ 맹약을 바라는 거로군.]

“그렇다. 하겠나?”

[흠...]

“네가 하지 못하겠다면 나도 네 제안에는 따르지 않겠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우리끼리 길을 개척하도록 하지.”

유세현은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내 크라베스가 졌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빈틈없는 놈 같으니... 좋다. 맹약하지. 대신 룰은 내가 정하겠다.]

“말해봐라. 타당하다면 트집은 잡지 않겠다.”

피잉!

콰과광!

둘이 얘길 나누는 동안 트랩이 완전히 정리가 됐다.

루시펠이 다가왔을 때쯤에는 유세현의 눈에서는 크라베스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유세현이 통로 저편을 살폈다.

‘우선 저쪽에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곳이 있다고 했지?’

이윽고 연합군과 함께 유세현이 자리를 벗어났다.

이에 링크를 끊고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 크라베스는 유세현과 한 맹약을 떠올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 걸렸군. 걸렸어.’

그가 한 맹약은 바로 이것이었다.

-크라베스를 포함한 망령 측에서는 그들이 먼저 선공을 가하지 않는 이상 유세현과 그의 동료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정말 완벽한 계약. 아니, 실제로도 고의성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 계약 자체는 완벽한 계약이었다.

문제는 이게 중복 계약이라는 점.

그는 유세현 말고도 루시아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녀가 맺은 맹약은 일이 해결될 때까지 동료와 접촉하지 않는 것.

만약 접촉하게 된다면 맹약은 깨지게 되고 그로인해 크라베스는 루시아와 그녀의 동료에 대한 공격 권한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동료 안에는 유세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크라베스는 루시아와의 맹약이 깨질시 유세현과의 계약을 이행 중에 있음에도 공격이 가능할 것인가?

가능했다.

맹약은 크라베스에게 있어서 이행하지 않는 순간 영혼이 날아가 버리는 절대적인 규율이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맹약을 깨뜨릴시 흡사 그 책임의 대상이 계약자라 할지라도 책임을 물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크라베스가 노리고 있던 노림수였다.

어떻게든 정수를 얻어내고, 크람베르를 먹은 뒤 스스로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놈들을 배제한다.

‘내가 이 세계... 반드시 판도라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

크라베스가 마치 세상을 쥐듯 손을 꽉 움켜쥐었다.

* * *

“여기까지 용케 도착했군. 카그네프.”

이강호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맞대응했다.

여유를 잃지 않은 척 하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겉모습과 달리 결코 편치 못했다.

지금 놈의 곁에 있는 부하의 수는 15명인데 반면 이쪽은 단 2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마음먹고 덮친다면?

‘물론,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함부로 덮치지는 않겠지만... 쳇! 하필이면 카시우스를 간신히 따돌린 순간 조우하다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회귀전이나 지금이나 운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흐음... 카시우스는 함께 못 온 모양이군.”

“......”

이강호는 어떻게 해야 될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사실 이보다 더한 위기를 그는 회귀 전 숱하게 경험해봤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다시 카시우스와 합류하는 수밖에...’

그렇게 되면 다시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리라.

이강호는 카시우스가 뒤쫓아 올 때 동안 대화로 시간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카시우스는 이 근처에 있다.”

“으음?”

“이 공간이 너무도 이상해 잠시 떨어지게 된 것일 뿐이다. 그보다도 너는 여기에 어떻게 도착할 수 있었지?”

“흐음, 어떻게라...”

턱을 어루만진 카그네프가 더 비릿한 광기 섞인 미소를 내보였다.

“운이 좋았다.”

“...뭐? 운? 운으로 이곳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아니, 가능하다. 천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

카그네프가 껄렁거리며 이강호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건 여기에 어떻게 도착했냐 따위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건...”

이강호는 그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머리에서 나오는 추측이 아닌, 수많은 실전경험이 알려주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설마?’

어느새 30m까지 접근한 카그네프가 워엑스를 등에서 뽑으며 무섭게 눈을 빛냈다.

“너를 만났다는 것이지!”

후웅!

동시에 델바람들과 카그네프가 움직여 날아들었다.

이강호는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놈들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김주희! 도망쳐라!”

콰아아아앙!

“꺄악!”

폭풍이 휘몰아치며 엄청난 위력의 파동이 둘의 주위를 난자했다.

둘 다 아슬아슬하게 회피하긴 했으나 곧바로 놈들의 공세가 이어졌다.

좌우 그리고 전방.

챙!

치지지직-

이강호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곧바로 화염을 발산했다.

콰아아앙!

“어후! 그건 좀 위험하지.”

불기둥이 치솟자 카그네프가 바람으로 밀쳐내며 3보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이틈을 타 이강호가 놈을 향해 외쳤다.

“카그네프! 설마 이곳에 다른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거냐?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

“아니, 싸울 때 맞아.”

휘익-

그러나 카그네프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이강호에게 날아들었다. 이강호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젠장... 너무 최정예들이다.’

거의 동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자와 전투를 한다고 가정할 때, 1:1과 1:2의 전투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앞을 방어해도 뒤나 옆에서 일격이 날아올 수 있으니 전부 신경을 곤두세워야 되기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어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1:2를 넘어선 1:8이상의 전투였다.

협소한 공간 덕에 놈들의 행동이 제약 되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스킬세례와 합공이 멎질 않아, 이런 상념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체 왜? 왜지? 왜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고 무작정 공격을...’

후웅!

한 놈을 상대하고 있을 때 배리어를 만든 카그네프가 불길을 뚫고 오른편으로 쇄도해왔다.

이강호는 전 힘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철의 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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