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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3화 (39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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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륵-

    쿠구구궁!!

    이강호의 화염이 거친 기세로 나아가 전방을 불살랐다. 제대로 적중당한 망령들은 발광하며 저항했지만 곧 완전히 재가 되어 우수수 부서져 내렸다.

    카시우스의 나침반이 비쳐주는 빛을 따라 이동한지도 벌써 만 이틀.

    “칫! 이 빌어먹을 망령들은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구만.”

    “후우, 그보다도 길이 문제다. 길이.”

    제한 횟수를 다 사용한 그들은 현재 또다시 나아갈 방향을 잃은 상태였다.

    꽤나 많은 통로를 헤쳐 왔기에 이쯤이면 거의 도착지에 근접한 상태임이 분명할 터인데...

    이강호가 나침반을 들고 있는 카시우스를 흘겨보자, 나침반의 자침은 여전히 제 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난감하군.”

    “어쩔 수 없다. 이젠 꼼꼼히 살피는 수밖엔...”

    그런데 하릴 없이 거닐던 카시우스가 특정 벽 근처에 멈춰 섰을 때였다.

    스스스스-

    팟-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던 자침이 난데없이 우뚝 멈춰 섰다.

    “?!”

    이에 연합군의 눈동자가 깜짝 놀라 동그랗게 변하는 건 당연지사.

    “이, 이건?”

    파짓-

    파지직-

    엄청난 양의 전하가 순식간에 주위로 방전되며 스파크가 튀었다.

    마치 미닫이문이 열리듯 공간이 갈라지며 저편이 드러난다.

    카시우스와 이강호, 그리고 연합군은 그곳을 살피기 무섭게 감히 눈을 떼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길은 수많은 점막이 벽에 들러 붙어있는 이른바 말하자면 기분 나쁜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건 여태까지 봐왔던 그런 류의 공간이 아니었다.

    커다란 공터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돔형의 구조물이 웅장하게 들어서있다.

    얼마나 큰지 꽤나 거리가 있음에도 한 눈에 전부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연합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N3연구소에서 박사들이 언급한 철의 성.

    그건 분명 이 구조물을 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 * *

    “우리가 제일먼저 도착한 모양이군.”

    주위를 훑어본 카시우스의 감상평이었다.

    “확실히...”

    이강호도 동의를 표했다.

    이곳에 만큼은 망령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크라베스나 추종자들이 먼저 도착했다면 망령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그들은 만전을 기한채로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를 향해 나아갔다.

    곧 입구로 추정되는 문 앞에 서자 스캐너가 빛을 발사해 그들의 전신을 훑었다.

    삐삐삐-

    [생명 유전 정보가 맞지 않습니다.]

    “이런...”

    [ID카드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을 제작한 종족과 동족이 아니라서 그런지 접근금지 알림이 울렸다.

    이에 이강호와 카시우스, 델바람들은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패가 있으면 숨기지 말고 까라는 뜻이었다.

    허나.

    “정말 아무도 ID카드를 지닌 자가 없는 건가?”

    “다시 말하지만 없다.”

    “이강호, 너도?”

    “포켓 직접 까봤잖나?”

    “흠...”

    카시우스는 이마를 붙잡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강호가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절대 못 들어 갈 거다. 정말로 우리 중에 ID카드를 지니고 있는 자가 없다면 제2의 수단을 활용하자.”

    제2의 수단, 카시우스와 델바람들은 이게 뭘 뜻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챘다.

    “흠... 그럼 방범 시스템이 작동할지도 모르는데? 만약 작동된다면 편히 돌아다니지는 못 할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니면 뭐 다른 수가 있을 것 같나?”

    “후우... 결국 그 수밖에 없는 건가?”

    델바람들도 이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강호의 말에 동의를 표하자, 연합군 모두는 동시에 마력을 모았다.

    “정확히 한곳을 노린다.”

    “내부까지 태우지 않도록 조절 잘해라.”

    그렇게 발사된 스킬.

    콰과과과!!

    연합군들은 구조물을 부수기 용의하게 화염계 스킬들을 사용했다.

    치지직-

    어마어마한 열기가 구조물을 녹이며 동그란 통로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내부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삐삐삐삐-

    [적색경보 발령! 적색경보 발령! 불특정 생명체가 내부로 침입하였습니다. 방범시스템 작동! 방범시스템 작동! 통로를 차단합니다.]

    투두두둑!

    쿵!

    격벽이 천장에서 내려와 통로와 통로 사이를 막아섰다.

    카시우스가 쯧 혀를 찼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

    “비켜봐라. 부술 수 있나 보게.”

    이강호가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가로 막고 있던 철판이 마치 종잇장 찢어지듯 찢겨져나가며 구멍이 뻥 뚫린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괜찮...”

    지잉-

    그 순간 천장 벽에서 등장한 병기에서 광선이 쏟아졌다.

    치지지직-

    이강호가 피하자 광선은 바닥을 쓸며 일자로 잘라버렸다.

    ‘속도는 느리지만 위력은 꽤나 강력하군.’

    만약 정통으로 적중 당하게 된다면 무척 큰 부상을 입게 될 만한 그런 화력이었다.

    ‘과연 유적의 종착지라 그건가...’

    이강호와 연합군은 병기와 막힌 벽을 일일이 부숴나가며 뭔가 존재할 것이 분명한 내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유세현의 등에 줄곧 업혀 있던 루시펠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깨어난 그녀는 멍한 얼굴이 되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어?”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판단이 안 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어나셨군요.”

    이에 유세현이 말을 걸자, 그녀는 그제야 업혀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깜짝 놀라하며 몸을 들썩였다.

    “어, 어어어어? 제가 왜? 저는 분명... 분명...”

    루시펠은 그녀답지 않게 말을 무척이나 더듬었다.

    “당신은 저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어... 어...”

    그 말에 루시펠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녀는 그제야 이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벨제뷔트에게 반항하여 자아를 잃기 직전, 분명 도전을 했었다.

    유세현의 권속이 되는 도전을.

    ‘머리가 개운해.’

    그녀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벨제뷔트에게 힘을 받고 나서부터는 머릿속이 혼탁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천사일 때와 같이, 모든 게 자유롭게 느껴진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이전과 다른 깊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신이 틀림없이 유세현의 권속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권속이 된 것임에도 왜 이리 차이가 있는 것일까?

    “깨어나자마자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저희는 지금...”

    유세현이 이후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힘드시겠지만 루시펠씨도 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루시펠은 그 말을 들으며 왜 차이가 있는지를 깨달았다.

    이자는 강요하지 않는다. 부탁을 한다.

    명령을 내리면 별수 없이라도 들어야 하는 게 권속인데 그는 여전히 루시펠 본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루시펠이 재차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천사, 델바람, 엘프, 그리고 망령까지... 우습게도 주위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까지도 업혀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붉어지는 루시펠의 얼굴.

    왠지 이 상황이 부끄럽다.

    루시펠은 애써 태연한척 말했다.

    “내려주세요. 이제부턴 직접 걸을게요.”

    “흠, 아직 몸 상태가 완전치 않으니 그냥 이대로 좀 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아, 아... 괘, 괜찮으니 그냥 내려주세요.”

    “흠...”

    유세현은 루시펠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땅에 내려온 그녀는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곧장 스트레칭을 했다.

    ‘후우... 좋지는 않지만 최악도 아니야.’

    아니, 되려 느낌만큼은 정신이 맑아져서인지 벨제뷔트의 수하로 있을 적 최상의 몸 상태 보다 좋게 느껴진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겠어.’

    그녀는 곧장 유세현이 지급한 장비로 갈아입었다.

    이를 천사들이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설마 설마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저자의 권속이 된 거였다니...”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권속은 본디 어둠의 마력 사용자에게만 맺을 수 있는 계약이었다. 일반 마력사용자나 신성력 사용자는 절대 권속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신성력 사용자인 천사는 어둠의 마력이 체내로 들어오자마자 폭주를 일으켜 되려 상태가 더 나빠지게 된다.

    그런데 벨제뷔트의 동화가 그녀를 한계를 없애고 어둠의 마력 사용자로 탈바꿈해놨다. 덕분에 그녀는 유세현의 권속이 될 수 있던 것이다.

    모든 게 맞물려지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

    아니, 애초에 루시펠이 유세현에게 조금의 의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녀는 권속이 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벨제뷔트의 동화능력은 그 정도로 상대를 제약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운 좋은 여자 같으니...’

    이내 루시펠에게서 시선을 돌린 미카엘이 옆에 있는 가브리엘을 응시했다.

    “가브리엘, 몸은 좀 어떤가?”

    “너희들 덕에 많이 좋아졌다.”

    “우리들 덕이긴... 그런 말 하지 마라.”

    미카엘과 라파엘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가브리엘은 이제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희생한 그에 대한 동료애는 더욱 늘어난 상태였다.

    슈슈슉-

    그때 망령이 공간을 이동하며 다른 장소로 사라졌다.

    뒤따른 그들의 전방에는 마족의 군대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너무도 이 공간이 광활하여 조우하지 않고 있었는데, 목적지가 가까워졌는지 경로가 겹친 것이다.

    ‘아니, 일부러 부딪치라고 이쪽으로 보낸 걸 수도 있군.’

    아무쪼록 길을 잘못 온건 결코 아니었다. 루시아와의 거리가 계속 좁혀지고 있었으니까.

    쓱 살펴본 미카엘이 말했다.

    “흠, 적은 아직 우리를 알아차리진 못한 모양이군.”

    “기습하도록 하지. 정예가 아니니 우리가 합세한다면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데르프푸스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드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투가 발생되면 필연적으로 시선이 끌리게 될 거다. 크라베스나 다른 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셈이 되는 거지. 그러니 일단 여기선 좀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게 어떻겠나?”

    “하지만 만약 저놈들이 저대로 진을 쳐버린다면?”

    “흠...”

    의견이 갈린다.

    그들은 절충안으로 조금만 상황을 지켜보기다가 진을 치려하면 공격하기로 정했다.

    다행히도 마족들은 진을 치지 않고 그대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에 일행은 이 전법을 고수하며 전진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발생된 세 차례의 전투.

    “크윽! 뭐 저딴 조합이...”

    “우리 조합이 뭐?”

    데르프푸스가 무심히 철퇴를 휘두르자 경악하던 마족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땅을 뒹굴었다.

    놈은 이 군세를 이끌던 적장이었는데 드람과 데르프푸스, 그리고 사방에서 이어진 순간적인 연계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마족들은 무리를 이끌던 우두머리가 죽자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사색이 되어 도주했다.

    유세현이 멀어져 가는 마족을 보며 말했다.

    “일부러 쓸모없는 병력을 퍼뜨려 놨군. 아마 우리위치는 진즉에 들켰을 거다.”

    “그렇겠지. 하지만 주 병력이 나타나지 않는걸 보면 여유가 없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시간을 끌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흠... 확실히 그럴 수도.”

    “일단 발걸음을 좀 더 빨리하자. 망령들의 수가 매우 많아 졌어. 이제 곧 일거다.”

    그들은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거대한 공터.

    커다한 돔형의 연구소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수많은 망령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서로를 죽이고 있었고, 사도로 보이는 자들과 추종자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이어서 하늘을 수놓은 마족들의 스킬.

    그러나 정작 중요한 데프하우어와 벨제뷔트 등등 주요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구조물 외각 곳곳이 부서져 있는 것이 이미 진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각자 노리는 바가 서로 다른 연합군의 발이 동시에 움직였다.

    철의 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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