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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2화 (39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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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광!!

천지를 진동시키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검은 기운이 뻗어나갔다.

망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오르엠의 육신이 허공에 붕 떠오른다.

크라베스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가 싹 가신 상태였다.

“......”

늦었다. 늦어버렸다.

쉬이이이-

오르엠의 전신에서 뽑혀져 나와 마법진 속으로 흡수되던 황금의 빛이 더 거센 빛을 발한다.

그건 흡사 마지막을 불사르는 촛불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슈슈슈슈-

이윽고 마지막으로 뽑혀져 나온 빛이 흡수되자 일대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크라베스, 설마 이건...”

어느새 그의 옆에 도달한 카그네프가 중얼거리자, 크라베스는 렘벨크가 거의 코앞에 있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휙 돌렸다. 그의 입술은 이 사이를 비집고 말려들어가 있었다.

“철수한다.”

“이미 손 쓸 수 없다는 거냐?”

“...없다. 봉인은 이미 풀렸다.”

크라베스는 이탈하기 전 렘벨크를 향해 말했다.

“렘벨크, 넌 나중에 네가 한 짓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흥! 웃기는 군. 내가 후회할 날 따윈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

파앗-

어딘지 모를 씁쓸한 얼굴을 한 크라베스가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어둠이 찢어지며 칼날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난다.

이내 그 속에서 한 인물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렘벨크와 제사장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공손하게 그를 맞았다.

“망령의 왕, 크람베르님을 뵙습니다.”

“......”

크람베르의 무심한 시선이 주위를 쓱 한 번 훑었다. 그러나 곧 크라베스를 감지한 것일까?

점점 멀어지고 있는 크라베스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둘의 시선이 일순간 교차한다.

우습게도 둘은 거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도플갱어라도 본 것 마냥 크라베스와 크람베르의 인상이 동시에 구겨졌다.

“저놈은?”

“배반자입니다.”

“......”

크람베르가 크라베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망령들은 마치 크라베스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거친 뻗어나갔지만 크라베스의 몸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주위에 가자 흩어져 버린 것이다.

“...정수를 마셔야겠군.”

“가시지요. 안 그래도 이곳은 정수가 잠들어있는 성지의 근처입니다.”

“그래? 그럼 안내해라.”

크람베르가 발을 뻗자, 망령들이 그를 보호 하듯 주위를 휘감았다.

* * *

크람베르가 부활하자 마치 이 세계는 종말을 알리듯 뒤흔들렸다.

허공에 구멍이 뻥 뚫리며 안 그래도 들끓던 망령들이 그곳에서 끝임 없이 나타났고,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배회하던 마수들은 영역을 벗어나 미쳐 날뛰었다.

유적에 갇힌 대리자들은 이젠 공략이고 자시고를 떠나 제 한 몸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마을은 그야말로 난리통!

“젠장! 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우리가 갇혀 있어야 하는 거냐!!”

“맹약에 따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제기라아아알! 그놈의 맹약! 맹약!”

도우미들은 일관적인 태도로 대리자들을 대했는데, 이게 대리자들에게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 대리자가 무수히 많은 대리자를 동반하여 마을 출입구에 서 있는 도우미를 찾았다.

“정보료를 가져 왔다.”

“뭐?”

그 말에 안 그래도 커다랗게 술렁이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지, 지금 저 대리자가 뭐라고 한거지?”

“정보료?”

“다 닥쳐봐!”

한 대리자의 외침에 일부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정보료.

그건 이 유적을 탐험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자주 거론되어 매우 익숙한 단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출구가 봉쇄된 이후 맹약이라는 것 때문에 대다수의 정보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대금을 지불한 대리자가 물었다.

“자 가져올 건 다 가져왔다, 그러니 내 질문에 답해라.”

“혼자 들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같이?”

“...같이.”

대리자는 그리 말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정보 공유는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세계에 들어온 대리자들은 견원지간임에도 싸움을 중지하고 함께 발발한 망령과 몬스터군단에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고, 이 재료를 얻기 위해 많은 종족들이 나서줬다.

함께 온 이들은 동족이 아닌 동맹군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도우미가 말을 시작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대리자의 질문은 이세계의 대한 것이었다.

“이 세계는 대리자님들께서 알고계신 것처럼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단 이곳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차이가 있는데 이 세계는 순수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특별한 계약에 의해 구성된 세계라는 겁니다.”

“......”

“이 내부에는 현재 그 계약을 맺은 맹약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이전 맺은 맹약에 의거하여 대리자님들께의 정보제공이 제한된 것입니다.”

“...그 말은 그 맹약을 맺은 종족을 처리하면 이 제한이 풀린다는 건가?”

“예.”

“그래서 그 특별한 계약이란 게 뭐지?”

“그건 맹약에 의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도우미는 그것으로 말을 끝냈다.

언뜻 들어보면 뭐하나 딱히 쓸모없는 굉장히 애매모호한 말.

하지만 이미 망령의 습격을 수도 없이 겪어 본 많은 대리자들은 각자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벌써 동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있었다.

“제기랄... 망령들을 움직이고 있는 우두머리가 딱 봐도 맹약자겠군.”

“놈을 잡으면 이 문도 열리겠지?”

“그러겠지. 애초에 이 사태를 벌인 자가 문을 막아버린 것 같다고 했으니까.”

“젠장! 빌어먹을 도우미 놈들! 그럼 결국엔 이 사태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보다도 계약이라는 말이 걸려. 이 염병할 판도라에서 특별히 구성된 세계라니...”

대리자들이 다시 술렁였다.

이에 답변을 해주었던 인간형 도우미는 먼 하늘을 응시했다.

대리자들과 달리 그는 이 계약이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크람베르가 마침내 부활하는데 성공했고, 종족의 운명을 책임질 맹약자 또한 정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세계의 승리자는?

정수를 얻는 자는 과연 누가 될까?

말도 안 되는 일이 겹치고 겹쳐 0.000001%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운 좋게 풀려난 크라베스?

아니면 파괴자로 변모한 영혼 총괄 시스템인 크람베르?

그것도 아니면...

도우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0.000001% 가능성조차도 없던 크라베스를 풀어준 남자.

본디 크라베스에게 다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던전을 돌고 단서를 얻은 뒤 수많은 아이템을 이용해야만 가능했다. 그것도 정식 루트를 밟아서는 안 되고 기괴하게 꼬인 루트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운으로 단번에 찾아버렸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마왕의 힘부터 천마의 무공까지... 그건 정말 단순히 운이었던 것일까?

쿠르르 콰쾅!

솨아아아아아-

마침내 어둠이 전 지역을 장악했다.

낙뢰를 동반한 폭우가 폭포처럼 쏟아지며 대리자를 포함한 도우미의 몸을 흠뻑 적셔나갔다.

* * *

‘오르엠이 죽었다.’

유세현은 그의 영혼이 뽑혀나갔음을 느꼈다. 미약하게나마라도 발휘되고 있던 그 찬란한 힘이 완전히 꺼져버린 것이다.

대천사들은 표정을 보건데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보다도 어떡하지?’

유세현은 여태까지 감각에 의지해서 길을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길을 인도해주고 있는 걸 따라온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각이 한계에 봉착했는지 도통 길을 알아 낼 수 없었다.

죽은 마족들의 시체와 재가 된 망령들이 이정표처럼 쓰러져있긴 하지만, 이 뒤틀린 세계에서 그것과 길을 발견해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강호와의 합류는 이 유적이 완전히 끝난 뒤에야 가능할 터.

‘역시 만만치 않군.’

유세현이 멈춰 서자 뒤따르고 있던 이들이 유세현의 상태를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역시 단순 감만으론 이정도가 한계인가?’

드람이 그렇게 생각할 때 무엇인가가 쓱 하고 그들의 주위를 쏜살같이 지나쳤다. 유세현은 그게 다른 통로를 걷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몸을 날렸다

텁!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나고, 내부로 들어선 유세현의 손이 신상불명 생명체의 팔을 낚아챈다.

놈은...

“클락?”

제3 사도 클락은 많이 다쳐 있었는데 유세현이 팔을 붙잡자 깜짝 놀랐는지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잠깐! 지금 난 널 공격할 마음이 없다. 스킬사용을 중지해라!”

“누가 믿을 줄 알고!”

쿠궁!

쾅!

망령들이 부풀어 오르며 큰 폭발이 일었다. 루시펠을 등에 업고 있던 유세현은 이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일은 최상위 대리자인 연합군이 대신해주었다.

슈슉-

순식간에 클락을 포위한 엘프와 델바람.

“거참 공격할 마음이 없대도 공격하는 꼴이라니...”

“......”

“유세현, 이놈에게 할 말이 있나본데 나와서 말해봐라.”

“고맙군. 데르프푸스.”

유세현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천사들에게 했던 것처럼 클락을 회유했다.

이 과정에서 현 상황에 대해 살짝 언급을 하긴 했으나 오르엠이 죽은 것과 크람베르가 되살아난 것은 당연히 알지 못하는 체 했다.

클락은 크라베스와 교신을 하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말했다.

“좋다. 따라와라.”

연합군은 잔뜩 경계한 채 뒤를 따랐다. 몇몇 엘프가 반발심을 보였으나, 크라베스가 마족을 덥쳤다는 걸 천족에게 들은 상태였기에 그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저편에서 붉은 빛의 피부를 지닌 생명체가 망령을 휘감은 채 세 개의 안광을 번뜩이며 다가왔다.

“크라베스.”

유세현이 아는 체하자 그의 모습을 살핀 몇몇 엘프들과 델바람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천문대를 통해 한 번 본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와도 사뭇 형태가 달라진 탓이다.

저건 마치...

‘영상에서 봤던 종족 같군.’

“흐흐, 유세현. 오랜만이군.”

크라베스는 음흉한 미소를 발산했다. 유세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루시아씨는? 너와 함께하고 있던 게 아닌가?”

“아아, 루시아? 그 여자는 지금 카그네프와 함께 성으로 진군 중에 있다.”

“카그네프?”

엘프와 델바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했다.

“설마 카그네프님이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거냐?”

“물론이다.”

“......”

엘프와 델바람들의 시선이 천족에게 향했다. 분명 봤을 텐데 왜 말을 안했냐는 그런 의미였다.

“미안하지만 우린 자리를 이탈하기 바빠 뭔가를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목격한건 광기어린 목소리와 함께 망령이 쏟아져 나온 것뿐이다.”

“큼...”

“아무튼, 성이라니 그게 대체 뭐냐?”

유세현이 말을 자르고 모르는 척 물었다. 크라베스는 이에 어깨를 들썩거렸다.

“크크크. 우리가 정보를 공유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각자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될 뿐.”

“그건 그렇지. 그 말을 들어보니 루시아씨는 일부러 데려오지 않은 게 분명하군.”

“어이쿠~ 당연한 소리를. 너를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인데. 나는 현재 그녀와 영혼 각인을 통해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너희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 크크크, 정말 가련하지 않나?”

“도발은 자제해라. 내 성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면.”

“크크크! 동료에게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성인군자가 그런 말을 내뱉으니 참으로 웃기는 군... 뭐 알겠다. 나도 쓸데없는 입씨름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으니. 아무튼 성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지.”

“...그 말은 합류시키지는 않겠다는 뜻이냐?”

유세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나 크라베스는 여유롭게 그것을 응대했다.

“물론이지. 네가 루시아만 쏙 빼내서 도망갈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아니 사실 무척 확률이 크다. 내말이 틀린가?”

“......”

“아무쪼록 나를 도와라. 그럼 루시아는 계약에 의거해 무사히 너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허튼 수를 쓰려 한다면...”

뿜어져 나온 망령들이 유세현의 주위를 순식간에 포위했다.

“다시는 못 보게 될 거다. 알겠나?”

크라베스는 할 말을 마쳤는지 몸을 휙 돌렸다. 그러자 델바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 우리는 카그네프님과 합류하고 싶다만...”

“흥! 어차피 성에 도착하게 되면 한 번쯤은 만나게 될 거다.”

“아니, 우리는 지금 바로...”

“적들을 처치하며 내가 붙여준 망령들을 따라가라. 그럼... 나중에 또 보자구 유세현.”

스스스-

그가 자취를 감췄다. 이에 델바람들은 부리나케 성을 냈다.

“저, 저 자식이? 감히 우리말을 대놓고 무시해?”

“이 자식을 지금 그냥 확...”

“그만해라. 원래 저런 놈이다. 너희들이 카그네프와 합류하게 되면 제어하는데 골치 아플 거라 판단을 내린 거겠지.”

“후...”

“그보다도 봐라.”

유세현이 망령을 가리켰다.

지금까지는 서로 만나면 싸우기 바빴던 망령들이 이제는 이정표가 되어 그들에게 길을 일러주고 있었다.

철의 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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