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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1화 (39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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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으...”

    “후우... 후우...”

    신음소리가 한데 뒤엉켜 메아리치고 있는 공간.

    미카엘과 라파엘은 힘겨워하고 있는 천사들을 보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크윽, 신께서 붙잡히시다니...”

    “어떡하지? 미카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후... 나도 마찬가지다. 가브리엘이 깨어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가브리엘은 그들 중에서 제일 머리를 잘 쓰는 지략가였다.

    혼란을 틈타 가까스로 구출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폭주의 여파로 인해 그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어떡해서든 오르엠님을 구해야 해.”

    “그러니까 무슨 수로? 우린 길조차도 모르지 않나.”

    “......”

    말이 제자리를 계속 빙빙 돈다.

    가슴이 꽉 막힌 듯한 최고로 답답한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그때 그런 그들의 바로 앞으로 허공에서 손 하나가 불쑥 뻗어 나왔다.

    “?!”

    천족들은 깜짝 놀라 곧바로 전투태세를 다잡았다.

    지원군? 아니면 적?

    본래라면 그런 것쯤은 순식간에 구별이 가능했지만 다치고 체력이 저하되어 감각이 무뎌진 그들은 상대방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유세현이 제일먼저 그들 앞에 섰다.

    “아니 넌?!”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그들의 동공이 흡사 지진을 연상케 하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유세현이 흡사 낮도깨비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유세현은 모르는 척 대응했다.

    “흠... 천족? 마족에게 당한건가?”

    “너, 이 자식 대체 여기엔 어떻...”

    “......”

    스르륵-

    유세현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살짝 붙였다 뗐다. 미카엘과 라파엘은 그 영문 모를 행동에 잠시 당혹스러워 했지만, 이어서 아퀼라를 포함한 엘프와 델바람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륵-

    미카엘과 라파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유세현을 제외하고도 저들 하나하나가 네임드, 최정예 대리자라는 걸 단번에 인식한 것이다.

    상태가 불완전한 지금 그들과 맞붙게 된다면?

    “...엘프와 델바람이 완전히 연합을 맺은 건가...”

    “그렇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뭐지?”

    미카엘이 물었다. 그러자 데르프푸스가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크크크, 이유? 무슨 이유 겠나?”

    츠으으-

    철퇴가 땅을 쓸며 슬금슬금 움직였다. 데르프푸스는 지금 이들을 처리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에 미카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젠장... 방금 그 행동... 별다른 의도는 없었던 건가?’

    뭔가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때 유세현이 한쪽 손을 들어 이를 제지했다.

    “응? 이게 또 뭐하는 짓이지?”

    “아니, 네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거 같아서 말이지.”

    “무슨 의미냐? 놈들을 살려라도 주겠다는 거냐?”

    데르프푸스가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의미를 깨우쳤는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너 이 자식...”

    “지금은 서로 싸워봤자 전혀 좋을 때가 아니다.”

    “......”

    둘 사이에 순간적으로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었다. 데르프푸스는 대천사의 코인을 흡수하고 싶어 하고 있었고 유세현은 정반대로 포섭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이 타당한가?

    “데르프푸스, 너도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을 텐데?”

    유세현이 딱 한 마디 했다.

    데르프푸스는 이를 갈았다. 짜증나지만서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발생한다면 코인을 먹게 되더라도 체력소비가 더 발생할 것이고, 차후 싸움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무척 높다. 반면 천족들을 격퇴시킨 적들은 강력할 게 너무도 자명한 상황.

    천사들을 처리한 뒤 이탈한다는 방법도 있기야 있겠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이 상황을 종식시키는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되려 인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욕심을 이기지 못해 죽였다고 소문이 나면 동족에게 멸시를 당하게 되는 수도 있었다.

    이 세계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해도 끝장.

    “손을 잡겠나? 만약 안 잡겠다면 우리도 이 찬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유세현이 물었다. 사실 엄포였다.

    이에 미카엘이 라파엘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손을 잡도록 하지.”

    “잘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최대한 간략히 줄여 설명해 봐라. 시간이 결코 많지는 않아 보이니까.”

    “흠... 그러도록 하지.”

    미카엘이 정말 간략히 줄여 설명했다. 왜 싸움이 붙었는가, 그런 서두 같은 건 붙이지 않고 전투의 과정과 결과만 말한 것이다.

    “그렇게 돼서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흐음 그렇군...”

    데르프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놈들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잘 참은 일임이 분명했다.

    확실히 크라베스까지 이곳에 당도한 이상 코인보다도 천족 자체가 효용 가치가 훨씬 높다.

    데르프푸스는 마지막으로 유세현을 가리켰다.

    “아까도 봤겠지만 이자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오르엠이 잡혀있는 곳까지 당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이에 미카엘과 라파엘의 눈동자가 동시에 유세현을 응시했다. 데르프푸스라는 델바람이 유세현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을 숨기다가 뒤통수를 쳐 신물파편을 빼앗아간 인간.

    유세현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유세현이다. 이렇게 된 거 잘 부탁하지.”

    “...미카엘이다. 잘 부탁한다.”

    그들은 마치 서로 처음 안면을 튼 사람마냥 마냥 악수를 했다.

    * * *

    슈우우욱-

    콰아앙!

    “큭!”

    상상할 수 없을 속도로 크라베스와 공수를 나누던 벨제뷔트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스텟적인 면에서나, 실력적인 면에서나 그는 전혀 꿀릴 것이 없었지만 천족과의 전투에서 너무도 많은 힘을 사용한 게 문제였다.

    “빌어먹을... 내가 저딴 근본 없는 놈에게까지 밀려야 하다니!!”

    “하하하! 근본 없는 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보구나! 지금이라도 얌전히 그 자리에서 비킨다면...”

    슈웅!

    쾅!

    그 순간 데프하우어의 폭렬마법이 크라베스를 향해 쏟아졌다. 황급히 망령을 흩뿌려 방어한 크라베스의 안면이 꿈틀거렸다.

    “크! 저 녀석...”

    위력이 보통이 아니다. 겉으론 상대를 비웃고 있지만 솔직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계속 끌리게 되면 크람베르가 부활하고 만다.

    유리했던 상황이 놈의 부활로 인해 흔들리게 될 테니,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식을 망치고 싶었다.

    “카그네프!”

    “하! 알고 있다!”

    크리네프를 향해 접근한 카그네프가 에메랄드 눈동자를 번뜩 빛냈다. 그러자 벨제뷔트가 다급하게 크리네프를 향해 외쳤다.

    “이런! 놈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뭐?”

    “늦었다!”

    파앗-

    카그네프의 눈에서 녹빛이 광선처럼 뻗어나갔다.

    종족특성이 아닌 그만의 고유특성.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석화의 술이 크리네프의 전신을 뒤덮는다.

    트드드득-

    “크윽! 이건!”

    깜짝 놀란 크리네프는 다급히 반응하여 방어했으나 이미 상당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우선 한 마리!”

    카그네프가 힘차게 워엑스를 휘둘렀다.

    4 대 4로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가 되고 있던 그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카그네프의 워엑스가 거의 닿기 직전 거대한 붉은 불기둥이 그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크라라라라!]

    켈베로스가 내뿜은 불꽃이었다.

    “쳇!”

    켈베로스는 레드드래곤의 힘을 조사해서 만든 생명체인 만큼 불에 관해서는 화력이 보통이 아니기에 카그네프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자리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맞는다고 순식간에 녹아버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으나, 뭔 일이 있을지 모르기에 그는 항상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짜증이 난 카그네프가 켈베로스를 상대하던 이브를 향해 외쳤다.

    “이브!! 제1 사도라는 게 그깟 똥개 한 마리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방해받게 만드나?”

    “흥! 제일 쉬워 보이는 녀석이나 상대하는 놈이 말이 많군.”

    “뭐라?”

    빠악-

    이브가 불꽃 발현 때문에 생긴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켈베로스의 복부를 후려 깠다.

    [캐애앵!]

    켈베로스가 벽에 들이박자 그녀는 만족스럽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만족하나?”

    “하! 떠먹여 준거 받아먹고는 으스대는 꼴이라니.”

    슈웅!

    쿠구구구!

    이어서 루시아가 만든 검붉은 연기가 일대를 휘몰아치기 시작하자 기세는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벨제뷔트는 루시아의 힘을 보고 경악했다.

    ‘뭐냐 저건... 머리가...’

    지끈거린다. 겉이 아닌 속에서 육체를 파괴하는 느낌.

    “이게!”

    보다 못한 벨제뷔트가 루시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루시아가 손을 퉁 튕기자 검붉은 기운이 충격파처럼 변해 그의 육신을 밀쳐낸다.

    터엉!

    “칫!”

    벨제뷔트는 결국 또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루시아는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방금 전의 기술은 지금 처음 사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치 원래 알고 있었던 것 마냥 어떻게 하면 뭐가 만들어질지, 얼추 예상이 되었다.

    ‘게다가 먹혔어. 그 벨제뷔트에게...’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성장... 드디어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녀의 마력이 기세를 형상화시키기라도 하듯 넘실거리자, 더 이상 이대로는 무리라 판단한 벨제뷔트가 명령했다.

    “데프하우어! 너의 본신의 힘을 놈들에게 보여줘라.”

    “알겠습니다. 벨제뷔트님.”

    말을 마치기 무섭게 데프하우어의 몸이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뭐, 뭐냐 저건?”

    영문을 모르는 크라베스는 당황해하고, 뭔지 알고 있는 카그네프는 입술을 곱씹었다.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본체화라니?

    “크라베스! 이브! 의식을 막고 싶다면 너의 최고 공격을 놈을 향해 날려라!”

    “큭, 명령은...”

    크라베스는 기분 나빠 하면서도 망령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뭔가 싸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변화를 끝마친 데프하우어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웁-

    “이런! 알아서 잘 대응해라! 제대로 맞으면 절대 못 버틴다!”

    “하! 못 버티긴! 감히 누구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단번에 복부를 꿰뚫어주마.”

    크라베스가 구체를 날린 순간이었다.

    데프하우어가 눈을 번쩍 뜨며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애쉬드 브레스.]

    쿠구구구구!

    찐득하면서도 뜨거운 용암 같은 액체가 흘러나와 구체와 부딪쳤다.

    [꺄아아아아-]

    구체속의 망령들이 괴로운 듯 몸부림을 치며 반항한다. 그러나 그 망령들의 반항은 얼마가지 못했다.

    “이런!”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독액이 구체를 뚫고 크라베스가 있는 곳을 뒤덮었다. 만약 이브가 그를 지키기 위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크라베스 해도 일격에 사라졌을 만한, 애쉬드 브레스는 그런 무지막지한 능력이었다.

    치지지직-

    “크, 크라베스님 탈출하십시오! 이, 이건 버티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옆으로 슬쩍 돌아간 루시아와 카그네프가 데프하우어에게 큰 일격을 날렸다.

    [캬아아아아!]

    데프하우어는 괴로운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독액을 사방에 흩뿌렸다. 덕분에 근처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피아 상관없이 독액을 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했다.

    크리네프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런 생명체가 존재하다니...”

    “으으으! 망할 거대도마뱀 자식!”

    이브의 상태가 좋지 않아지자 크라베스가 으르릉 거렸다. 그러자 카그네프는 그런 크라베스에게 일침을 놨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의식을 막아야지!”

    “큭! 알고 있다!”

    [죽어라!]

    콰과광!

    수없이 많은 마법이 소나기처럼 빗발쳤다. 데프하우어는 마법을 난사하면서도 육중한 육체를 이용해 공격했는데 그건 완전 재난이었다.

    물론...

    [크아아아악!]

    몸이 거대한 만큼 목표가 되어 많이 맞아야했다. 벨제뷔트는 더 이상 하다가는 데프하우어가 위험해질 것이라 느꼈다.

    “거기까지! 데프하우어! 이제 그만해라!”

    “안 될 말이다 벨제뷔트! 이제 와서 그만두다니! 의식은 거의 다...”

    “크라베스인지 뭐시기인지한테 별 힘도 못 쓰던 게 닥쳐라! 이정도면 충분히 해줄 만큼 해준 거다!”

    “큭!!”

    벨제뷔트는 순식간에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크라베스가 결계를 부수고 내부로 침투했다.

    눈을 감은 채 잔뜩 집중하고 있는 렘벨크와 다른 제사장들을 흘끗 살핀 그가 광소를 내보이며 팔을 힘껏 내뻗었다.

    “하하하하! 끝이다!”

    망령들이 렘벨크를 향해 쇄도하는 순간, 마법진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며 렘벨크가 눈을 번쩍 떴다.

    철의 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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