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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0화 (39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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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다...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른다.’

데프하우어를 상대할 때의 센스와 격투술이 유세현에겐 있으니까.

‘제길... 당장 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도 짜증스럽군.’

배가 되는 연합군의 경계심.

그런데 그때 데르프푸스가 짜증스런 심정을 토로하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의 그 행동 때문에 무려 5분이나 지체됐다. 이걸 대체 뭐로 보상 할 테냐?”

이미 루시펠의 포켓을 털어먹은 것치고는 너무도 괘씸한 언사였다.

그러나 유세현은 반발하는 대신 허리춤에서 포켓을 하나 해제하여 데르프푸스에게 던져주었다.

“이건?”

“지금까지 내 주 장비가 박살나면 서브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뒀던 아이템이 들어 있는 포켓이다.”

“뭐?”

반문한 데르프푸스가 빛보다 빠르게 포켓을 펼쳤다. 우수수 아이템이 쏟아진다.

“시간을 끈 건 내 책임이 맞으니 그걸 주도록 하지.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포켓으로 바꿔도 상관없다만 별 재미는 못 볼 거야.”

“......”

데르프푸스와 연합군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정보를 살폈다. 내로라하는 최상품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론 보기 힘든 물품들로 가득하다.

확실히 이 이상의 장비는 얻을 라면 하늘의 별따기이기에 데르프푸스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물었다.

“정말로... 이걸 전부 주겠다는 거냐?”

“물론, 이런 전장에서 5분은 굉장히 긴 시간이다. 쓸데없이 너희를 위험에 노출 시켰으니 나도 그만큼의 출혈을 감수해야 공평하지. 루시펠의 포켓 지분도 포기하도록 하겠다.”

“......”

“아, 추후 루시펠이 착용할 장비 몇 개는 가져가도록 하지. 그 정도는 괜찮겠지?”

유세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 봐두었던 장비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겼다.

연합군에게는 엄청난 이득.

루시펠이 지니고 있던 진실의 비도도 얻었기에 사실 더할 나위없는 큰 수확이다.

허나, 데르프푸스와 드람은 되려 굳은 표정을 풀 수 없었다.

보통 실력이 출중하면 인성이 개판이거나 거만하다던가, 탐욕이 많다 던지 뭔가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유세현에게는 그런 게 딱히 보이지 않았다.

녹지 않은 빙하처럼 싸늘하고 냉철하다.

마치 그의 발밑 주위가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헛것이 보일 정도로.

“후우... 좋다. 네가 대가를 지불한 이상 우리도 앞으로 이일에 대해선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

“고맙군.”

“앞장서라.”

“그러지.”

유세현은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여전히 도주하고 있는 마족과 이를 추격하고 있는 루시아 외에도 여러 가지가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제일 격한 흔들림이 감지되는 건 바로... 천족.

‘이놈들도 이용할 수 있을까?’

유세현은 1초 만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들도 어떻게든 군주인 오르엠을 되찾고 싶을 테니까.

‘서로 견제할 종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드람과 이하 연합군들이 유세현을 보고 있었듯 유세현 또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연합은 처음부터 모래성이었다.

지금이야 위기라는 물기가 간신히 성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고 있지만, 균형이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물기는 순식간에 증발하고 성은 눈 깜짝할 새에 무너질 것이다.

필히 지금보다도 더 목숨이 위태로워지겠지.

유세현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어부지리를 노리는 무사귀환이었다.

이 세계에서 탈출이 불가능한데다가, 자꾸 크라베스가 노려오는 턱에 격류의 중심지로 뛰어든 것이지, 클리어가 최우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슥-

유세현이 한쪽 손을 쭉 뻗자 길이 트였다.

유세현은 그 순간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 대는 느낌을 또 받았다.

한 번은 우연이라 처도 여러 번은 우연이 결코 아니기에 살펴봤지만 역시나 딱히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다.

혹시 긴장한 것일까?

‘으음...’

유세현이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밥 먹는 것보다도 더 많이 한 게 바로 긴장이었다.

알베타스와 싸웠을 때도, 트루크와 맞붙었을 때도, 그리고 티탄족에게 꼽사리 끼어 천족과 대규모 전쟁을 벌였을 때도... 그는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의 두근거림은 다른 느낌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후... 집중하자.’

유세현은 가슴을 쓱 한 번 움켜쥔 뒤 갈 길을 계속 찾아 헤맸다.

* * *

“...?!”

제단에 거의 다다른 벨제뷔트의 시선이 한 순간 등 뒤로 향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것이 무척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희미하게나마 이어져있던 루시퍼와의 연결이 끊겼다.’

벨제뷔트는 루시퍼를 권속으로 삼았었다.

동화가 전부 이뤄지지 않았기에 비록 불안전한 반 쪼가리에 불가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상태는 어렴풋 알 수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건 자아가 완벽하게 붕괴되거나 목숨을 잃어 권속상태가 풀린 게 아니었다. 아니, 자아가 완전히 붕괴되면 사고가 낮은 인형처럼 변하긴 하지만 명령은 되려 더 잘 따른다.

만약 죽은 것이라면 끊기는 느낌이 다르기에 분별이 가능하다.

‘흡사 이건... 이건 마치...’

그렇다. 이건 찢어진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연결고리를 손으로 잡고 강대한 힘으로 잡아당겨 강제적으로 끊어버린 것처럼.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벨제뷔트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건 실제로 마왕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속을 끊기 위해서는 더 강한 권능을 지닌 자가 권속을 맺어 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권속을 맺기 위해서는 대상자가 마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루시퍼는 동화에 의해 벨제뷔트의 영향력이 그녀의 90%를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타인에게 마음을 준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잠깐만... 모르는 인간이 아니라, 아는 인간이라면...’

불현듯 루시퍼에게 알아낸 정보가 떠오른다.

유세현 일행 중 서큐버스에 관한 것이었다.

‘설마... 설마!! 그 서큐버스가 권속이었나?!’

튜토리얼에서 유세현이 마왕의 힘을 얻어 꽤나 오랫동안 써왔다는 건 정보를 캐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유세현이 어느 정도까지 권능을 다룰 수 있는지는 정확히 분별해내지 못했다.

권능의 제일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식의 어둠과 마법과 융합된 능력인 흑뢰검을 제외하고 흑암, 흑신 같이 마의 극의를 활용해야 하는 권능은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권속은 마의 권능 중에서도 극의에 한없이 가깝기에 이제 이 세계에서 마왕과 자신, 단 둘밖에 두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뿌득-

어금니가 부딪치며 이가 갈린다.

그런 벨제뷔트 앞에 데프하우어가 불쑥 나타났다.

“데프하우어! 네가 유세현과 맞닥뜨린 건 알고 있다! 어땠나?”

“...강했습니다.”

맘에 안 드는 대답에 벨제뷔트의 미간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강했다고? 마왕과 비교해서 얼마만큼 권능을 다룰 줄 알지?”

“그게...”

데프하우어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늘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뭐?”

“그게... 놈은... 놈은...”

데프하우어가 치욕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와의 전투에서 권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뭐?”

벨제뷔트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진심으로 놀란 것이다.

“다시 말해 봐라. 뭐? 권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신 게 맞습니다. 놈은 암흑투기만 가끔 사용하고 나머지는 묘한 기술을 운용하는 데만 마력을 사용했습니다.”

“......”

벨제뷔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여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뒤에야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굉장히... 묘한 체술이었습니다. 게다가 지형조작 능력도 지니고 있는지 물질들이 변화하여 방해가 들어오는데...”

벨제뷔트는 데프하우어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이지 못한 데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되려 밀리기까지 했다니?

“마치 제가 어디로 이동해올지 전부 아는 움직임이었습니다. 마법만으로는 도저히 대응이...”

데프하우어가 드래곤답게 근접전이 특출 나지 않다는 건 벨제뷔트도 진즉 알고 있는 바였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커버 될 정도로 데프하우어의 마법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상상하지 못할 캐스팅 속도와 다중영창은 아무리 내로라하는 대리자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 채 1분을 버티지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사실 체술도 카시우스나 카그네프 같은 최상위 대리자 놈들에게나 밀리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약한 축에 드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눈엣가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놈의 존재감은 어느새 거인처럼 불어나 있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없애야겠군. 그렇다면 일단은 의식이 먼저다.’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기에 의식은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곧바로 진행되었다.

오르엠을 진법의 중심에 배치한 렘벨크가 시작하기에 앞서 말했다.

“지금부터 15분간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방해받아선 안 된다. 그러니 우리를 제외한 제사장들과 함께 꼭 막아내라. 너를 믿겠다 벨제뷔트.”

“...15분이라... 거지같군.”

“그럼 시작하겠다.”

후우우웅!

새빨간 핏물이 기하학적인 마법진에 고이자 이윽고 강렬한 붉을 빛을 발했다.

벨제뷔트는 주위에 몰려있는 제사장들에게 엄포를 했다.

“지금부터는 무조건 내 지시에 따라라. 이견은 받지 않는다.”

“뭐? 착각하지 마라. 너와 우리는 대등한...”

“다시 말하지만 이견은 받지 않는다. 내 병력들의 특성을 전부 숙지하고 운용할 수 없다면 그냥 내 지시를 무조건 따라! 지금은 하나로 뭉쳐야 되니까! 아니면 내 병력을 운용할 수 있나? 가능하다면 해봐라 권한을 줄 테니!”

“......”

추종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좀 오만하긴 해도 벨제뷔트의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다 따르는 걸로 알고 지금부터 명령을 하달하겠다.”

벨제뷔트는 빠르게 병력을 분산시켜 배치했다.

이 제단은 애초에 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봐둔 장소였기에 배치만 잘한다면 적을 막는데 있어 무척 용의한 구조였다. 이전처럼 뜻밖의 기습만 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만약을 위해 제6 제사장 크리네프, 넌 우리와 함께 결계 바로 앞인 이곳을 막는다.”

“흠... 제사장들을 좀 막 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딱히 나쁘지는 않은 전략이군.”

“흥! 굴리긴! 이게 최선인거다.”

그리 말한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저편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휘몰아쳤다.

“하하하하하! 렘벨크는 어디냐!!”

벨제뷔트와 크리네프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벌써 이곳까지 당도하다니?

‘아니, 분명 무리를 해서 온 걸 거다. 병력 전체가 올 수 있을 리가 없어.’

퍼억-

그들이 묵묵히 응시하고 있자, 이윽고 찢겨져나간 마족의 시체와 함께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베스, 카그네프, 루시아 그리고 제1 사도 이브.

크라베스는 크리네프를 확인하자마자 그를 비웃었다.

“크크크, 이게 누구야? 외팔이 되어 버린 비운의 크리네프 아니야? 네까짓 게 나를 막아서다니 나머지는 다 바쁜가보지?”

“...내가 팔이 하나 없을지언정 너한테 꿇릴 거라 생각하나? 고작 해봐야 제11 제사장이었던 너에게?”

“물론이지! 넌!”

치지지짓-

크라베스가 손가락을 뻗자 그곳에 어마어마한 수의 망자들이 집약됐다.

“이미 나에게 한 번 쓴맛을 보지 않았나!”

콰아앙!

망령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그들을 노렸다.

아니, 노리는 것처럼 보이다가 선회하여 크리네프의 등 뒤에 위치해 있는 통로를 향한다.

“어딜!”

크리네프가 재빨리 막아섰지만 그건 기습이었다. 거의 다 쳐냈지만 하나가 빠져나갔다.

“이런... 놓쳤...”

그 순간 벨제뷔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크라라라라!]

거친 포효와 함께 통로에서 불길이 일렁여 망령들을 불사른다. 이윽고 저편에서 세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이 위용 있게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생명체, 켈베로스.

루시아의 눈이 번뜩 빛나는 반면, 공격이 막힌 크라베스는 웃음을 뚝 멈췄다.

“흥! 저딴 괴물을 뒤에 구비시켜두고 있을 줄이야.”

“......”

“가자!”

“막아!”

크라베스와 벨제뷔트가 외침과 동시에 양측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람베르 부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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