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3/606 --------------
쓸데없는 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드람이 말을 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력 재생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상처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고. 싸움터가 아니라면 회복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다시피 이런 상황에서는 가망 없다. 편하게 보내주는 게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다.”
“......”
유세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의외의 관계에 살짝 놀란 데르프푸스와 델바람들이 그를 묘한 표정이 되어 쳐다봤지만 유세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유세현은 그녀를 살려야 된다고 생각해서 움직인 게 아니었다.
그저 몸이 무조건 반사처럼 반응한 것일 뿐이다.
또한 그는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되레 드람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력을 볼 수 있는 자신조차도 그녀가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으으으...”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시끄러웠던 탓일까? 아니면 그냥 때마침 타이밍이 맞았던 것일까?
루시펠이 힘겨워하며 눈을 떴다.
유세현을 본 그녀가 이제는 메말라버린 앵두 같은 입술을 조곤조곤 움직인다.
“꿈...인가?”
“루시펠...”
유세현이 그녀의 이름을 읊조리자, 루시펠은 그제야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허나.
“아...”
부르르 떨리기만 할 뿐, 그녀의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명령을 어긴 패널티와 벨제뷔트에게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반발감.
여러 종합적인 것들이 동시에 작용하여 지금 그녀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유세현이 말했다.
“잠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군.”
“뭐? 시간이 없다고 한건 네가 아닌가. 아무리 길을 찾을 수 있다지만 이래도 되는...”
“정말 잠시... 1분 정도면 된다.”
“...크흠...”
반발한 데르프푸스가 헛기침을 하며 한 발 물러났다.
유세현의 표정으로 보건데 기다려주지 못하겠다고 할 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재 유세현은 데프하우어와의 전투 때문에 연합군 사이에서 더 높게 평가가 올라간 상태였다.
단순히 스텟과 스킬이 뛰어나서가 아닌, 전투 센스의 문제였다.
데프하우어를 상대로 그런 전투를 펼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 수 있단 말인가?
데르프푸스는 유세현의 실력이 자신보다 더 위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걸 본 이상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딱 1분 만이다. 그 이후에는 알고 있겠지?”
“그래, 알고 있다.”
엘프와 델바람들이 1분 동안만이라도 시쳇더미를 뒤지기 위해 각 2명씩만 인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세현이 무릎을 굽혀 거리를 좁히자 루시펠이 힘겹게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유세현... 당신은 그 이후로도 난관을 잘 헤쳐 온 모양이군요. 이곳까지 당도하다니...”
“그러는 당신은 썩 좋지 못해 보이는군.”
“...하하...”
“그래서? 복수는 성공 했습니까?”
유세현이 물었다.
“복수... 복수라... 아마 오르엠은 벨제뷔트에게 잡혔을 거예요.”
“그럼 성공한거로군요. 오르엠은 반드시 죽게 될 테니.”
“...그렇게 되는 거겠죠?”
의문문으로 답하는 루시펠의 얼굴은 전혀 개운해보이지 않는, 무척이나 허탈스러운 표정이었다.
“축하합니다. 목표를 이루셨군요.”
그럼에도 유세현은 그녀를 축하해주었다.
그녀는 어쨌건 목표를 이룬 것이었고 드람의 말처럼 회생불능이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차오르긴 커녕 뒤틀려 사라진다.’
몸을 지켜주어야 될 마력이 생성될 때마다 되려 루시펠의 육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때문에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비되어 사라져 유세현도 보자마자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벨제뷔트의 고유특성인 동화.
‘아마도 루시펠이 벨제뷔트의 지배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었기에 사실 본래라면 대화고 자시고 바로 죽여 버리는 게 이치에 맞았다.
‘후...’
그러나 유세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일까? 왜 그런 것일까?
정보를 얻어 보려고?
아니면 얄팍한 측은지심 때문에?
루시펠이 유세현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담았다.
“후훗, 축하요?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축하라니... 사실, 개운하진 않아요. 되려 허망하군요.”
“...그래서, 후회합니까?”
“후회... 한다고 하면 바보 같겠지만... 부정할 수는 없... 쿨럭! 쿨럭!”
루시펠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유세현은 슬슬 끝이라는 걸 느꼈다.
“허억... 허억...”
루시펠의 덜덜 떨리는 손이 유세현의 얼굴을 향해 서서히 올라갔다.
그 손은 마치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고 녹아버린 촛농처럼.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사시나무의 이파리처럼 무척이나 아슬아슬하면서도 약해보였다.
스윽-
피에 젖은 손이 뺨에 닿자 얼굴의 윤곽을 따라 피가 흘러내린다.
루시펠은 잔잔히 떨리는 눈동자로 잠시 유세현을 응시하다가 허탈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당신들을 계속 따라다닐걸 그랬어요.”
“......”
“그랬다면 오르엠을 잡지 못했어도... 지금처럼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1분 지났다.”
어느새 돌아온 데르프푸스가 철퇴를 치켜든 채 말했다. 유세현은 손을 들어 제지한 뒤 검집에서 루베르크를 뽑았다.
“마지막은 제가 함께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기쁘군요... 제 코인... 쿨럭! 부디 잘 사용하시길...”
루시펠이 눈을 감았다. 동화로 인해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자신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이것을 축복이라 여겼다.
자신의 코인은 유세현의 힘이 될 테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루시펠은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 맞아. 난...’
유세현이 검을 내려친 순간이었다.
“당신의 동료가 되고 싶은 거였어...”
후웅!
쿠웅!
루베르크에 의해 발생된 거센 풍압이 연합군의 사이를 휩쓸었다.
연합군은 그 풍압에도 평온하게 버티며 서있었지만, 표정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직접 끝내는 거 아니었나?”
루베르크는 루시펠의 목 바로 옆에 아슬아슬하게 박혀있었다.
“보기보다 마음이 약한 모양이군.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친히 끝내주지.”
데르프푸스가 보다 못한 척 나서려 발을 한발자국 뻗었다.
그런데 그때 유세현이 루시펠을 불렀다.
“루시펠. 정말 저의 동료가 되고 싶으십니까?”
“네? 무슨...”
“아마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인내해야 할 겁니다. 도박이기 때문에 될지 안 될지도 미지수고요. 그럼에도 저의 동료가 되고 싶으십니까?”
“...네. 되고 쿨럭! 싶어요.”
루시펠은 의아해했으나 반복된 질문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답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대체 무슨 소리를...”
이에 인상은 구길지언정 여유로움만큼은 잃지 않고 있던 데르프푸스의 표정이 돌변했다.
뼈가 담긴 의미심장한 말에, 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음을 예상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당신의 의지를 믿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세현은 그들이 뭘 할 새도 없이 손을 그녀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 * *
쿠오오오오!
어마어마한 어둠의 마력이 유세현의 전신에서 터져 나와 루시펠의 전신을 에워쌌다.
“저 자식 지금 뭐하는 거지?”
연합군들은 잔뜩 당황하여 넘실거리는 어둠의 마력을 경계했다.
지금 유세현이 발현한 능력은 그들이 마왕군을 포함한 여러 마족을 상대하면서도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능력이었다.
드람이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젠장! 루시펠에게 뭔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이렇게 된 거 그냥 공격해버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현재 유세현은 유일한 길잡이, 탈출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 그를 처리하게 되면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
‘게다가 저 서큐버스 퀸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테고.’
서큐버스 퀸은 마족 내에서도 이젠 하나의 개체 밖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개체였다. 라파엘에게 나차쉬가 죽은 뒤 나르슈나라는 서큐버스가 그 뒤를 이었지만, 드람은 나르슈나를 직접 눈으로 본적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나르슈나는 저 서큐버스 퀸보다 약하다.’
환각과 마법은 동급이라 놓는다 쳐도, 체술 쪽에서 아예 상대가 안 됐다.
물론 나르슈나가 그 뒤로 체술의 필요성을 똑똑히 체감하고 익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무쪼록 지금 중요한건 아퀼라라 불리는 서큐버스 퀸이 그만큼 이례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뭐 제대로 붙는다면 우리가 패할 일은 0.1%도 없겠지만...’
연합군은 결국 머뭇거리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공격을 감행하진 않았다.
* * *
“아악! 아아아악!”
어둠이 본격적으로 투입되자 루시펠은 비명을 멈추지 못했다. 아퀼라가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적에게 자신들이 여기 있다는 걸 광고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트득-
트드득-
루시펠의 피부가 깨진 도자기처럼 갈라지고 우수수 부서져 내린다.
검게 변한 절반의 머리카락은 퇴색과 물들기를 반복했고, 그건 뜯긴 날개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악! 아아악!”
일정수준 주입이 되자 동화에 의해 얻은 루시펠의 마기가 정형화 되며 유세현의 마기를 에워쌌다.
두 개의 마기는 마치 투쟁이라도 벌이듯 서로를 잡아먹었다.
조금씩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세현의 마기가 밀리기 시작한다.
동화된 루시펠의 의식과, 벨제뷔트의 집념이 그의 힘을 거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건 유세현보다도 루시펠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만약 동화된 의식보다도 지금 남아있는 의지가 약하다면 그녀는 벨제뷔트에게 먹혀 죽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겨내게 된다면...
“으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
그녀의 몸을 에워싸던 두 개의 어둠이 동시에 폭발하듯 터졌다.
암흑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이제는 잔뜩 집중하여 보고 있던 연합군의 마른침 넘기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린다.
실패? 성공?
유세현은 자세를 낮추고 루시펠의 모습을 살폈다.
아까와 달리 그녀 본연의 머리카락 색인 은색이 머리카락 전체에 감돈다. 반면 날개는 여전히 흑과 백 반반이다.
그가 루시펠에게 말했다.
“대단하군요. 벨제뷔트의 집념이 강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유세현씨...”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시펠씨.”
유세현이 손을 뻗자 루시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나마 그것을 붙잡았다.
아까 전이었다면 힘없이 부서 졌을 터인데 더 이상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유세현씨 전...”
체력이 다한 루시펠은 말을 채 다하지 못하고 희미한 미소만을 남긴 채 그대로 팔을 떨궜다.
유세현은 실소를 내뱉으며 그런 그녀를 부축해 등에 업었다.
현재 그의 눈앞에는 정말 오랜만에 나타난 알림창이 둥둥 떠 있었다.
[과거의 대천사, 루시펠이 직속 권속이 되었습니다.]
[루시펠의 종족 구분이 반마(半魔)에서 마족으로 완전 변경됩니다.]
[권능의 부여는 앞으로 1회 더 가능합니다.]
“후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유세현이 말하자, 연합군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뭐가 뭔지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지금까지 관람한 이상 그녀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족!’
그것도 하급 같은, 불완전한 마족이 아닌 최상급 마족.
외관은 날개를 제외하곤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었다.
‘설마 권속까지 둘 수 있을 줄이야... 설마, 이 서큐버스 퀸도?’
‘어디까지 권능 구사가 가능한건지? 마왕의 70%? 아니면 그보다도 더?’
‘일단 지금까지 위기상황에서 단 한 번도 흑암을 사용하지 않을 걸 보면 100% 전부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합군 모두가 유세현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잠재적인 능력이 전부 개화된 것이라고 해도 위험한데 그렇지 않을시 추후 정말 마왕과 완전 똑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탓이다.
크람베르 부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