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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06화 (39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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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펠은 멈추지 않고 지면을 향해 마력탄을 쏴댔다. 오르엠이 벨제뷔트를 얕보긴 했으나 그의 마력은 마왕을 제외하곤 가장 순도 높은 어둠의 마력이다.

    천족과 마족은 각 대칭점을 이루고 있기에 서로에 대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대로 힘에 노출되면 아무리 오르엠이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쿠구구구궁!

    한 차례 더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어 주위를 잠식했다.

    “하아...하아...”

    허공에 멈춰선 루시펠은 시선을 고정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일순간 어마어마한 마력을 쏟아 부었다.

    롱기누스에게 꿰뚫리고 이것까지 맞았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다.

    그렇다. 분명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인데...

    ‘왜... 왜...?!’

    코인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먼지 속에서 손이 툭 튀어나와 루시펠을 겨눴다.

    “?!”

    치지징!

    파앗!

    응축된 신성의 빛이 그녀를 향해 솟구친다. 루시펠은 다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것이 1초만 늦었어도 죽었을 터다.

    쿠구구구궁!

    빛이 천장에 닿자 충격파가 퍼지며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세계가 흔들렸다. 점액질로 된 피막이 우수수 떨어지고 마치 운석이 부딪친 마냥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된다.

    “미친!”

    “아직도 저 정도의 힘이 남아있다고?”

    “역시 우리들의 위대한 신!”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던 대리자들의 눈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전부 오르엠 쪽을 향했다.

    그가 방금 발휘한 힘은 그 정도의 것이었다.

    먼지가 걷혀 모습이 보인다.

    롱기누스를 지지대로 삼아 버티고 서 있는 오르엠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롱기누스를 잡은 왼팔은 갈가리 찢어져 뼈가 드러났고, 고고함을 발하던 나머지 반쪽 날개는 타버려 새카맣게 그을렸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황금의 갑주도 전부 깨부숴져 이젠 일부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그러나.

    “하하하하하하!”

    오르엠은 되려 포효했다.

    슈슈슈-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폭발하듯 뻗어나간다.

    동시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부서진 뼈가 붙기 시작하고 그 사이사이를 조직세포가 재생되어 채워나간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터프하게 쓸어 올린 그가 롱기누스를 벨제뷔트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덤벼라 잔챙이들아. 신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쳇.”

    벨제뷔트는 나직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 *

    “벨제뷔트, 루시퍼 때문에 일이 좀 더 귀찮아졌다. 잘 통제할 수 있던 거 아니었나?”

    렘벨크가 대놓고 벨제뷔트를 나무랐다.

    이에 벨제뷔트는 말없이 루시펠이 떠있는 상공을 응시했다.

    동화률 95%.

    이정도면 사실상 그의 사상이 그녀의 전부를 잠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벨제뷔트의 마음이 곧 루시펠의 마음인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오르엠을 죽이고 싶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다고 하나, 벨제뷔트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동화의 힘 때문에 자연스레 타협점을 찾게 돼 있었다.

    게다가 당최 루시펠과 한 약속도 쓰러뜨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지, 죽일 수 있게 해준다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약속을 깬 그녀는 이 싸움이 끝나면 엄청난 패널티를 받게 될 것이다.

    벨제뷔트가 하려는 일에는 조금의 의구심도 갖지 않는 충실한 인형이 되는 것이다.

    이건 동화 100%일 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그리 될 거란 건 루시펠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 정도로 직접 죽이고 싶었다는 건가.’

    아무쪼록 오르엠이 권능을 완전 회복했다.

    하지만 벨제뷔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롱기누스를 잃은 것은 아깝기 그지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 사건이 끝나면 루시펠은 완벽하게 복종하게 될 것이고, 오르엠이 패배할거란 결과는 변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렘벨크의 말처럼 좀 더 귀찮아졌을 뿐이다.

    “보상을 해주겠다. 크람베르가 부활하면 일부 병력들의 영혼을 주도록 하지.”

    “호오, 그래도 괜찮은 거냐? 네 부하들이 아닌가?”

    “상관없다. 어차피 대다수는 장기말이니까. 게다가 나를 위해 죽는 건 그들로써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뭐, 그렇다면야 알았다. 사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까.”

    “그보다도 너희 추종자들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니냐? 좀 더 팍팍 일하라고 해라. 제대로 했으면 사실 벌써 끝났겠다.”

    “의식 준비에 일부 정신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거다. 이제 막 끝났으니 이제부턴 본 힘을 발휘 할 거다.”

    “그래? 그럼 한번 기대해보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오르엠이 사용한 광역 신성마법이 일대에 쏟아졌다.

    * * *

    최강의 3종족이라 불리는 마족, 천족, 그리고 드래곤.

    이중에서 천족과 마족은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이유가 드래곤과는 사뭇 달랐다.

    드래곤들이 일반적인 마력으로 최상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마법을 지니고 있어 3종족 안에 드는 반면, 천족의 신성력이나 마족의 마기는 그 정도로 뛰어나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일반 마력을 사용하는 대리자들에 비해 남다른 특성과 화력을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과 아이정도로 엄청나게 차이나는 건 아니다.

    이 세계로 넘어오며 많은 천족과 마족들이 권능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

    그렇다면 천족과 마족은 대체 뭐 때문에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가?

    그들에겐 드래곤에게 없는 것이 존재했다.

    절대자.

    신, 그리고 마왕.

    이들의 능력은 로드급 드래곤도 비비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또한 이세계로 건너와서도 온건히 그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절대자가 현재 벨제뷔트의 눈앞에 있는 자였다.

    “사라져라 벌레들아!!”

    쿠구구구궁!

    순수한 빛이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마족들은 그걸 보기 무섭게 경악했다.

    “이, 이런 미친!”

    “피해라!”

    그가 발현한 건 마법이 아닌, 순수한 신성으로 피아를 구분하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전투라면 몰라도 한순간의 틈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이때 저런 것을 맞게 된다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벨제뷔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인간의 형상이 무너지며 허물을 벗듯 안에서 삽화에서나 볼 듯한 고대의 악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여전히 위용 넘치는 4개의 뿔과 등과 허리에 새로이 돋아난 2쌍의 날개.

    온 몸이 갑각으로 둘러 쌓여있는 보랏빛의 괴물이 입을 쫙 벌려 포효했다

    “크아아아아!”

    어둠의 파동이 날아가 빛을 상쇄한다.

    이를 본 오르엠은 눈가를 찌푸렸다.

    “건방진 벨제뷔트... 이제야 본모습을 보이다니...”

    “크하하하! 건방? 힘 좀 되찾았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네 주제를 알아라! 넌 내 본체를 보게 된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쿠구궁-

    슈욱-

    땅에 발자국을 남기며 순식간에 날아오른 벨제뷔트가 오르엠을 향해 갈고리 같은 손을 쭉 뻗었다.

    “어딜!”

    오르엠은 곧바로 신성마법을 퍼부어 격추시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스스슥-

    사방에서 나타난 제사장들이 그를 노려온 것이다.

    “큭!”

    오르엠은 제사장들의 공격은 어찌어찌 피해냈지만 더욱 빨라진 벨제뷔트의 마지막 일격은 제대로 회피할 수 없었다.

    푸슉!

    “크악!”

    가슴팍에 손톱모양의 거대한 상흔이 생긴다. 벨제뷔트가 자안을 빛내며 말했다.

    “아직 안 끝났다.”

    “이게!”

    빠바바박-

    격렬한 공방이 펼쳐진다.

    패퇴해 뒤로 물러난 건 당연 오르엠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루시펠이 날아들었다.

    “죽어버려!! 오르엠!!”

    “죽이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겠지?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 루시퍼.”

    그 순간 그의 목을 노리던 루시펠의 움직임이 실이 끊긴 인형마냥 뚝 멈춘다.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 손.

    그녀는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느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강제적인 제약이 더 강해져 자신의 영혼이 벨제뷔트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걸.

    “아... 아...”

    “큭! 나를 배신하더니 꼴좋구나 루시펠!”

    빠악-

    오르엠의 발길질이 루시펠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녀는 오르엠을 향해 힘겹게 손을 뻗었지만 안타깝게도 빠르게 멀어져갈 뿐이었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손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분명 목표가 있던 것 같았는데 이제와선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맞아... 난 오르엠을 죽이기 위해서 벨제뷔트에게 붙었었지? 하지만...’

    왜 붙은 것일까? 왜 오르엠을 죽이려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동화율 97%.

    쿵!

    지면에 들이 받은 루시펠의 팔이 축 처졌다.

    * * *

    대천사 미카엘이 불을 이용한 신성마법으로 공격에 스페셜리스트라면 가브리엘은 물을 이용하는 방어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런 그가 지금 엄청난 공세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방어에 능한 자신이 이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구태여 보지 않아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복제로 인한 힘, 마력, 그리고 체력의 손실.

    전투력 저하로 인해 본래라면 쉽게 죽일 수 있는 적조차도 버거워졌다.

    가브리엘은 판단을 내렸다.

    ‘이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다.’

    함정에 걸려도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때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정말 공들여 준비했다.

    산맥 쪽에 더미를 던져두고 루시펠을 미끼로 사용하다니... 게다가 미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함에도 무리해서 덮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퇴로를 뚫어야 한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어보였다.

    다행히도 단서는 있었다.

    강대한 힘이 부딪쳤을 때 한순간 생겼던 공간의 일그러짐.

    다른 이들은 관측하지 못한 거 같지만 가브리엘은 똑똑히 봤다. 그러니 잘만하면 그곳을 통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그 공간의 일그러짐을 만들고 다 같이 탈출하냐인데...’

    가브리엘은 전원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걸 직감했다.

    마족과 저 정체모를 놈들이 손가락 빨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희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가브리엘은 천사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들 오르엠에게 충성을 다하곤 있으나 그건 그가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 순수한 믿음 때문이 아니다.

    신은...판도라로 끌려온 순간 죽었다.

    반면, 가브리엘은 오르엠을 따르는 몇 안 되는 충성스런 신하 중 하나였다. 과거 신마대전 때, 함정에 걸려 죽어가던 그를 살리기 위해 오르엠은 영원한 소멸을 각오하고 마족의 땅에 현신한 적이 있었다.

    당시 오르엠은 무척 인자하면서도 완전무결한, 정말 사전적인 의미로써의 신이었다.

    지금은 변했다고 하나, 그럼에도 그는 오르엠을 위해 목숨을 다 바칠 것을 그때 재차 다짐했었다.

    ‘다른 고위천사들은 몰라도 라파엘이나 미카엘도 아마 신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죽어주겠지.’

    가브리엘은 그러한 가정을 세우고 힘겹게 적을 떨쳐 내가며 미카엘과 라파엘에게 접근했다.

    “미카엘! 라파엘!”

    “큭! 가브리엘! 이놈들...”

    하지만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구울도 평소에는 손 한 번 휘저으면 사라지기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거슬리다 못해 짜증나는 지경이다.

    가브리엘이 간신히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말하자, 미카엘과 라파엘이 답했다.

    “좋아... 그 수밖에 없어 보이니...”

    “나는 처음부터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좋아, 그럼 힘을 모으자.”

    그들이 하려는 것은 오르엠 근처의 공간을 일그러뜨려 오르엠만을 탈출시키는 거였다.

    그러나.

    “호오, 무슨 작당을 그렇게들 하시나?”

    “아직도 우리가 만만히 보이나보지?”

    “큭!”

    수많은 방해가 동시에 들어왔다.

    염귀의 벨라가 불사른 시꺼먼 화염이 대천사들의 사이를 갈라놓고 날아든 카투우프의 키메라들이 목을 노린다.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상황!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허억... 허억...”

    오르엠이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천사사냥(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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