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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03화 (61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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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슈우우우-

    여태껏 루시펠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렘벨크가 오르엠을 팔을 스르륵 들어올렸다. 오르엠은 그걸 본 순간 굉장한 불길함에 휩싸였다.

    함정에 빠진 건 자신이라고?

    “감정이 너무 앞서가는군, 루시퍼. 그런 말은 본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는 게 아니다.”

    낮은 어조로 핀잔을 준 렘벨크가 마찬가지로 눈을 빛내며 검지와 중지를 내렸다.

    쿠궁!

    그의 몸을 중심으로 흑백의 공간이 퍼져나가 삽시간에 일대를 잠식한다.

    정말 눈 깜짝 할 새, 고작 0.00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기에 아무리 오르엠이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손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황으로 인해 오르엠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는 순식간에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닫고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이곳을 이탈해라!”

    그 명령에 대천사, 휘하병사들이 왔던 길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후였다.

    지잉! 지잉!

    병력들이 통로에 다다르자 어둠속에 숨어있던 문자들이 녹빛을 내뿜으며 접근을 불허했다.

    터엉!

    “크윽!”

    마치 방어마법에 막힌 것처럼 튕겨져 나온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미카엘이 잽싸게 불길을 일으켜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한 곳에 힘을 집결시켜 날려 버...”

    그 순간 공간 전체에 웃음소리가 자욱하게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오르엠의 인상이 순간적으로 구겨진다.

    그는 이 목소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마족 넘버 투.

    “드디어! 드디어 걸렸구나! 오르엠!”

    천장이 신기루처럼 일렁이더니 벨제뷔트가 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자안이 오르엠을 응시하자, 벽을 바라보고 있던 오르엠이 재빨리 방향을 틀어 마찬가지로 놈을 바라봤다.

    “벨제뷔트...”

    “크크! 오르엠! 내가 널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나?”

    벨제뷔트가 팔을 쫙 펼치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오르엠은 혹시나 하여 순간적으로 강력한 신성력을 검에 담아 벽을 가격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오르엠은 그제야 완전히 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흥! 그래서? 고작 준비한 게 이건가?”

    그러나 오르엠은 되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르엠의 성격상 절대 맞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숙적으로 인정한 마왕 루시뷀트라면 몰라도 벨제뷔트가 오만방자하게 구는 꼴은 절대로 보기 싫었다. 아니, 사실 루시뷀트도 싫다.

    “흥! 여전히 오만하구나. 함정에 빠진 주제에 허세라니.”

    “허세?”

    오르엠이 반문하자 찬란한 황금빛의 휘광이 뿜어져 나왔다.

    잠식된 공간 일부가 오로라에 중화되며 색을 되찾는다.

    “이래도 말이냐?”

    “...그래, 나도 너의 힘은 인정한다. 너희 둘은 언제나 그 막강한 권능을 너무도 당연한 듯이 휘두르며 다녔지.”

    벨제뷔트의 어조가 살짝 씁쓸하게 변했다. 그의 눈에는 현재 오르엠과 루시뷀트가 겹쳐 보이고 있었다.

    그래, 권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준비한거다! 오르엠! 오늘 넌 이 자리에서 나와 루시퍼의 손에 쓰러진다.”

    투지를 불태운 벨제뷔트의 자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 * *

    “흥? 이 몸이 네까짓 거에? 천사들이여! 저들에게 신성의 힘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라!”

    순식간에 전투가 재개됐다.

    염귀의 벨라부터 흑마법의 창시자라 불리는 카투우프까지. 순식간에 수많은 고위마족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오르엠은 절대 순수무력으로는 놈들에게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권능도 권능의 차이이지만, 벨제뷔트의 군세는 마왕군에게서 빠져나온 것이기에 사실상 반 토막이 난 군세였다.

    그리고 판도라에서의 전쟁은 수적 우세도 중요하지만 질이 훨씬 중요하다.

    능력과 실력차이에 의해 대리자 한 명이 100명, 아니 1000명도 넘게 학살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오르엠에게는 다른 이들과 달리 추가적으로 부하들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미카엘! 너는 저 특이한 놈을! 가브리엘은 벨제뷔트를 상대해라! 난 먼저 루시펠에게서 롱기누스를 회수하겠다!”

    “명을 받듭니다!”

    파앗!

    대천사들이 순식간에 산개했다.

    콰과과광!

    공간 이곳저곳이 폭발하고, 마기와 신성이 충돌한다.

    오르엠도 휘황찬란한 휘광을 발휘하며 루시펠에게 날아들었다. 루시펠은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파앙!

    롱기누스와 황금의 검이 격돌한다.

    서로의 무기를 맞대며 몸이 가까이 밀착하자 오르엠이 읊조렸다.

    “루시펠, 롱기누스는 다시 받아가도록 하겠다.”

    “가능하다면 한 번 해보시죠!”

    “건방진 것!”

    오르엠이 눈을 부릅떴다.

    6쌍에 날개에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응축되기 무섭게 발사되어 루시펠의 몸통을 노린다.

    루시펠은 재빨리 하강하며 몸을 뺐다.

    “어딜!”

    오르엠은 곧바로 뒤따르며 자그마한 성탄을 쏘아댔다. 그 주위는 둘의 싸움의 여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니, 그곳뿐만이 아니다.

    “크악!”

    “으으윽!”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린다.

    단절된 공간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천사와 악마의 혈흔이 땅을 붉게 물들이고, 내장과 떨어져나간 손가락 등등 온갖 육편들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생명을 잃은 자여 새로 다시 태어나 나의 충실한 개가 되어라! 리바이브 키메라!”

    “빛이여 적을 꿰뚫고 마를 멸하라! 천상의 검!”

    콰아앙!

    부서진 파편이 이리저리 튀며 먼지폭풍이 휘몰아쳐 루시펠과 오르엠을 덮쳤다. 오르엠은 짜증을 느끼며 손을 휘저었다.

    후웅!

    쉬익-

    그것만으로 풍격이 되어 루시펠을 덮친다. 그러나 루시펠도 재빨리 롱기누스를 휘둘러 반격했다.

    오르엠이 루시펠을 향해 외쳤다.

    “나를 쓰러트린다더니 도망치는 게 고작이구나 루시펠!”

    “......”

    “넌 어차피 나를 이길 수 있는 재목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만 포기해라!”

    그 순간 루시펠이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오르엠을 향해 치고 들어왔다. 나름 허를 찌르는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으나 오르엠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쓱 회전시키며 아슬아슬하게 창끝을 회피한다.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퍼엉!

    황금빛의 신성과 마기가 부딪히자 루시펠의 몸이 크게 밀려났다. 상당한 순도의 어둠의 마력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순수한 신성력을 당해내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오르엠도 아예 타격을 입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전신에 자잘한 생채기가 생겼다. 루시펠이 신성력을 사용하던 예전이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었다.

    완전무결함을 좋아하는 오르엠이 살짝 표정을 구기자 루시펠이 씁쓸하게 말했다.

    “확실히... 저는 당신을 홀로 당해낼 순 없군요.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알았다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혼자서 상대했을 때의 일이죠.”

    “......”

    오르엠의 눈이 한순간 주위를 훑었다. 연계할 놈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인가?

    ‘확실히, 데프하우어가 아직까지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다 다른 천사들에게 붙잡혀있었다. 처음 이 공간을 단절시켰던 영문 모를 놈도 육체가 강화된 미카엘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프하우어만 조심하면 될...’

    그 순간이었다.

    스스스-

    오르엠의 주위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일렁이는가 싶더니 또다시 공간이 일그러지며 난데없이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

    오르엠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렀지만 이미 그 무른 근처에도 새롭게 손이 튀어나와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오르엠은 황급히 둘러보고 나서야 수십 개의 손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손가락에서 뻗어 나오는 시커먼 빛.

    “크윽!”

    피할 틈이 없었기에 오르엠은 전방위로 신성방어마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쩌적-

    순식간에 균열이 간다.

    오르엠은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른 이들이 펼친 신성마법이 아닌, 바로 자신이 펼친 마법이다.

    아무리 권능의 절반을 롱기누스에게 부여했다고는 하나, 현재의 그가 지니고 있는 강화의 권능도 어마무시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걸 부여한 이 마법을 이렇게 순식간에 깨부수려하다니?

    ‘전통으로 맞았다면 위험했다.’

    오르엠이 완전히 깨부숴지기 직전 잽싸게 탈출했다. 그러자 균열에서 수많은 제사장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런...’

    오르엠은 그제야 루시펠과 벨제뷔트가 왜 그토록 호언장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아직 최악이 아니었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렘벨크가 손을 휘저었다.

    “거짓을 비추는 거울이여...”

    슈슝-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수많은 거울이 생겨난다.

    벨제뷔트와 루시펠을 포함한 마족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데 반면 천족들은 전부 인상을 찌푸렸다.

    “저들을 잡아먹어라.”

    이윽고 거울이 천사와 마족을 비추자 그 속에서 똑같이 생긴 모습을 한 이들이 거울 밖으로 뛰쳐나와 천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아주 화려하게 싸우고들 있군.’

    유세현은 종족대전에 혀를 내둘렀다. 웬만한 대리자는 손가락만으로 없애버릴 힘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통이 없다.

    ‘흠... 어떡하지?’

    유세현은 잠시 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오르엠의 패배는 거의 확정적.

    그렇게 되면 크람베르가 깨어날 것이다. 물론 크람베르가 깨어난다 해서 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만 좋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거리가 꽤 가까운 편이니 방해만 없다면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이건 그런 부과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도 아무리 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전장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어떻게 되더라도 다른 이들과 합류하는 게 낫겠군.’

    문제는...이 앞.

    쉬익-

    쾅!

    그가 새로운 길에 들어서기 무섭게 광활한 마법이 일대를 난도한다.

    “큭! 이건!”

    “적이다!”

    아퀼라와 유세현은 이미 회피한 상태였고, 엘프들과 델바람은 방어 후 산개했다. 그들은 유세현이 일러주지 않았음에도 마법의 형태로 적이 누군지 파악했다.

    “데프하우어...”

    데프하우어와 상급마족, 놈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 * *

    “미안하지만 여기부터는 출입금지다. 돌아가라.”

    검은 머리칼의 사내, 데프하우어가 충고했다.

    유세현은 그 너머를 슬쩍 응시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파가 어찌나 강한지 바람이 몰아쳐 머리칼을 뒤흔든다.

    유세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쪽으로만 가지 않으면 봐주겠다는 말투로군. 그럼 이쪽으로 가는 건 괜찮나?”

    유세현이 검지를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마족이 점령하고 있는 땅이었다.

    “......”

    안 그래도 날카로운 데프하우어의 눈매가 더욱 예리하게 날이 섰다.

    마치 장난치지 말라는 표정.

    “저곳은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땅이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

    대답하는 유세현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중했다. 이에 몇몇 엘프와 델바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미친! 벨제뷔트가 마족을 이끌고 우르르 몰려오면 어쩌려고!’

    ‘같이 뒤지자는 건가?’

    그러나 다른 몇몇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뭔가 다른 수가 있는 건가?’

    그가 특수하다는 건 이미 길을 거쳐 오며 증명이 되었다. 그러니 혹시나 뭔가 알고 있기에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니, 사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데프하우어가 저렇게 협상을 시도 하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마침내 데프하우어가 입을 열었다.

    “이놈들이 봐주니까 미쳐가지고...”

    엘프들와 델바람은 순간적으로 억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 * *

    슈욱-

    무공은 운용한 유세현이 순식간에 데프하우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데프하우어는 블링크로 회피함과 동시에 마법을 발현하여 곧장 응전했다.

    ‘그래비티.’

    쿠웅!

    이곳을 지키는 이는 데프하우어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고위마족들도 꽤나 존재한다.

    퍼엉!

    콰아앙!

    엘프나 델바람들이 만약 최상의 대리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땅을 기고 있었을 터인 것이다.

    ‘젠장! 이 빌어먹을 인간 때문에!’

    ‘대꾸할 틈을 놓쳤다.’

    연합군은 마음속으로 유세현을 욕하며 최선을 다해서 마족을 상대하다가 이윽고 마족들이 뭔가 이상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묘하게 수비적이다.’

    마족들은 본래 공격적 성향이 너무도 크다. 이 세계에 도착하여 새로운 감정을 익혔다고는 하나 그 버릇이 어딜 가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왜지?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려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체력을 빼놓기 위해 오히려 더 몰아쳤을 거다.’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데프하우어의 등 뒤로 향했다.

    천사사냥(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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