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02화 (611/612)
  • -------------- 396/606 --------------

    “자, 말해봐라. 이 여자에게서 무얼 봤지?”

    감상에 젖어있던 카그네프를 향해 크라베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카그네프는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너무 즐거워하는 티를 냈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살폈지만 이미 수많은 망령들이 델바람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도주는 불가능.

    ‘하긴 애초에 그건 무리였지.’

    그는 마음 같아선 이 정보를 다른 누구와 절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마음을 고수하기위해 이들과 당장 전투를 벌이는 것은 멍청하다 못해 죽어 마땅한 짓이다.

    카그네프의 눈이 크라베스를 향했다.

    이자에게 어디까지 알려줘야 될 것인가.

    카그네프에게 있어 크라베스는 던전 시나리오의 주축이었다. 즉 대리자가 아니니, 경쟁관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까발리는 것은 놈에게 큰 위화감을 안겨 줄 수 있었다.

    과거로 회귀한 인간이라니.

    연관성이 없으니 크라베스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걸 인지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판도라의 특성상 시나리오고 자시고 엉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카그네프는 승리자가 되고 싶은 이였다.

    그리고 잘만하면 그 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강호는 크람베르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물질제조법을 알고 있다. 처음 제조이후로 꽤나 시간이 흘렀으니 추가적으로 몇 개 더 제조가 가능했겠지.’

    놈에게서 그것을 뺏을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 있는 크라베스를 잘만 활용한다면 이세계의 목표로 보이는 크람베르를 처리하고 신물파편을 손에 넣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머릿속을 정리한 카그네프가 말했다.

    “크라베스, 내가 알아낸 걸 모조리 알려주겠다.”

    “응? 당연히 그래야...”

    “내 부탁을 한 가지만 들어준다면 말이다.”

    “뭐라? 부탁?”

    크라베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제와 부탁을 들어달라니, 이건 완전 도둑놈보다 더한 심보다.

    “너, 내가 자꾸 상황 때문에 응해주니 만만한가보다만, 한 번만 더 그런 개소리를 내뱉는 다면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너를 척결...”

    “나와 정식으로 동맹을 맺자. 나와 이곳에 있는 병사들을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고 영혼을 걸고 맹세해라. 그렇다면 정보는 물론이고 네가 추종자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보태주겠다.”

    그렇게 말하는 카그네프의 얼굴은 더없이 진중한 표정이었다.

    화를 내던 크라베스의 입이 잠시 뚝 다물어졌다.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고?”

    “그래.”

    “크흐흐흐흐...”

    음침한 웃음소리가 공간에 메아리친다.

    이윽고 크라베스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좋다.”

    “제안을 수락하는 건가?”

    “물론이지.”

    크라베스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에 카그네프는 자신이 제안한 것임에도 순간적으로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죽일 듯이 노려보다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는 게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내게 좋은 거래다.’

    각인이 끝나자 크라베스에게 다가간 카그네프가 그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강호 그놈은...”

    “그놈은?”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능력자다.”

    * * *

    “으으...”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망령들에게 얹혀있던 루시아가 마침내 깨어났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위를 살폈다.

    ‘어떻게 된...’

    피잉-

    순간적으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망령들을 밟고 도약하여 카그네프를 노렸다.

    “어허!”

    파앙!

    카그네프의 워엑스와 가르쉬우스가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폭풍을 만든다.

    카그네프가 입술을 악물고 있는 루시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래봤자 이미 늦었다고? 인간 아가씨?”

    “으으!!”

    “얌전히 있어라. 그게 너에게도 이로우니까.”

    빠악-

    체력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그녀는 순식간에 나뒹구는 신세가 됐다.

    카그네프가 곧장 접근하여 그녀의 목을 움켜쥐자 크라베스가 즉각 반응했다.

    “어이 어이 카그네프, 죽여선 안 되는 거 알고 있겠지?”

    “물론이다. 자그마한 충고만 하지. 어이 인간 아가씨...”

    신경질적으로 루시아에게 얼굴을 밀착시킨 카그네프가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놈에게는 이강호가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

    “완전히는 안 까발렸다는 거다. 그러니 어차피 지나간 일, 열폭은 이쯤하고 너는 네 살 길이나 찾는 게 어떻겠나?”

    “너...”

    “크흐흐흐! 잘 알아들었겠지? 너와 나의 차이는 이 정도다!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다시 말하지만 얌전히 있으라고~”

    온화한 말투에서 다시 거칠게 말투를 변화 시킨 카그네프가 그녀를 멀찍이 던졌다.

    “으...”

    망령들 사이로 떨어진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휘휘 털었다.

    크라베스가 낄낄 대며 다가와 그녀를 비웃으며 델바람과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니 너도 살고 싶다면 더 이상 저들을 적대하지는 마라. 알았나?”

    “...알겠어요.”

    루시아는 빠르게 판단하고 수긍했다.

    이미 모든 게 델바람에게 까발려졌다면, 이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동료들에게 알릴 필요성이 있다.

    설사 동료들에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유세현이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망령위에 잠시 앉아있어도 상관없겠죠?”

    “크크크, 뭐 좋으실 대로.”

    그녀는 몸을 추스르기 위에 잠시 망령들 품에 몸을 맡겼다.

    * * *

    “젠장... 또 막다른 길이잖아?”

    엘프, 드람의 투덜거림에 주위를 살피던 유세현이 안력을 높였다.

    검은 입자와 함께 숨겨져 있는 틈이 정말 미세하게 드러나 보인다.

    길이 틀림없었다.

    “이쪽이다.”

    마치 장막을 헤치듯 손을 휘저으며 유세현이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자, 손을 붙잡고 같이 이동한 델바람들과 엘프들이 놀라 눈을 희번덕였다.

    어떤 아이템도 지니지 않고 있는 그가 벌써 7번이나 길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게 가능한거지?’

    ‘역시... 몰래 숨겨둔 아이템을 사용한건가?’

    의구심이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또한 당사자인 유세현에게도 이는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제 와서 구별이 가능해졌다.

    영문은?

    당연히 알지 못한다.

    뭔가 심장으로부터 묘한 느낌을 받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감각적인 것일 뿐이지 딱히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쪼록 이 상황에서 나쁘지는 않기에 계속 나아가고는 있다만...

    ‘이거 어째 점점 멀어지는군.’

    처음에는 이강호와 가까웠었는데 길을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루시아 쪽과 더 가까워졌다.

    그는 마력의 흐름으로 최근 루시아가 누군가와 한판 거하게 싸웠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흠, 아무튼...’

    그 순간 유세현의 두 눈이 일순간 화들짝 커졌다.

    “뭔데?”

    미묘한 변화를 눈치 친 데르프푸스가 물었다. 그러자 연합군이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뭔 일 생겼어?”

    “뭔데? 뭔데?”

    현재 엘프와 델바람의 수는 처음과 달리 도합 27명으로 불어있는 상태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하나씩 회수한 것인데, 유일하게 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당사자가 갑자기 이상 현상을 보이니 불안해진 것이다.

    유세현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이냐?”

    “당연하지.”

    “몸조심해라.”

    그렇게 말한 드람이 포켓을 뒤적이더니 유세현을 향해 아이템 하나를 건넸다. 정말 웃기게도 체력과 컨디션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제 포션이었다.

    “......”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런 것까지 주는 것인가.

    유세현은 정중히 거절했다.

    정보창만 믿기에는 뭔 짓을 해놨을지 모르거니와 사실 그가 그리 반응한 건 몸 때문이 아닌 외부요인 때문이었다.

    천사들의 왕.

    오르엠이 전투를 시작했다.

    * * *

    오르엠은 세 명의 대천사들과 휘하 병력을 대동하고 안내에 따라 루시펠을 발견했던 장소에 다다랐다.

    그러자 줄곧 감시하고 있던 병력이 곧장 보고를 올렸다.

    “루시펠은 줄곧 이곳을 뒤지다가 약 3시간 전에 더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흠... 3시간 전이라...”

    오르엠이 생각에 잠겼다.

    3시간이란 시간은 무척 애매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공간이 꼬여 있는 장소는 지름길을 사용하면 4시간 거리를 30분 만에도 주파가 가능하기에 절대적인 거리가 중요치 않다.

    즉, 루시펠이 움직인 후로부터 얼마나 이동했는지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들어왔다면 여긴 거의 동굴의 중추 부분이다. 손쉽게 나아갈 수는 없을 터.’

    “추격조들은?”

    “이 길을 계속 뚫고 있습니다. 운만 좋다면 굳이 뒤따르지 않아도 루시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만...”

    “흠... 그럼 일단 기다려보지.”

    오르엠이 그리 말하고 거대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이런 자리에까지 권좌를 가져올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앉은 것이지만...

    ‘......’

    그는 수치심을 느꼈다.

    과거에 비해 얼마나 추락했는가.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천사가 배신을 했다. 더 나아가 천한 인간에게까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오르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드시 승리한다.’

    그래서 다시 누구도 넘보지 못 할 신의 자리에 오르겠다.

    그렇게 10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기뻐하십시오, 신이시어!”

    “으음?”

    “길을 개척하는 도중 루시펠을 또 발견했습니다!”

    “호오.”

    오르엠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러자 추격조장이 들떠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놈은 적을 만났습니다.”

    “적?”

    “예, 인간형 몬스터였는데 지성이 있는지...”

    “거기까지. 직접 가보겠다. 안내해라.”

    “예!”

    오르엠이 일어서자 추격조장이 몸을 돌려 안내를 시작했다.

    * * *

    피잉-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던 오르엠의 눈썹이 한순간 파르르 떨렸다.

    높은 순도의 마기가 용솟음치듯 진동한다.

    그는 이게 루시펠의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새 전투가 발생한 것임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파앙!

    퍼버벙!

    도착한 공간의 건너편에서는 날개절반이 검게 변색된 루시펠이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오르엠이 추격조원에게 눈치를 주자, 추격조원이 기다렸다는 듯 관찰한 걸 짧게 간추려 설명했다.

    “놈은 이 장소를 지키고 있는 수호자입니다. 놈이 루시펠에게 돌아가라고 경고했지만 그녀가 듣지 않자 선제공격을 감행해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전투는 주가 육탄전이었는데 무척이나 거칠었다.

    타인이 보기에는 거의 박빙의 승부.

    그때 루시펠이 강력한 마탄을 적을 향해 쏘아냈다.

    “하아아압!”

    파바바바밧-

    마기 섞인 마법이 적의 몸을 스친다.

    그걸 보며 가브리엘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다렸다가 둘 다 힘이 다하면 공격하시겠습니까?”

    오르엠은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그게 베스트이긴 했다.

    그러나 과연 이대로 1:1의 싸움이 지속될까?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가 없다고 해도, 이곳에는 다른 고위마족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필히 두세 명 정도는 루시펠을 지원하기 위해 올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두 명 정도는 상관없다만 더 오게 된다면...’

    재수 없을 시 루시펠을 놓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전에 신속하게 끝낸다.’

    결정을 내린 그가 손을 뻗었다.

    “가라. 루시펠에게서 롱기누스를 회수해라.”

    * * *

    파앙!

    공간을 찢어발기며 세 명의 천사들이 루시펠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대천사를 상징하는 위풍당당한 4쌍의 날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인지 루시펠과 적은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 비대한 팔 근육을 활짝 편 라파엘이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하하하! 정말 오랜만이구나 루시펠!!”

    이에 전투의 여파를 피해 회피해있던 마족들은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저, 저들은?”

    “라파엘!”

    “이, 이럴 수가 미카엘, 가브리엘까지 있다!”

    “대, 대체 저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퍼버벙!

    미카엘에게서 발생한 불이 마족을 휩쓸었다. 마족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제, 젠장! 이런 말 못 들었다고! 그냥...”

    퍼엉!

    “끄아아아악!”

    폭풍을 만난 촛불처럼, 마족들의 목숨은 순식간에 꺼져갔다. 아무리 약한 마족도 S랭크 상등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가정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대천사는 강했다.

    “너희들...”

    루시펠이 인상을 구긴 채 세 명의 대천사들을 응시한 순간이었다.

    슈슈슈-

    대천사들이 나타난 저편에서 황금빛의 존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4쌍의 날개가 우습게 느껴질 만한 거대한 6쌍의 날개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색.

    “오르엠...”

    그녀가 중얼거리자 오르엠이 말했다.

    “감히 피조물이 신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는가.”

    “......”

    루시펠의 입가가 잔잔히 떨렸다.

    오르엠이 보기에는 완벽한 외통수.

    그러나 그녀의 입가는 곧 비릿한 실소로 변화했다.

    “큭... 추락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신 행세를 하는 건가요? 오르엠?”

    “뭐라?”

    “전 더 이상 루시펠이 아니에요. 루시퍼, 새로운 이름을 받았죠.”

    “흥, 루시펠이고 루시퍼고 넌 오늘 이 자리에서...”

    “그리고 당신은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저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후후, 착각?”

    오르엠 손에 거대한 황금빛 구체가 생성됐다. 마를 멸하고 세상의 안정을 불러온다는 신성의 힘이 가득 담긴 마법.

    “착각은 네가 하고 있는 거겠지.”

    구체가 루시펠을 향했다.

    그 순간 루시펠이 눈을 빛내며 지그시 읊조렸다.

    “함정에 빠진 건 바로 당신이에요 오르엠.”

    천사사냥(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