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99화 (60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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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제뷔트...”

    누가 뭐라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연합군 모두가 순식간에 산개하여 그의 주위를 삥 둘러쌌다.

    그만큼 추종자의 손길이 뻗어있는 이 지역에서의 벨제뷔트는 그들에게 있어서 1급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니, 굳이 이지역이 아니라도 놈은 위험하다.

    대체 뭔 짓을 하려고 직접 나타난 것인가.

    ‘아니, 당최 어떻게 놈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지? 분명히 산맥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정보수집이 잘못된 건가?’

    카그네프와 카시우스는 순간 그리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정보부대가 실수를 해도 그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놈은 무엇인가.

    분신?

    ‘젠장...’

    뭐가 되었든 이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설사 눈앞에 있는 놈이 껍데기뿐인 분신이라 해도 말이다.

    놈이 아무 승산도 없이, 목적도 없이 구태여 모습을 직접 드러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거~ 엉덩이 무거운 분이 여긴 혼자 웬일이신가? 갑자기 죽고 싶어지기라도 한거냐?”

    불안한 마음을 들킬세라 순식간에 표정을 고친 카그네프가 정보를 얻기 위해 비아냥댔다. 당장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었지만, 먼저 공격하면 발동되는 형식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건 하책이었다.

    엘프나 인간이 먼저 공격하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거라면 또 몰라도...

    “후후후, 여전히 호쾌하고 저돌적이군 카그네프.”

    벨제뷔트가 여유롭게 받아치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나는 그런 네 성격,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요즘 내 주위에는 “네네.”할 줄 밖에 모르는 놈들밖에 없어서 말이야.”

    “그거야 네가 말을 안 들으면 다 죽여 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그럴 리가. 난 이래봬도 무척 자비로운 군주다.”

    벨제뷔트가 어깨를 들썩 거렸다. 카그네프는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큭! 지나가는 똥개...아니 네 애완펫이 웃겠군.”

    “흠, 켈베로스는 내 앞에서 웃지 못한다만...”

    “됐고! 네가 본론이나 말해라. 기습하지 않고 구태여 모습을 드러낸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그리 말한 카그네프의 얼굴에는 어느새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싹 사라져있었다. 이번에는 벨제뷔트가 비아냥댔다.

    “크크크, 무서운 표정이군 그래. 그러다가 누구하나 매장시키겠어? 표정 좀 풀지 그러...”

    “거기까지. 난 지금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물음에 답해라. 안 그러면 바로 공격을 감행할거다.”

    “호오? 내가 이 공간에 뭔 짓을 해놨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냐? 먼저 치는 쪽이 막대한 손실을 볼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이지. 네가 병력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맘 따윈 없다. 이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같이 공격을 감행할거다.”

    카그네프가 카시우스와 유세현을 흘깃 흘겼다.

    다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뜻이다.

    ‘괜찮군.’

    유세현이 곧바로 힘을 실어줬다.

    “좋아. 놈이 답하지 않는다면 함께 공격해주도록 하지.”

    “우리도다.”

    “......”

    한순간 공간이 얼어붙은 것 마냥 적막이 감돌았다.

    0.1초도 안 되는 무척 짧은 시간, 그러나 이곳에 있던 이들이 느끼기엔 1년 같은 긴 시간이었다.

    이윽고 벨제뷔트의 표정에서도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앞으로 나서며 천천히 말했다.

    “하! 좋아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야 바로 본론을 얘기해주지.”

    “뭐냐.”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이곳을 떠나라.”

    후웅!

    쿠오오오-

    벨제뷔트가 자안을 번뜩이자 엄청난 살기가 일대의 모두를 덮쳤다.

    몇몇 엘프의 인상이 와락 구겨지고, 몇몇 델바람들의 몸이 한순간 휘청거린다.

    “네놈...”

    이건 단순한 살기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갖은 수난을 헤쳐 온 최정예 베테랑들이 위축될 리가 없었다.

    이건...

    ‘암흑투기.’

    유세현은 이 힘의 정체에 대해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벨제뷔트 또한 암흑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 이강호가 설명한 바가 있었다.

    권능으로 발현하는 힘이고, 벨제뷔트에게 딱히 위축도 되지 않아 유세현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 암흑투기는 그가 보기에도 수준급이었다.

    “벨제뷔트... 제정신이냐? 단순히 협박이라니... 암흑투기만 믿고 나대...”

    “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겠지? 이곳에서 난 최강자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겹쳐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뿐이지, 나가지 않는다면 모조리 도륙할 뿐이다. 카그네프, 넌 이들을 알고 있겠지?”

    스스슥-

    마치 두 명으로 쪼개지듯 렘벨크가 벨제뷔트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시우스가 활을 겨눈 채 말했다.

    “이전 우리를 습격한 놈들이군. 당연히 알고 있지. 추종자 아닌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저 놈들이 네놈들을 움직이기 위해 꽤나 많은 정보를 토해낸 모양이군.”

    벨제뷔트가 유세현 일행을 응시했다.

    정색한 표정과 달리 상당히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눈빛이다.

    유세현이 천천히 검을 들어 겨눴다.

    연합군은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직접 이곳에 들어온 군대였다. 당연히 이정도 협박 때문에 멈추지 않을 것이고, 사실 응할 이유도 없다.

    돌아가라고 한 것 자체가 큰 정보를 던져준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을 상대하기 싫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마왕에게서 도피한 놈 주제에 정말 거만하군.”

    피융!

    교유특성, 바람이 담긴 화살이 빛처럼 벨제뷔트의 미간을 향해 쇄도했다.

    평범한 대리자의 눈으로는 감히 쫓을 수도 없는, 실로 미친 듯한 속도를 지닌 화살.

    정작 벨제뷔트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최대한 아끼고 싶었는데.

    벨제뷔트가 공중에 들어 올린 오른 손을 힘껏 내려치자 그의 손등에서 휘광이 뿜어져 나와 몰아쳤다.

    * * *

    “저건?”

    “젠장! 무슨 짓을 한 거지?”

    벨제뷔트를 중심으로 십자의 선이 그어졌다.

    선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2m로 늘어남과 동시에 증식하여 겹쳐지며 온 공간을 정육면체로 빼곡히 메우기 시작했다.

    “무, 물러나라!”

    닿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임을 직감한 카시우스가 다급히 외쳤으나 퍼지는 속도가 너무도 빠르다.

    “큭!”

    다수의 엘프들이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영창 했다.

    전부다 7서클 이상의 단일마법으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것들이었으나...

    슈슈슉-

    벨제뷔트에게 날아가다 선에 닿자 빨려 들어간다. 예외 없이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런!!”

    “자리에서 이탈해라!!”

    연합군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벨제뷔트는 이를 살짝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가 지금 발동시킨 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이곳에서 밖에 발동할 수 없는 공간 분화 술식이었다.

    일회용 술식으로 단 한 번 밖에 사용을 하지 못하기에 최대한 아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써버린 것이다.

    이걸 사용하면, 걸린 생명체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이 이상 깊숙이 안 들어가지는 내에서 이 공간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으아아아!”

    파앗!

    엘프들이 다수 사라졌다.

    최상위 대리자고 자시고 이 끝없이 증식하는 공간 앞에서는 아무도 맥을 추리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법칙 같은 것이니까.

    같은 곳으로 들어가도 떨어지는 장소는 각자 다르니 연합군이 다시 뭉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리라.

    그런데 그때였다.

    “델바람들이여! 내게로 집합해라!”

    카그네프가 외쳤다. 그러자 아직 당하지 않은 수많은 델바람들이 신봉자들처럼 몰려들었다.

    포켓에서 양피지를 꺼낸 카그네프가 곧바로 그걸 찢었다.

    치이이익-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녹빛의 구체가 생성된다.

    구체는 25명 정도 들어갈 크기였는데, 선에 닿자 그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저건...”

    “어디선가 방어 술식을 얻어놓은 모양이군. 질이 떨어져 완벽하게 방어해내진 못했지만.”

    “같이 이동되었다는 건가?”

    “그렇다.”

    “...뭐, 그래. 오래 이 세계를 돌아다녔으니 하나쯤이야...”

    그 어떤 것도 완전한건 없다. 뭐든 파훼법이 있기 마련이다.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 25명으로도 뭘 딱히 시도하긴 힘드니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벨제뷔트의 시선이 옮겨갔다.

    이제 선에 걸리지 않은 자들은 약 15명 정도였는데 그의 눈동자는 유세현에게 향해있었다.

    ‘뭐라도 해봐라.’

    그는 아직 힘을 선보이지 않았다.

    정말 마왕의 그 강대한 힘을 놈이 지니고 있을까?

    로리엔을 한 팔에 끌어안고 모든 신체능력을 끌어올려 무한히 증식하는 선을 피해 달려 나가던 카시우스가 유세현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뭐 달리 떠오르는 방도 없나?? 이대로라면 저 알 수 없는 공간에 우리 전부 먹혀버리고 만다!”

    “......”

    유세현은 찰나의 순간에 생각했다.

    닿는 순간 빨려 들어가기에 부패의 어둠 같은 건 소용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겠지만... 과연...’

    유세현이 불편한 자세 그대로 몸만 휙 돌려 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벨제뷔트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내뿜었다.

    ‘저게 마왕의 힘이라고?’

    그렇다고 치기에는 그가 발산한 힘은 너무도 미미하다.

    게다가 기껏 사용한 기술이 저게 뭔가.

    고작 해봐야 거의 보이지도 않는 선 하나 만들어 냈을 뿐 아닌가.

    ‘잠깐... 선?’

    검의 궤적을 따라 생겨난 선과 공간이 격돌했다.

    치지지직-

    공간을 빨아들이는 힘과 그 힘을 잘라내려는 힘이 맞부딪치며 스파크가 튀고 대기가 격렬하게 요동친다.

    벨제뷔트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이 법칙을 깨부수려 한다고?

    하지만 그 힘도 계속해서 증식하는 공간을 당해낼 순 없었다. 유세현을 포함한 일대의 모두가 아차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선배님!!”

    콰아아아아앙!

    폭발이 모든 것은 집어삼켰다.

    * * *

    쿠궁!

    돌무더기 틈 사이에서 난데없이 손이 툭 튀어나왔다.

    쌓여있던 돌이 우수수 떨어지며 그 속에서 한 인형(人形)이 툭툭 먼지를 털며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 유세현이었다.

    그는 벨제뷔트에게 당한 것임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은 표정이었는데, 사라지는 연합군과 벨제뷔트의 언사를 보며 휩쓸리면 대략적으로 어떻게 될지 추측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강호는... 같이 떨어지지 못했군.’

    마지막에 같이 있었음에도 함께 떨어지지 못 했다는 건, 분명 무작위 이동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그나마 다행히군.’

    이강호, 김주희와는 떨어지게 됐지만, 운 좋게도 아퀼라와는 같이 떨어졌다. 주위에서 앓는 목소리가 울린다.

    “끙... 젠장...”

    “여긴 어디지?”

    이곳에는 아퀼라를 제외하고도 델바람족 4명과 엘프족 3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곧장 간단히 주위수색을 했다.

    “이 주위에는 더 이상 떨어진 동료들이 없는 것 같은데?”

    “후... 어떻게 하지?”

    델바람, 데르프푸스의 말에 드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엘프가 난색의 표했다.

    “난감하군.”

    지금 이곳은 그들이 생전 처음 와본 장소였다. 즉, 지금까지의 경로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숨겨진 길을 분별할 수 있는 아이템을 지니고 있는 이는, 현재로선 카시우스와 카그네프 뿐이니 사실상 절체절명의 위기인 것이다.

    유세현이 제안했다.

    “일단은 나아가보는 게 어떻겠나?”

    “뭐? 그러다 만에 하나 적과 조우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지?”

    “그럼 뭐, 다른 마땅한 수라도 있나? 있다면 따라주겠다만...”

    그 말에 본능적으로 반발했던 엘프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확실히 다른 방법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이들도 뿔뿔이 흩어졌을 게 뻔한데 구조를 기대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고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군.”

    “그럼 어디방향으로 가지?”

    “흠... 지금상황에서 방향을 고심해봤자 뭐 별 의미가 있나?”

    “그럼 아무데로나 가지.”

    그러면서 유세현이 먼저 앞장을 섰다.

    엘프들과 델바람은 그 행동에 어이가 없어 뭐라 제지를 걸려다 말았다.

    저 인간들은 저래 봬도 여태껏 소수로 살아남은 자들이다.

    벨제뷔트에게 당한 이상 마땅한 수는 딱히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뭐 어차피 진짜 길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서 괜한 자존심 싸움으로 불화를 일으켜 서로 불편해질 필요는 없으니 이 정도는 그냥 따라줘도 괜찮으리라.

    물론 유세현은 그들이 모르게 이강호와 김주희가 발산하고 있는 미세한 마력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천사사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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