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98화 (60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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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제뷔트가 신경질을 삼키며 말했다.

    “놈들의 위치를 책정할 수 있나?”

    “아니, 이곳에서 그런 건 할 수 없다. 이곳은 우리의 터전이지 느낄 수 있는 체내 같은 건 아니니까. 들어온 것도 망자들의 반응으로 안 것이다.”

    “흠...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할 건가?”

    “아깝지만 네가 준 그걸 써야 될지도 모르겠군. 놈들이 일을 그르치게 둘 순 없으니...”

    “그거 말인가? 그건 시간 끌기에 부족할 텐데... 빨리 오르엠이란 놈을 유인해라. 이젠 정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게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진다.”

    렘벨크가 닦달했다.

    벨제뷔트는 놈을 한 대 치고 싶은 감정이 솟구쳤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그들이 말만 따라주었어도 한 달은 족히 당겨졌을 계획이었다.

    그럼 이 사단도 안 났을 터.

    “어쩔 수 없지. 그럼 제사장, 네놈들도 내말에 한 번 따라 같이 미끼역할이 되어줘야겠다. 루시펠과 함께 연기해라.”

    “연기?”

    “그래 연기... 놈들을 끌어 들일 완벽한 연기 말이다.”

    벨제뷔트가 주먹을 꽉 거머쥐었다.

    * * *

    “루시펠을 발견했다고!?”

    “예.”

    대천사 가브리엘의 보고에 오르엠이 앉아있던 권좌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지간해선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는 오르엠이지만 이는 그만큼 그에게 있어 민감한 사항이었다.

    “어디서?”

    “P-20지역보다 더 깊은 지역에서 발견했습니다.”

    “크음...”

    오르엠의 얼굴이 마땅치 못한 표정으로 변했다.

    가브리엘이 말하는 P-20지역이란 지금까지 무저갱을 탐험해서 알아낸 가장 깊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무저갱은 무척이나 해괴한 공간이라 그곳에 다다르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러데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루시펠이 활보하고 있다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절대 아니다.’

    마족은 천족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 유적을 탐사하고, 훨씬 빨리 이 지역에 자릴 잡았다.

    활동영역으로 보아 무저갱과 산맥이 주목적임이 분명하니 그만큼 막대한 시간을 투자했다면 당연히 천족보다도 더 많은 길의 개간에 성공했어야 하는 게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다.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병력들의 수는? 다른 고위 마족도 있나?”

    “있긴 있었습니다. 다만 병력이 꽤나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어 제가 직접 본 고위마족은 단탈리안과 레두암 정도뿐이었습니다.”

    “그 둘?”

    오르엠이 콧방귀를 뀌었다.

    단탈리안과 레두암, 이들은 과거 마족 500위 안에 드는 거물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오르엠이 신경쓸만한 마족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신경 쓰이는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을 벨제뷔트와 그의 최측근들.

    오르엠이 그저 지그시 쳐다보자 그 의도를 파악한 가브리엘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벨제뷔트나 데프하우어, 직속호위병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이후 오르엠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통신을 전부 친히 보고받았다.

    벨제뷔트의 행방에 대해 전해들은 그가 생각했다.

    ‘벨제뷔트가 어제 또 산맥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일단 지금 이곳에는 있을 수 없다.’

    산맥에서 이곳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최상위 대리자인 만큼 맘먹고 달린다면 하루 만에도 당도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하게 되는 행위다.

    치밀한 벨제뷔트의 성향으로 볼 때 절대 그리 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리라.

    “그럼 다시 묻겠다, 가브리엘.”

    “말씀하십시오, 왕이시어.”

    “들켰나?”

    오르엠의 황금빛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내뿜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가브리엘이 한쪽 무릎을 꿇은 그대로를 유지한 채 말했다.

    “안 들켰습니다.”

    “확신하나?”

    “그렇습니다. 저희가 있던 장소는 특수한 공간으로 루시펠 쪽에서는 볼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신성력의 제어는 확실했으니 그녀가 눈치챌만한 꺼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

    오르엠이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에 근육질의 대천사, 라파엘이 외쳤다.

    “왕이시어! 이건 기회입니다! 벨제뷔트가 산맥에 정신이 팔려 있는 이때 롱기누스를 다시 찾아와야 됩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제 한 목숨을 다 바쳐 회수해오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나 오르엠은 답 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이 최적의 시기이긴 하다. 덮치기 딱 좋게 모든 상황이 갖춰져 있으니까.

    허나 그렇기에 되려 오르엠은 알 수 없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바깥으로 이어져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무저갱을 돌아다니다 운 좋게 단서를 찾아 여기까지 도달한 것에 더불어, 루시펠까지 발견하고 벨제뷔트가 때마침 멀리 있다니?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인가?

    당최 놈은 루시펠을 왜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방치는 아니군. 뭔가를 하고 있긴 하는 것 같으니.’

    그럼에도 불길하다.

    “왕이시어!”

    “......”

    오르엠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확실히 굴러들어온 기회를 그냥 차 버릴 수는 없다.

    그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쿠구구구!

    연합군이 나아가던 길이 난데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점액질의 피부가 순식간에 외벽을 장악하고 천장에서 강력한 산성이 떨어진다.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군.”

    마치 동물의 체내처럼 변모해버린 길은 이내 빠르게 좁혀지며 연합군을 죄어왔다. 연합군은 재빨리 질주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탈출했다.

    이런 함정을 맞이한 게 이곳에 들어와서 몇 번째일까.

    N3연구소를 들른 그들은 단서와 방향을 찾는 게 빨랐다. 첫 번째 단서인 거울파편을 카그네프가 찾았다면 두 번째는 엘프들이 발견해낸 것이다.

    유세현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상황에 만족했다.

    점점 마족 진형에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마주치게 되거나 추월할 수도 있으리라.

    그들이 몇 개의 함정을 더 파해했을 때였다.

    “어?”

    난데없이 저편 멀찍한 곳에서 무척 당황한 어조의 탄성이 들려왔다.

    위치상 연합군 누군가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목소리임이 분명하기에 연합군의 시선은 대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원인을 확인한 카그네프가 피식 웃었다.

    “이거 이거 누구신가~”

    “너, 너희들이 어떻게...”

    그곳에는 잔뜩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연합군을 쳐다보는 마족이 있었다.

    * * *

    “잡아!”

    카그네프의 외침을 신호로 연합군이 일제히 움직였다.

    마족의 수는 50명, 반면 이쪽은 150명이었다.

    부대의 대장을 맞고 있던 마족, 바르네도가 경악을 토해냈다.

    “크으으으!! 어떻게 거기에서 튀어나올 수가...”

    바르네도가 보기에 연합군이 나타난 장소는 그냥 단순한 벽이었다. 부숴도 계속 바위만 나오는 벽 말이다.

    공간이 비틀려 있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이는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튀어나와도 카시우스와 카그네프가 함께 튀어나오다니!

    “으으으!!!”

    카그네프와 카시우스의 얼굴은 팔릴 데로 팔려 현 마족 중에는 그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마족이 아무리 평균적으로 훨씬 강하다고는 하나 절대 당해낼 수 없는 인물들.

    게다가 수까지 열세라니?

    “으아아아!!!”

    바르네도는 긴급통신 마법을 사용하여 지원을 요청함과 동시에 자리를 이탈하려했다.

    마족특유의 특성을 사용하고, 흑마법으로 연막을 치며 부하들을 미끼로 쓴다.

    그러나 바르네도의 수하들이 어중이떠중이라면 이곳에 있는 연합군의 구성원은 전부 최상위 대리자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사단장, 군단장 급이다!

    “한 명도 놓치지 마라. 전부 머릿속을 뒤져볼 것이니.”

    “흥! 알고 있다. 명령하지마라.”

    우월한 스텟을 이용해 순식간에 바르네도의 뒤를 잡은 카시우스가 그대로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르네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둠의 창!”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영창까지 입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했다.

    슈슈슈-

    바르네도의 주위로부터 수십 개의 창이 생성되어 카시우스를 향해 빗발친다. 카시우스는 콧방귀를 뀌며 순식간에 몸을 틀어 회피함과 동시에 바르네도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쾅!

    “크헉!”

    그것만으로도 치명상.

    만일 카시우스가 쥐고 있는 손가락의 압력을 높이면 그의 두개골은 이대로 바스러지리라.

    “시시하군.”

    무려 2분도 되지 않아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다.

    연합군은 마족들을 둘러업고 일단 함정이 해제되어 평범한 길로 뒤바뀐 장소로 되돌아갔다.

    카그네프가 물줄기를 소환하여 바르네도에게 날리자, 그가 ‘헉!’ 소리를 내뱉으며 깨어났다.

    “어... 어...”

    바르네도의 눈동자에 공포가 감돈다.

    카그네프가 연쇄살인마와도 같은 흉악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자, 저항하지 말고 다 털어놔라. 그럼 곱게 죽여주지.”

    그가 바르네도의 머리에 손을 얹자, 바르네도의 몸이 전기고문이라도 당하듯 부들부들 떨렸다.

    * * *

    “쳇!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카그네프가 혀를 찼다.

    바르네도라는 마족은 팀을 이끄는 대장이긴 했으나 말단중의 말단이었다. 스텟도 낮고, 단지 장소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아 이곳에 있던 것일 뿐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무려 추종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일조차도 말이다.

    그들은 불쌍하게도 벨제뷔트가 쓰고 버리려 모아놓은 소모품들이었다.

    “흐음... 대장인 놈이 이런데 다른 놈에게는 들으나 마나겠군. 어쩐지 쉬워도 너무 쉽더라니.”

    “아무튼 이놈이 잡히기 전 긴급통신마법을 쐈다. 근처에 있던 마족들은 이제 적이 침투했다는 걸 알아챘을 거다.”

    “그래도 벨제뷔트의 귀까지 들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그렇겠지. 놈은 아직도 산맥에 있는 것 같으니.”

    계속 전진함에 따라 군사들을 중간 중간 배치시켜두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받고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럼 주위 정리도 할 겸 좀 더 사냥해볼까? 어차피 근처에는 쓰레기들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쁘지 않은 생각인거 같긴 하군. 어떻게 생각하지 인간?”

    “흠, 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강호와 두 수장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의논했다.

    그사이 유세현은 바르네도라는 마족을 살폈다.

    ‘심하군.’

    카그네프에게 기억을 샅샅이 읽힌 놈은 정신이 부서져 폐인과 같이 변해있었다.

    바르네도는 기억을 토해낼 때 때때로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날짜, 시간 그 외의 자잘한 것들을 정확히 언급한 것으로 봐서 카그네프는 대략적으로 기억을 읽어내는 게 아닌, 상대가 기억하는 내에서 만큼은 무척 상세하게 읽어낼 수 있음이 분명했다.

    다른 델바람들이 완벽하게 모든 걸 들춰 보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보건데 확실히 강대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강호가 붙잡히면 죽여 달라 했던 거로군.’

    만약 카그네프에게 이강호가 붙잡힌다면, 그는 모든 정보를 뺏길 때까지 머릿속이 휘저어지고 또 휘저어지리라.

    의견 조율이 끝났는지 카그네프가 말했다.

    “자, 그럼 계속해서 쓰레기들을 정리하러 가보자고.”

    * * *

    반나절도 안 되어 주위 소탕이 끝났다. 이에 엘프와 델바람은 화력전을 대비해 상위 병력을 배치하기로 했다.

    “병력이 당도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거다. 그동안은 뭐든 적당히 하도록 하지.”

    그들은 마족이 점령해두었던 곳을 중점적으로 움직였다. 마족이 있던 곳은 함정이나 트랩이 해제되어 있었기에 다른 곳을 살펴보기에는 훨씬 수월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슬슬 복귀하려 할 때였다.

    “후우... 정말이지 길길이 잘들 날뛰어 주시는군.”

    “?!”

    벽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장막을 찢듯 바위가 갈라지며 목소리의 주인이 얼굴을 드러낸다.

    인상적인 보랏빛 눈동자와 굽어진 4개의 뿔.

    대마족 벨제뷔트.

    카그네프의 표정이 일순간 와락 구겨졌다.

    천사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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