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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97화 (60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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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이용해보자 또 하나의 세상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 것일까?

“두 개의 공간을 올곧게 응시하라라...”

카그네프가 쏘다니며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를 포함한 연합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부화장이 다른 장소에 비해 유난히도 많은 망령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약간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유세현이 말했다.

“망자들이 이곳에만 많은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걸 찾는다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흥! 그런 것쯤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안다. 그보다 전부 내게서 좀 떨어질 수 없나? 안 그래도 거울이 쬐그만 해서 고역인데 덩치 큰 놈들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니 화면 다 가려서 잘 볼 수가 없지 않나! 혼자서 어디 안 도망간다!”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하기야 보고 싶은 건 이 공간일 텐데 자꾸 병력들에 의해서 막히니 짜증이 날만하기도 하다.

“......”

아기새 마냥 카그네프를 뒤따르던 카시우스와 일행, 그리고 나머지 델바람들이 살짝 뻘쭘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카그네프는 그제야 탁 트인 화면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후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로군. 미치지 않은 이상 혼자 어디 안 가니 좀 더 흩어져서 대기해봐라. 니네가 있는 그곳도 봐야 되니까.”

“...알았다.”

이윽고 카그네프는 조건대로 살짝 퍼져주자 기준점을 잡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보던 그가 유세현의 근처를 지나칠 때였다.

유세현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살짝 스쳐지나가자 카그네프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든다.

미미하게 흔들리는 눈썹.

순간적으로 뭔가 흐릿한 게 비쳐 보였다.

‘뭐지?’

카그네프는 의구심을 품고 슬쩍 지나치는 척하며 다시 한 번 흘깃 유세현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치지 않는다.

‘착각...이었나? 아니 그럴 리가.’

착각이라는 건, 심신상태가 불안하거나 환각계열 능력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환각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대리자가 유세현 측에 있긴 했지만,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구태여 지금 카그네프에게 걸 이유도 없거니와, 최상위 대리자인 카그네프가 위화감을 못 느낄 리가 없었다.

그는 이후 멀찍이 떨어져서 두세 번 정도 더 확인해 봤지만, 처음 보였던 무엇인가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흠... 내가 너무 신경이 곤두서있었나?”

그는 일단 다시 하던 일에 전념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발걸음을 멈춘 카그네프의 안광이 번쩍 빛을 발했다.

* * *

카그네프가 서 있는 장소는 막다를 벽이었다. 이전에도 한 번 뒤져봤던 장소이기에 의아함을 느낀 카시우스가 벽을 툭툭 치며 말했다.

“진짜 여기라고?”

“그렇다.”

“흠, 전에 살필 때는 분명 특별한건 없었는데... 부수면 되는 건가?”

카시우스가 그리 말하며 거울을 보자 그곳에는 확실히 길이 놓여 있었다.

카시우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분명히 존재할 벽을 향해 팔을 뻗었다.

“......”

허공만 휘적거릴 뿐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카시우스의 손이 마치 벽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인식하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 길인가.”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델바람측에서 깨나 좋은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이건 그들에게 좋으나 싫으나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원수가 밀려서 먼저 찾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군.”

“일단 돌아가지. 진지의 병력 일부를 재편성해 데려올 필요성이 있을 거 같다.”

“동감이다. 인간, 너희들은 어쩔 거냐? 먼저 들어가 있어도 상관은 없다만.”

카그네프가 도발을 해왔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앞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울이 없으면 추후 난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허나, 유세현은 그것에 웃으며 유순하게 받아쳐주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까?”

“뭐?”

도발한 카그네프를 제외하고도 카시우스와 다른 이종족들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설마 했는데 역시 믿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그 다음 순간이었다.

“농담이다. 괜히 멋모르는 곳에 혼자 들어갈 리가 없잖나.”

“......”

“그러니 둘 다 이만 표정 풀어라.”

그들은 되려 자신들이 역으로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 * *

2천이 넘는 엘프와 델바람들이 부화장과 통로 곳곳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준비를 마친 일행은 뚫린 길 앞에 섰다.

길은 거울을 통해 일단 한 번 인식하고 나면 그다음부턴 구태여 거울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카그네프는 돌입하기 전 주둔군에게 길을 인식할 수 있게 거울을 쭉 돌렸다.

“가볼까.”

쉬이익-

고작 한 발 내딛었음에도 공기의 탁해짐이 피부로 느껴진다.

길은 곧게 쭉 뻗은 외길이었다.

벽 곳곳이 피로 추정되는 액체로 물들어있었고, 거울을 통해 보면 망령들이 들끓다 못해 한가득 메우고 있어 일행이 비치지 않을 정도였다.

거울 속에서 망령들이 속삭였다.

[괴...로...워...]

[으아아아아아아-]

콰광!

그때 난데없이 벽을 부수고 몬스터가 등장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피부가 뭉그러지고, 관절이 뒤틀려 흡사 구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유세현,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는 놈들이 구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놈들은...”

연구소, 포르말린병 속에 담겨 있던 종족.

[캬아아아!]

연합군은 눈이 풀린 채 달려드는 수많은 적을 상대했다.

이곳이 유적의 중심부여서 그런지 죽은 시체임이 틀림없음에도 육체능력이 상당하다.

“흥! 그래봤자지! 이성도 없는 것들이...”

한 손을 앞으로 뻗은 엘프 한 명이 싸늘한 어조로 영창했다.

“그래비티.”

쿠웅!

콰직!

엄청난 중력이 순식간에 적의 육신을 짓이겼다.

놈들은 코인을 떨구지 않았다.

거울조각을 이용해 살펴보자 망령들이 시체에서 빠져나오는 게 보였는데 이것이 원인일 것이 분명했다.

“망령들이 아무 몸이나 찾아 들어가 강제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그런 거 같군.”

나아갈수록 새로운 적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대개는 망령이 기생해 있는 벌레형 몬스터였는데, 벌레가 당하면 망령이 뛰쳐나와 살아있는 육체에 들어가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설사 그것에 이미 망령이 들어가 있는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연...’

라벤 테이메르는 영혼과 육체가 함께 존재해야만 오롯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했었다.

망령들은 아마도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몸을 찾는 것이리라.

나아가던 카그네프가 멈춰 섰다.

“크, 공간이 완전 엉망진창이군.”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거울 속 세상에는 길이 있어도, 현실에는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거울 속에는 길이 없지만 현실에는 보이는 곳이 존재하는 곳도 있다.

이것이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세계.

“일단 좀 쉬고 움직이도록 하지.”

카그네프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유세현이 다가와서 카그네프에게 거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쉬는 동안 내가 좀 더 이 근처를 살펴보겠다. 내 동료들도 쉬고 있는 마당에 사라질 이유도 없으니 별로 상관없지 않나?”

“흠...”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는 눈앞의 보물에 눈먼 자들을 많이 봐왔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초, 중기... 이 정도까지 와서 동료를 배신하는 건 득 보다 실이 몇 만 배는 큰 법이지.’

납득한 카그네프가 품에서 거울조각을 꺼내 넘기려던 순간이었다.

‘?!’

한 순간 놈의 몸에서 또다시 무엇인가가 비쳤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던 카그네프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분명 두 마리... 두 마리였다.’

망령 두 마리가 유세현의 몸속 안에 있다.

‘뭐지 이 녀석...’

이곳까지 오며 망령들을 쭉 봐온 그는 그 두 마리의 망령이 일반 망령과는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대개 망령들은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일그러져있는 반면, 이 두 마리의 망령은 올곧은 완벽한 구체의 형체를 띄고 있던 탓이다.

그래, 마치 자기 자신을 감추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카그네프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자 유세현이 물었다.

“뭐지? 뭐 문제라도 있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숨기고 있는 것인가.

아무쪼록 시체나 벌레들처럼 될 수도 있으니 한 몸속에 망령이 더 존재한다는 건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닐 터다.

카그네프는 그리 생각하며 일단은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거울을 높이 치켜든 유세현이 혹시 뭔가 놓치는 게 있나 살폈다.

그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마족과 천족의 마력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리 먼 장소도 아니었는데 공간이 이리저리 난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접근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파악한 마력은 두 종족들 것뿐만이 아니었다.

루시아, 그녀도 이곳에 와있다. 자신이 알기 쉽도록 대놓고 그녀가 마력을 흩뿌리고 있다.

즉 이곳에는 이들을 제외한 세 개의 종족이 다 있는 셈이었다.

‘자발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는 건가?’

루시아의 움직임과 마력을 보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군.’

그녀는 현명하다. 비록 일지를 보지 못해 다른 동료와 달리 진실을 모른다곤 하나 크라베스와 추종자들이 이 시나리오의 주를 차지하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살아만 있다면 재회가 가능하리란 걸 알고 있으리라.

‘그보다 크라베스 자식, 상당히 급한 모양이군. 루시아씨까지 포섭하다니.’

이는 추종자들이 일을 많이 진행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나에게 접근해올 수도 있겠어.’

유세현이 그리 생각하며 거울을 이용해 계속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사이 자기 자신은 단 한 번도 비춰보지 않았다.

* * *

“마침내 가브리엘이 저를 발견했어요, 벨제뷔트.”

루시펠의 말에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응은?”

“딱히 없었어요. 아마도 오르엠에게 보고를 올리겠죠.”

“크크크, 그런가. 그럼 다음번이나 다다음번엔 그놈들이 널 공격할거다. 오르엠과 함께.”

벨제뷔트는 자신감 있게 단언했다.

그렇게 되도록 지금까지 판을 짜두었었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거울로 열화판의 복제를 만든다.

데프하우어와 자신, 그리고 고위 마족의 열화판을 북쪽산맥에 풀어놓고 때때로 보여주면서 그곳에 자신과 데프하우어가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산맥과 무저갱 속의 이 장소는 거리가 꽤나 되기에 오기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오르엠은 그걸 반드시 노릴 테지. 빌어먹을 추종자들이 나대러가지만 않았어도 이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었을 작전이건만...”

“그런 걸 준비하고 있었던 거로군요.”

“그래 맞아.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벨제뷔트가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말을 함으로써 루시펠의 동화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후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 걸 그랬나?’

동화률 80%.

이 정도라면 그녀의 영혼이 수중에 거의 떨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오르엠을 죽이고 목표를 달성하는 날, 복수에 성공하는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리라.

벨제뷔트는 마음속으로 흥얼거렸다.

허나, 그 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렘벨크가 충격적인 정보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놈들이 내부 진입에 성공했다.”

“놈들? 엘프와 델바람?”

“그렇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천족은 너희들이 정보를 뿌려줬음에도 오래 걸리지 않았나!”

“그건 천족이 아무런 코드도 얻지 못하고 이곳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들은 다르다.”

“어떻게 다르지?”

“그들은 고대의 성전을 방문한 존재들이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들은 고대의 성전에서 특수 코드를 얻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이 세계를 염탐할 수 있는 파편조각을 획득했겠지. 아마 이쪽으로 향하는 길도 빠르게 찾아낼 거다.”

“......”

벨제뷔트의 입가에서 웃음기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천사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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