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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96화 (6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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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천족과 마족이 격돌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거라면 참 좋으련만. 안 그런가 카시우스?”

    “들어오자마자 성대한 환영이군.”

    카시우스와 그의 친위대가 활시위를 전방을 향해 겨눴다. 카그네프도 워엑스를 양손에 거머쥐고 무릎을 굽혀 자세를 잡았다.

    쿠쿠쿠쿠!

    마침내 울림이 극에 달하고 저편에서 진동의 근원이 등장했다.

    무려 크기가 4m나 되는 지렁이들이었다.

    일반 지렁이와 달리 온몸에 눈처럼 생긴 알갱이가 수도 없이 박혀있는 것이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겼다.

    놈들은 벽의 옆면, 천장에 달라붙어 마치 분쇄기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입으로 땅을 확장시키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먹어치울 기세로 밀려왔다.

    “코인의 분배는 알고 있겠지?”

    “잡는 사람이 임자.”

    피융!

    파밧!

    세 종족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화살이 날아가고, 그 뒤를 무기를 든 연합군이 뒤따른다.

    퍼엉!

    놈들의 주둥이와 화살이 격돌하자 화살이 폭발하며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카그네프가 질세라 놈들의 입속으로 뛰어들며 워엑스를 휘둘렀다.

    찌지짓-

    종잇장 찢어지듯 일자로 잘려나가는 지렁이!

    카시우스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몬스터 중 하나였다.

    캬아아아!

    학살이 시작되자 놈들이 격렬히 저항하며 입에서 작은 애벌레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놈들의 특징은 코에서 내뿜는 절독이었는데, 이 애벌레들도 같은 독을 분사한다.

    만약 이것에 직접적으로 닿으면 웬만한 방어마법은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독 저항력에 반비례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힘 스텟이 SS랭크라 할지라도 독 저항력이 A랭크 이하라면 즉사!

    S랭크라 해도 몸은 순식간에 마비되고 그 부위로부터 침식당한다.

    허나, 이들이 누구인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정예 중에 최정예.

    [용의 불.]

    카그네프의 친위대인 델바람족 한 명이 대광역마법을 시전하자 불길에 휩싸인 애벌레들이 순식간에 타 없어지기 시작했다.

    여파가 몰아치자 엘프와 유세현 일행의 인상이 살짝 구겨진다.

    이들의 연합은 급조된 것이니 만큼, 전투시 연계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타종족이면 직접적으로 공격만 가하지 않을 뿐, 휩쓸리든 말든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회피공간이 넓은 바깥에서라면 몰라도, 이런 제한이 있는 공간에서는 도통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슬렸는지 카시우스가 대번에 쏘아붙였다.

    “카그네프! 부하관리 똑바로 못하나?”

    “뭐?”

    “이곳은 보통 필드가 아닌 마족과 천족이 주둔하고 있는 전장이다. 아무리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서로 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하는 건 기본일 텐데?”

    “......”

    카시우스를 노려보는 카그네프의 눈빛에 한순간 살기가 담겼다.

    대놓고 면박하는 것은 종족 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을 긁는 행위였다.

    같은 종족 간에 자존심 싸움조차도 치열한 것을 고려하자면 사실 언제 다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허나.

    “알았다. 주의시키도록 하지.”

    카그네프는 멍청하게 자존심만 세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카그네프가 자신의 부하를 불러 세웠다.

    “퀴르아그스, 지금까지 한 말 잘 들었겠지?”

    “...예.”

    빠악-

    콰앙!

    제대로 얼굴을 강타당한 퀴르아그스라 불린 델바람이 단박에 벽에 처박혔다.

    카그네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가지.”

    유세현은 그 냉철함에 살짝 감탄했다. 저렇게 조취를 취함으로써 델바람을 포함한 타 종족은 앞으로 함부로 대광역스킬을 날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 이후로도 탐색을 하는 동안 4번의 전투를 더 치렀다.

    * * *

    “독 저항력이 상당히 올랐군.”

    유세현은 스테이터스를 살펴보고 흡족해했다.

    힘과 민첩을 중심으로 둔 빠른 성장 때문에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의 독 저항력은 상위대리자들에 훨씬 못 미치는 A랭크 90%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독 저항력 스텟은 S랭크 20%를 넘겼다. 이대로라면 S랭크 상위까지 올리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데프하우어란 놈의 주특기가 독이라고 했지?”

    “응, 놈은 블랙드래곤이니까.”

    드래곤들은 각 색 특성의 맞게 강화 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레드는 화염, 화이트는 빙결, 골드나 실버는 마법강화.

    그중에서도 블랙드래곤은 애쉬드, 독이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데 놈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게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지금까지 마땅한 수확이 없다는 거군.”

    “음...”

    탐색 이주일 째.

    그들은 연거푸 등장하는 지렁이들만 상대하고 있었다.

    회의 때 카시우스가 말했다.

    “역시 겉 표면만 계속 헛돌고 있는 느낌이군.”

    “전에 왔을 때도 이랬나?”

    “그렇지.”

    “도망가는 지렁이들을 추격한 적은 있나?”

    이전 연구소의 망령 사건을 떠올린 유세현의 물음이었다.

    이 답변은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앉아 있던 카그네프가 했다.

    “물론 추격해봤다. 놈들이 알을 낳아놓는 거대 부화장이 나올 뿐이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당시 길은 보이지 않았어.”

    “흠... 그래도 마땅한 수가 보이지 않은 이상 다시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별로 얻을 건 없다고 생각한다만 확실히...”

    난제다. 역시 쉽지 않다.

    그때, 간이식 막사 내부로 엘프 한 명이 걸어 들어와 카시우스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일행과 델바람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보자 카시우스가 입을 연다.

    “북쪽 산맥에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가 또 출몰했다는 군.”

    “또...”

    저번 주에도 들었던 보고지만 최근에 들어선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의 출몰이 더 잦아졌다.

    “이거 이거, 역시 북쪽 산맥에 주요 단서가 있는 거 아니야?”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남쪽에 자리 잡았다. 중앙은 거대 무저갱이 자리 잡고 있으니 산맥으로 가려면 동쪽이나 서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동쪽은 사실상 천족과 망령들이 집중적으로 배회하고 있어 무리였다.

    그렇다고 서쪽으로 가자니 그곳에도 마족이 있다.

    또한 어찌어찌 뚫고 당도한다 해도 퇴로가 막히는 것이니 사실상 천족과 마족이 위치해 있는 장소가 아니면 탐험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럼 일단 부화장으로 방향을 정해보자고.”

    “그러지.”

    의견을 수립한 연합이 각자의 진형으로 찢어졌다.

    유세현이 툭 말했다.

    “몇 번이고 생각해 본건데... 그 놈들 아무리 봐도 진짜가 아닌 거 같아.”

    “응? 그놈들? 진짜? 갑자기 무슨...”

    난데없는 말에 이강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깨달았는지 표정이 싹 변했다.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 말이야?”

    “응, 마력이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뭔가가 달라. 마치 열화판 같달까?”

    유세현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만큼 마력에 대해 민감한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면 놈들이 노리는 건 뭘까요? 괜히 쑈 하는 건 절대로 아닐 테고.”

    “그렇지 쑈를 하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는 법이지.”

    “음...”

    김주희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그녀가 박수를 짝 쳤다.

    “아! 알 것 같아요.”

    “뭔데?”

    “그전에 선배, 놈들은 지금 자기를 과시하고 있는 거 맞죠?”

    “과시?”

    유세현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과시하는 게 아니면 엘프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의 활동을 눈치 채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김주희가 핵심에 둔 것이 바로 그 과시였다.

    “보통 과시는 상대를 위협하기위해 하는 거잖아요. 이곳은 내가있으니 감히 넘볼 생각하지 말아라, 뭐 이렇게요.”

    “그렇지.”

    그렇기에 카시우스나 카그네프도 그곳에 중요 단서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지 않았던가.

    김주희가 손가락을 이용해 각 진형의 대략적인 상태를 흙에다가 그렸다. 그녀가 천족 진형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천족은 좋게 말해 대립이지 상태만 본다면 고립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럼 그들은 현 상황에서 어딜 공략하고 싶어질까요? 망령들이 들끓고 있는 동쪽? 아니면 벨제뷔트나 데프하우어가 활동하고 있는 산맥?”

    김주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유세현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유도하고 있다는 건가? 무저갱 쪽으로?”

    “제 생각에는 그래요.”

    유세현이 턱을 붙잡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생각은 절대적이라곤 할 순 없지만 일리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무저갱 쪽이 분명 시나리오의 주 공략지일 텐데 구태여 그곳으로 유인하다니?

    그 순간 유세현의 뇌리속에 과거가 떠올랐다. 루시펠이 벨제뷔트의 손을 잡던 그때를.

    ‘분명 오르엠을 잡을 거라 했었지.’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신경 쓰이는 말은 아니었다. 루시펠을 꼬드기기 위해 하는 겉치레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명확히 알고 있다.

    놈들이 빠른 부활을 위해 높은 격을 지닌 영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루시아가 잡혀갔다면 오르엠은 필요 없었겠지만, 그녀는 현재 마족 진형에 위치해있지 않다.

    천족진형의 동쪽, 망령들이 집결해 있던 곳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크라베스가 뭔 짓을 한 것이거나, 아니면 탐지가 불가능한 모종의 폐쇄차원으로 넘어간 것일 터.

    “선배, 저는 마족이 오르엠을 노리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이번에도 김주희가 한 발 더 빠르게 생각을 털어놨다.

    * * *

    일행은 추측을 토대로 여러 가지를 상정했다. 오르엠을 잡으려면 단순히 유도가 아닌 함정 속으로 끌어들여야 되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가능케 할 것인가.

    “루시펠...”

    유세현은 그녀를 미끼로 꼽았다.

    루시펠이 오르엠의 권능이 들어있는 창, 롱기누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창을 되찾기 위해 격렬하게 추격해오던 이전을 떠올리자면 오르엠은 그녀를 마주하게 될시 그 성격에 절대 그냥은 못 지나칠 것이다.

    “잘 만하면 어부지리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추측이 딱 맞아떨어지고, 제때 당도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유세현이 자신의 몸체만 한 알을 밟아 터트렸다.

    녹색액체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비산하며 주위 사물을 녹여갔지만, 그에게 있어서 태어나지도 못한 지렁이의 독은 이제 어린아이가 뱉은 침과도 같았다.

    “......”

    얼굴을 쓱 닦은 유세현은 전방을 살폈다. 현재 그들은 부화장에 당도한 상태였다.

    길 혹은 단서를 찾기 위해 10개 팀 전체가 함께 수색을 펼치고 있지만 마땅히 수확한 게 없다.

    “역시 그른 건가? 다른 곳을 가봐야 하나?”

    “내가 전에 이곳을 탐사 했을 때 장소가 북쪽지역이었다. 그러니 다른 곳도 결국엔 마찬가지일 거다.”

    “으음...”

    이렇게 되면 무저갱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내려 가보기라도 해야 하는가.

    “저기 대장님... 잠시 이쪽으로...”

    “뭐냐?”

    그때 카그네프의 부하가 그를 이끌었다.

    “이걸 보십시오.”

    부하가 멈춘 장소에는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정도의 아주 작은, 손가락 네 마디만 한 거울파편이 박혀있었다.

    옆에는 짧은 글귀 또한 함께 적혀있다.

    [영혼은 육체를 찾기 위해 악몽 속을 헤맨다. 하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이 뒤섞인 두개의 공간을 올곧게 응시하라.]

    “무슨 의미지?”

    “흠... 지금상태론 아이템 정보가 나오지 않는데 일단 떼어 내볼까요?”

    그 말에 카그네프가 일행와 엘프들을 쓱 훑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딸깍-

    거울은 예상외로 쉽게 떨어졌다. 정보를 살피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본 카그네프가 한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으음?”

    “뭐지? 뭐라 써져 있기에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거울을 봐라.”

    그가 거울 치켜들자 스산한 무엇인가가 그들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게 거울을 통해서 보였다.

    ‘이건...’

    망자.

    카그네프의 부하가 찾은 거울은 죽음속의 세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물품이었다.

    무저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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