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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71화 (371/612)
  • 지고의 동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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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이 절로 꾹 닫힌다. 염두하고 있던 바였지만 모두 잡혔다는 것은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이강호가 계속 말을 이어 설명한다.

    “일반적인 포박 마법 같은 게 아니었어. 나도 처음 보는 특수한 물질이었다. 그게 몸 전체를 감싸 제압하고 있었지. 마음 같아서는 바로 구출해내고 싶었지만...”

    도착하는 게 늦었다.

    이강호가 이곳에 다다라 상황을 살폈을 때 동료들은 이미 성 근처까지 이송되어있었다.

    델바람족으로 보이는 놈들이 감시하고 있는 이상 아무리 이강호라 해도 마구잡이식 돌파는 불가능.

    가짜일 가능성도 있지만 진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세현아...”

    이강호가 말꼬리를 흘렸다. 숨을 한번 내쉰 그가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어쩌면 셋을 포기해야 될 지도 모른다.”

    “...뭐?”

    “너도 봤잖아. 만약 저 델바람 놈들이 카그네프의 1선 병력들이고 이 지역을 점령해 그 요상한 몬스터들을 다루고 있는 거라면...”

    승산은 제로.

    “들어가면 우리도 99.99% 죽어.”

    “......”

    유세현의 입이 달싹였다. 그는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루시펠과 이강호, 둘 다 동일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상황.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상이었고, 현실이 아니었다.

    꾸구국-

    주먹이 절로 꾹 쥐어지고,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김주희, 루시아, 아퀼라는 그의 마음속 울타리 안에서도 심장에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는, 엉망진창이었던 빈 공간을 채운 인물들이었다. 유혜인, 이강호같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이 부족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세현의 표정을 본 이강호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위로했다.

    “유세현, 확률은 아직 반반이다. 벌써부터 침울해 할 필요는 없어.”

    “후우, 그렇지. 시험은 저 망루에 있는 놈으로 해볼 생각이냐?”

    “응. 그놈들로 수준을 파악할거야.”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이자.”

    죽이지 않고 제압을 했다는 뜻은 살려둬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즉, 시간싸움.

    꾸물거리다가는 저 놈들이 카그네프의 1선 병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칫 늦을 수가 있다.

    유세현이 몸을 돌리자, 이강호가 말했다.

    “아, 세현아. 출발하기 전에 하나만 약속해라.”

    “뭘?”

    “만약 놈들이 카그네프의 병력으로 추정되면 바로 미련을 털어버리겠다고. 혼자서 돌격하지 않겠다고.”

    유세현의 심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강호는 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답이 없자 이강호가 초강수를 둔다.

    “아니, 됐다.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해.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네가 돌격하면 나도 무조건 뒤따를 거란 걸.”

    “...야.”

    “왜? 너처럼 자기 목숨,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자, 가자. 시간없어.”

    이강호가 위장용 망토를 꺼냈다.

    셋은 그걸 등 위에 덮고 살금살금 기어서 움직였다.

    일회성으로 풀숲에서는 이리저리 걸리는 게 많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암석지대에서는 꽤나 유용하다.

    노리는 놈은 가장 가까운 망루위에 있는 델바람.

    근처에 다가가자 이강호가 짧게 수신호를 했다.

    공격조와 시선끌기조로 역할을 나눠 공략하겠다는 의미.

    시선끌기조는 마심원이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유세현이었다.

    유세현은 바로 망토를 벗어 던지고 놈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그렇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반응.

    델바람들이 잡고 있던 병장기를 들어올린다.

    그때였다.

    휘이잉.

    서걱-

    구조물을 밟고 도약하여 어느 샌가 뒤로 접근한 이강호의 창이 정확히 놈의 목을 갈랐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적은 눈치도 채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어서 루시펠의 롱기누스가 적의 심장을 깨부순다.

    “커...헙!”

    그녀는 적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은 뒤 재빨리 마무리를 지었다.

    유세현은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놈들은 아무리봐도 절대 1선 병력이 아니었다. 아니, 델바람족 자체가 아니다.

    스스스-

    육체가 녹아간다.

    이전 처리했던 가짜들과 같은 놈들이라는 의미.

    “대체 이곳은 뭘 위해 만들어진 장소일까요?”

    “...흠, 가보면 알겠죠.”

    루시펠의 말에 답한 유세현이 시선이 다른 망루를 응시했다.

    * * *

    외곽에 배치 되어있는 망루를 제압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적의 수준이 뛰어나지 않았던 데다가, 경계도 상당히 허술했기 때문이다.

    입구에 다가선 일행이 내부와 연결되어있는 문을 열어 재끼자 어둠이 또다시 일행을 반긴다.

    약간의 빛도 없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적의 수준을 고려하자면 대범하게 나아가도 될 법했지만 셋은 더욱 각별히 주의를 기했다.

    동료들이 놈들에게 제압당한 이유.

    겪은 게 전부가 아닐 확률이 무척 높다.

    이강호가 품속으로 손을 넣더니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익숙한 아이템, 달의 거울이었다.

    “그건 왜?”

    유세현이 묻자 이강호가 말없이 거울을 살짝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정도 밝기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건만 반사되고 있는 거울에는 알 수 없는 입자들이 비쳐지고 있었다.

    유세현은 이강호가 어떻게 그 장소까지 빨리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루시펠에게 간략히 설명하자 그녀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녀가 말했다.

    “과연...그걸 이용하면 그다지 헤매지 않고 중심지에 도착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중심지에 동료들이 있는가.

    일행은 최대한 샅샅이 뒤지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성 내부는 바깥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넓었다.

    공간을 부풀린 확장공간이거나 별개의 장소, 아공간임이 분명했다.

    2시간이 지났음에도 당최 끝날 기미가 안보이자 이강호가 혀를 찬다.

    “이래서는 답이 없다.”

    유세현도 동의하는 바였다. 전부 조사하기에 자신들은 인원수가 너무 적다.

    몬스터가 존재했다면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1층에는 그 흔한 경계병 같은 것도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더욱 크기가 방대해진다.

    일행은 일단 끝까지 쭉 올라가보기로 방향을 정했다. 대개 끝에 층에는 뭔가가 있으니까.

    달의 거울의 힘을 빌려 5층에 다다른다.

    가로막은 벽이 이 층이 마지막임을 증명했다.

    휘이익-

    귀를 기울였으나 1~4층까지 그러했듯,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외에 딱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그렇다면.”

    쾅!

    이강호가 시험 삼아 벽을 깨부쉈다.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듣고 한걸음에 뛰어올 만한 충격음이었지만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스스스-

    곧 부서진 파편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수복되어간다.

    이후 일행은 10시간이라는 시간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허나,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진 못했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어둠뿐이다.

    “젠장...”

    달의 거울도 5층에 들어선 순간 그 역할을 다했다.

    밀도와 양이 똑같아져 더 이상 길을 파악하기 힘들어진 것.

    눈으로 직접 봐봤자 뭐가 다른 게 있겠냐만은 유세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피로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방을 뒤져나갔다.

    침실 수색을 끝마친 그가 딱 방을 나서 커브를 돈 순간이었다.

    “어?”

    침침해진 눈동자 속으로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희미한 마력의 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았다면 놓치고 그냥 지나쳤을 만한 실이었다.

    유세현은 그것이 벽 틈 사이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기 무섭게 일장을 내질렀다.

    쾅!

    본래 침실이 있어야 될 장소에 전혀 다른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셋은 모이기 무섭게 내부로 돌입했다.

    공간은 철장 그 자체였다.

    특이한 생명체 하나가 갇혀 있다.

    검은 연기 비스무리 한 것으로 이루어져, 형체가 시시각각 바뀌는 생물이었다.

    기척을 읽었는지 시꺼먼 얼굴에 흰 자위가 드러난다.

    놈은 세 개의 눈으로 유세현과 이강호, 루시펠을 각각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쫙 찢으며 섬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놈이 살짝 고양된 목소리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반갑다. 난 크라베스라고 한다. 이곳을 발견한 건 너희들이 처음인지라 무척이나 기쁘군.]

    “......”

    유세현은 이강호를 슬쩍 바라봤다. 도무지 무슨 종족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탓인데 표정을 보아하니 이강호나 루시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바로 이어지는 크라베스의 말이 귓전을 강타한다.

    [난 너희들이 왜 이곳에 제 발로 들어왔는지 알고 있다. 필히 망령의 수하에게 붙잡힌 동료 세 명 때문이겠지.]

    반응 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일행의 경계심을 느꼈는지, 크라베스가 곧장 해명하듯 말했다.

    [난 이곳에 갇혀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지만 이 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보인 행동양식을 보건데 손쉽게 파악이 가능했지.]

    “...그렇군.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유세현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크라베스는 굉장히 만족스러운지 입꼬리를 더욱 찢었다.

    [하하하! 괜히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없어 좋군, 좋아. 그렇게 물으니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답하겠다. 나를 여기서 꺼내줘라. 그럼 내가 네 동료를 되찾는 걸 도와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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