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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70화 (370/612)

지고의 동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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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떨어진 머리가 지면을 굴렀다.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배신이었다. 그렇게 동료를 위하던 인물이 이제와 돌변하다니?

루시펠도 여간 놀란 게 아닌지 눈을 마냥 끔뻑거리는 상황.

“서, 선배...대체 왜...”

김주희가 당혹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강호의 목을 쳐낸 유세현의 검이 어느새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다라 있던 것.

서걱-

싸늘한 음색과 함께 이번에도 여지없이 목이 날아간다.

유세현이 아직도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루시펠을 향해 외쳤다.

“계약!”

“...!!”

루시펠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얼굴을 했다.

휘이익!

당혹감에 꾹 쥐고 있던 롱기누스가 루시아의 목을 향한다.

고개를 젖혀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루시아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두 여인은 루시펠과 유세현을 노려보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큭! 연기는 완벽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냐!”

유세현은 말 대신 칼로 답했다.

“루시펠씨, 아퀼라로 의태한 놈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루시아씨로 의태한 놈을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슈슉!

천마군림보로 가속하여 접근한 유세현이 일직선으로 검을 내려쳤다.

이에 루시아는 재빨리 검을 들어 올려 검등을 이용해 방어했다.

각도, 자세, 호흡까지...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 유세현의 눈동자가 번뜩 빛난다.

지금까지 함께 다녔기에, 그리고 지켜 봐왔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현재 루시아로 의태한 적이, 스킬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걸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무려 습관까지 말이다.

‘역시 저놈들은...’

채재쟁!!

유세현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맹공을 펼쳤다.

김주희는 수세에 몰렸음에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킬까지 베끼진 못하는 건가?’

그는 몇 번 더 공격을 이어나가다가 마무리를 지었다. 김주희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창술 자체는 무척 까다로웠으나 스텟이 본체보다 낮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잠시 뒤 옆으로 다가온 루시펠이 시체를 응시하며 의문을 표했다.

“이놈들은 대체 뭘까요?”

유세현은 눈매를 좁혔다.

그는 대략적으로나마 이 생명체가 어떠한 존재들인지 알고 있었다.

이전, 이강호가 말해 줬던 적이 있으니까.

암흑지대의 특수한 장소에 서식하며 먹어치운 자의 행동, 기억, 모습까지 모든 걸 빼앗는 몬스터.

[도플갱어]

허나, 유세현은 눈앞에 있는 놈들을 완벽하게 도플갱어라 정의 할 수 없었다.

놈들의 특징을 고려하건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

우선은 아이템.

유세현은 무기를 맞댔을 때의 위화감을 생각하며 가짜 김주희가 입고 있던 갑주를 탈착시켰다.

아이템 정보가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즉, 이는 도플갱어가 동료들의 아이템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래선 말이 안 되지.’

이강호가 일러준 바 도플갱어는 본체를 흡수 해야지만 당사자가 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강호, 루시아를 포함한 4명 모두가 도플갱어에게 먹혔다는 뜻인데, 아이템을 지니고 있지 않다니 명백한 모순이다.

또, 이상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스르르륵-

사체가 점점 녹으며 점성 짙은 액체로 변해가고 있다.

언뜻 보면 본래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 될 수 있지만, 도플갱어는 한 번 생명체를 흡수하면 이전의 모습으로는 되돌아 갈 수 없기에 사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동료들을 흡수했다면 유세현이 마력을 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접근했어야 정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들은 일반적인 도플갱어가 아니다.

다른 무엇이다.

유세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군.’

이 특수 몬스터들은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유세현이 행동 자체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곳에는 몬스터가 없다.

의도되었다는 게 너무도 자명한 상황.

이강호야 매사 의심이 많으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인 만큼 자신처럼 도플갱어를 쉽게 떠올리지 못할 터.

함정 속으로 유인당해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을 찾아내야 된다.

유세현은 굽혔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서 갈림길을 응시했다.

어디로 나아가야 될까? 어디로 가야지만 조우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이 동굴을 공략해야 되는 거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막연하기만 하다.

“흐음...”

“난감하군요.”

둘은 생각 끝에 일단 가짜 이강호가 선택해온 길이 다른 길과 무슨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꼼꼼히 살펴보는 유세현과 루시펠.

허나, 진즉 한번 살펴본 바가 있듯 외관상의 차이점은 없었다. 재질, 색깔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똑같다.

두 번 왕복하자 자기 나름 결론을 낸 루시펠이 말했다.

“우리 둘은 볼 수 없는, 놈들만 알아 챌 수 있는 특수한 무엇인가가 있다거나...혹은 길을 통째로 외웠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

동의하기에 유세현은 안력을 높였다. 노이즈를 생성시키는 입자말고 다른 특수한 걸 본적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유세현이 입술을 곱씹었다.

‘역시 특수 입자말고 딱히 다른 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유세현의 목덜미를 스쳐지나갔다. 잠시 고심하던 그의 눈이 번뜩 빛났다.

‘알아냈다.’

차이점을.

그의 망막에 입자들이 비친다.

현재 둘은 두개의 통로를 되돌아온 상태였는데 이곳의 입자량은 가짜들을 처리했었던 장소의 입자량보다 양이 적었다.

파앗-

스프링처럼 튀어나간 몸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도출되는 결론.

가짜들이 선택했던 장소는 입자의 양이 점층적으로 많아지는 반면, 다른 길들은 감소하거나 그 상태를 유지한다.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루시펠이 은은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뭔가 알아내셨군요.”

“예, 길을 찾아냈습니다. 함정을 구분할 수 있는 방도도 알아냈고요.”

“호오, 길까지? 방도가 뭐죠?”

“죄송하지만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루시펠이 눈동자를 빛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분별이 가능하다면 구태여 저런 말을 꺼낼 필요가 없기에, 유세현에게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알겠어요. 묻지 않을게요. 따라갈 테니 앞장서세요.”

“알겠습니다.”

유세현이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 *

이동. 또 이동.

현재 유세현은 함정일 것이라 예상되는 입자가 많은 장소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함정이자 중심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장소의 입자량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그건 겉을 맴돈다는 걸 의미하지.’

통로가 많지만 조건을 만족하는 길이 몇 개 없으니, 추후에는 하나로 길이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

유세현은 입자가 점점 적어지는 장소를 찾아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동료들이 가짜에게 속았을 가능성.

지금은 최악을 전제로 행동해야 할 때였다.

약 두 시간 가량을 나아가자 저편에서 뿜어져 나온 옅은 빛이 눈가를 밝힌다.

갈림길의 끝을 고하는 빛이었다.

둘은 이전처럼 검신만 살짝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통로와는 가히 비견도 되지 않을 만한 돔형의 거대한 공간.

공간의 중심지에는 성처럼 생긴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

곧게 뻗어 나열되어있는 회랑이 각 끝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통로와 성을 서로 이어주고 있다.

망루를 발견한 유세현은 일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보다 자세한 관찰을 위해 만원경을 꺼냈다.

‘저건...’

망루에는 이종족이 있었다.

정확히 무슨 종족인지도 안다.

‘델바람.’

상대의 기억 속에 침투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특이한 힘을 지닌 생명체.

‘설마 놈들이 여길 점령하고 있는 건가? 놈들에게 의태하는 능력 따윈 없다고 들었는데.’

그때 마찬가지로 모습을 확인한 루시펠이 유세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유세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약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게 카그네프 제벨의 직속 병력들이라면 현재의 우리에겐 승산은 없어요.”

“카그네프?”

무심코 반문하긴 했지만 유세현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엘프의 카시우스처럼 카그네프는 델바람족의 유명인사였으니까.

“후우...”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동료들의 생사건만 해도 머리가 아프건만...

그때였다.

쉬익-

고개만 살짝 빼꼼 내밀고 있는 얼굴을 향해 여태까지 느낄 수 없었던 산뜻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유세현은 이 바람의 정체를 단번에 캐치했다.

‘이강호!’

재빨리 수신호를 보낸 이강호가 감시병의 눈을 피해 바닥을 기어 유세현의 곁으로 이동해왔다.

평지였다면 걸렸을 터였지만, 다행히도 이곳의 지형은 회랑과 성이 들어서 있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울퉁불퉁 제멋대로였다.

대화를 위해 장소를 뒤로 물리기 무섭게 이강호가 말했다.

“세현아, 역시 넌 걸리지 않았을 줄 알았다.”

신뢰가 담겨있는 말투.

유세현은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어. 운이 좋았지. 그런데 너 어떻게 우리 발견한거냐?”

“뭐 때문이겠냐? 빛 반사 때문이지.”

“아...”

“좀 더 주의해. 그 방법 은근히 눈에 잘 띄니까.”

“...알았다. 그런데 나머지 셋은? 혹시 저쪽에 있냐?”

“아니.”

“그럼 누구누구랑 같이 있...”

“나 혼자뿐이야, 홀로 이곳에 떨어졌거든.”

“...그러냐. 그럼 나머지 애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네?”

“아니, 그건 알아.”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의 표정이 굳었다.

행방을 알고 있음에도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하나였기 때문.

“제압 되서 저 성에 끌려갔다.”

“...젠장...몇 명? 설마 세 명 전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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