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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68화 (368/612)
  • 카시우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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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큭!”

    파앗-

    유세현은 다급히 자세를 가다듬기 무섭게 상공으로 도약했다.

    허를 찔리는 쓴 맛을 맛보았지만, 다행히도 치명상은 아니었다.

    막대한 마력을 집약시켰다면 이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만, 놈이 발현한 스킬은 소량의 마력에 고유특성을 담은 특수 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군.”

    융기된 지면에서 빠져나오자 진즉 예측했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카시우스가 검을 들이댔다.

    노리는 부위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세현의 오른팔.

    제압이 목적인 게 분명하다.

    후미에서는 두 명의 엘프가 다리를 노렸다.

    숨이 턱 막히는 협공!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검은 유세현에게 닿지 못했다.

    카시우스가 그의 도약을 예상했었듯이, 유세현도 엘프들의 행동을 짐작하여 한차례 빠르게 천마군림보를 운용한 덕택이다.

    쉬이익-

    카시우스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른다. 이어서 그 상태 그대로 부패의 어둠을 흩뿌렸다.

    퍼엉!

    순간적으로 발현한 엘프들의 마법과 부패의 어둠이 격돌하며 충격파를 자아낸다.

    카시우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지독하리만큼 침착하군.’

    본디 이 정도까지 수세에 몰리게 되면 약간일지언정 흔들림을 보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의지가 굳건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대한 공포는 모든 생명체라면 지니고 있으니까.

    몸을 억압하는 마왕의 힘도 그렇고, 특이한 검술도 그렇고, 정신력도 그렇고.

    ‘엄청나게 위험한 놈이다.’

    여기서 더 스텟을 올리게 되면 추후 무지막지한 위협이 되리라.

    그가 일순간 눈을 흘겨 전투 양상을 훑었다.

    예상대로라면 루시펠을 제외한 나머지는 벌써 무릎을 꿇고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인간들은 간신히나마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나머지 인간들도 예사 놈들이 아니다.

    카시우스는 미안한 일이지만 로리엔의 오빠, 제르펠이 죽은 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상황은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후우...후우...”

    챙!

    유세현이 검을 들어 전방에서 날아온 칼날을 힘겹게 방어했다.

    부족한 힘 때문에 무릎이 굽혀진다.

    그는 곧바로 엘프가 딛고 있던 땅을 융기시켰다.

    “이 놈이?”

    발생한 찰나의 틈.

    하지만 유세현은 장소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발 딛을 곳이 없다.

    주위가 온통 엘프 천지다.

    마족화로 능력치가 증가한 현재, 혼자 탈출하는 것조차도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일과 같은데, 그에게는 버릴 수 없는 동료들이 있었다.

    서약서는 관계없다.

    그때였다.

    이강호의 목소리가 사자후처럼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크윽! 다 같이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다! 각자 알아서 이탈할 걸 권하는 바다! 모두 동의하나!”

    서약서 때문이었다.

    김주희가 힘겹게 답했다.

    “동의...큭! 해요!”

    이어서 나머지 일행이 이구동성이 되어 외친다.

    유세현은 이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각자 도주한다해도 그 가능성이 있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법과 그걸 받혀줄 마력재생, 마족화로 보다 높은 스텟을 지니고 있는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들은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다.

    자신을 살리고.

    유세현은 입을 악물고 답하지 않았다.

    죽는 건 싫었지만, 그들을 포기하는 건 더 싫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알베타스의 함정에 빠져, 하나 둘씩 죽어간 자신의 팀원들이.

    ‘방도를 찾아야 돼 방도를...’

    유세현은 그 짧은 순간에도, 방도를 찾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허나, 아무리 굴려도 나오지 않았던 답이 지금이 되어서 짠하고 나올 리가 없었다.

    루시펠과 유세현이 답하지 않자 이강호의 닦달이 이어진다.

    “고집부리지 말고 답해! 유세현! 현실을 받아들여! 어차피 모두 살아서 나가는 건 불가능 해! 루시펠! 너도 할 일이 있잖나!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화르륵-

    콰아아아아아!푸른빛과 주홍빛이 뒤엉킨 화염의 소용돌이가 사방에서 일었다. 지금까지 사용한 것 중에 가장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일격필살의 공격이었다.

    이강호를 상대하고 있던 엘프들이 제압하기위해 물 계열 마법을 시전했다.

    화염보다도 더 높이 솟구치는 파도!

    막대한 양으로 찍어 누르려는 의도였지만...

    치이이익-

    물이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진다.

    불길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당혹감이 터져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큭! 역시 이 화염, 너무 이상하다! 아무리 5서클에 불과한 마법이라지만 어떻게...”

    그 순간, 화염속에서 불쑥 뻗어 나온 이강호의 손이 당황스러워하는 적의 갑주를 붙잡았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강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붙잡았다. 넌 내가 데려간다.”

    지잉-

    푸른빛으로 이글거리던 눈동자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마치,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을 불사르는 양초처럼.

    “개소리!!”

    위기를 느낀 엘프가 곧장 검을 휘둘러 목을 노렸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콰아아앙!

    “끄아아아악!”

    숯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잘게 부서져 내리는 엘프의 육신.

    “데, 데미라스!”

    이 모습은 엘프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했다.

    이강호의 불길이 예사롭지 않게 강하다는 건 열기로 익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최상위권 대리자였다.

    당연히 높은 마법저항력, 속성저항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도 기본적으로 일반 대리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물건들뿐이었다.

    그런데 단 한방의 일격에 사망하다니?

    “허억...허억...”

    이강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육체의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숨 돌리 틈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고유특성과 특수특성을 남발한 결과였다.

    이강호가 온힘을 다해 외친다.

    “유세현! 루시펠에에엘!!”

    “세현씨!”

    쿠웅!

    챙!

    모두가 한계에 다다라있었다.

    약해진 빙공.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마력.

    촤자작-

    엘프의 검에 베인 운디네의 육신이 뭉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리적 타격에서 형태를 복구하기위해서는 소량의 마력이 필요한데, 그걸 보충해줄 여력도 없는 것이다.

    운디네의 눈가에서 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진다.

    눈물인지, 아니면 육체가 부서지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애타게 일행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김주희! 강호오빠! 세현오빠!”

    “하아...하아...”

    슈슈슈-

    운디네가 이내 땅을 차갑게 적시며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퍽-

    발길질에 김주희의 몸이 붕 뜬다.

    그녀는 그와 중에서도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뒷목을 붙잡혔다.

    “커...컥.”

    김주희가 빙공을 운용할 시간 같은 건 주지 않았다.

    땅에 곧두박질 쳐지는 김주희의 얼굴.

    꾸구국.

    차원이 다른 힘이 숨통을 옥죈다.

    더 힘을 준다면 끝을 낼 수 있는 노릇이었지만, 김주희를 제압한 엘프, 카르벨로는 그러지 않았다.

    “인간은 봐라! 내가 이 여자의 숨통을 쥐고 있다! 이 여자의 목이 으스러지는 꼴이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버려라!”

    인질로서의 가치.

    보통이라면 만약을 대비해 곧바로 죽여 버렸겠지만, 유세현 일행의 행동을 보건데 서로가 서로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 판단이 선 데다가 이 여자 또한 조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탓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버리진 않겠지.’

    노림수는 다른 데에 있다.

    동요.

    아니나 다를까, 이강호와 루시펠을 제외한 일행이 일순간 움찔거렸다.

    빠악-

    “꺅!”

    이번엔 루시아가 쓰러진다.

    더 높이 도약하여 카시우스의 일격을 간신히 회피한 유세현의 입술이 거칠게 떨렸다.

    정말 다 같이 살아남을 수는 없는 것인가.

    살아남아 복수를 해주어야 되는가.

    카시우스가 손을 올리고 마법을 시전한다.

    [기가 그래비티.]

    일반적인 중력조작 마법보다도 더 높은 서클의 마법.

    줄곧 지켜보고 있던 로리엔이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광소를 내뿜었다.

    “하하하! 지금 네 몸으로 카시우스님의 마법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인간!”

    “으...”

    유세현은 분했다. 끓어오른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반항뿐이었다.

    이길 수 없다.

    한 명에게 제대로 신경을 쏟을 수 없어 누구를 잡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가 천마혈사장을 운용한 순간이었다.

    파앗!

    난데없이 상공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와 주위를 물들였다.

    수없이 많은 빛의 기둥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진다.

    7티어, 고위 신성 광역마법.

    [빛의 기둥]

    콰과과과-

    쿠구구궁!

    지면이 일부 푹 꺼져 내려앉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유세현이 고개를 돌리자, 루시펠이 옆까지 날아와 있었다. 플라이 마법으로 뒤쫓는 엘프들도 눈에 비친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당신이 강호씨 말에 따르신다면 저도 동의해 드리겠어요.”

    곧바로 이어지는 유세현의 답.

    “...아니, 동의하지 않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소중한 동료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어차피 더 이상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들이 죽는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의미가 없기에.

    “그러니 미안하지만 너도 여기서 우리랑 같이 죽어줘야겠다.”

    “......”

    루시펠이 유세현을 살포시 응시했다.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유세현은 거기서 뭔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엘프들을 신경 쓰는데 집중했다.

    반탄기로 날아오는 마법을 쳐내고, 등을 맞대고 있는 루시펠이 휩쓸리지 않게 대멸겁을 운용하여 주위를 방어한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그는 더 이상 마심원에 걸리는 부하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만 살 거니까.

    루시펠의 속삭임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세현씨, 세현씨께서 제 요구를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제가 이 상황을 타파해줄 수 있습니다.”

    유세현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했다.

    허나.

    “뭐, 별로 어려운 요구는 아니에요. 당신이 그 죽음의 힘을 얻게 된 경로와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세세하게. 괜찮은 거래 아닌가요?”

    유세현은 깨달았다.

    조우할 때부터 줄곧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던 탈출용 아이템.

    ‘설마, 다수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건가!’

    왜, 이제야 말을 꺼낸 거지?

    아무쪼록 생각을 이어갈 시간 따윈 없었다.

    권능과, 스킬로 버티는 것도 이젠 한계였으니까.

    “좋아! 요구를 받아들이겠다!”

    유세현이 외치기 무섭게 루시펠이 빛의 속도로 포켓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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