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55화 (355/612)
  • 문라이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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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아이템을 구해야 돼.”

    명칭은 달의 보석, 달의 빛, 달의 거울.

    각각 문라이트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이 세계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으로서 달의 샘을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행은 곧바로 아이템들이 잠들어있는 장소로 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세 물건들을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닌 아이템을 먼저 얻을 거야.”

    다른 이 종족이 먼저 채갔을 것을 고려한 것이다.

    은밀하면서도 신속한 행보가 이어졌다.

    수준이 낮아 보이는 이종족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잘한 아이템이나 코인이 아니라, 아이템의 선점.

    게다가 전투를 하게 되면 충격의 여파로 인해 근처에 있던 이종족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쏠리게 된다.

    어부지리를 노리는 타종족들이 들러붙어 귀찮아 질수도 있을 뿐더러, 더 나아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깥보다도 좀 더 각별히 주의해야 되는 세계.

    또한 추적 아이템은 예의 3개의 아이템처럼 오직 한개 씩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지만, 물량이 몇 개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여유부릴 새 따위는 없다.

    그렇게 일행은 2주간의 여행 끝에 첫 번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 김주희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문라이트는 지구에 비해 4배나 거대한 달이 끝임 없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어 사람에게 있어서는 무척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그런데 이곳은 주위 지형지물이 전부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순히 흙과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어도 그 정도인데 바위도 땅도 나무도 전부 수정인 것이다.

    반사된 빛이 한데 어울려 반짝이니 그렇게 예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김주희가 내부가 훤히 다 비쳐 보이는 바위의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선배님 이거 진짜겠죠?”

    “글쎄? 아마도 그렇겠지?”

    “크~ 현대에 있을 때 이런 걸 발견했어야 했는데...”

    나름의 장난기가 담겨있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된 유세현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맺힐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아간 이강호가 땅에 깊게 박혀 웅장함을 자아내고 있는 거대 사각수정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타앗-

    살포시 도약한 이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날을 사각수정의 정중앙에 꽂아 넣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을 파고들며 손날이 쑥 파고든다.

    잽싸게 나머지 한 손도 쑤셔 넣은 그가 양옆으로 힘을 주자 사각수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틈 사이야 말로 바로 추적용 아이템 숨겨져 있는 장소였다.

    내부를 살핀 이강호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쯧.”

    이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짙은 탄성.

    안타깝게도 이곳에 묻혀 있던 추적 아이템은 이미 누가 털어간 후였다.

    좋았던 분위기가 급다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유세현이 넌지시 한 마디 했다.

    “신경 쓰지 말자. 이렇게 될 수 있단 건 진즉 예상하고 있었잖아.”

    “뭐, 그렇지.”

    일행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강호가 알아놓은 장소는 총 4군데였기에 일행에게는 아직 3번의 기회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장소에 도착한 이들.

    이전보다도 더 바삐 움직였건만, 이번에도 아이템은 누가 이미 회수해간 뒤였다.

    김주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제 남은 곳은 두 곳.

    심리상 슬슬 불안한 것이다.

    “다, 다음 장소에는 있을 거예요. 빨랑 가보죠!”

    또 다시 이동.

    세 번째 장소에 도착하자 김주희가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있기를!’

    허나, 좋지 않은 느낌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 것인가.

    “이런...”

    이번에도 털려 있었다.

    루시아, 유세현 너나 할 것 없이 안색이 나빠졌다.

    이강호가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털렸을 줄이야...”

    그조차도 이럴 줄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고려하긴 했지만 확률을 무척 낮게 잡았다.

    아무쪼록 이제 그들이 걸어볼 수 있는 건 마지막 장소뿐.

    붉은 달빛이 인상적인 붉은 대지를 통과한 그들의 앞으로 새까만 안개의 꽃이 만개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막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나오는 암흑지대와 문라이트를 연결해주고 있는 경계지대의 초입부분으로 목적지로 향하는 최단거리 경로였다.

    본래라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돌아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지금의 일행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지역이 나뉘어져 있는 만큼, 마력파악이 되지 않기에 일행은 각별히 주의를 기해 산맥을 향해 나아갔다.

    허나, 일이 안 풀릴 때는 뭘 해도 잘 안 된다고 산맥 초입부분 도달한 순간 내부에서 이종족들이 뛰쳐나왔다.

    적을 확인한 유세현이 혀를 찼다.

    “이 주위에는 다른 놈들도 많이 분포해 있는데...”

    등장한 이종족은 소대급으로 이루어진, 가루다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는 프락크라는 종족이었다.

    차이점은 등에 날개가 붙어있는 가루다들과 달리 손 자체가 날개라는 점.

    일부러 만남을 의도한 것은 아닌지 일행을 발견한 프락크 무리 대장의 입에서도 걸쭉한 욕이 터져 나왔다.

    “젠장할! 이놈들은 또 뭐냐!”

    대화를 나눠 모른 척 각자 갈 길을 가면 좋으련만, 30마리의 프락크들은 그럴 새도 없이 빠르게 활강하며 선제공격을 감행해왔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대응에 나섰다.

    김주희가 창을 내리긋자, 창을 따라 뻗어 나갔던 얼음과 물줄기가 예리한 칼날이 되어 선두에 있던 프락크를 갈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강호의 화염 폭격.

    프락크들은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그래도 일행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유세현은 안도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어둠계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부하의 모습을 확인한 대장 프락크의 눈동자가 당장에라도 빠질 듯이 툭 튀어나왔다.

    “미친!”

    프락크로서 인간은 듣도 보도 못했던 종족.

    당연히 손쉬운 상대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힘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낭패어린 표정이 된 프락크들의 기세가 한껏 누그러졌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프락크들의 기세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들은 무척이나 급해보였다.

    마치 살인귀에 쫓기는 사람마냥.

    이대로라면 전멸의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이건만, 대장 프락크는 산맥방향을 흘끗 살피며 한 눈을 파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유세현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뭔가 있는 건가?’

    의구심을 가지고 빠르게 마력을 체크.

    그 순간 대장 프락크가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라! 선제타를 가하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뭐하지만 이쯤에서 그만도록 하자! 엘프! 하이윈드 놈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계속 싸우다간 다 죽는다! 살기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하이윈드!’

    유세현의 눈이 번뜩 빛났다.

    하이윈드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은.

    ‘마력을 꽤나 잘 숨겼다.’

    이는 상당한 강자라는 뜻.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다.

    마주하면 여지없이 좋지 않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기에 일행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좋다. 믿어주마.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현명한 선택이다.”

    이해가 일치한 두 세력이 동시에 등을 돌렸다.

    산맥을 벗어나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펼치는 프락크들.

    혹시 모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행도 일대를 잠시 떴다 돌아오는 게 맞았지만 갈 길이 바쁜 일행은 그러지 않았다.

    만약, 정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곳에서 지체하는 것 때문에 여타 종족에게 선수를 빼앗길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놈들을 이곳에서 따돌린다.

    일행은 이강호를 필두로 놈들을 피해 새까만 안개 속을 빠르게 헤쳐 나갔다.

    어느 정도 나아가자 이강호가 바로 뒤에 밀착해 있는 유세현을 향해 물었다.

    “어때? 뒤따라와?”

    “응.”

    엘프는 숲의 종족이었다.

    새까만 안개라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손쉽게 흔적을 놓칠 자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행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다음 수가 있다.

    완벽하게 적을 따돌릴 수 있는 다음 수가.

    “디네야 부탁한다.”

    “나만 믿어 세현오빠. 내가 세상 반대편까지 떨어뜨려 놓을게!”

    유세현이 친히 부탁하자, 가슴을 툭툭 쳐 자신감을 선보인 운디네가 일행이 가던 길을 계속 이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역소환하면 끝인 몸, 더미 역할을 맡아 준 것이다.

    일행은 곧바로 근처 풀숲에 몸을 숨겼다.

    주의를 기해 약간이라도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들킬 확률만 높아지기에 그러지 않았다.

    스슥-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이것이 바람이 때문인지 아니면 엘프 추격자들 때문인지는 소리만으로 가늠키 힘들었다.

    그만큼이나 엘프 추격자들은 은밀했다.

    하나, 둘 엘프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자 유세현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맺힌다.

    마력탐지에 재능이 없어 유세현의 표정만 마냥 응시하고 있던 김주희의 입가도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려는 순간이었다.

    유세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터덕-

    엘프 한 명이 급작스럽게 멈춰 섰다.

    그것도 일행이 위치해 있는 바로 근처에.

    ‘숨도 쉬지 않았는데...’

    모종의 이상함을 감지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스륵-

    스르륵-

    수풀의 흔들림이 점차 그 크기를 더해간다.

    전자인 게 분명했다.

    특기인 마법을 쏟아 붓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확신하고 있진 못한 모양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

    이강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커지겠군.’

    허나, 못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놈들이 하이윈드 소속이라고는 하나 프락크들을 쫓았다는 건 탑 클래스급은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유세현을 포함한 일행이 이강호가 치켜세운 검지를 바라봤다.

    공격 수신호.

    이 검지가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순간 일행은 엘프를 덮친다.

    마음을 정한 이강호가 검지를 반쯤 내렸을 때였다.

    “로리엔! 지금 어딜 마음대로 가는 거지?”

    저편에서 남성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튀어나가려던 일행의 몸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로리엔이 안개가 자욱이 껴 있는 풀숲 저편을 응시했다.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흔적도 딱히 없었다.

    그녀가 대열을 이탈한 건 어디까지나 촉에 의해서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단순한 촉이 아니다.

    마치 누군가가 이곳에 적이 있다고 떠밀어 주고 있는 감각.

    그리고 그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상사에게 그렇게 보고할 수는 없는 법.

    “뭔가 미세한 소리가 이곳으로 부터 들려 왔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되어...”

    “뭐라고? 미세한 소리? 나는 전혀 듣지 못 했다만?”

    톡 쏘아 붙이는 상사의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잔뜩 섞여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우윈드에서나 왕이었지 하이윈드에서의 로리엔은 말단 중에 말단.

    그녀의 상사는 스텟이 높은 자신이 듣지 못한 걸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 그녀의 상사는 하이엘프였고, 로리엔은 일반엘프였다.

    청각능력도 애초에 그녀의 상사 쪽이 더 뛰어나다.

    “그리고 누가 너에게 멋대로 판단해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줬지? 지금 네가 속해 있는 팀이 아직도 로우윈드 같나?”

    “...죄송합니다.”

    “추격중이니 지금은 더 이상 질책하지 않겠다. 책임은 이 일이 끝난 이후 묻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상사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린 로리엔이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사실 지금 행동은 평소의 그녀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책이었다.

    ‘그 이상한 감각만 아니었더라도...’

    허나 정말 우습게도 그녀는 아직까지도 확인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물론 그랬다가는 정말 끝장이기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로리엔과 그녀의 상사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로리엔이 응시하고 있던 풀숲이 잔잔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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