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54화 (354/612)

문라이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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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크어어어-

참격을 당해내지 못한 거구의 괴수가 마침내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김주희의 입에 서 삐져나오는 작은 한숨.

“후우우...”

또 한 건 끝낸 일행의 주위에는 괴수뿐만 아니라 엘프들 또한 비참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다.

일행에게 당한 자들은 로리엔이 불러들이지 않은 로우윈드의 탐색조였다.

고서클의 마법을 난사하며 발악했기에 주위는 쑥대밭.

도주한 엘프의 마력을 읽은 유세현이 아쉬움을 삼켰다.

남아서 발악했더라면 전부 이 자리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을 테지만 지시를 받았는지 동료를 버리고 자리를 이탈하는 그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추격을 개시해 몇 명을 더 죽일 순 있었지만, 사방으로 갈라져 도망치는 건 유세현도 몸이 하나였기에 어찌 할 수 없었다.

‘뭐, 대충 예상은 했던 일이니...’

유세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건 재료를 다 모았다는 것.

달의 증표, 달의 힘을 머금고 있는 꽃은 영롱한 푸른빛을 발산하는 식물이었다.

다이아몬드의 광택 따위는 감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잽싸게 자신의 머리에 꽃을 꼽은 김주희가 유세현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무언가 한 마디 해주길 바라는 모습.

허나, 이에 먼저 반응한 이는 운디네였다.

그녀가 몸서리를 쳤다.

“악! 내 눈! 야! 빨리 못 빼? 지금 눈이 썩어 없어 질 거 같거든?”

“아니 이년이? 나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아니 애초에 너한테 썩을 몸이 어디 있냐? 물방울 주제에!”

“어쭈? 물방울? 지금 말 다했냐?”

“어, 다했다. 다했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도 모르냐?”

“사실인 걸 어쩌겠...”

이윽고 티격태격 되는 둘.

김주희가 유세현을 향해 반장난식으로 물었다.

“선배님 저 진짜 안 어울리나요?”

“어울려.”

답은 빨랐다.

그리고 그 답은 김주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웃어넘기거나, 지적을 하지 이런 식의 답을 해주지 않았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살짝 벌어지는 김주희의 입.

“저, 정말요?”

“응.”

재차 답하자,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다른 이에게 들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기분이 좋다.

지금 그녀는 오르엠,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가 나타나더라도 쓰러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근데, 그거 계속 끼고 있을 거냐?”

“헤헤~그럴리가요 선배. 저 그런 생각 없는 여자 아닙니다.”

김주희가 잽싸게 꽃을 회수했다.

이후 다시 이동을 해나가는 일행들.

그 내내 김주희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 * *

살아 돌아온 탐색조의 인원들에게 보고를 받은 로리엔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에게 당했다고?”

“예.”

“허...”

그녀가 보기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상위종족 중에서도 강자에 속하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을, 내부로 진입해 들어 온지 얼마 안됐을 게 분명한 인간이 벌이다니.

“그, 그게 정확히 어떻게 된 거냐면...”

수하가 살을 덧붙였다.

꿈틀거리는 로리엔의 안면근육.

“어둠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그것도 암흑투기를? 고작 인간 따위가?”

“예. 이걸 보십시오.”

“하...”

결국 어이가 없어진 로리엔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지금 부하가 하고 있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마족 중에서도 암흑투기를 발산할 수 있는 존재는 고작 셋에 불과하다.

일개 스켈레톤에서 대장군까지 올라간 마왕의 심복 레오릭.

이제는 배신한 과거 마왕의 오른팔, 벨제뷔트.

힘의 근원이자 죽음 그 자체, 마왕 루시뷀트.

엄밀히 따지자면 그 이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더 존재 했지만, 아류로써 일정 수준의 저항력만 갖춘다면 대응이 가능했기에 그들의 힘을 암흑투기라 취급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당한 탐색조는 아류의 힘 따위는 통하지 않는 인원들.

‘그러니 놈이 발현한 힘은 진짜라는 건데...’

의태일 가능성을 떠올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의태를 하면 힘에 제약이 걸리는데, 본 힘을 발현하면 이것이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다.

그런데 지금 이 기록용 수정구 속에 비치고 있는 건 정말 인간이었다.

놈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미궁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로리엔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에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후우...젠장.’

로리엔은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머리를 싸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문라이트와 연결되어 있는 지역으로 병력을 대거 이동시켜 놈들을 찾아 멸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

첫째 방법은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만 하면 100% 하이윈드의 소속이 될 수 있다.

둘째 방법은 리스크가 낮지만, 정말 재수 없으면 계속 이 자리에 머물러야 될지도 모른다.

‘암흑투기라...’

그녀는 결국 후자를 선택하기 마음먹었다.

차라리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손쓸 수 없는 강적에게 당한 것이었으니 변명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때였다.

“로리엔님 체스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 정말?”

“예.”

말을 들은 로리엔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한 걸음에 고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체스크는 그녀의 오빠 제르펠 디엘 라비에네크의 친구로서 로우윈드에 속하지 않고 제르펠을 따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인원 중 한 명이었다.

즉, 그가 돌아 왔다는 것은.

“체스크 오빠!”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가족같은 존재였기에 로리엔이 거리감 없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허나 이를 받아주는 체스크의 표정은 별로, 아니 많이 좋지 못했다.

묘한 위화감을 느낀 그녀였지만, 로리엔은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잘 지냈어?”

“......”

“그런데 우리오빠는? 함께 온 거 아니야?”

그 말에 체스크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로리엔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

“체스크 오빠, 우리 오빠는? 어디 있냐니깐? 오빠가 선발대로 먼저 온 거지? 뒤따라오고 있는 거지?”

“......”

체스크가 묵묵히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반쯤 풍화된 뼈가 들려있었다.

무엇인지 깨달은 로리엔에 입가가 달싹였다. 그녀는 애써 모른척했다.

“이게 뭐야?”

“......”

“이게 뭐냐니까!”

이내 참다못하고 버럭 외치는 로리엔.

서글픈 슬픔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녀가 손을 덜덜 떨며 뼈를 받았다.

“왜, 왜...어째서...”

로리엔이 오열했다.

분위기를 읽은 부하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체스크가 이내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당했다.”

“던전에서? 설마 몬스터들 따위에게? 우리 오빠가?”

“아니...”

체스크가 기록용 수정 구슬을 넘겼다. 군데군데가 개박살이나 수명이 거의 다하기 직전의 수정구슬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가지 기록을 살폈다.

그 수정구슬에는 그녀의 오빠, 제르펠 디엘 라비에네크가 당하는 모습이 똑똑히 담겨있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보스가 등장하고, 수많은 이종족을 이용해 마법진을 발동시킨 이후 상황은 급격히 돌변했다.

괴상한 생명체를 다루는 여성체 이종족과 인간처럼 보이는...

‘인간이라고?’

로리엔이 얼굴을 들이대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로리엔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으득-

그녀는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슬에 마력을 부여했다. 유세현 일행의 모습이 나타나자 이를 본 체스크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이놈들은!”

로리엔이 입 열어 말했다.

“체스크 오빠.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줘.”

* * *

체스크는 로리엔에게 모든 걸 털어놨다.

언더월드, 기억의 던전에서 체스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에 제르펠과 함께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보는 생명.

그는 던전공략에서 빠지고, 적의 동향파악 및 나아갈 방향 등등 이후를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러 언더월드를 쏘다닌 것이다.

둘은 당연히 정기적으로 통신을 나눌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으로 정보를 교환했다.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클리어 하고 나오겠다는 놈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지.”

던전의 출구는 들어간 입구이기에 체스크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왔다.

살아서가 아닌 풍화된 뼈 조각이 되어.

체스크는 단서라도 얻기 위해 시체를 내뱉은 던전의 입구주위를 샅샅이 뒤졌고, 비로소 이거라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로리엔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수하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가족의 죽음은 견디지 못했다.

“멍청이...그러게 그냥 이곳에 있으라니까...”

제르펠은 도전자였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단 한 명밖에 되지 못하는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탐험을 한 도전자.

눈물을 훔친 로리엔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언데드 맞지?”

“확실해. 어떻게 인간이...죽음의 권능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이제 그리 많지 않은데...”

“로우윈드의 병력들을 전부 쏟아 붙는다면 잡을 수 있을까?”

“로리엔, 그들도 다른 누군가의 가족이야.”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이전에 내 병사들이야. 가능할 거 같아? 불가능할 거 같아? 그것만 말해줘.”

“...미안하지만 내가봤을 땐 무리야. 두 화면에 비치는 놈의 속도를 비교해봐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빨라졌어. 힘 스텟 만큼은 SSS랭크를 넘겼을 가능성이 커. 도망칠 수 없는 던전이라면 몰라도 이런 바깥에서는 불가능해.”

“......”

“그리고 그걸 떠나서...”

“떠나서 뭐?”

“실력.”

검술, 창술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저 외팔...”

체스크의 말에 로리엔의 시선이 외팔의 사내에게 향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외팔의 검사는 예사롭지 않았다.

외팔로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용한 일인데 되려 상대를 압도해버리다니.

SSS랭크라고 하나 근육이란 것은 어떻게 쓰냐에 따라 힘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한다.

신기한 무술을 하는 자는 적지 않게 만나봤지만 대개 비효율적이라 저런 파괴력을 지니긴 힘들다.

그러니.

“놈이 만약 정말 제대로 된 암흑투기를 다룰 수 있는 놈이라면 하이윈드...거기서도 상위순위권에 든 엘프 정도만이 정면승부를 벌일 수 있을 거야.”

로리엔은 입을 꾹 닫았다.

입가 주위가 부르르 떨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가족이 놈에게 당했는데 참을 수밖에 없단 말인가.

“아니야, 광역마법을 쏟아 부우면 어찌어찌...”

그때 체스크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아, 지금은 참는 게 답이야. 로리엔 네가 하이윈드에 들어가기 직전이란 걸 다른 이들에게 들었어.”

“......”

“하이윈드에 들어가. 그리고 조직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잡아. 놈들의 목적지가 문라이트라면 발견할 가능성도 있잖아? 예외적인 인간이니 카시우스도 흥미를 보일거야.”

체스크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눈물을 머금은 로리엔이 복수의 칼날을 삼켰다.

* * *

과거에는 6개의 유적이 전부 클리어 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다.

무려 20년.

3개는 벌써 클리어 됐는데 왜 그토록 오래 걸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서로의 견제 때문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특정조건을 갖춰야 시나리오가 진행이 되는데, 그 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것.

그리고 달의 샘은 시나리오의 일부로서 특정조건을 갖춰야만 등장하는 특수한 지형지물이었다.

난이도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귀찮고 어렵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었다면 탐사를 하여 조심조심 이 세계에 대해 알아나가야 되었지만, 이강호는 곧장 해야 될 일을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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