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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53화 (353/612)
  • 사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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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은 좀 어때?”

    “꽤 괜찮아. 물론 이런 곳이나 지키고 있는 놈들이니 만큼 완벽하진 않지만.”

    유세현의 말에 다가온 이강호가 응답했다.

    내적인 것을 치유하는 달의 샘.

    트루크의 혼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그 샘은 아름다운 달빛이 쏟아지는 지역, 통칭 문라이트 그 깊숙한 곳에 위치하는데 그냥은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다.

    도우미에게 특수한 재료를 갖다 바쳐야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문라이트에도 여러 가지 재료 아이템을 소비해야 진입이 가능하다.

    때문에 그들이 약했다면 적의 눈을 피해 일일이 필요한 재료를 모으고 다녀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강해진 지금에 와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법.

    막 이 세계로 진입해 들어온 신입 및 약자 사냥이 유행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강호는 이를 역 이용하기로 했다.

    일부러 매복에 유용한 장소에 떨어지고, 일부러 얼굴을 드러냄으로서 적의 도주를 방지한 것이다.

    지금 발생한 상황 모든 것은 이미 처음부터 짜여있던 계획.

    유세현은 시선을 돌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게르테스를 내려다봤다.

    “커, 커걱...”

    게르테스의 입에서 새빨간 각혈이 터져 나온다. 고문 내내 오만욕설을 내뱉으며 악담을 퍼붓던 그였지만, 이젠 입 하나 뻥끗할 힘도 없어 보였다.

    이미 정보는 속내를 읽어 얻을 만큼 얻은 상황.

    유세현이 검을 들자,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게르테스가 마지막 힘을 내 말했다.

    “네놈들...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내가 어디에 속해있었는지 알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지만, 유세현은 이미 그가 속해 있는 단체와 그 단체의 화력까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였다.

    서걱-

    깔끔하게 그를 죽여준 유세현.

    시체를 본 유세현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전력을 위해 키메라화 시키고 싶은데 오르엠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군.’

    결론을 내린 유세현은 곧바로 동료들과 함께 뒤처리 작업에 나섰다.

    잔여 병력들을 처리해 놓으면, 보고는 이미 올라갔을지 언정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동향파악 불가능하다.

    스륵-

    순식간에 다가가 기습을 가하는 일행.

    “...!!”

    잔여 병력들은 아슬아슬하게나마 반응하긴 했다. 일행에게는 못 미치지만 그들 또한 웬만한 대리자들에게는 결코 꿇리지 않는 실력자들이기에.

    허나.

    “큭! 어떻게?”

    검격을 받아낸 한 엘프가 경악을 터트렸다.

    눈동자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동요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하기야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만한 일이었다.

    진즉 당했어야 될 인간이 되려 역습을 가해왔으니...이 얼마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단 말인가.

    그렇게 4시간.

    푹-

    “어, 어떻게 고작 인간 따위에게 우리가...”

    루시아의 검격을 버티지 못한 마지막 잔여병력이 쓰러졌다.

    잽싸게 몸을 놀려 포켓을 챙기기는 김주희.

    이곳의 책임자였던 게르테스가 공격을 감행해오기 전,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시 포켓 개봉식을 가졌다.

    잡다한 아이템과 파손을 대비한 여러 가지 예비용 장비.

    팀 하나를 완전히 아작 낸 것이었으나 바로 내부로 돌입하기에는 아직도 재료가 부족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놈들을 털자. 그럼 웬만한 건 다 모일거야.”

    “오케이.”

    일행은 곧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이것이 팀 로우윈드, 엘프들의 악몽의 시작이었다.

    * * *

    거대한 고목이 늘어서 있는 숲.

    엘프 한 명이 고목에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헐레벌떡 내부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가지에 앉아 있던 한 여성엘프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왜 부하가 저렇게 달려온 것이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는데...

    “로리엔님! N23지역을 맡고 있던 바이우스의 팀이...”

    콰앙!!

    아직 본론이 나오지도 않았건만 로우윈드의 총괄자, 로리엔 디엘 라비에네크의 주먹이 고목의 벽을 강타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뻥 뚫린 구멍.

    수하의 입이 대번에 닫힌다.

    로리엔이 눈을 부릅떴다.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 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당한 것까지 합치면 무려 3번이나 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어설픈 조직도 아닌, 팀 하이윈드의 직할 조직인 로우윈드가 말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심호흡으로 간신히 잠재운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도 이번엔 알아내는데 성공했겠지? 그래서 놈들의 정체는 대체 뭐냐?”

    “......”

    수하는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그럼 놈들의 수는? 그건 알아냈겠지?”

    “......”

    또 다시 침묵.

    이에 재차 움켜쥔 로리엔의 주먹이 다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허나, 그녀는 그렇다고 방금 전처럼 분풀이로 벽을 부수거나 하진 않았다.

    정체는 커녕, 대략적인 숫자조차도 모른다.

    매복조 병력들이 아무리 약한 편에 속하는 병력들이라고 하나, 이건 무척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이 보고조차도 하지 못했다.

    미세한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는 마법을 발현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당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적이 정확히 대열을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누가 발설 한 건가?’

    그리 생각한 로리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이윈드의 하부조직이라고는 하나, 직계조직이다.

    정신머리가 그렇게 엉성한 놈들은 올 수 없을 뿐더러 조직원들은 발설한 자의 최후를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사지를 분쇄한 뒤 끝없는 고문.

    절대 죽이지 않는다.

    살려두고 고통을 준다.

    그러니 조직원들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입을 열지 않았을 터다.

    즉, 모종의 수를 썼을 가능성이 높은데...

    ‘델바람?’

    기억을 읽는 종족을 떠올렸지만, 로리엔은 곧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놈들도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침범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

    게다가 이건 보통 실력자의 짓이 아니다.

    ‘젠장, 설마 3대 종족인가?’

    로리엔은 최근 천족이 이 세계에 출몰했다는 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 난리가 발생하다니.’

    그녀가 다시 한 번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지금이야 로우윈드의 수장이지만, 로리엔은 사실 머지않아 하이윈드에 소속 될 엘프였다.

    뛰어난 실력과 지략, 그리고 마법으로 일반 엘프라는 종의 차별까지 뛰어넘어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이윈드에 속하면 많은 이점이 있다.

    우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권력을 지닌다. 로우윈드의 수장으로 속해 있을 때와는 영향력이 차원이 다르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휘하 조직들은 자존심을 뭉개고 정말 죽는 시늉까지라도 해야 되는 것.

    그 이외에도 이점은 무수히 많지만, 또 하나를 꼽아 본다면 생명의 안전이었다.

    카시우스가 이끄는 하이윈드는 강적들조차도 꺼려하는 조직.

    때문에 적들도 웬만하면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피한다.

    거기에 함께하며 강해질 수 있는 건 덤.

    힘들게 힘들게 올라와 이제 거의 다다랐는데...

    ‘이대로라면 못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된다.

    로리엔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났다.

    심이 고심한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내렸다.

    “매복범위를 줄인다. 그리고 탐색조 일부를 불러들여 곳곳에 배치해라.”

    탐색조는 강자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멀리까지 나가 희귀 몬스터의 유무 파악 및 사냥을 하여 여러 가지 아이템을 모아오는 자들이었다.

    이들이라면 적들이 습격을 해도 버틸 수는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인해전술을 사용해 놈들을 잡을 생각이었다.

    대원이 얼마나 많이 죽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적이 예상을 웃도는 강자들이라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더라도 어떻게든 잡아내기만 한다면 적이 지니고 있을 아이템으로 커버가 가능 할 테고, 그것이 아니라면 적당히 피해를 입고 잡을 수 있으니까.

    수하가 말했다.

    “적의 수준을 아예 모르는데 차라리 상부에 보고하고 잠시만 병력을 뒤로 물리심이 어떠한지...”

    사실 부하의 안전을 생각하자면 이게 제일이긴 했다.

    허나, 방금 전에도 말했듯 로리엔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 말대로 시행해라.”

    “...알겠습니다.”

    수하가 물러났다.

    로리엔이 깍지를 낀 손등에 차분히 턱을 받혔다.

    그녀의 목소리가 내부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자 어디 한 번 또 들어와 봐라. 그 잘난 면상을 한 번 보여 봐라. 이번에는 아주 갈가리 찢어줄 테니.”

    * * *

    3번의 습격, 그동안 그들은 문라이트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단서 때문에 도우미에게 바쳐야 될 아이템도 몇 개 존재했다.

    “야, 강호야. 내 포켓은 재수 없으면 작살날 수도 있으니까 네가 좀 가지고 있어주라.”

    “오케이. 가져와.”

    아공간 포켓에 받은 물건을 넣는 이강호.

    그사이 마지막 포켓의 내용물을 확인한 김주희가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역시 달의 증표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선배.”

    달의 증표.

    부족한 아이템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강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본대에서 수금해간 모양이군.”

    달의 증표는 특정 꽃에 달빛의 힘이 깃든 것으로, 문라이트로 들어가기 위한 재료이기도 했지만 잘 가공하면 일시적으로 스텟을 증폭시켜주는 증폭제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힘은 곧 생존.

    때문에 대다수 하위조직들은 구한 달의증표를 제련하여 일부는 자신들이 가지고 일부는 상부조직에 납부해준다.

    수확철이 지나고 나면 씨가 마르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도 당연한 일.

    “선배님, 그럼 놈들을 깨부수는 것 말고는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요?”

    “아니, 있어.”

    등에 꽃이 심어져 있는 몬스터가 있다.

    그 몬스터를 잡으면 된다.

    혹은 다른 장소를 경유해 들어가거나.

    “흠음...그렇군요. 혹시 몬스터가 서식하는 위치를 알고계신건가요?”

    “모르면 말도 안 꺼냈지.”

    “크~역시 강호 선배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김주희가 양손을 귀엽게 흔들며 오버액션을 취했다.

    이제 그런 그녀의 리액션은 소소한 즐거움이었기에 유세현은 그것을 보며 피식 웃어 넘겼다.

    흥이 살짝 오른 김주희가 아무방향이나 가리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 안내해주시죠 선배님! 어딥니까? 안내만 해주시면 까짓 거 제가 혼자 때려잡아보겠습니다.”

    “오, 정말?”

    “하하 물론이...”

    “주위에 적이 분포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헤헤헤, 선배님 원래 동료는 공동운명체잖아요? 전 덜도 더도 말고 딱 1/5만 처리할게요.”

    김주희의 꼬리가 단번에 내려갔다.

    이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 같기도 해.”

    “에헤이! 선배님! 그렇게 절 과대평가 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야, 너라면 진짜로 할 수 있을 거야.”

    “아~선배님~”

    김주희가 앙탈을 부렸다.

    이강호가 장난을 걸다니, 과거였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루시아가 난데없이 손으로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들썩거리는 어깨.

    유세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녀는 지금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허나, 그냥 웃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웃지는 않지만 웃기는 하니까.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은 폭소였다. 그것도 완전히 빵 터졌다.

    조우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본적 없던 모습.

    덕분에 김주희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애였구나.’

    김주희는 일부러 장난스러운 어투를 내뱉었다.

    “아니, 야! 지금 이게 웃겨? 난 심각해!”

    그녀의 의도처럼 루시아의 어깨가 더욱 거칠게 흔들렸다.

    “미, 미안...”

    사과는 하고 있지만 그녀는 웃는 걸 멈추지 못했다.

    물론, 정색한다면 단번에 멈추겠지만.

    일행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웃음은 마치, 마치 꽁꽁 얼어있던 폭포가 이제야 녹아내려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일행은 그녀의 웃음이 완전히 멎고 나서야 목적지로의 이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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