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49화 (349/612)
  • 도우미들의 마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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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그렇게 된 거구나. 우리가 구했던 알테라그가...”

    이상한 의구심이 들지 않도록 있었던 일을 각색하여 털어놓은 이강호의 말에 레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던전에서의 일이 그렇게 이어질 줄이야...”

    “그러게요. 좀 놀랍네요.”

    사람들도 한마디씩 하며 놀라움을 표출했다.

    남궁시영의 시선이 이강호를 향한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깊이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강호가 애써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건 이미 끝난 일이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께 드릴 정보입니다.”

    “정보?”

    “예.”

    이강호가 의문을 표한 아린을 향해 정리해놓은 자료를 내밀었다.

    아린은 그것을 받아들기 무섭게 빠르게 읽어내려 갔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허나, 그러한 표정은 채 10초를 가지 못했다.

    깊게 파이는 골, 잔잔히 떨리는 눈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건...”

    “대체 뭔 정보기에 그러세요?”

    레피아를 포함한 사람들이 아린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자료를 읽어내려 가는 그들의 턱이 서서히 벌어진다.

    이내 모두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이강호를 바라보자, 이강호는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했다.

    “거기에 적혀있는 던전들을 클리어하면 상당히 많이 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오래 살아남은 베테랑이고 자시고 귀여운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뜨아...”

    * * *

    “오늘은 기분 좀 내볼까?”

    레피아의 갑작스러운 제안.

    “괜찮은 생각이네요. 간단히 고기파티나 하죠.”

    이에 사람들은 무사 귀환한 유세현 일행을 위해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울 불판을 만들고.

    유세현 일행은 도와주려 했지만, 레피아가 한사코 나서서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어허! 거기에 앉아나 있어!”

    아이템과 정보를 준 귀빈에게 이런 누추한 일 따위를 시킬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완벽한 엎드려 절 받기.

    이윽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치이익-

    고기를 불판에 올리자 기분 좋은 소리와 맛있는 냄새가 주위로 확산된다.

    요리사 컨셉을 잡은 것인지 레피아가 정중히 인사를 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특급 요리사 레피아 레벤 입니다. 오늘 하루 제가 특별히 여러분들께 극상의 고기요리를 선사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주위에서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온다.

    유세현은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 아니 정말 캠핑이라도 온 즐거운 기분이다.

    “잘 봐! 이런 서비스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거 아니니까!”

    호응 덕에 흥이 오른 레피아가 잘 익은 고기를 상공을 향해 던졌다.

    번뜩 빛나는 그녀의 눈빛.

    촤자자작-

    섬광처럼 팔을 움직인 그녀가 멋지게 검집에 단검을 꽂아 넣자 균일하게 잘린 고기들이 나무접시위로 떨어졌다.

    담긴 고기는 마치 잘 옮겨 담은 것 마냥 정말 정갈히 나열되어있었다.

    다시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

    “후후후.”

    레피아는 기분이 더욱 좋아져 더 실력을 뽐냈고, 유세현은 그녀가 구운 고기를 맛있게 주워 먹으며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오~ 그럼 이제 태광형님과 리체씨는 연인 사이인건가요?”

    “예. 리체씨가 허락했을 때 태광오빠 얼마나 웃겼는지 아세요? 저 덩치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이한별의 말에 상상해버린 유세현이 어깨를 들썩였다.

    “무척 볼만했겠네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죠.”

    이한별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둘.

    그들의 곁으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김주희와 이용석은 혹시 몰라서.

    루시아는 김주희를 따라서.

    아린은 따로 할 말이 있어서였는데 루시아와 김주희의 대화를 들은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했다.

    “고기 더 먹을래?”

    “아, 아니. 많이 먹었어.”

    살짝 어색할지언정 루시아가 반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동료에게 반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아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맴돈다.

    ‘드디어 의지할 친구가 생긴 게로구나.’

    아린은 그녀를 손녀처럼 생각했다.

    주인에게 배신당한 반려동물처럼, 더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에게 다가서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안쓰러워보였었다.

    조언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정말 안타까웠는데...

    아린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루시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후, 조촐하게 하고 끝낼 생각이었던 파티는 생각보다 길게이어져, 사람들은 깊은 새벽이 되서야 잠들 수 있었다.

    * * *

    이틀을 편히 쉬었다.

    “오빠! 밥 다 됐어! 와서 먹어!”

    유혜인의 부름을 받은 유세현은 오두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오늘 아침은 스튜였다.

    적당량을 던 뒤 대충 아무데나 자리 잡고 먹기 시작하자, 루시아와 김주희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한 입 먹은 루시아가 극찬했다.

    “동생분 솜씨가 무척 좋네요. 맛있어요.”

    “그러게요. 이런 솜씨를 지니고 있는 애가 아닌데...혜인아 혹시 판도라표 MSG라도 발견했냐?”

    “오빠, 스튜로 샤워해봤어?”

    잔뜩 정색한 표정.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유세현이 숟가락질에 박차를 가했다.

    순식간에 동이 나는 스튜.

    스튜를 다 먹은 그는 그대로 땅에 털썩 드러누웠다.

    구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위로 쏟아진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평화로움이었다.

    이 시간이 계속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심코 그렇게 생각한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이래서 2년으로 정해 놓은 거구나.’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내일이면 다시 여행에 나설 시간이었다.

    목적지는 제 6유적의 배경이 되는 땅.

    통칭, [가이드]

    그곳에서 끊긴 왼쪽 팔을 복구할 것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유세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법운용을 할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 충분히 쉬었으니 수련을 하며 마음도 다잡고, 감각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오르엠과 대천사들을 제외하고도 아직 강한 적은 많다.’

    이번에 유세현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신도 거신이지만, 그들과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 알테라그와 타르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거신을 얻었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6유적에도 이와 동급의 적은 분명 존재할 터였다.

    시나리오 진행을 위한 아이템도 얻어가면서 진행해 나갈 것이니 재수 없으면 만나게 될 수 도 있으리라.

    그때 믿을 수 있는 건?

    실력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된다.

    그는 곧 무아지경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 * *

    출발준비를 마친 유세현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자 유혜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또 떠나다니.

    그녀는 막고 싶었다. 혹은 함께 가고 싶었다. 그러면 걱정은 덜 될 테니까.

    허나, 그것은 욕심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확연히 벌어진 스텟.

    발목만 잡을 것이 분명하다.

    “갔다 올게 혜인아.”

    “...여기 벗어나기 전까진 꼭 와. 강해져 있을 테니까.”

    “그래. 언더월드는 많이 위험한 곳이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

    “알았어.”

    유세현은 다른 사람들과도 간단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잘 가게.”

    “몸 조십하십쇼 영감님.”

    그가 아린과 악수를 하려던 때였다.

    쿠구구구궁!

    난데없이 대지가 흔들리며 강풍이 몰아쳤다.

    떨어지는 낙뢰.

    빛이 번쩍이자 유세현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에 당황이 서렸다.

    갑자기 이상 현상이라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큭! 날아간다! 나무를 붙잡아!”

    지역 사람들은 행여나 이곳이 붕괴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지금 이곳에서 유일하게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오직 이강호 뿐이었다. 그만큼은 지금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적이 3개 클리어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임팩트 붐.

    콰아앙!

    낙뢰가 한 번 더 떨어지더니 그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포탈이 들어섰다.

    일제히 개방되는 포탈.

    포탈 속에는 각기 다른,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빙하로 꽉 들어찬 지역도 있었고, 빌딩이 빼곡히 놓여있는 지역도 있었다.

    자연스레 집중되는 이목.

    쩌적-

    포탈 하나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빠른 속도로 커져나가더니 이내 포탈 전체를 잠식했다.

    트드득! 트득!

    동시에 부서져 내리는 포탈속세계. 도주하는 생명체들이 포착된다.

    “아...”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했다.

    저 포탈속의 세계는 판도라의 다른 지역이라는 것을.

    다른 포탈들도 하나씩 자취를 감추자 이내 떨림은 멎었다.

    이강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왕과 드래곤이 파편을 손에 넣었군.”

    * * *

    쾅!

    임팩트 붐을 확인한 오르엠은 끓어오르는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벽을 후려쳤다.

    마왕과 드래곤이 파편조각을 손에 넣었다.

    본래라면 자신도 파편조각을 지니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인간.

    인간만 없었더라도 승리한 싸움이었는데...아니, 인간과는 상관없이 루시펠과 가브리엘만 온전히 사용 가능했더라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기를 나눠준 루시펠의 배신.

    가브리엘에게 새겨진 루시뷀트의 각인이 뼈아프다.

    거기에 이젠 우리엘도 죽고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잃어서는 안 됐었는데...’

    오르엠은 미카엘에게 물었다.

    “루시펠은?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나?”

    벌써 오늘만 세 번째 같은 질문, 조급해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직 입니다. 가브리엘이 다시 추격을 개시했으나 장소가 장소인지라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 인간 쪽은?”

    “뭉쳐있는 곳은 두 세군데 알아냈으나...놈들의 흔적은 아쉽게도...”

    “으으!!”

    쿠구구궁!

    발산된 오르엠의 신성력이 주위사물을 뒤엎었다. 주먹을 꽉 쥔 오르엠이 권좌에서 일어섰다.

    그는 이렇게 있어서는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편조각을 얻은 마왕과 드래곤은 더더욱 유적공략에 박차를 가할 테니까.

    본래는 파편을 강탈해간 인간을 쳐 죽인 뒤 움직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미카엘. 루시펠이 사라진 장소, 그곳이 분명하겠지?”

    “예.”

    “좋아, 가자. 파편을 빼돌린 인간 추적은 라파엘, 너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명, 받들겠습니다.”

    라파엘이 고개 숙여 답하자 오르엠이 곧바로 날아올랐다.

    * * *

    이강호에게 마땅한 내용설명을 듣지 못했을 때, 유세현은 살짝 궁금했었다.

    왜, 제 6유적의 배경이 되는 장소의 명칭이 하필이면 [가이드]인지.

    “오랜만에 뵙는군요. 인간 여러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경계를 건너 지역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들어본 법 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일행을 반겼다.

    유세현은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인간 남성.

    겉으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외모였다.

    허나,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보고 인간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러게요 또 만날 줄은 몰랐네요. 도우미씨.”

    그렇다.

    지금 유세현의 앞에 서있는 자는 튜토리얼에서 생존자들을 안내해주던 바로 그 도우미였다.

    도우미가 답한다.

    “저는 당신이 이곳에 다다르리라는 것은 예상했었습니다.”

    “그런가요?”

    유세현은 별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도우미가 적도 아군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후 도우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역할에 맞게 설명을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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