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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48화 (348/612)
  • 정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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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드득-

    무수히 많은 아이템이 우르르 쏟아진다.

    “그럼 잘 부탁한다.”

    “어야.”

    이강호는 분류작업에서 빠졌다.

    유적의 클리어로 인해 언더월드가 그가 잘 알고 있는 장소로 변화했으니, 지리 및 던전의 위치 등등 여러 가지를 정리하여 동료들에게 넘겨주기 위함이었다.

    “갑옷류는 저쪽으로.”

    “예, 선배.”

    기억의 던전에서 이미 한 번 걸러놨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한 편에 다소곳이 모아놓은 아이템을 응시한 유세현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힌다.

    저 아이템들은 유세현이 유혜인을 위해 특별하게 빼놓은 아이템이었다.

    과연 유혜인이 이 아이템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빨리 와라.’

    유세현은 그날 밤 정말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 *

    저벅. 저벅. 저벅.

    무수히 많은 발소리가 울창한 숲속을 울렸다.

    레피아의 원정대가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레피아씨다! 그녀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있는 힘껏 환호성을 지르며 귀환을 반겨주었다.

    어떤 이는 손을 미친 듯이 흔들었고, 어떤 이는 특별한 버프가 들어가는 나팔을 불기도 했다.

    이강호가 사라진 이후 그녀가 사람들을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보여주는 대목.

    허나, 정작 당사자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피곤해. 자고 싶다.”

    레피아가 퀭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상태는 딱 봐도 좋지 않았는데, 던전 공략 이후 재수 없게 발생한 이종족과의 격돌 때문이었다.

    빨리 대처를 해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놈들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여러 가지로 힘을 많이 소비한 것.

    “레피아씨, 저는 폐하께 보고한 뒤 갈게요.”

    “어, 그래.”

    원정대가 해체되기 무섭게 이벨린과 아린을 제외한 레피아의 팀은 숙소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이젠 완전히 팀에 합류한 이태광의 팀도 함께했다.

    긴장이 풀린 리체가 꾸벅꾸벅 졸며 비틀거리자, 그녀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이태광이 몸을 낚아채 안아들었다.

    리체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다, 당장 내려주세요!”

    “에이 왜 그래? 피곤하잖아? 그냥 가만히 있어.”

    “아, 아니 그래도...”

    창피해하며 허둥지둥 빠져나가려는 리체와 안 놔주려는 이태광.

    그런 두 사람을 응시한 레피아는 언제 졸았냐는 듯 눈이 댕그래져 몸서리를 쳤다.

    “으~빌어먹을 커플...”

    유혜인은 킥킥 웃었고, 이용석은 쓰윽 이한별을 살폈다.

    그녀를 좋아하는 그도 같은걸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따라하면 죽을 줄 알아.”

    “옙, 누님.”

    이용석은 시무룩해져 고개를 떨궜다.

    현재 이태광과 리체는 연인사이.

    허나, 이용석과 이한별은 연인사이가 아니었다. 마음을 밝혔지만 차였다.

    100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이태광이 성공한 것을 본받아 지금도 열심히 구애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한별은 이용석을 동생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눈치였다.

    숙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떠날 때와 똑같이 굳게 닫혀 있는 문.

    유혜인의 눈썹이 축 처졌다.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원정을 나설 때마다 기대를 품는다.

    갔다 돌아오면 유세현이 돌아와 있지 않을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 말이다.

    허나, 이번에도 꽝인 모양.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였다.

    끼이익-

    숙소의 나무문이 자동적으로 열렸다.

    나무문을 열고나온 이를 본 유혜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시무룩해하던 이용석의 눈도, 리체를 안고 있던 이태광의 눈도 지금만큼은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장소에 있던 모두가 외쳤다.

    “유세현!”

    * * *

    “오빠!”

    한걸음에 달려온 유혜인이 유세현의 품에 안겼다. 유세현도 꽉 안아주었다.

    현대였다면 놀림을 받았을 무척 남사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이곳은 판도라, 사람들은 훈훈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봤다.

    “정보 얻으러 가는 거라며!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미안. 중간에 일이 생겨서.”

    그래, 이게 바로 가족.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혜인이 대뜸 주먹을 꽉 쥐었다.

    쉬이익-

    마력이 실린다.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 했다.

    ‘정말로 치겠어?’

    허나, 언제나 설마는 현실이 된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퍼엉!!

    유세현의 복부를 정확히 가격하는 주먹.

    그들이 보기에 죽을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플만한 무척 매운 주먹이었다.

    “이, 이게?”

    이에 대응하여 딱밤을 선사해주려던 유세현의 손이 별안간 멈춰 섰다.

    유혜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힘이 실리지 않은 손으로 유세현의 가슴을 투닥투닥 쳤다.

    “잘못된 줄 알았다고...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유세현은 그제야 유혜인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깨달았다.

    과거 유세현도 이런 마음이었다.

    “...미안하다.”

    “알았으면 됐어.”

    유혜인이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어느새 밖으로 나와 지켜보고 있던 이강호가 차분히 한마디 덧붙였다.

    “암. 유세현은 맞아도 싸지.”

    유세현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강호를 쳐다봤다.

    이렇게 오래 걸린 게 대체 누구 때문인데.

    “야 이 자식아...”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이강호가 웃어 넘겼다.

    레피아와 주위 사람들은 놀란 표정이 되어 그를 응시했다.

    농담에 웃기까지, 그가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음으로.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일행은 이윽고 내부로 들어갔다. 당연히 제일먼저 눈에 띈 것은 잘 정렬 되어있는 아이템이었다.

    레피아가 감탄사를 날렸다.

    “와우~ 아주 박박 긁어모았는데? 어디 거대 던전이라도 턴 거야?”

    허나,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냥을 하며 이 이상의 많은 아이템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건 질.

    좋은 양질의 물품이 이렇게나 많을 리가 없으니, 그들은 당연히 적당히 쓸 만한 아이템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허나.

    “이, 이게 대체 뭐야?”

    대충 아무 아이템이나 하나 짚어 정보를 확인한 레피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다급히 다른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흔들림이 더욱 격렬해지고 입이 떡 벌어진다.

    “뭐,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등급은?”

    “왜 그래 언니?”

    검은꽃들도 다가가 아이템을 살폈다.

    반응은 당연히 똑같았다.

    “미, 미친...레전더리 C랭크?”

    “B...B랭크도 있어.”

    “이건 유니크 SSS랭크야...”

    “뭐?”

    이윽고 유세현 일행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아이템을 향해 뛰어갔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탄사.

    그들이 현재 보고 있는 아이템은 하나같이 던전의 최종 보상으로나 나올법한 아이템, 아니 그 이상이다.

    “대...대체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가져다 써라.”

    “저...정말?”

    레피아가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이강호가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선물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었나. 선물이다.”

    “크으으!! 역시 넌 최고야!”

    레피아가 순식간에 몸을 날려 이강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강호가 살짝 밀어내려하자.

    “아~ 시영이도 없는데 뭐 어때!”

    레피아는 기어코 이강호의 볼 한쪽에 뽀뽀를 하고 나서야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나머지 분들도 보고 사용하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다 쓰시기 바랍니다.”

    이강호가 선언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움직였다.

    허나, 유혜인 만큼은 제자리에 서서 유세현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좋은 아이템을 이 정도로 많이 구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위험을 수도 없이 지나쳐왔다는 뜻이었기에.

    “오빠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온 거야?”

    유세현은 방긋 웃으며, 준비해두었던 아이템을 내밀었다.

    멍한 얼굴이 되어 받아드는 유혜인.

    “이건...”

    “선물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

    유혜인은 아이템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장비의 정보를 살폈다.

    입술이 딸싹인다.

    “오, 오빠...어떻게 이런 걸...”

    그녀가 놀라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자, 쏜살같이 달려온 레피아가 유세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흐흐, 뭐야? 혜인이 선물이야? 어디 한 번 봐볼까?”

    그녀는 우선 뭔가 있어 보이는 갑주의 정보부터 읽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는 떨리다 못해, 뻣뻣하게 굳었다.

    아이템명: 찬란한 십자성의 갑주

    등급: 에픽 [S Rank]

    상세정보: 대천사 우리엘의 갑주입니다. 순수 아다만티움으로 제작되어 뛰어난 물리, 마법저항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대한 신성력이 깃들어져 있었으나 모두 소진된 상태입니다. 신성력 또는 다른 마력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6티어 신성방어마법, 천상의 가호가 항시 작동합니다. 신성력 사용자가 아닐시 효과가 제한됩니다.

    착용자의 정신을 보다 맑게 유지시켜 줍니다.

    정신계 스킬의 효과를 완화시켜줍니다.

    복구술식이 각인되어 있어 일정수준의 파손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수복됩니다. 마력을 이용해 긴급복구도 가능합니다.

    착용자의 체형에 맞게 갑옷의 형태가 변화됩니다.

    제작시 금속내로 스며든 신성력에 의해 어둠의 마력 혹은 그와 흡사한 힘을 지닌 존재는 착용할 수 없습니다.

    에픽. 거기에 S랭크.

    그녀로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물건이었다.

    마력저장능력에 자동 보호마법까지 옵션이 하나 같이 장난 아니다.

    허나, 지금 그녀가 놀란 이유는 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이템의 상세정보, 제일 첫줄에 적혀있는 글귀.

    ‘우리엘의 갑주라고?’

    에픽은 오리지널임을 뜻한다.

    그리고 그 말은...

    “서, 설마! 대천사를 죽인거야?”

    레피아의 외침에 인원들의 이목이 유세현 일행에게 단번에 집중되었다.

    이강호는 씨익 웃었다.

    대천사 우리엘. 그리고 티탄족의 왕 케르트란.

    놈들을 죽인 것은 신물조각의 획득을 제외하고는 이번 전투 최대의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

    “운이 좋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이템을 다 고른 후 해주겠다.”

    “어...”

    레피아가 반쯤 멍한 표정으로 다른 아이템의 정보도 살폈다.

    갑주정도는 아니지만 검부터 시작하여 요대, 팔목보호대, 각반 등등 하나같이 전부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별안간 유혜인의 어깨를 꽉 붙잡는 레피아.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이었던지라 유혜인은 정말 놀란 표정이 되었다.

    “혜인아 너어...”

    “어, 언니? 갑자기 왜 이...”

    “진짜 부럽다.”

    “응?”

    “진짜 부럽다고. 이런 친오빠가 세상에 어디에 있냐? 와~진짜. 내가 여동생이 아닌 게 한탄스럽네 한탄스러워. 유세현! 나도 너 여동생 하면 안 되냐?”

    “...저보다 나이 많으시잖아요.”

    “원래 능력 좋으면 다 오빠야.”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쳇!”

    단호한 유세현의 태도에 지긋이 혀를 찬 레피아.

    그녀는 투덜거리며 아이템이 널려있는 장소로 되돌아갔다.

    유세현은 그 모습에 실소를 내뱉고는 유혜인을 향해 물었다.

    “어때 괜찮지?”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잖아 오빠...정말 받아도 되는 거야?”

    유세현이 넘긴 아이템은 그만큼 최고급이었다.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

    허나.

    “물론.”

    이미 동료들과는 합의가 된 상태였다. 그 누구도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강호와 김주희는 속성에 맞는 아이템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었고, 루시아와 아퀼라는 지니고 있는 특유의 마력 때문에 천사의 장비는 착용이 불가능했다.

    유세현은 이태광에게도 따로 챙겨놓은 레전더리 B랭크, 바스타드 소드를 선물로 주었다.

    제자리에서 몇 번 휘둘러 본 이태광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오! 이거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거야 동생?”

    “예.”

    “그럼 잘 쓰도록 할게.”

    이후에는 아린과 이벨린, 남궁시영까지 합류했다.

    그렇게 대략적인 분배가 끝이 나고.

    한곳에 동료들이 다소곳이 모이자 마침내 이강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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