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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47화 (347/612)
  • 정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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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눈을 번쩍 뜬 김주희가 밀려온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부서진 심장부터 시작하여 팔, 다리.

    몸 상태가 가히 말이 아니다.

    가슴은 불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고, 뼈마디는 전부 으스러진 것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은은하게 울린다.

    “어, 깼냐?”

    “아...선배.”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버틸 만 해?”

    “아, 예...괜찮아요.”

    그렇게 대답한 김주희는 욱신거리는 통증과는 별개로 가슴이 아려오는 느꼈다.

    이번 일에 대해 유세현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자칫 루시아를 죽일 뻔 했으니...

    ‘분명 욕먹겠지?’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몇 번을 욕먹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유세현에게 만큼은 욕먹고 싶지 않았다.

    좋은 소리만 듣고 싶다.

    “저...선배. 이번일은...”

    “아, 이야기는 루시아씨에게 대충 들었어. 고생했다.”

    허나, 돌아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었다.

    처음에는 환자라서 그런가 했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유세현은 불가침영역으로 복귀하는 내내에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결국 김주희는 마음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다짐을 했다.

    유세현에게 업혀있던 김주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선배님. 그...던전에서 있었던 일 있잖아요.”

    “응? 뭐?”

    “음...그러니까 제가 실수로 함정 발동시킨 거요.”

    “응. 그런데?”

    “아니...그게...”

    우물쭈물하던 김주희는 용기를 냈다.

    “그...화 안내세요?”

    “응?”

    유세현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한순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그는 말뜻을 알아채기 무섭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김주희는 불안감이 잔뜩 치솟았다.

    그녀로서는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이내, 손을 들어 올린 유세현이 김주희에게 딱밤을 날렸다.

    “아얏!”

    아프지는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유세현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야, 네가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왜 굳이 화를 내냐?”

    “......”

    비로소 깨달은 김주희의 표정이 한순간 멍하게 바뀌었다.

    왜 이걸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이 쉬운 것을!

    그녀는 좀처럼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이란 본디 이러한 생명체였다.

    전체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막상 자신이 관여되게 되면 대개 가까운 것밖에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좋아하는 사람과 엮여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김주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그녀는 굉장히 쪽팔렸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에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본심을 알았으니...’

    그녀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심호흡을 했다.

    * * *

    쿠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며 아그니의 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유세현이 이 장소에 도착한지 3일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포탈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이강호가 걸어 나왔다. 유세현은 이강호가 해냈음을 단번에 깨달았다.

    이전 개방된 그의 마력이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면, 지금은 그것을 뛰어넘어 뭔가 복잡 미묘한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세현이 다가가며 오른손을 어깨위로 들었다, 이강호도 마찬가지로 손을 올렸다.

    “해냈나 보네.”

    “물론.”

    짝-

    경쾌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둘.

    이강호가 얻은 특수특성은 염화(炎火)라는 특성이었다.

    권능이 이제 막 개화된 참이라 정확한 효과를 알 수는 없었지만, 화염계열 스킬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패널티는? 패널티는 없어?”

    “있어.”

    유세현이 신성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과 같이, 이강호에게도 역시나 패널티가 주어졌다.

    화염의 극상성은 물.

    물이나 빙결계열 스킬의 사용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할만은 했냐?”

    “어휴, 말도 마라. 지금 내 꼴 안 보이냐? 죽을 뻔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장비도 창하고 네가 빌려준 신발 빼고는 다 부서졌어.”

    그 말에 유세현은 깜짝 놀랐다.

    이강호가 착용하고 있었던 장비는 전부 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구하기 힘든 유니크 SSS랭크짜리도 있었으며, 유세현이 아직도 착용하고 있는 루크루프의 갑주와 같은 레전더리 C랭크도, 더 나아가 B랭크짜리도 있었다.

    복원기능이 붙어 있어 산산조각만 나지 않으면 수복이 가능한 아이템들인데...

    “정말? 아공간 포켓에 넣은 게 아니고?”

    “그럴 여유는 없었어.”

    “흐음...그 정도였단 말이지?”

    “응, 정말 심각했다.”

    이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특수특성을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그 또한 아이템을 잃은 것은 무척 아쉽기 짝이 없었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붙어있는 화염에 관한 옵션들은 정말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

    “그럼 임시로라도 다른 아이템을 걸쳐야겠네?”

    “그렇지 뭐.”

    “난 되려 아이템을 얻었었는데...”

    유세현이 일부러 보란 듯이 루베르크가 담겨져 있는 검집을 툭툭 쳤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살짝 찡그린 것이 꽤나 얄미운 표정이었는데, 이강호는 유세현이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항전에 나섰다.

    “야 이 자식아! 넌 사기 쳐서 얻은 거잖아!”

    “그게 왜 사기야? 머리를 쓴 거리 머리를. 정당한 계약이었거든?”

    티격태격하는 둘.

    루시아는 그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유세현과 이강호가 장난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유세현이 장난이란 걸 모르는 사람인 줄만 알았었다.

    루시아는 친구가 된 김주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주희야. 뭐 좀 물어 봐도 돼?”

    “응? 뭐?”

    “저...사기 쳤다는 게 뭐야?”

    오랜만에 하는 대화라,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으며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처음보다는 훨씬 났다는 것.

    “아, 그게 있잖아 예전에 튜토리얼에서...”

    둘의 대화를 들은 이강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야, 세현아, 저 둘 대체 언제 말 놓은 거냐?”

    꽤나 놀란 눈치였다. 하기야 유세현도 처음 들었을 때는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던전에서 놨대. 참고로 동갑이란다.”

    “동갑?”

    “응.”

    “흐음, 그렇군...그런데 뭔 일 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니면 그냥?”

    “글쎄? 어떻게 해서 말을 놓게 된 건지 그 경위는 모르겠는데 일이 발생하기는 했었어.”

    “뭔데?”

    유세현이 짤막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많이 위험했네.”

    “엄청 위험했지.”

    “수확은 있었어?”

    “물론.”

    유세현은 얻은 전리품을 보여주었다. 마비독에 관한 스크롤로, 등급은 무려 레전더리 C랭크.

    효과는 독 저항력 SS랭크 10% 이하의 적을 30분 동안 마비시키는 것이었는데, 저항력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지속되는 시간은 짧아지지만 그럼에도 썩 나쁜 아이템은 아니었다.

    즉발효과인 데다가, 독 저항력이 높은 이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

    비록 오르엠 같은 놈에게는 통하진 않지만, 시나리오를 진행 하거나 할 때 변수로서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목숨이 걸렸던 거 치고는 싼 보상이네.”

    “그렇긴 하지.”

    그때였다.

    김주희가 끼어들었다.

    “선배님! 그것 말고도 또 얻은 게 있긴 있어요!”

    “뭐? 또? 너 저게 전부라고 하지 않았어?”

    유세현이 의문을 보이자, 김주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아이템은 제가 드린 그게 전부 맞아요. 제가 얻은 건 아이템 종류가 아니에요.”

    “응? 그게 뭔...”

    “히~ 이건 다 모여 있을 때 밝히고 싶었어요.”

    그녀가 이내 박수를 짝 쳤다.

    “저, 고유특성 개화했어요!”

    * * *

    고유특성은 개화하기 전 그 어떠한 전조현상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갑작스럽게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특성명, 부조화.

    “정말 괜찮겠어? 괜히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주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보여드릴게요.”

    김주희가 시험 삼아 아주 간단하게 빙공을 선보였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넘실넘실 춤을 추는 물과 얼음결정.

    쾅!

    위력을 확인한 이강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절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물과 냉기가 한곳에 존재한다.

    물이 빙공이었으며, 빙공이 물이었다.

    자유로우면서도 유연할 뿐만 아니라, 서로 섞이지 않은 두 물질이 시너지를 일으켜 위력이 보다 더 상승했다.

    이강호의 고유특성이 순수한 위력 증폭이라면, 김주희의 고유특성은 위력증폭과 컨트롤을 섞어 놓은 것이었다.

    능숙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활용가치는 무궁무진.

    고유특성이 성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이 개화될 줄이야.

    “후우...후우...”

    “대단한 능력이네.”

    “호호, 정말요?”

    “응.”

    유세현이 칭찬하자, 김주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미모, 몸매, 창술 실력 등등 지금까지 누구에게서 들은, 그 어떤 칭찬보다도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칭찬이었다.

    심장이 완전히 수복되지 않아 아픈 건 별 대수가 아니다.

    [부조화]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 능력.

    특성명이 여러 번 거론 되자 김주희의 입이 대뜸 뾰루퉁하게 튀어나온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선배님 능력은 진짜 엄청 최고로 마음에 들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특성명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부조화라니...뭔가 좀 그래 보이지 않나요?”

    유세현은 그냥 웃어버렸다.

    능력은 좋아하지만 명칭은 싫어하는 것까지.

    일행은 이 특성이야 말로 그녀에게 정말 딱 들어맞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 * *

    타다닥-

    경쾌하게 달리고 있는 일행의 눈앞으로 거대한 화산이 자리 잡았다.

    마침내 거점지로 돌아온 것이다.

    이강호의 특수특성을 얻기 위해 떠났었던 여정.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지만, 얻은 것은 훨씬 많았다.

    다가가자 초소 사람들이 일행을 검문했다.

    천사들이 보복하겠다고 들이닥쳐 초토화 되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이 됐었는데, 이번 전투로 치명적인 전력손실을 입은 천족은 예상처럼 보복을 가해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그들을 맞이한다.

    마을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장터로 보이는 장소에서는 아이템과 식량을 물물교환하고 있었고, 또 다른 장소에서는 사냥을 나갈 원정대가 꾸려지고 있었다.

    이전처럼 마석으로 물품을 사고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장소에서 나가야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강호가 의도한 대로 스스로가 강해지는 데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곧바로 동료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원정을 나간 상태였다.

    “쩝...”

    유세현이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이곳에서 딱 일주일만 머문 뒤 다시 출발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면,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긴 있었으나, 그래도 동생이 잘 지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 오빠로서의 심정.

    그런 그에게 희망은 선사한 건 황제의 거처에 다녀온 이강호였다.

    “걱정마라. 2~3일 뒤면 돌아올 것 같으니까.”

    “어? 정말?”

    “응, 복귀하고 있다네.”

    “오!”

    포켓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유세현의 얼굴에 생기가 감돈다.

    그들은 지금부터 얻은 아이템의 상세 분류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유세현은 기분 좋게 포켓하나를 까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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