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43화 (343/612)
  • < 두 여인(1) >

    휘이익-

    탁!

    바람을 가르며 낙하한 유세현의 육신이 지면에 사뿐히 착지했다. 티탄들은 그런 그에게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번 전쟁의 최대의 공로자는 다름 아닌 그였다.

    그가 없었다면 거신을 탈취할 수 없었을 것이고 패배한 것은 티탄이 되었을 터였다.

    “우리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유세현. 이번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종족 전체가 그대에게 도움을 받았군.”

    알테라그가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유세현이 반쯤 영혼이 이탈한 표정 그대로 반응을 하지 않자, 알테라그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유세현은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니...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뭘 좀 생각하고 있었다.”

    “흠, 그런가...”

    알테라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유세현이 악수를 받아주자 티탄들이 벅차오르는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이번 전쟁은 종족의 운명을 건 대전쟁.

    그들에게 지금 이 광경은 역사의 기록될 한 장면이었다.

    알테라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딱 그때였다.

    부서진 잔재의 끝에서 이강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선배님!”

    쫄래쫄래 뛰어가 반갑게 맞아주는 김주희.

    유세현은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이내 그것을 뒤로하고 손을 들어 올려 이강호를 맞이해 주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실종된 이강호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야! 방금 전에 일으킨 불꽃, 네가 한거 맞지? 대체 어떻게 됐었던 거야?”

    “아, 그게...”

    잠시 재회를 나누는 일행들.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던 알테라그를 향해 타르탄이 눈치를 보내자, 그가 어쩔 수 없이 살며시 운을 뗐다.

    “유세현. 그대는 이곳에 더 머무를 생각인가?”

    유세현은 알테라그가 이만 떠나려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보다 편한 여행을 위해 약속을 빌미로 붙잡아 둘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고대병기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얼버무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유세현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다.

    “그렇다. 넌 바로 떠날 생각인가?”

    “밀린 업무가 많아서 말이지...언젠가 내 성에 다시 한 번 들러라.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최고의 만찬을 대접해주지.”

    “흠...기회가 있다면...”

    물론 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터였다.

    존재하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니까.

    만약 그들의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유세현보다 행복한 자들이었다.

    적어도 계속 싸우지는 않아도 되니까. 앞으로는 한동안 평화로울 테니까.

    쿵쿵!

    이내 떠나가는 알테라그와 병사들.

    스토르 벤이 그 뒤를 따른다.

    티탄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다시 적이 되는 것이니 보다 더 안전하게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개를 돌린 스토크의 시선과 유세현의 시선이 교차한다.

    스토크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는데, 그 끝내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들은 불과 1분 만에 멀어져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유세현의 표정이 돌변한다.

    지금까지 기쁨의 재회를 나눴다면 이제는 현실과 마주할 때였다.

    착잡함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얼굴이었다.

    신물파편을 자신이 얻은 것을 말하면 이강호가 어떻게 반응할까?‘끄응.’

    이것만큼은 유세현도 예측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희생을 딛고 회귀한 이강호의 최종 목적은 본인이 신물파편을 다 모으는 것이었으니까.

    죽이지 않는 이상 신물파편은 이동이 되지 않기에 엄밀히 분류하자면 이제 유세현은 이강호의 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세현은 심란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깜짝 놀라 화등잔만해지는 김주희의 눈.

    아퀼라도 적지 않은 동요를 보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아직 단일 승리인 것을 모르는 루시아 뿐.

    후우웅-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정적이 흐른다.

    이강호의 눈은 묵묵히 유세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세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던 이렇게 되었다.

    유세현은 이강호가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줄 용의도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자신도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이강호가 정말 그런 부탁을 한다면 무척 슬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제 더는 죽고 싶지도 않다.

    루시아와 김주희가 유난히 눈에 걸린다. 동생, 유혜인의 얼굴도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그는 어떻게 답할까?

    기다리고 있는데 이강호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유세현은 어이가 없어졌다.

    “야 이 자식아 뭐가 웃겨? 나 지금 심각한거 안 보이냐?”

    “크크크크, 그러니까 웃긴 거지. 왜 이렇게 심각해? 설마 내가 죽어달라면 진짜 죽어주기라도 하려고?”

    “......”

    유세현의 안색이 더욱 굳자, 이강호는 하던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세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인상 펴 짜샤. 굳이 죽지 않아도 양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뭐? 방법이 있다고? 정말로?”

    “응.”

    “너...나 괜히 안심시키려고 하는 소리 아니냐?”

    “아니, 그런 거 아냐. 진짜로 가능해.”

    “......”

    유세현은 그래도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양도할 수 있는데?”

    “나중에 알려줄게. 6개의 유적이 전부 클리어 된 이후에나 가능하거든.”

    “아...그래? 대충 귀띰이나 해...”

    “나중에. 그보다 일단은 이동하자. 언제 이세계가 뒤집힐지 몰라.”

    이강호가 화신의 신전이 위치해 있는 북서쪽을 향해 잽싸게 몸을 틀었다.

    왠지 모를 다급함이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김주희가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방도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선배님.”

    “......”

    “선배님?”

    “아, 아니야. 우리도 얼른 따라가자.”

    유세현이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차분한 눈동자가 이강호의 등을 응시한다.

    살짝 터져 나오는 쓴웃음.

    김주희는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지금까지 이강호는 말을 안했으면 안했지, 나중으로 미룬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연 이강호의 말은 과연 진실이까? 아니면...

    이 시간 이후로 유세현은 이강호가 직접 말을 꺼내기 전까진 신물파편의 양도방법 대해 묻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 * *

    쿠구구구궁!

    지축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유세현 일행이 화신의 신전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선배님 이건!”

    뒤집히는 땅과 요동치는 대기.

    갈라진 틈새에서 새롭게 불쑥 솟아오른 지면이 산을 이룬다. 어디선가 날아온 무수히 많은 괴식물들이 땅에 자리를 잡으며 주위를 장악했다.

    일행은 재빠른 몸놀림을 보이며 이 장애물들을 전부 회피했다. 보통의 생존자였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언더월드는 보통의 생존자들이 쏘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윽고 점점 수그러드는 폭풍.

    그들의 주위환경은 어느새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철렁!

    파도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지금 이곳은 이강호가 무척 잘 알고 있는 회귀전의 언더월드였다.

    알테라그가 이 장소를 빠져나가며 마침내 대격변을 이룬 것!

    일행은 약간을 더 걸어 불가침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강호가 신전의 입구에 서자, 거대한 문이 위용을 자랑하며 활짝 열렸다.

    다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면 참 좋겠지만...안타깝게도 진입이 허락되는 건 이강호 뿐.

    이강호는 얼마나 기다려야 될지 모르는 동료들에게 정보를 주었다.

    “그 던전에 들어가면 부족한 속성 저항력을 꽤 많이 채울 수 있을 거야.”

    “흐음...그렇단 말이지? 오케이. 그럼 먼저 끝난 사람이 이 앞에서 기다리는 걸로 하자.”

    “좋아.”

    이강호가 몸을 돌렸다.

    그가 들어가기 무섭게 서서히 닫히는 문.

    완전히 닫히기 전 유세현이 일부러 익살스런 어조로 외쳤다.

    “야! 이강호! 이 시련 못 이겨내면 완전 개쪽인거 알지? 평생 놀릴 거니까 알아서 잘해라!”

    틈 사이로 고개를 돌린 이강호의 옅은 미소가 보인다.

    이강호는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벽 너머로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 * *

    푸욱-

    유세현이 검이 독안개로 이루어진 몬스터를 갈랐다.

    던전의 탐사를 시작한지도 벌써 3일째.

    “이쯤에서 자고 출발하자.”

    유세현의 말에 아퀼라와 김주희, 루시아의 눈이 번뜩 빛났다.

    이내 무리지어 음습한 곳으로 향하는 세 명.

    유세현은 화장실을 가려는 것이니 생각하고 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세현의 시야에서 벗어난 세 명이 긴장어린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에서는 사뭇 비장함까지 감돌았다.

    과연 뭘 하려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그들은 뒤돌아서 등을 맞대고 선뒤 머리위로 팔을 들어올렸다.

    김주희가 마침내 힘껏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우습게도 그들이 한 것은 정말 단순한 게임이었다.

    물론,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했지만 말이다.

    “윽!”

    짧은 비명을 내뱉은 이는 가위를 낸 아퀼라였다.

    똑같은 것을 낸 루시아는 손을 부르르 떨고 있는 상태.

    얼굴에 꽃이 핀 사람은 김주희 밖에 없었다.

    “호호호,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또 이겼네요.”

    “으으으! 너 따위에게 연속으로 패배하다니...”

    “호호호, 네 실력이 나보다 떨어지는 걸 어쩌겠니.”

    “실력은 무슨! 이건 그냥 순전 운 빨이잖아!”

    “운도 실력이란다.”

    힘없이 돌아가는 둘과 잔뜩 들떠 돌아가는 한 명.

    유세현이 경계조를 짜기 위해 부르자, 김주희는 후광이 비칠 정도의 정말 밝은 미소를 선보였다.

    “선배님. 오늘도 저 둘이서 같이 불침번 서겠다는데요?”

    “응? 정말로?”

    “예!”

    유세현의 시선이 루시아에게 향했다. 신물파편을 얻은 이후 이강호가 성장한 루시아를 고려해 스스로에 대해 터놓았지만, 그녀는 처음처럼 여전히 일행들과 서먹서먹한 상태였다.

    자신을 가려주는 가면을 쓰지 않고는 타인에게 잘 다가서지 못하는데, 그녀 스스로가 가면을 쓴 채 동료를 대하기 싫어하기 때문.

    그렇기에 이건 상당히 좋은 반응이다.

    “뭐, 본인이 원한다면야...”

    가위바위보에 얽힌 일화를 모르는 유세현은 별말하지 않고 넘어 갔다.

    유세현은 다시 줄곧 보고 있었던 스테이터스 창에 집중했다.

    우리엘에게서 나온 코인.

    그리고 크로마스와 기타 천사들에게서 얻은 코인.

    마지막 전투로 얻은 스텟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힘은 SS랭크를 뛰어넘어 SSS랭크가 되었으며 다른 기본 스텟들도 SS랭크의 중간에 올랐다.

    여타 속성저항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유세현은 일단 힘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큰 만족감이 들었다.

    게다가 신물파편의 소유자가 되며 얻은 10% 스텟 추가효과.

    이건 몇 번을 봐도 대단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5%의 힘을 지니고 있을 때는 0.5%가 추가로 적용된다.

    낮을 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나 100%의 힘을 지니고 있을 때는 무려 10%나 올라가 110%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강호가 말하길 스텟의 끝은 SSS랭크였다.

    한계에 달하면 더 이상 올리기 힘든 게 스텟임으로 그 상황에서 10%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제일 사기적인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건 이태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배님 지금 스테이터스창 보고 계신건가요?”

    “응.”

    “잠시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저랑 스텟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좀 비교해보고 싶어서...”

    스테이터스 창 공유야 생사를 함께한 그들에게는 이젠 아무 일도 아니었기에, 유세현은 흔쾌히 허락했다.

    김주희가 자연스럽게 몸과 얼굴을 밀착시켜 그것을 응시했다.

    과거에는 어떤 행동을 해도 전혀 신경이 안 쓰였는데 지금은 좀 의식이 된다.

    유세현은 시선도 돌릴 겸 그녀의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봤다.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는 눈길.

    이름부터 시작하여 전혀 다른 이 두 개의 스테이터스 창에는 공통점이 딱 하나 존재했다.

    그건 고유특성 창이 없다는 것.

    유세현은 알림창 하나를 꺼내 살폈다.

    [100억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철의 성.]

    이건 소유자가 된 보상으로 제공받은 자기 계발에 대한 소정의 정보였다.

    < 두 여인(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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