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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39화 (339/612)
  • < 승자와 패자(2) >

    지이잉-

    콰아아아앙-

    엘리아크의 손에서 쏟아진 마력폭탄이 재차 일대를 뒤흔들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온 당혹어린 음성이 일대에 메아리친다.

    “크으으윽! 빌어먹을!! 저렇게 무식하게 큰 몬스터가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헉?”

    “티, 티탄! 티탄이다! 티탄이 이곳에 있다!”

    “처, 천사도 있다!”

    그들은 언더월드의 호수 주변을 탐험하고 있던 여타 종족들이었다.

    결계 밖에 있었지만 마력폭탄의 파괴력이 어찌나 강한지 영향력이 그들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모, 모두 현 장소를 이탈하라!”

    리더의 지시에 다급하게 격전지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이종족들.

    그들은 상당히 먼 장소까지 이동한 뒤에야 비로소 전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콰광!

    폭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새까만 연기까지.

    찬란한 빛과 함께 신성력으로 구현화 된 수백 개의 창이 하늘을 수놓자, 이종족들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그 모습은 언더월드를 헤쳐 온 그들이 보기에도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막바지에 다다른 건가?”

    누군가가 툭 말했다.

    천사와 티탄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온 추측이었는데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그것밖에 없군.”

    허나, 이 말이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그들은 감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충격파만으로도 이 지경, 저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일 것이 분명했다.

    다가가는 순간 죽는다.

    과연 지금 천족과 티탄을 제외한 그 누가 저곳을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까?

    외곽에서 지켜보던 이종족들의 리더들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내부에는 그런 판단을 깨고 분명 활보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유세현 일행과 스토르 벤!

    물론, 그들의 상황은 결코 좋진 못했다.

    콰앙!

    그들의 바로 앞에 있던 티탄이 스킬을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벌써 목격한 것만 20명 째.

    엘리아크 덕에 형세가 장난 아닌 속도로 기울고 있다.

    “크윽!”

    오르엠의 맹공에 알테라그가 지면을 한 바퀴 굴렀다.

    알테라그가 다급히 자세를 다잡았지만, 연이어서 떨어진 엘리아크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

    콰앙-

    “커헉!”

    엄청난 충격이었는지, 그의 몸이 한순간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틈을 오르엠은 놓치지 않았다.

    “심판의 낫!”

    상공에 생긴 거대한 낫이 주위에 있는 모든 환경을 파괴하며 알테라그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치지직-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가 아르틸리스로 만든 비보가 아니었다면 단숨에 두 동강이 났을 만한 날카로움이었다.

    덕분에 칼날이 닿은 갑주의 일부가 움푹 파였다.

    오르엠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단단하군.”

    아까전과는 달리 무척 여유가 있는 행동.

    그도 그럴 것이 오르엠의 입장에서는 이젠 거의 승리한 게임이었다.

    변수가 되는 케르트란이 여전히 존재하긴 했으나, 그는 라파엘의 견제와 거신의 자체 방어 기능 덕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뒤에서 지켜보며 몸을 추스르고 있던 카르가스가 낄낄 대며 웃었다.

    “크크크, 기분이 어떠냐 알그하브! 넌 이제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티탄은 이제 끝이다!”

    “카르가스...”

    “제대로 끝장내주도록 하지! 거신이여! 알그하브에게 너의 모든 힘을 보여줘라! 놈을 압살 해버려라!”

    [명령을 수행합니다.]

    모든 티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엘리아크가 알그하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아크의 행동을 본 김주희가 외쳤다.

    “선배님 이래서는!”

    “큭!”

    알테라그가 당한다면 기억의 명옥을 받을 수 없다.

    즉, 거신을 빼앗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사용한다.’

    유세현은 품에서 포츈카드를 꺼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도박을 하는 것이었지만 어차피 남아있는 방법은 하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휙-

    훅훅훅훅-

    하늘을 향해 던지자 허공에서 뚝 멈춰선 포츈카드는 그 자리에서 수십 차례를 회전했다.

    [포츈카드의 면을 결정합니다.]

    [앞면, 기적.]

    [뒷면, 절망.]

    유세현은 가만히 서서 결과를 관찰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알테라그를 향해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후우욱!

    포츈카드가 낙하해 지면에 꽂힌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알림창.

    [표츈카드의 면이 결정되었습니다.]

    쿵쾅 쿵광.

    사람이었기에 유세현도 지금만큼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절망이 걸린다면 제발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기를.

    [앞면, 포츈카드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루베르크를 움켜쥐고 있는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빌어먹을 신에게 감사의 말 따윈 표하지 않았다.

    치직 치지직-

    언더월드의 하늘을 감싸고 있던 먹구름에 방전 현상이 생기고, 이내 그 속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가 번쩍이며 일시적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동시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뇌성.

    우르르 쾅!

    이내 거신의 머리위로 한줄기의 벼락이 내리 꽂혔다.

    [에너지과부하. 에너지 방출시스템 가동. 오류발생! 오류발생! 과부하 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없습니다. 오류 해결을 위한 시스템 긴급 복구 작업을 개시합니다. 복구까지 걸리는 작업시간 30초.]

    거신의 몸이 축 늘어졌다.

    김주희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30초?”

    그녀의 입장에서 30초는 생명체가 목숨을 걸은 것 치고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반면 유세현은 이해했다.

    포츈카드의 등급은 레전더리 A랭크.

    거신을 위해 사용되었을 무수히 많은 아이템을 고려하자면 사실 30초도 감지덕지일 수 있는 것이다.

    오르엠과 카르가스 등 크로마스의 편에 있던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냐 이건...”

    난데없이 번개라니?

    그리고 하필 지금 이 순간 에너지 방출 장치에 오류가 생기다니?

    라파엘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케르트란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 챈 상태였다.

    “꺼져라 날파리!”

    지니고 있는 모든 마력이 개방된다.

    알테라그를 집중 마크하고 있던 오르엠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느꼈다.

    놈의 힘을 비웃으며 줄곧 치욕을 안겨 주었지만 그래도 케르트란은 왕이었다.

    그것도 티탄의 왕!

    힘이 떨어져 라파엘을 죽일 수는 없을 테지만 찰나의 틈을 만들 기력은 있을 터.

    오르엠이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어딜!”

    알테라그가 뒤쫓으려는 순간이었다.

    “알테라그! 잠깐 멈춰봐라!”

    유세현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 * *

    “칠색의 불꽃!”

    “대지의 위엄!”

    케르트란이 생성한 무지개 색 불꽃과 땅의 대천사 라파엘이 만든 거대 암석이 격돌했다.

    승자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불꽃이었다.

    암석이 모래가 되어 흩날린다.

    “아니? 이럴 수가!”

    토끼처럼 변하는 라파엘의 눈동자.

    케르트란은 거대 망치를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네 까짓 게 거신 없이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빠악-

    가격당한 라파엘의 몸이 뒤로 튕겨나가며 휘청거렸다.

    다급히 정신을 차렸지만, 케르트란은 이미 거신을 향해 도약한 상태.

    [남은 시간 20초.]

    거신이 중간 상황을 알려왔다.

    무척 짧은 시간, 그러나 도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닿기만 하면...닿기만 하면...나의 승리다!’

    케르트란은 힘껏 손을 뻗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10m.

    하지만 그의 손이 딱 동력부에 닿기 직전.

    쉬익-

    터억!

    오르엠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후우...아슬아슬했군.”

    “크으으!! 비켜라 오르엠!”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별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케르트란.”

    휘익-

    쾅!

    케르트란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남은 시간 15초, 14초...]

    케르트란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젠 틀렸다. 기회는 지나간 것이다.

    부릅뜬 눈이 알테라그를 향한다.

    그가 오르엠만 막아줬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탈취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하지 않은 건 케르트란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당장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설을 삼키고 또 삼켰다.

    오르엠이 활강해 내려오며 말했다.

    “아이템을 내놔라.”

    “...건네주면 넌 내게 뭘 해줄 거지?”

    “하!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상당히 비굴하구나. 이만 패배를 인정하고 왕이면 왕답게 명예롭게 죽어라. 아니면 혹시 또 다른 비장의 수라도 지니고 있는 건가?”

    “......”

    케르트란의 입이 꾹 닫혔다.

    비장의 수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케르트란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알그하브에게 이걸 건넨다면 과연 그가 동력부에 사용할 수 있을지.

    도출되는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거신은 이제 곧 작동되니까.

    ‘젠장, 이렇게 되면...’

    케르트란은 도박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시선을 끌기 위한 연기를 곧바로 시작했다.

    “...아이템을 주겠다. 네 말대로 명예롭게 죽으마. 하지만 내 부하들은 살려줘라.”

    “케르트란님!”

    케르트란의 말에 티탄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오르엠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케르트란이 저런 성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무슨 꿍꿍이지?’

    그는 일단 장단에 맞춰주었다.

    “좋다. 그러도록 하지.”

    오르엠이 케르트란의 앞에가 섰다.

    “자, 그럼 내놔라.”

    그가 딱 손을 내민 순간이었다.

    몸을 잽싸게 비튼 케르트란이 온 힘을 다해 거신의 동력부를 향해 아이템을 내던졌다.

    이게 그의 마지막 희망!

    허나.

    “크하하하! 고작 한다는 것이! 이거라니! 라파엘!”

    후웅!

    중간에 위치해있던 라파엘이 잽싸게 가로챘다. 라파엘은 곧바로 날아오른 오르엠에게 아이템을 건넸다.

    “케르트란, 많이 추하구나.”

    “제기랄!!”

    케르트란이 잽싸게 범위스킬을 쏘았지만 연이어 날아온 미카엘과 우리엘에 의해 저지되었다.

    오르엠이 자세를 유지하며 동력부로 향했다.

    아이템을 사용해버려 모든 변수를 근절하려는 것이었으나...케르트란에게서 눈을 떼고 몸을 돌려 동력부를 바라본 오르엠은 당혹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뭐냐, 이 벌레는...”

    그곳에는 팔이 하나 밖에 없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순간 부팅이 끝난 엘리아크가 재가동을 시작했다.

    [시스템 복구완료. 최고권한자를 탐색합니다.]

    [최고권한자 엘르켈, 탐색완료. 최고우선순위 명령에 따라 모든 권한이 에르켈에게 인계되며 이전에 받은 모든 명령이 취소됩니다.]

    [자율사고기능 가동.]

    눈을 뜬 엘리아크가 유세현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

    “......”

    오르엠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존재감 하나 부각하지 못한 벌레였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들었었는데 살아 계셨군요! 아버지!]

    ‘왜, 놈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냐.’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아크가 기뻐하며 몸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오르엠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놈이 무슨 짓을 했다.

    지금 즉시 죽여 거신을 되돌려야 한다.

    오르엠은 단 일격에 죽일 생각으로 황금검에 신성력을 끌어 모았다.

    이게 실패하면, 거신 때문에 되려 위험해진다.

    허나, 그 순간.

    오르엠을 응시하고 있던 유세현이 쓰윽 손을 치켜세웠다.

    쓰러져있던 시체들이 일어선다. 동시에 어둠에 뒤덮이는 유세현의 전신.

    오르엠은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뭐냐...이 순도 높은 어둠의 마력은...’

    < 승자와 패자(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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