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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32화 (332/612)
  • < 고대병기(2) >

    “크윽! 감히 하등종족 따위가!!”

    크게 놀란 천사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갈기갈기 찢겨 죽어라!”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빛이 수십 개의 칼날로 변화했다.

    허나 유세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굳이 신성력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실력과 밑천을 천사 본인이 스스로 드러냈기 때문.

    감시자가 있는 방향을 흘끔 살핀 유세현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실 귀찮은 건 눈앞의 천사보다도 감시자였다.

    ‘지금 상태라면 온다 한들 문에 시야가 가려 보지 못하겠지.’

    루베르크에게 마력을 주입하자 검신의 끝에서 흘러나온 부패의 어둠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정면에서 날아들던 칼날의 일부를 순식간에 중화시켰다.

    찌익-

    나머지가 아슬아슬하게 살갗을 스친다.

    암흑투기가 몸을 속박하자 힘의 종류를 파악한 천사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네, 네놈은 대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작은 문틈사이로 왼쪽 어깨를 집어넣어 공간을 벌리기 무섭게 유세현의 검이 놈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 * *

    힘으로 문을 넓힌 티탄이 그 속으로 줄줄이 밀려들어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세현이 발밑에 늘어서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약 100구가 넘었는데 전부 천사들의 시체였다.

    덕분에 이번에도 엄청난 순도의 코인을 흡수했다.

    유세현은 스테이터스를 살폈다.

    힘이 SS랭크 80%를 넘겼다.

    이강호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티탄족의 비호를 받지 못했다면 불가능 했을 가히 믿을 수 없는 성장이었다.

    ‘설마 이정도로 이득을 볼 줄은 몰랐는데...’

    이제 그들은 힘 스텟 만큼은 최상급 천사와 동급이다.

    이강호는 본래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약 2년을 잡고 있었다. 아니, 중간에 거점지로 돌아가는 등 좀 더 안전하게 움직인다면 3년까지도 생각했다.

    이강호의 주먹에 불끈 힘이 실렸다.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사람들의 성장을 보다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

    거기에 플러스로 이제는 유세현의 팔을 되돌리는 작업도 해볼 만했다.

    “타르탄에게 연락을 넣어라! 이곳부터 수색을 이어나갈 것이다.”

    “예!”

    교차공간의 발견으로 인해 작전이 일부 수정되었다.

    이강호는 휴식하고 있는 유세현을 묵묵히 응시했다.

    시선을 느낀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뭘 그렇게 봐? 내 얼굴에 아직 피 묻어 있냐?”

    이내 천으로 얼굴을 다시 꼼꼼히 문지르기 시작하는 유세현.

    이강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한낱 조무래기에서 최후의 생존자까지.

    그는 지금까지 줄곧 스스로를 행운과 동떨어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죽도록 노력했기에, 온힘을 다했기에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자신이 존재할 수 이유는 유세현 덕분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세현의 자그마한 날갯짓이 큰 폭풍이 되어 돌아와 티탄의 비호를 받게 되었다.

    자신은 행운과 동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다.

    그와 만난 것 자체가 일생일대 최대 행운이었다.

    “레피아의 마음이 좀 이해가 되네.”

    “응? 갑자기 뭔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이 공간 말인데...뭐 딱히 느껴지는 거 없어?”

    “흐음...”

    유세현이 눈을 감고 보다 더 유심히 흐름을 살폈다.

    꿈틀거리는 미간.

    이곳은 아무렇게나 오린 종이를 테이프를 이용해 마구잡이식으로 이어붙인 듯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신성력, 마력등 온갖 것이 뒤섞여있어 난잡하다.

    그리고 30m가량을 벗어나면 그마저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수색이 다시 개시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주희가 운디네를 소환했다.

    “야, 디네야. 함정 좀 찾아봐...여기 완전 생지옥이다 정말.”

    “으휴, 아주 제대로 부려 처먹는구만.”

    몸을 축소화 시킨 운디네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마법과 자신의 몸을 이용해 함정을 파해했다.

    그렇게 또 4일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분주히 움직이던 운디네가 손을 휘휘 저으며 손부채질을 했다.

    “후우...여긴 살짝 덥네.”

    “덥다고?”

    이상하게 생각한 유세현이 다가가 묻자, 운디네가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이내 깨달았는지 박수를 짝 쳤다.

    주위를 의식한 운디네가 작게 속삭였다.

    “세현 오빠. 분명히 뭔가 묘한 불꽃을 찾고 있다고 했었지?”

    유세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신경이 쓰였지만 다른 티탄 때문에 일부러 모른 체했다.

    “화기가 점점 강해지는 통로가 있어. 근데 그 끝에 불꽃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몰라.”

    “괜찮아. 어디방향이야?”

    “저기.”

    유세현은 운디네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마력을 들여다보자, 알고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화기를 머금고 있는 마력이 희미하게 눈에 띄었다.

    일행은 아주 자연스럽게 운디네가 일러준 통로를 향해 나아갔다.

    조금 걷자 그들도 몸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기중에 있는 마력이 소량이라 그렇지 순도는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덥군...”

    뒤따라오던 티탄이 중얼거렸다.

    케르트란이 심어놓은 놈이었는데, 이름은 카윈으로 이제 유세현은 놈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유세현. 계속 갈 건가? 함정인 게 뻔해 보이는데.”

    “다른 장소는 다른 인원들이 둘러보고 있으니 별수 없지 않나.”

    “하긴...”

    온도는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더 뜨겁게 높아졌다.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

    “젠장. 이 길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지?”

    주위 티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그런 그들의 앞에 두 갈래 길이 나타난 것은 몸이 익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한곳은 도무지 지나갈 수 없을 정도의 고열의 불길이 번져있는 길이었고, 다른 한곳은 화기가 싹 가신 길이었다.

    체감해보기 위해 살며시 손을 뻗은 유세현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카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곳으로는 못 지나가겠군.”

    “확실히...”

    동의를 표한 유세현이 이강호를 흘끗 바라봤다.

    못 지나가도록 대놓고 가로 막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불꽃이란 게 만약 존재한다면 저 내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이건 자신뿐만아니라 이강호도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라는 것.

    운디네가 물로 방어막을 쳐줘도 소용이 없다.

    들어가는 순간 저 불꽃은 저항력을 깨부수고 이강호의 온몸을 불사를 것이다.

    ‘다른 방도가 있으려나...만약 못찾으면...흠...’

    걱정이 되는 유세현.

    허나 정작 당사자인 이강호는 이곳을 발견한 걸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이 불의 정체를 그는 알고 있기에.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며 모든 것을 불태우지만 생명까지는 앗아가지 않는 불.

    영원한 고통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

    업화(業火).

    ‘나중에 와야겠군.’

    일행이 그새 앞서간 티탄을 뒤쫓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크아악!!”

    티탄족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일대를 뒤흔들렸다.

    * * *

    저벅. 저벅.

    새까맣게 그을린 티탄의 시체 틈에서 한 인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일 눈에 띈 것은 온 몸을 감싸고 있는 4쌍의 날개.

    놈의 머리카락은 대개 황금빛을 띄고 있는 천족답지 않게 무척이나 붉었는데 한 손에는 기다란 장창을 쥐고 있었다.

    카윈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그는 눈앞에 있는 놈을 알고 있었다.

    사대천사, 그중에서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불을 관장하고 있는 대천사.

    [미카엘]

    ‘젠장! 하필 튀어나와도 저놈이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미카엘은 사대 천사 중에서도 성격이 가장 괴팍하고 포악한 천사였다.

    판도라의 티탄 중 놈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케르트란이나 그 바로 아래에 있는 2명 정도 뿐이다.

    “호오...정말 대단한 불길이군.”

    놈은 우습게도 바로 앞에 있는 적보다도 불길이 이글거리는 통로에 더한 관심을 보였다.

    ‘젠장, 도망쳐야 된다.’

    카윈이 몸을 돌린 순간 미카엘이 창을 허공에 내질렀다.

    입에서 싸늘하게 터져 나오는 말.

    “어딜 감히...죽어라.”

    쿠오오오오-

    쿠우웅!

    화염의 소용돌이가 그들을 향해 몰아쳤다.

    불의 색은 붉은빛도 푸른빛도 아닌 신성력을 상징하는 황금빛을 띄고 있었다.

    카윈이 마력을 끌어올려 스킬을 발산했다. 미카엘보다 약할 뿐 그도 절대 약한 축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콰아앙-

    후폭풍이 일대를 휘감는다.

    “크억!”

    벽에 날아가 처박히는 카윈.

    “호오, 좀 하는군.”

    미카엘이 손짓하자 뒤에 위치해 있던 천족들이 일제히 티탄족에게 달려들었다.

    “티탄의 씨를 말려라!”

    “날파리들이 어딜 감히!”

    펼쳐지는 난전.

    일행은 이 틈을 타 몸을 뒤로 물렸다.

    그들이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유세현의 눈에 자리에서 일어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카윈이 보였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을 보니 후유증이 상당한 것 같았다.

    놈을 죽일 거라면 지금이 절호의 찬스.

    허나, 그럴시 케르트란은 또 다른 놈을 일행에게 붙일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놈에게 신뢰를 얻는 게 났다.’

    그럼 감시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겠지.

    유세현이 다급히 카윈의 손을 낚아채자 카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너...너 무슨!”

    “네 몸이 너무 커서 끌기 힘드니. 얌전히 있어라.”

    이내 질질 바닥을 기는 카윈의 몸.

    카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내 유세현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을 듣고 달려온 후속병력과 마주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알테라그도 끼어있었다.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쉬익-

    알테라그는 순식간에 그들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상황을 지켜보고 올 테니. 여기서 쉬고 있어라.”

    자연스레 카윈을 버린 일행이 잽싸게 방향을 돌려 뒤따랐다.

    콰아앙-

    두 개의 보구를 착용한 알테라그는 미카엘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크윽, 이놈이!”

    언제나 여유롭던 미카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강호도 몇 번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잽싸게 뒤로 몸을 물린 미카엘이 창을 높이 들어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금빛의 불꽃이 창끝을 따라 허공을 수놓는다.

    “모두 물러서라 휘말린다!”

    최상급 천사의 외침에 천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티탄도 낌새를 느끼고 황급히 빠졌다.

    “성약의 불꽃!”

    미카엘이 힘차게 창을 내리그었다.

    잇따라 똬리를 튼 불꽃이 길게 펼쳐져 알테라그를 향해 몰아쳤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알테라그가 작게 읊조리며 들고 있던 육중한 철퇴를 휘둘렀다.

    “절풍.”

    쿠오오오-

    치지지직-

    화염과 바람의 소용돌이가 맞부딪치며 경계를 만든다.

    공간을 반으로 나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이강호가 툭 말했다.

    “역시 달라.”

    “응? 뭐가?”

    “미카엘의 불꽃색. 놈의 불꽃색은 원래 저런 색이 아니야.”

    그가 알고 있는 미카엘의 불꽃색은 신성력을 상징하는 금빛과 불꽃을 상징하는 주홍빛이 한데 어우러진 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었다.

    이강호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일전에는 놈이 얻었었던 건가.’

    불꽃을!

    보다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는 힘을!

    아니, 꼭 불꽃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 업화의 너머에는 각별한 것이 있을 게 틀림없다.

    철컥-

    이강호가 입고 있던 갑주를 해제했다.

    유세현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업화는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려.”

    “업화?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꼬리를 흘린 유세현이 눈이 더욱 동그랗게 변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

    “야, 너 설마...”

    “갔다 올게.”

    이강호가 간편한 레더아머 차림으로 앞으로 나섰다.

    < 고대병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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