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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31화 (331/612)
  • < 고대병기(1) >

    들켰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코인을 흡수할 생각이었는데 이래서는 애매하다.

    “케르트란! 네놈을 처치하고 나도 사대 천사의 반열에 오르겠다! 신의 심판을 받아라!”

    그때 쥬리엘의 검신에서 타오르듯 뿜어져 나온 광명이 일대를 물들였다.

    스킬, 광휘의 검이 발동되기 전의 전조 현상이었다.

    신성력에 의해 구현화 된 5개의 검이 허공을 수놓는다.

    일격에 끝을 볼 심산으로 모든 신성력을 쏟아 부운 것인지 개당 크기가 티탄족 체구에 4배 이상 달했다.

    케르트란이 인상을 구겼다.

    인간들 실력 좀 보려는데 저놈은 갑자기 또 왜 저런단 말인가.

    “죽어라아아! 케르트라아아안!”

    칼날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케르트란이 서 있는 장소를 향해 쇄도했다.

    “피해!”

    유세현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정확히는 연기였지만, 그 행동은 케르트란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천사들의 스킬은 보통 종족들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스킬보다 위력이 강하다.

    거기에 놈이 지금 발현한 광휘의 검은 10개의 티어로 세분화 되어있는 천족의 스킬 중 무려 8티어에 달하는 상위 스킬이었다.

    재수 없게 휘말리기만 해도 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

    “쳇.”

    이것에 맞고 죽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방관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케르트란은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을 터였다.

    지금 그는 타르탄에게 직접 지시받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날파리가...”

    쉬이익-

    케르트란이 양팔을 뒤로 젖히며 자세를 잡았다.

    입고 있던 갑주 곳곳에서 증기가 퍼져 나온다.

    유세현은 그것이 마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력은 빠르게 거대망치의 표면에 흡수되었다.

    “하아압!”

    이내 힘찬 기합과 함께 상공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케르트란.

    콰아아아앙-

    망치의 단면과 광휘의 검이 맞닿자 상상할 수 없는 폭풍이 주위를 휘감았다.

    유세현은 그 환경 속에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쩌적-

    휘황찬란한 검신에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눈으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아주 작은 균열이었지만, 그것은 정말 빠르게 광휘의 검을 잠식해 들어갔다.

    쩌저저적-

    쨍그랑!

    이내 유리조각처럼 완전히 분쇄되는 빛의 검!

    “이럴 수가!”

    쥬리엘이 경악을 터트리기 무섭게 도약한 케르트란의 육신이 파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수가는 무슨...죽어라.”

    자비 없는 망치가 그의 머리를 향한다.

    빠악-

    그걸로 끝.

    유세현은 혀를 찼다.

    방금 전의 천사는 너무 급했던 데다가 안일했다.

    아무리 최상위 포식자라지만 티탄도 바로 아래로 그 못지않다.

    그런데 일개 병사도 아닌, 종족의 왕에게 정면대결을 신청하다니...

    ‘모르고 덤빈 건 절대로 아닐 텐데.’

    분명 수준파악을 잘못한 것일 터다. 아니면 뭔가에 눈이 뒤집혔다던가.

    ‘아무튼 이건 우리에겐 좋은 일이다.’

    코인을 챙기기 위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지금 경쟁자는 스토르 벤이었다.

    코인이 사방으로 흩어진 덕에 인원들은 한 개 씩 밖에 흡수하지 못했다.

    허나, 순도가 장난이 아니었기에 수확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렇게 안 올라가던 힘 스텟이 단숨에 7%나 증가했다.

    ‘쩝.’

    케르트란이 마음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묘기만 부린 게 아니라, 쓸개까지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왕숨기기로 한거 티는 내지 않았다.

    빠악-

    “크헉!”

    타르탄이 적장의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으로 전투는 완전히 끝을 고했다.

    “전군! 퇴각하라!”

    “큭! 퇴각하라! 퇴각하라!”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 크로마스와 천족.

    유세현의 눈이 자연스레 쥬리엘에게 향했다.

    번쩍이는 장비가 유난히 돋보인다.

    과연 등급은 어떻게 될까?

    루크루프의 갑주보다 더 좋을까?

    놈의 장비에 손을 댈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언더월드의 티탄들도 장비는 인식했기에 별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몸을 수색해라! 뭔가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도록!”

    타르탄의 명령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결과가 나온 것은 대략 10분이 경과했을 때였다.

    “대장군님!!”

    “뭐냐?”

    타르탄이 부하가 내민 아이템을 낚아챘다.

    글을 적을 수 있는 양피지 종류의 아이템이었는데 유세현은 글귀를 읽어 내려가는 타르탄의 눈가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타르탄이 외쳤다.

    “지금 바로 복귀한다!”

    “무슨 일이지? 뭐 중요한 거라도 적혀있었나?”

    유세현의 다분한 질문.

    타르탄은 잠시 그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답을 주었다.

    “고대병기가 잠들어 있는 장소를 놈들이 발견했다.”

    * * *

    부리나케 복귀한 일행.

    타르탄이 양피지를 보여줄 필요도 없이 알테라그도 이미 정보를 손에 넣은 상태였다.

    함정인지 아닌지 확인하는데 이틀이 소요되었다.

    “확실합니다. 놈들의 병력 대다수가 그곳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티탄족도 대대적인 이동을 시작했다.

    쿵! 쿵!

    2열 종대로 정렬한 거인이 주위를 경계하며 걷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타르탄의 일격을 떠올린 김주희가 유세현을 향해 푸념했다.

    “후...저들이 계속 아군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배?”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란 걸 둘은 알고 있었다.

    높은 능선을 넘자 바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호수가 나타났다.

    행여나 적이 있을까 각별히 주의했지만 적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들어간 건가?”

    “예. 놈들을 주시하고 있던 정찰병의 말에 따르자면 하루 전에 돌입하고 더 이상의 병력 접근은 없었다고 합니다.”

    “좋다. 우리도 따라갈 준비를 해라.”

    호수는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는데, 기분 나쁜 외관이나 몸을 부패시킨다는 점이나 외부 있던 죽음의 강과 효과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걸 막을 수 있는 약초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

    “이 풀을 먹어라. 먹으면 30분 정도 몸이 부식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챙겨줘서 고맙다.”

    일행이 염치 불구하고 알테라그가 건넨 약초를 받아들자, 주먹을 꽉 움켜쥔 알테라그가 병사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용맹한 전사들이어! 지금까지 모두 고생했다!! 고대병기는 이 아래에 잠들어 있다! 이것만 막으면 우리는 당당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라!”

    “우와아아아!”

    병사들은 고양된 함성을 터트렸다.

    알테라그가 제일먼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떤 돌발 상황에도 대처할 자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기사의 등 뒤에 숨어있는 아르카드 제국의 황제와는 달리 정말 대담한 행동!

    하지만 유세현은 그것으로 황제를 힐난할 생각은 없었다.

    황제는 약할 뿐이지 제 역할을 못하는 머저리는 아니었으니까.

    풍덩-

    물속은 너무 탁해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강호의 라이트 마법이나, 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이 없었더라면 뒤따라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구는 수십 미터 아래 되는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한 개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이 뚫려있는 구멍.

    안전을 위해 한곳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 그들을 반겨준 것은 숲과 빌딩, 절벽 등등 각양각색의 지형지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미로였다.

    잠시 고민하던 알테라그가 놈들의 흔적을 뒤쫓을 추격조와 이 던전을 나아갈 개척조로 병력을 이분할 시켰다.

    유세현에게서 건네받은 메인 아이템이 있었지만, 고작 한 개 빼돌린 것으로 완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

    놈들보다 앞서가야 된다.

    일행은 조사를 위해 개척조에 속할 것을 택했다.

    추격조에 포함 되어 있는 케르트란이 뭔가 더 알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현재 이곳의 병사다.

    즉,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되기 때문에 자유가 없었다.

    추후에야 본색을 드러내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잠잠할 터다.

    그때 케르트란이 유세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일전의 충고는 고마웠다. 개척조는 더 많이 위험할 테니 조심해라.”

    “걱정해줘서 고맙군. 너도 조심해라.”

    이윽고 갈라서는 둘.

    유세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케르트란이 알테라그 쪽에 심어둔 부하를 불러들여 속삭였다.

    “전송구는 가지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좋아...저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해 매일 보고해라.”

    * * *

    미로는 정말 지랄맞기 그지없었다.

    벽면이 열리며 뚫린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의 화살.

    그것은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어서 40m나 되는 산처럼 거대한 바위가 굴러왔다.

    “젠장!”

    고전적이지만 격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전적인 것만 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첨단 도시가 배경인 장소에서는 레이저까지 날아왔다.

    “김주희, 오른발 조심해라.”

    “옙! 선배!”

    “루시아씨 거기 머리 위...”

    사람부터, 티탄까지 각 체구에 맞춰 함정이 다양하게 설치되어있어 그들은 더 각별히 주의해야만 했다.

    아무쪼록 지금까지 희생된 티탄족은 무려 31명.

    그 강력한 티탄족이 함정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면 대다수의 종족들이 웃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진실이었다.

    “전군 정지!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도록 하겠다!”

    알테라그의 명령에 티탄들이 검증된 장소에 몸을 눕혔다. 땀에 흠뻑 젖어있던 유세현도 털썩 드러누웠다.

    던전 자체가 완전 가시밭이다.

    또 가도 가도 원체 끝이 없었다.

    “후우...뭐 좀 발견했나?”

    스토크가 물어왔다. 이전이었다면 절대 반응하지 않았을 유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힘을 합쳐야 된다.

    “전혀...아무것도 못 찾았다. 그쪽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유세현의 옆에 스토크가 자리 잡았다.

    이곳에 들어 온지도 어엿 네 달.

    그들은 불꽃에 대한 단서는 커녕 이곳어딘가에 있을 크로마스와도 조우하지 못했다.

    유세현은 새삼 왜 20년이 넘도록 결판이 나지 않았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갔다.

    몸에 반동을 준 유세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가 특정 장소를 향해 나아가자 단독으로 수색을 개시한 것이라 생각한 김주희와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서 뒤따르려했지만.

    “화장실 가는 겁니다.”

    “아...”

    둘은 다시 조심히 바닥에 앉았다.

    소변을 보고 있는데 스토크가 또다시 옆에 와 자리를 잡았다.

    말없이 나란히 서 볼일을 보는 둘.

    유세현은 살짝 어이가 없어져 실소를 내뱉었다. 설마, 이자와 나란히 소변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아니 애초에 몸의 구성성분이 바위인데 소변을 본단 말인가?

    유세현이 딱 볼일을 마친 순간이었다.

    드르륵-

    철컥-

    영문 모를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뭔가 아귀가 딱 들어맞는 그런 소리였다.

    눈앞에 있는 벽에 사각형 모양의 금이 생기더니 대뜸 덜컥 열렸다.

    그 안에는 흰 날개를 가진 생명체가 서 있었다.

    천족.

    “어?”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시선이 마주친 남성 천사의 입에서 당혹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고로 그때까지 스토크는 아직도 볼일을 보던 중이었다.

    “이런 미친!”

    당황한 스토크가 황급히 볼일을 끊으며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천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하등종족 주제에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

    무척 여유가 넘치던 놈은 안타깝게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하던 말이 뚝 끊긴다.

    근처에 있던 티탄족 한 명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날파리?”

    “?!”

    다급하게 문을 닫으려는 천족.

    유세현의 검이 빛보다 빠르게 틈 사이로 껴들었다.

    < 고대병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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