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24화 (324/612)
  • < 기억의 던전(2) >

    안개가 걷히며 흐릿했던 기억이 완벽히 짜 맞춰진다.

    그래,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기 했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대뜸 초콜렛을 내민 일.

    “...정말 먹어도 돼?”

    어리고 순진했었던 시절이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 단번에 희비가 교차되는...

    아니, 당시 김주희는 그 흔한 100원짜리 불량식품조차도 접할 수가 없었기에 이건 모든 것을 잊게 만들 정도의 달콤한 유혹이었다.

    “맛있어...”

    초콜릿을 입속에 쏙 넣은 소녀는 어느새 울음을 그쳤을 뿐만 아니라 진한 미소까지 피어있었다.

    치직-

    공간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소녀가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균열은 점점 커져갔다.

    “오빠는 이름이 뭐야?”

    쨍그랑-

    이내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그들은 어느새 문 앞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후우...”

    유세현의 입에서 안도 섞인 한숨이 튀어나왔다.

    과거의 그가 한 행동은 그냥 여자아이가 울고 있는 게 불쌍해서 했던 행동이었다.

    이른바 말하자면 개념 없는 초등학생의 돌발 행동이라고 할까?

    목적도, 사적인 감정도, 의미도 전혀 없었기에 영영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반드시 떠올려야지만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라니...’

    몬스터의 수준을 제외하고도 실로 끔찍한 난이도다.

    길을 찾을 때까지 이런 걸 반복해야 되는 것인가?

    다행히도 유세현이 염려하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파앗-

    지잉-

    밖으로 빠져나가기 무섭게 문 내부에서 한줄기의 빛이 튀어나오더니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준 것!

    빛을 따라 이동하는 와중 이강호가 궁금했는지 물어왔다.

    “어떻게 안거야?”

    “응? 뭘?”

    “공략법. 거긴 김주희의 기억세계였잖아.”

    “아~그거?”

    유세현이 간단히 간추려 설명하자,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김주희가 미안한 표정이 되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애가 선배였군요. 정말 죄송해요 떠올리지 못해서...”

    “아니, 나도 대뜸 떠오른 거야. 못 기억하는 게 정상이야.”

    이건 정말 기막힌 우연으로 발생 된 일.

    확률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약5000만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이다.

    거기에 플러스로 때마침 차가 퍼지고, 유세현이 놀이터로 향한 것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자면, 잘은 모르지만 로또와 비등비등하거나 그보다 낮지 않을까 한다.

    김주희의 입가에 기억에 등장한 소녀와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일까? 그 당시의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좋았는지.

    왠지 모르게 유세현을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김주희는 애써 참았다.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억 중 교차하는 부분을 엮어 만든 공간이었던 건가...”

    “응. 그게 분명해.”

    “최악이군.”

    움직이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들은 어느새 빛이 안내해주는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전보다 더 힘들 가능성이 높기에 그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들어가기 무섭게 몬스터가 그들을 반겼다.

    * * *

    몬스터는 생명체가 아닌 기계였다.

    다만 마크처럼 인간형이 아니라, 조류나 동물의 형상을 띄고 있었는데 놈들 개개인에게는 특수한 현대화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슈우욱-

    쾅!

    “크윽!”

    날아온 지대공 미사일이 유세현을 강타했다.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실로 엄청난 화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서 조류의 입에서 발사되는 중기관총.

    투두두두-

    “뛰어!”

    수적으로 열세인 일행은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

    식인식물이 왜 저평가 받는지 놈들을 상대하며 알 수 있었다.

    “끝이 없네.”

    웬만한 이들이었다면 벌써 싸늘한 시체가 되었으리라.

    코인이라도 계속 준다면 강해지는 재미라도 있을 터인데 일정 수를 넘기자 놈들은 더 이상 코인을 주지 않았다.

    즉, 이곳도 기본은 1번째 장소와 같았다.

    점점 죄어오는 포위망.

    어떻게 벗어나는 게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이 던전은 대체 뭐야?”

    사람의 약 2.5배 정도 되는 거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주하기 무섭게 한순간 멈짓하는 두 종족.

    “너는?”

    놈들은 이전 유세현을 습격했던 리-로버리 종족이었다.

    유세현이 검을 겨누자 리-로버리들이 잽싸게 손사래를 쳤다.

    “잠깐! 너희와 지금 싸울 생각은 없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쾅!

    주위로 융단폭격이 쏟아졌다.

    유세현과 리-로버리들은 그것을 피해 전력 질주했다.

    “따라오지 마라. 싸울 맘이 없다면 방향을 꺾어라.”

    “아! 그쪽밖에 길이 없는 걸 어쩌라는 거냐! 칼 치워라! 지금 우리들이 붙으면 둘 다 죽는다!”

    “......”

    결국 기계괴수들의 추격은 호수에 몸을 던진 뒤에야 끝이 났다.

    지나갈 때까지 잠수하고 있던 이들이 뭍으로 하나 둘 올라왔다.

    “썅...정말 뒤질 뻔했네. 대체 뭐냐고!”

    리-로버리가 투덜거리는 상황 속에서 유세현이 묵묵히 놈들을 바라봤다.

    함정에 떨어질 때는 분명 수가 20이 넘었는데 지금은 꽤나 줄어 16명밖에 되지 않았다.

    “놈들의 추격은 끝났다. 갈라지도록 하지.”

    툭 말한 유세현이 몸을 돌렸다.

    확실히 지금 싸우는 건 둘 다 죽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암흑투기의 랭크를 더 올려야 된다.’

    놈이 뺏어가지 못하게 해야지만 손쉽게 이길 수가 있다.

    그때였다.

    리-로버리의 리더, 달퓨스가 일행을 붙잡았다.

    “잠깐!”

    “...뭐지?”

    “지금은 같이 행동하지 않겠나?”

    “거절한다.”

    “...이전의 습격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그렇게 무작정 거절하지 말고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코인도 주지 않는 놈들이다. 딱 보니 방도를 찾아내지 못한 모양인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 둘 다 여기서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유세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판도라 내부에서는 한 번 적이 영원한 적은 아니었다.

    종족전이 아닌, 개인전이니까.

    아니, 사실 종족전이라고 해도 눈앞에 죽음의 위기가 닥쳤는데 누가 협력하지 않을쏘냐.

    의견을 나눈 일행은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헛짓거리 못하게 룰을 몇 가지 정했다.

    룰을 깬 순간 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달퓨스가 마지막으로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난, 달퓨스라고한다. 네 이름은 뭐지?”

    그를 리더로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유세현.”

    그것을 끝으로 대화를 마친 그들은 곧바로 수색에 나섰다.

    * * *

    그들이 있는 숲은 특정 루트를 벗어날 시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오게 되어있는 곳이었다.

    즉, 탈출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인데...적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기에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강행돌파.

    “제기라알!”

    퍼억-

    리-로버리족 한 명이 휘두른 불타오르는 장창에 기계표범이 그대로 꼬치구이가 되었다.

    허나, 감정 없는 기계의 특징은 죽는 순간까지 공격을 감행 해온다는 것.

    콰아앙!

    “크으윽!”

    다급히 방어스킬을 펼쳤음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은 리-로버리.

    허나 이 정도는 약과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놈들이 자폭을 한 것이었는데...

    “르바르!”

    그 여파로 인해 리-로버리족 한 명이 전사했다.

    달퓨스에게도 20마리가 넘는 기계 달라붙었다.

    남들보다도 더 큰 체구 때문에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크으으으! 기계따위가아아!”

    콰앙!

    각종 스킬이 휘몰아친다. 일행도 무공을 운용해 기계들을 부숴나갔다.

    하늘 저편으로 짙은 암운이 드리웠다.

    더 많은 수의 적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건 전부 상대 못해!! 뛰어!”

    그들은 전력 질주했다. 뒤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콰광!

    “크윽!”

    폭격이 쏟아지고 여파에 휩쓸린 아퀼라가 지면을 굴렀다. 다급하게 방향을 돌린 유세현이 그녀를 낚아챘다.

    “마, 마왕이시어.”

    아퀼라는 이 와중에도 당황스러워했지만, 유세현은 현재에만 집중했다.

    마침내 모든 힘을 다해 일정장소를 통과한 순간이었다.

    후웅-

    환경이 변화하며 썩어버린 대지가 그들의 앞에 길게 늘어섰다. 뒤따라오고 있던 적은 전부 사라진 상태.

    허나, 안도할 수는 없었다.

    눈앞에는 더 큰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끄아아악!”

    귓가에 비명이 울린다.

    4m남짓 되어 보이는 지렁이의 형태의 기계괴물이 있었는데, 놈이 글라인더처럼 회전하는 이빨을 이용해 생전 처음 보는 종족의 육신을 갈아먹고 있었다.

    “엠병.”

    리-로버리들이 욕을 걸쭉하게 내뱉었다. 유세현도 지금만큼은 같은 마음이었다.

    완벽하게 적을 갈아 죽인 기계괴물의 엉덩이에서 흰 가루가 뿜어져 나와 지면위로 쏟아졌다.

    지면에 발을 쓱 문댄 유세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지금 이 주위에는 흰 가루가 잔뜩 깔려있었는데 전부 누군가의 유골이라는 의미였기 때문.

    ‘이 정도의 범위를 완전히 덮을 정도라니...’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이가 여기서 죽어나갔다는 것인가.

    위이잉-

    갸갸갹-

    놈은 곧바로 타겟을 바꿔 일행을 향해 돌격해왔다. 유세현과 리-로버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우리가 놈을 붙잡고 있겠다. 그 안에 썰어버려라!”

    “알았다.”

    이정도면 없던 정도 생길 만한 상황.

    “하압!”

    옆을 잡은 유세현의 검에 의해 괴물의 긴 몸뚱어리가 반으로 잘렸지만, 놈은 작동을 중지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신체를 변형시켜 또 하나의 입을 만들더니 반격을 가해왔다.

    그때.

    푹-

    적의 몸을 꿰뚫는 김주희와 이강호의 창.

    리-로버리들이 놈을 잘게 잘게 조각낸 순간이었다.

    땅에서 기계괴수 2마리가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체력방전이건만...

    뒤로 잠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남은 수는 대응 뿐.

    “후우...방금 전과 똑같이 가도록 하지.”

    “좋다.”

    그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저편에서 화살이 날아오더니 괴물의 두터운 갑주를 꿰뚫었다.

    콰아앙!

    연이은 폭발.

    “크윽!”

    후폭풍으로 일행이 밀려날 정도의 강한 위력이었다.

    새까맣게 탄 두 괴물.

    -캬갹...갸갸갸

    회로가 꼬이기라도 한듯 몸을 덜덜 떨던 기계괴물은 이내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두 종족의 시선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하자, 썩은 고목사이에서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 무척 흡사한 모습.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미적 기준으로 바라봤을 때 인간보다 훨씬 아름다운 존재였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커다란 눈망울.

    흰 피부에 기다란 귀.

    판도라 상위 포식자인...

    “엘프로군.”

    달퓨스의 말에 나머지 리-로버리들이 인상을 굳혔다.

    “긴장하지 마라. 죽일 생각이었다면 우리를 쐈을 거다.”

    두 엘프는 남녀로 성별이 각각 달랐는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남성 엘프가 이에 답했다.

    “바로 맞혔다.”

    그것에 반응한 건 달퓨스가 아닌, 유세현이었다.

    귀가 좋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만, 무척이나 먼 거리였다.

    게다가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일 줄이야.

    “상황판단이 빨라서 정말 좋군.”

    “구해준 이유를 말해봐라.”

    “간단한 이유다. 너희도 이 던전을 경험했으니 알겠지만 이 던전은 예사 던전이 아니다. 우리들로서도...”

    즉, 본인들의 힘만으로는 탈출은 힘들다는 것.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허...당신들조차도?”

    “인정하긴 싫지만 그게 현실이다. 참여하겠나?”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나?”

    “있지. 거절한다 해도 죽일 생각은 없다. 어차피 출구는 하나뿐이거든. 하지만 너희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기에 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달퓨스가 유세현을 쳐다봤다.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는데, 달퓨스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인 것 같았다.

    확실히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다.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세현이 말했다.

    “부당한 요구를 해온다면 바로 떠나겠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임시 동맹 성립.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해주도록 하지.”

    엘프가 몸을 날렸고, 그 뒤를 두 종족이 뒤따랐다.

    < 기억의 던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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