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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22화 (322/612)
  • < 언더월드(2) >

    “이번에도 도울 것이냐.”

    티탄족 장군이 물었다.

    거대한 강물에 자연스레 흘러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일행은 일단 정중히 돌려 거절했다.

    “미안하다. 우리도 빨리 처리해야 되는 급한 일이 있어서...”

    물론, 완전하게 거절한 것은 아니라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들은 이 장소에서는 든든한 백이 되어줄 수도 있었고, 추후 잘만 이용한다면 상상하지 못할 이득을 볼 여지도 있었기 때문.

    사실 거절이라기보다는 살짝 뒤로 미룬다는 느낌이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이만 가보겠다.”

    쿵-쿵-

    그들은 이내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우리도 출발할까.”

    일행도 이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암살자 같이 습격을 가하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이 종족을 피하고.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에 심력소모가 엄청났지만, 유세현은 제법 할만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일행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심력소모는 알베타스를 상대할 때가 훨씬 심했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쯧, 그때 어떻게든 처리했어야 했는데.’

    암벽을 기어오르자, 아무것도 없는 확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이강호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일정 부분을 지나자 손끝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강호의 입술이 살짝 호선을 그렸다.

    다사다난했지만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불가침 영역 안으로 들어가자, 상상할 수 없는 열기가 그들을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치이익-

    갑주가 붉게 변하며 타오르기 시작하고 피부에 눌러 붙는다.

    “윽.”

    밀려오는 고통에 인원들은 방어구를 하나 둘 벗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이 걸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방어 능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얇은 속옷 말고는 없었다.

    루시아의 시선이 유세현을 흘끔 향했다.

    장비가 파손되는 바람에 맨살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벗어서 그런 것일까?

    사뭇 부끄러운 표정.

    반면, 김주희는 무척 당당했다. 아퀼라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다.

    김주희가 손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와...뭔 놈의 온도가...”

    온도는 신전에 다가갈수록 더욱 올라갔다.

    김주희가 빙공을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빙공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설정 때문일 것이 분명하기에 별로 큰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아무쪼록 대응 수단이 없는 건 그야말로 최악.

    마침내 신전의 문 앞에 선 이들이 힘껏 문을 열어 재꼈다.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이강호도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둘러보자. 힌트가 있을 지도 몰라.”

    일행은 신전을 살피기 시작했다. 신전이 워낙 거대했기에 한쪽을 둘러보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됐다.

    “후우...후우...”

    점점 빠르게 지쳐가는 일행.

    “잠깐 바깥에서 쉬다와.”

    “아니에요 선배. 빨리 찾아야죠.”

    김주희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휴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루시아에게 밀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꼭 찾아내서 유세현에게 칭찬받으리라!

    이 속셈을 눈치 챈 루시아도 쉬지 않았다.

    경쟁하듯 바삐 몸을 놀리는 둘.

    하늘은 무심하게도 아퀼라의 편을 들어주었다.

    “오, 잘했어. 아퀼라.”

    유세현이 아퀼라를 칭찬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대번에 시무룩하게 변했다.

    이강호는 피식 웃은 뒤 힌트를 읽어나갔다.

    [거신이 잠들어 있는 땅. 불꽃을 손에 넣은 자만이 신을 알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간결한 내용.

    초등학생 1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문구였다.

    일행은 행여나 힌트가 더 있을까 조사를 계속했지만 아쉽게도 힌트는 없었다.

    이윽고 장소를 빠져나온 일행.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거신이 잠들어 있는 땅을 찾아볼지, 아니면 이만 이 장소를 벗어날지.

    본래였다면 위험도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나중을 기약하는 걸 선택했을 터였다.

    허나.

    문구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불꽃을 손에 넣은 자만이 신을 알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서 중요한건 ‘불꽃을 손에 넣은’ 이라는 말 다음에 적혀있는 ‘자만이’ 라는 문구다.

    즉, 불꽃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이강호는 이번에도 신전에 들어갈 수 없다.

    “어떻게 하고 싶냐 강호야.”

    “흐음...”

    평소 망설임 없는 모습을 보여주던 이강호도 이번만큼은 엄청난 갈등을 했다.

    이강호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그의 강함이 떠오른다.

    천마신공 때문이기도 했지만 특수특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세현은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나도 무조건 얻어야 한다.’

    갈등에 휩싸이게 한 조건이지만, 반대로 그 조건 때문에 그는 확신한 상태였다.

    이 신전에서 특수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자신이어야 한다.

    의견을 밝히자 유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야, 그럼 걔네들한테 물어보자.”

    “걔네들?”

    유세현의 입이 움직였다.

    [티탄.]

    “홈 그라운드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

    “확실히...”

    일행은 방향을 잡았다.

    목표지점은 티탄족이 위치해 있는 장소!

    그들은 이번에도 강한 적과 마주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앙!

    그들의 앞으로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그건 기습이었다.

    후웅-

    콰아앙!

    “꺅!”

    김주희가 내뱉은 단말마의 비명에 유세현의 시선이 한순간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어느새 적 3명이 공격을 감행해오고 있었기 때문!

    습격을 가해온 놈들의 키는 5m로 거대했다.

    마족화를 사용한 유세현이 간신히 받아 쳐내자 날카롭게 변한 16개의 눈알이 그를 노려봤다.

    목 부분에 달려있는 입이 움직이며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단하군...이걸 방어 해내다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어 진짜 놀란 모습은 아니었다.

    ‘젠장.’

    현재, 눈앞에 있는 놈들은 일전 한번 조우한 적 있는 종족이었다.

    데오폴론에 의해 만들어진 라스트 존.

    놈들은 그곳에서 지배자의 힘을 유지시켜주는 던전의 가디언들로 등장했었다.

    강탈종족, 리-로버리.

    암흑투기가 발현되지 않는다.

    무려 레전더리 C랭크나 되는 스킬을 뺏어간 것이다.

    그 외 루시아, 이강호, 김주희, 아퀼라도 레어나 유니크 급 스킬을 하나씩 빼앗겼다.

    그는 재빨리 적의 수를 살폈다.

    11명.

    열세였다.

    다가온 리-로버리 한 마리가 유세현을 육중한 대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사방에서 들어오는 연계공격!

    유세현은 여지없이 받아냈다.

    허나, 반격을 취할 수는 없었다.

    유세현이 상대하고 있는 자들 중 놈들의 리더가 있었는데, 놈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의 시선이 다시 일행에게 향했다.

    일행은 현재 암흑투기 때문에 신체능력이 약간 저하된 상태였다.

    놈들의 마력이 어둠의 마력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어둠의 마력이었다면 순식간에 당했을 수도 있다.

    ‘빠져야 된다.’

    일행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 놨었다.

    마력을 끌어올려 천마군림보를 펼친 유세현이 먼저 루시아를 공격하고 있는 적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아니?”

    갑자기 확 증가된 속도에 경악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킬과 연계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놈들.

    루시아가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아퀼라에게 붙어 있는 놈을 공격했다.

    “이 자식이!”

    이목은 빠르게 유세현에게 집중되었다.

    “저놈부터 처리하자.”

    “그래야겠다. 저놈만 유난히 스텟이 높아.”

    “단번에 끝낸다.”

    유세현을 향해 순식간에 리-로버리가 몰려들었다.

    유세현은 그 순간 신호를 보냈다.

    쉬이익-

    쿠구구구-

    어마어마한 광범위의 검붉은 칼날들이 그들을 덮쳤다. 차마 동료까지 같이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들의 표정이 한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피해라!”

    방어스킬을 펼치며 몸을 날리는 놈들!

    유세현은 이미 궤도를 꺾어 상공으로 치솟아 자리를 이탈한 상태였다.

    “끄아아악.”

    피하지 못 한자도 있었으나, 회피에 성공한 이들은 낙오자를 버려두고 유세현을 뒤쫓기 시작했다.

    도주 방향을 잡기 위해 다급히 마력을 살핀 유세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일행이 더 있는지 적이 더 몰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도 재수 없게 도망치고 있는 방향에서.

    이내 막아서는 리-로버리.

    15마리가 추가 되었다.

    포위된 일행은 등을 맞댔다. 이제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놈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세현이 놈들의 리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호야. 분명 저놈이 내 스킬을 가져갔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이강호가 마력을 전부 끌어올렸다.

    어차피 지속적인 전투는 불가능하니 일격에 숨통을 끊으려는 것!

    “저 외팔의 시꺼먼 놈을 특히 조심해라. 저 중에서 제일 강하다.”

    후웅-

    두 종족이 동시에 움직였다.

    넘실거리는 부패의 어둠이 놈들을 향한다. 이어서 발현된 빙공까지.

    놈들도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희귀한 스킬을 날렸다.

    허나, 우습게도 두 스킬이 맞붙는 일은 없었다.

    덜컥-

    “응?”

    일행과 리-로버리 종족의 표정이 한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대뜸 푹 꺼지는 땅.

    “이게 무슨!”

    쉬이익-

    몸이 낙하한다.

    밑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이런 제기랄!”

    불길함을 느낀 리-로버리와 일행들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힘썼다.

    허나, 물건을 밟아 도약해도, 심지어 천마군림보를 운용해도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함정에 걸린 순간 끝.

    적 리더가 일행을 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너희가 도망치지만 않았어...”

    놈이 음성이 뚝 끊겼다.

    그 이후로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 * *

    쿵-

    “꺅!”

    강한 충격에 김주희가 번쩍 눈을 떴다.

    그녀는 떨어지던 도중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인 것까지 기억하는데 어딘가로 이동된 것이라 판단했다.

    “여긴 대체...”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짚은 그녀가 주위를 살펴보려는데 턱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주희...일단 비킨 다음에 둘러봐라.”

    김주희의 아래에는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한데 엉켜있었다.

    “서, 선배님!”

    당황하여 황급히 몸을 날린 김주희.

    그녀의 시선이 본의 아니게 유세현의 품에 안겨 있는 루시아를 향했다.

    이 상황에서 저것이 부럽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일까?

    귀가 새빨개진 루시아가 다급히 일어나는 것으로 일행은 주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후...함정에 걸린 건가?”

    “그렇겠지.”

    그들이 있는 장소는 흙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방이었는데, 존재하는 것은 허름한 문밖에 없었다.

    다른 출구가 없었기에 일행은 일단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들의 눈에 비치는 광경.

    “아...”

    김주희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내, 찌푸려지는 눈살.

    바깥에는 수없이 많은 계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법칙이 무너졌는지 어떤 계단은 옆으로 서 있기도 했고 어느 것은 대각선으로 늘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는 그들이 열고 나온 것과 똑같이 생긴 문이 존재했다.

    한눈에 봐도 미로.

    상하좌우를 전부 살핀 이강호가 혀를 찼다.

    “안 좋아.”

    흡사 무한대인 것 마냥 공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잘못했다가는 영영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일행은 열고나온 장소로 되돌아갔다.

    혹시나 놓친 게 있나 살펴보기 위함이었는데, 함정에 걸려 들어왔기 때문인지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해가며 알아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바깥으로 나간 그들은 일단 최고 가까이에 있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 언더월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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