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20화 (320/612)
  • < 거점(2) >

    스텟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싸워온 상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단순해.’

    쉬익-

    유세현이 몸을 회전시켜 간쿠라의 발차기를 피함과 동시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그의 발길질은 정확히 놈의 복부를 강타했다.

    빠악-

    “끄윽.”

    완벽하게 흡수하지 못한 충격량에 일그러지는 간쿠라의 인상.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간쿠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대퇴부 근육이 꿀렁이더니 튜브에 바람을 넣듯 부풀어 오른다.

    이 스킬은 스텟을 영구적으로 깎아 일시적으로 각력을 강화시키는 스킬이었다.

    타악-

    밀려난 간쿠라는 어느새 유세현의 앞에 도달해있었다.

    ‘한방...한방만 제대로 맞춘다면 승산은 있다!’

    쉬익-

    그 순간 두 사람의 사이로 흙의 벽이 불쑥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목표물을 놓친 간쿠라의 표정이 한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럴 수가!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딛고 있는 장소부터 시작하여 반경 5m내에 있는 지면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땅은 공격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장애물이 되어 그를 막았다.

    “이까짓 거! 전부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쾅!

    분노에 찬 그의 발길질에 솟아오른 벽이 파괴된다.

    그런데 그 타이밍을 맞춰 이번에는 그의 발이 닿아있는 지면이 융기했다.

    “큭!”

    덕분에 억지로 따라 솟아오르게 된 간쿠라.

    그런 그의 눈에 유세현이 비쳤다. 그의 검은 이미 목 부분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으으으!!”

    간쿠라는 온 힘을 내 가까스로 이를 회피했다.

    허나 그 순간.

    푹-

    날카롭게 벼려진 무엇인가가 간쿠라의 배를 뚫고 나왔다. 당황어린 간쿠라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뒤에서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연이은 공격을 막기 위해 뒤를 살핀 간쿠라의 눈동자가 격렬히 흔들렸다.

    아무도 없다.

    오직 특이하게 생긴 검만이 있을 뿐이었다.

    부여한 마력에 의해 공중을 떠다니며 상대를 노릴 수 있는 무기.

    입자 검, 라 아닐더.

    쉬익-

    거센 바람이 간쿠라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 * *

    “내가 놈들의 적장을 베었다!”

    마력을 담은 유세현의 목소리가 일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메쿠라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이내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당한 인원이 진짜 간쿠라라는 걸 알게 된 그들은 크게 동요했다.

    “가, 간쿠라님이...”

    “큭!”

    그 이후 전투는 손쉬웠다.

    부츠에 묻어있는 피를 닦아 낸 유세현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맴돈다.

    카리우엘과 싸울 때도 느꼈던 것이었지만 공간의 부츠는 생각보다도 더 활용성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단순히 땅을 흔든다거나, 벽을 세울 수도 있지만, 세밀히 컨트롤하면 송곳처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보다 신경을 쓰면 벽을 세우고 거기서 송곳을 튀어나오게 할 수도 있는 것!

    스텟이 스텟이니 만큼, 마땅한 유효타를 가할 수는 없을 터지만 눈 같은 취약부위를 노린다면 상황자체를 보다 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으리라.

    드르륵-

    화산 초입부분으로 진입한 이강호가 특정 바위를 밀자 땅이 갈라지며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호는 황제, 길드장 등 세력의 주가 되는 인원들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무척이나 더웠다.

    또한 통로는 유리벽으로 되어있었는데 마그마가 흐르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점점 더해지는 열기.

    땀이 비오듯 콸콸 흘러내릴 때 쯤 도착한 길 끝에는 10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붉은 돌이 있었다.

    이것이 활화산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메인 중추.

    각인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강호의 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최고권한을 얻으셨습니다.]

    [활화산의 마그마를 일정수준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7일입니다.]

    이강호는 곧바로 한 가지를 조작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화산이 폭주하도록.

    이 지역이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 더 이상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도록.

    처음 각인을 할 때만 설정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전과 같이 사람들이 나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것이 과거의 이강호와 그의 동료들이 짜낸 계책!

    종족이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화산을 제어할 수 있도록 제어권을 푼 이강호는 적당히 꾸며 인원들에게 경고했다.

    “그럼, 2년 밖에 이곳에서 지낼 수 없다는 말인가?”

    “예. 저희와 싸운 종족이 수작을 부려놓은 모양입니다.”

    “이런...”

    황제의 어깨가 늘어진다.

    이것으로 그들은 강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할 터였다.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늘려가겠지.

    이강호는 그 어느 때처럼 절적한 선에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이 화산 위에 발견되지 않은 던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또 이 지역을 넘으면 나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것으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의 영향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강호는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레피아, 남궁시영, 이태광등 일행이 따라 오려 했지만...

    “이번에는 더 소수로 움직이려 합니다.”

    “응? 왜?”

    레피아의 반문.

    이강호는 미리 준비해놨던 대로 의문을 가지지 않도록 최대한 잘 꾸며 그럴싸하게 설명했다.

    레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정보만 얻겠다? 뭐, 확실히 전투만 발생하지 않으면 소수가 움직이는데는 편하지. 근데 그럼 적어도 나는 필요한 거 아니야?”

    “아퀼라가 있어서 괜찮다.”

    “쩝...”

    레피아가 입맛을 다셨다.

    수긍했다는 의미.

    이강호의 팀에 구성된 인원들은 아퀼라와 그가 회귀했다는 것을 아는 유세현, 김주희 뿐이었기에 유세현은 잠시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잘 다녀오게나.”

    “알겠습니다 영감님.”

    “올 때 선물 알지? 난 레전더리 SS랭크 정도 되는 단검 아니면 안 받아.”

    레피아의 장난에 피식 웃은 유세현이 이번에는 루시아의 앞에 섰다.

    루시아는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헤어지기 싫기에.

    이것을 끝으로 영영 못 만나는 건 아닌가 하기에.

    허나, 그녀는 따라가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무공를 배운 이들보다 움직임이 굼뜨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조심히 다녀오세요.”

    “예. 루시아씨도 잘...”

    잠시 대화가 이어진다.

    이강호가 둘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흠...’

    현재 이강호는 루시아를 완벽히 파악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완전 제 2의 유세현이었으니까.

    유세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

    “흐으음...”

    고민이 된다.

    데려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이강호가 일행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지금부터 사람들을 이끌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부터 자신이 보여줄 행보 때문이기도 했다.

    지저의 세계로 가는 법을 단번에 알아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적의 약점을 알고.

    반복되면 반복 될 수로 의문을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여자는...’

    성큼성큼 다가간 이강호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화중에 미안합니다만...루시아씨께서는 아직 저희를 따라오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응? 뭐?”

    먼저 반응한건 루시아 보다도 레피아였다.

    “루시아씨는 왜?”

    “그녀가 있는 편이 더 안정적일 것 같아서.”

    이유는 단순하게 설명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악몽의 힘.

    그건 공격할 때도 좋지만 퇴각할 때도 상당히 쓸모가 많았다.

    “뭐, 그건 그렇지만...에이...됐다. 됐어!”

    스스로의 행동이 집착이라는 걸 인식했는지 레피아는 이내 하던 말을 멈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안색이 밝아진 루시아가 평소 그녀답지 않게 한껏 업 된 목소리로 답했다.

    “예!”

    * * *

    출발.

    거침없이 나아가던 이강호가 시선을 느끼고는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김주희가 한껏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시선이 마주치자.

    “선배니임~?”

    마치 왜 그랬냐는 듯한 말투였다.

    고개도 살짝 꺾어 삐딱함을 표현한 상태.

    이에 구석에서 몰래 탭댄스를 추고 있던 김주희를 회상한 이강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기껏 탭댄스까지 쳤는데 너무한 거 같아?”

    “...그건 또 언제 보셨어요...”

    사실 이강호로서는 못 보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운디네가 물까지 내뿜어 찬란함을 연출했었으니까.

    “야...운디네...”

    “아 뭐 어쩌라고! 너도 좋아 했으면서! 괜히 기분 안 좋다고 나한테 성질부리지 마시지?”

    “......”

    은근슬쩍 갈구는 데 실패한 김주희가 입맛을 쩝 다셨다.

    김주희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평소처럼 되돌아간다.

    대놓고 항의한 그녀였지만, 사실 겉모습만 그러할 뿐 김주희는 루시아가 따라온 것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앞으로 갈 곳은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지역.

    연적이란 걸 제외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으니까.

    “근데 선배님. 저야 뭐 그렇다 쳐도. 선배님이야 말로 괜찮으세요? 여태까지 일부러 밝히지 않으셨던 거잖아요. 루시아씨, 분명 의아하게 생각할 텐데...”

    이강호가 신뢰하는 동료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이유.

    기억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종족이 있다.

    종족명, 델바람.

    최상위 3종족에게는 밀리지만, 티탄족과 비등비등한 상위 포식종족으로 무척 강하다.

    동료들이 놈들에게 당했을 때 자신에 대한 정보가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99.99%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이강호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포획하기 위해 그 어떠한 짓도 마다라지 않으리라.

    당장에 같이 다닐 사람이 없다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인 바에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말하지 않은 편이 이득인 것.

    “괜찮아 상관없어.”

    “예? 질문하면 어떻게 대응하시려고...”

    “아니, 대응은 안 해. 그녀는 절대 묻지 않을 테니까.”

    이강호는 단언했다.

    그리고 그 말처럼 그들이 3개의 지역을 스트레이트로 통과할 때까지도 루시아는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 *

    지하세계, 언더월드.

    이곳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장소였다.

    오직 특수한 장소를 거쳐야지만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장소는 철저히 은폐되어있어 발견하기가 까다롭다.

    장소를 3곳 알고 있으면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우습게도 이강호는 3곳을 훨씬 뛰어넘어 무려 10곳에 달하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최고 가까운 장소는 불과 하루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만, 카리우엘의 말에 따르자면 천족이 점령하고 있기에 패스.

    이강호가 향한 곳은 소수가 활동하기 좋은 미궁이었다.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몬스터가 공략되어있는 건 아닌 상태인지라 일행은 간간히 등장하는 몬스터와 트랩을 피해 나아가야했다.

    1층을 통과하고 2층을 통과하고, 마침내 언더월드와 연결되어 있는 3층에 다다른 일행.

    “여긴 느껴지는 게 아예 없어. 다 쓸어버렸나 본데?”

    “흐음...그래?”

    이강호는 그래도 신중을 기해 움직였다.

    스륵-

    기척이 느껴진다.

    5명은 동시에 멈춰 섰다.

    “마왕이시어, 제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3의 눈이 기척이 있는 장소로 향해 날아갔다.

    제일먼저 비친 것은 벽에 걸려 있는 횃불에 의해 생겨난 그림자였다.

    이내 모퉁이를 돌자 놈의 모습이 완벽하게 수정구슬에 비쳤다.

    일행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쫙 찢어진 입가와 새까만 육체.

    등에 솟아있는 가시와 칼날처럼 생긴 팔.

    흡사 고전공포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과 무척 닮은 놈은, 일행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놈이었다.

    “알비론?”

    < 거점(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