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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15화 (315/612)
  • < 천족(1) >

    지형간섭은 근접전을 훨씬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능력이다.

    게다가 고위 방어술식.

    이건 목숨 하나가 추가 된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차원이 다른 보상에 주위 사람들이 감탄을 극치 못했다.

    스토크와 스토르 벤들의 얼굴은 어느새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있는 시기와 동요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 와중 유세현이 대뜸 일행을 향해 말했다.

    “전 부츠가 가지고 싶습니다만...여러분들께서는 어떤 걸 가지고 싶으신가요?”

    “응?”

    “예?”

    그 말에 이강호를 포함한 인원들의 고개가 한 순간 갸웃 꺾였다.

    왜 저런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스스로가 사용할 아이템인데 자신들이 어떤 걸 가지고 싶은지 왜 물어본단 말인가.

    짧은 적막이 흐른다.

    제일 먼저 반응한 이는 이강호였다.

    ‘맞아...이런 놈이었지.’

    이어서 김주희와 루시아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김주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그 아이템은 선배님 거예요. 그러니 선배님이 마음에 드는 걸로 선택하세요.”

    “응?”

    비로소 깨달은 다른 인원들 또한 이구동성이 되어 말했다.

    “그건 세현씨 것이 맞아요.”

    “그래 맞아. 너가 공략법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다 죽었을 거야.”

    “......”

    유세현은 잠시 일행 모두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힘으로는 절대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이 눈치 챈 덕분이긴 했다.

    허나, 거기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준 덕분이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유세현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세현이 찝찝한 얼굴을 하자, 이강호가 말했다.

    “세현아. 이건 무조건적으로 네가 가져야 되는 아이템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전투로 인해 힘과 민첩 스텟이 S랭크 중간궤도에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채우지 못한 스텟이 많았고 이 판도라 내부에는 이를 훨씬 웃도는 괴물이 드글드글했다.

    그러니 어떤 존재가 와도 처리할 수 있는 든든한 강자가 필요하다.

    본래라면 이강호 스스로가 맡았을 역할이지만...

    이태광이 유세현을 향해 어깨동무를 꽉 걸쳤다.

    “하하하!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동생!”

    “...그럼 고마운 마음으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은 다시 한 번 아이템을 신중히 살폈다.

    상의와 하의는 일종의 세트 아이템이었는데 두 개를 전부 착용하고 있으면, 공간왜곡 스킬을 포함하여 다양한 스킬의 발현이 가능했다.

    즉 반대로 말하자면 한 개만 착용하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제한적이라는 뜻.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고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장비가 전부 아르틸리스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만큼, 갑옷의 순수 방어력은 면적이 적은 부츠에 비해 훨씬 높으니까.

    게다가 이 아이템은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관절부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아 자유로운 움직임 또한 가능했다.

    뛰어난 스킬에 낮은 방어력이냐, 아니면 뛰어난 방어력에 살짝 낮은 스킬이냐...

    천마의 검법은 애초부터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검술이다.

    ‘역시 이게 났겠군...’

    유세현이 부츠를 가리켰다.

    “이걸 갖겠다.”

    “흠...그걸 선택하다니...보는 눈도 무척 뛰어나군.”

    입맛을 쩝 다신 알테라그가 손가락을 다시 한 번 튕기자 유세현의 앞에 부츠가 놓여졌다.

    유세현은 곧바로 시승식...아니, 착용식을 가졌다.

    후훅-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여보는 유세현.

    그런 그가 받은 느낌은 무척이나 간단명료했다.

    ‘가볍다.’

    방어력이 높은 장비를 착용할수록 무게는 증가한다.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그들 초차도 무거움을 느낄 정도로.

    그리고 이는 당연히 살짝이나마 움직임을 굼뜨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판도라에 들어온 무인들이 무복이나 가죽종류의 아이템을 고집하는 이유다.

    “선배님 어때요? 느낌 괜찮아요?”

    허나, 이 부츠에서는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신고 있지 않은 감각.

    충격을 얼마나 흡수하는 지도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적이 보고 있기에 유세현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선택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일부 까발려지기는 했으나, 세밀한 부분까지 알려주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응, 좋네.”

    유세현이 간결하게 답하자, 기다려 주고 있던 알테라그가 입을 열었다.

    “거래는 이것으로 끝이 났군.”

    “그렇지.”

    “혹시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나? 나를 쓰러트리면 비보를 전부 가져갈 수 있는데.”

    유세현은 그 어처구니없는 농담에 피식 웃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후후, 그건 그렇지.”

    알테라그가 잠시 유세현을 지그시 응시했다.

    새삼 여러 감정이 섞여있는 묘한 표정이었다.

    “유세현,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이 성에서 나가줘야겠다.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

    “...잠시 있다 가면 안 되는 건가?”

    동료의 회복을 위해서였다.

    허나.

    “이곳은 곧 전장이 될 거다. 휘말릴게 분명하다.”

    알테라그가 특정 기둥에 손을 대자 장식되어있던 벽이 돌아가며 포탈게이트가 나타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일행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들이 단숨에 뛰어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잠깐!”

    알테라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듯 바닥을 긁으며 일제히 멈춰서는 두 종족.

    왜 불렀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다가온 알테라그가 대뜸 유세현과 스토크를 향해 특수하게 생긴 팔찌를 내밀었다.

    “미처 못 건넬 뻔했군.”

    “이건...”

    아이템명: 신뢰의 팔찌.

    등급: 에픽 [F Rank]

    상세정보: 티탄족 최강의 왕 알그하브가 직접 각인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특수한 팔찌입니다.

    티탄족에게 제시할 시 공격받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다.

    알그하브가 통치하는 서력 1400~1900년까지만 유효합니다.

    “이게 있으면 우리 종족을 만나더라도 쓰잘데 없는 싸움을 피할 수 있을 거다.”

    “...고맙다.”

    유세현이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팔찌를 집어 들었다.

    스토크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현재 눈치가 빠른 둘은 묘한 위화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걸 왜 주는 거지?’

    던전 공략은 끝났다.

    본래 있던 세계, 판도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이 팔찌는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쓸모 짝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다시 한 번 살피는 유세현의 눈동자에 명시 되어있는 등급이 또렷하게 비쳤다.

    랭크는 낮지만 무려 에픽.

    ‘설마?’

    물이 샘솟듯 유세현의 뇌리 속에 이와 같은 등급, 같은 랭크의 아이템이 불쑥 떠올랐다.

    리체에게서 회수한 기억의 펜던트.

    그것은 유적을 열기위한 메인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강호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유세현과 스토크가 거의 동시에 팔찌를 착용했다.

    “잘 가라. 유세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원하겠다.”

    “...잘 있어라. 알테라그.”

    쉬이익-

    그것으로 성 공략은 정말 막을 내렸다.

    * * *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건조한 공기가 판도라로 돌아왔음을 알려준다.

    스토르 벤과 일행은 스톤리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남은 마력을 사용해 암흑투기를 전력으로 운용한 유세현이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향해 곧장 몸을 날리며 외쳤다.

    “강호야,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넌 빨리 부상자들을 데리고 이탈해! F-1 지점에서 만나자!”

    “알았다!”

    타다닥-

    빠르게 멀어져가는 동료.

    허나, 스토르 벤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몸을 돌리는 그들.

    거리를 보고 깔끔하게 포기한 것이다.

    “이번에는 당했지만...다음에는 각오해야 될 거다.”

    스토크의 그 말을 끝으로 놈들은 암석 저편으로 완전히 감추었다.

    유세현이 주먹을 쥐었다.

    다음이라...

    뒤쫓는다면 몇 놈을 처리할 수 있을 터였지만, 어떤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기에 유세현도 이만 몸을 돌려 자리를 이탈했다.

    * * *

    “내 생각은 이런데...어때? 뭐 좀 걸리는 게 있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돌아가는 와중 내뱉은 유세현의 말에 이강호는 한껏 생각에 잠겼다.

    고심하던 이강호가 이내 조심스레 말했다.

    “있긴 있어.”

    “오, 정말?”

    “응.”

    판도라 내부에 존재하는 1번부터 6번까지의 유적.

    그가 알기로 그중에서 3번 유적은 티탄족과 관련된 유적이었다.

    “그러니 분명 관련이 있다면 3번 유적일 텐데...”

    “그런데?”

    “사실 그 외의 내용은 나도 잘 몰라.”

    당시, 인간 세력은 너무 내부로 늦게 진입하여 이미 3번 유적은 클리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사를 했지만 이마저도 가까스로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살짝 덧붙이자면 그곳에서 조각을 얻은 자는 천족의 신, 오르엠이었다.

    “신? 왕도 아니고 신이라고?”

    “아...천사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지 신이라고 해봤자 우리와 같은 생명체니 너무 놀라지 마라. 그리고 진정한 신은...”

    이강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과 땅, 그리고 마력.

    모든 걸 지배하는 놈, 아니 놈들은 그저 지켜만 볼 뿐 절대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유세현이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셨다.

    그러다가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런데 용케 이런 것까지 기억하네.”

    “...이건 무조건 기억해야 되는 거야.”

    이강호는 다른 것은 까먹더라도 판도라 내부, 신물 조각이 잠들어있는 유적에 대한 정보만큼은 하나도 잊지 않기 위해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그리고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종족의 수만큼 신물 조각이 존재하는 외부와는 다르게, 내부의 신물 조각은 종족의 수와는 별개로 1번부터 6번까지 딱 6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야...그럼...”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12개의 조각을 전부 모으기 위해서는 정해져있는 유적을 클리어하고, 각 번호의 조각을 소지하고 있는 자를 처치해야만 했다.

    “정말 지랄 맞네...”

    “그렇지.”

    “후...”

    유세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에 이강호는 웃어넘겼다.

    “그래서 강호야. 다음 계획은?”

    “일단 이 지역을 벗어 날거야.”

    체력을 앗아가는 폭풍이 존재하는 사막은 인간이 있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야 던전 공략 때문에 있었던 것이지만 볼일은 끝났다.

    “어디로 갈 거야?”

    “북동쪽으로 사막을 빠져 나가면 설산 지역이 나와.”

    “설산?”

    “응. 그곳에도 알아놓은 던전이 있어. 그리 강한 던전은 아니지만 스텟을 올리기에는 충분한 장소지.”

    “오호...그런데 거기 내 저항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좀 걱정 되는데...”

    “너 냉기저항력이 어떻게 되는데?”

    “B랭크 70%.”

    “......”

    유세현의 답에, 이강호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마치 왜 그 정도 밖에 안 되냐는 표정.

    “야 이 자식아! 눈떠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 있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큭큭큭, 알고 있어. 그냥 한 번 해본거야 짜샤. 그리고 사실 그곳의 냉기는 저항력과는 별개로 작용해서 그냥은 절대 못 버텨.”

    “그럼?”

    “당연히 다른 수를 쓰지. 보통은 한파가 약한 외곽 지역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가죽을 망토로 만들어 입어. 그럼 한기를 좀 누그러트릴 수 있거든.”

    “몬스터? 크기가 어느 정도인데? 커?”

    “아니.”

    “흠...병력들 전부 데리고 갈 거 아니야? 몬스터가 많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상관없어?”

    “물론, 상관있지. 그러니깐...”

    이강호의 눈동자가 한순간 번쩍 빛났다.

    “문지기를 잡을 거야.”

    < 천족(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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