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06화 (306/612)
  • < 알그하브의 부츠(1) >

    곧바로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동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흡사 아기가 잠에서 깨지 않게 움직일 때와 같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으며,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분위기.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그들은 마물을 제외한 그 어떤 적과도 마주치는 일 없이 대량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숨겨진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부 이강호의 의도대로였지만 이를 알 리가 없던 인원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환호했다.

    “후우...정말 운이 좋았군.”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놈들이 이곳을 파악하고 있는 경우의 수도 있으니...”

    황제의 말에 이강호가 말했다.

    훗날에 발견되는 비밀공간인 만큼 적이 이곳을 알리는 없었지만, 사람은 긴박해야 더 잘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수색대가 구성되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던전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주위 마물의 수준과, 지형지물 파악, 적 세력의 분포도를 살피는 것이 주 임무였다.

    마법장비, 스킬,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모조리 동원되었다.

    그렇게 15일.

    아주 약간이나마 상황을 파악하는데 성공한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들이 위치해 있는 장소가 그들을 덮친 종족 [스토르 벤]과 추후 스토르 벤과 마찬가지로 3개의 세력 안에 들게 되는 [스콜프스]의 중간지점으로 추측되기 때문이었다.

    놈들도 서로 견제를 할 터이니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

    이강호는 곧바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황제, 문파의 수장, 길드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한다.

    “지금부터는 놈들의 눈을 피해 던전 탐색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강호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었다.

    또한 알고 있다고 한들 대놓고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힌트를 토대로 직접 찾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인간세력 중에서는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정예 중에 최정예다.

    첫 던전의 발견자는 눈썰미 좋은 무인이었다.

    트드득-

    암석이 갈라지며 입구가 드러난다.

    정보를 살펴보니 3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던전이었다.

    사람들이 부러운 눈이 되었다.

    지금까지 해온 룰에 따르자면 발견한 사람이 던전에 들어갈 우선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리고 무력에 대한 집착이 심한 무인이 지금까지 그들에게 양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나.

    무인이 이강호에게 다가와 말했다.

    “강호공이 알려준 정보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던 던전이오. 그러니 인원분배도 강호공이 정해주면 좋겠소.”

    이에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무인의 처사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인간은 하나로 뭉쳐야 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배려였다.

    ‘이전 전투에서 제대로 자극을 받은 모양이군.’

    인원을 분배했다.

    무림인 1천 명, 길드원 500 명, 제국군 1천 500명.

    비율을 고려하자면 무림인이 가장 많았지만, 이는 찾은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보상은 중요하다.

    이건 이 험악한 세계에서 사람에게 활기를 선사해주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 였으니까.

    “그럼, 갔다 오겠소.”

    인원들이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사라들은 그 이후 눈에 불을 켜고 던전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추가로 발견된 또 하나의 던전.

    황제는 이강호를 극찬했다.

    “허허, 자네가 없었다면 어땠을지...정말 자네는 진정 영웅일세.”

    사람들 또한 이강호를 흡사 위인과 같은 존경 어린...아니, 그 이상의 모습으로 바라봤다.

    여성 대리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고.

    그야말로 백마탄 왕자님을 볼 때와 같은 푹 빠진 표정.

    다가온 유세현이 이강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아주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구만?”

    다분한 장난에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왜, 부럽냐?”

    “에이, 설마.”

    “흠...니 표정을 보면 아닌 거 같은데...이거 어두운 날 길가다가 뒤통수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큭! 조심해 그러다가 정말로 뒤통수 맞고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있어.”

    어릴 때부터 계속 함께 해왔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었다고 한들, 평소 분위기상 그 누구도 이강호에게 이런 장난을 걸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세현도 동일했다.

    아니, 딱 한 명 있긴 있다.

    “호호호! 탁월한 미모를 가진 미인이 항상 옆에 붙어 있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죠! 안 그런가요?”

    김주희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치켜세우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 미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었지만...

    그때였다.

    아퀼라가 김주희의 옆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확 비교되는 몸매와 얼굴.

    순간적으로 아퀼라를 흘끔 살핀 김주희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야...너 저리로 좀 가...”

    “왜?”

    “아니, 가라면 제발 그냥 좀 가라...”

    그 행동을 하는 김주희는 정말 다급해보였다.

    유세현이 살짝 실소를 터트리자, 김주희는 아퀼라를 흡사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정작 아퀼라는 김주희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어느새 또 해가 지고 있었다.

    * * *

    3번째 던전이 발견되었다.

    안정화가 되가는 만큼, 이강호는 이쯤에서 슬슬 움직일 생각을 가졌다.

    이에 황제와 길드의 지휘관들은 극구 말렸다.

    왜냐하면 이강호가 가려는 곳은 적진 깊숙한 곳이었기 때문.

    행여나 잘못된다면...

    “꼭 지금 가야겠는가? 던전에 들어간 인원들이 돌아오면 그때 함께 나아가도 되지 않는가.”

    “아뇨,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강호는 무척 단호했다.

    사람들은 이쯤 되면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판도라 외부에서도 항상 행방이 묘연하던 그 아닌가.

    “후...알겠네. 몸조심하게.”

    “예.”

    이강호는 팀을 소집했다.

    루시아부터 시작하여 레피아, 남궁시영, 유혜인, 아린, 등등.

    이종족을 상대하며 지금까지 한 번씩은 함께 모험을 한 최강의 동료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들과 모험을 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 아니었다.

    이들을 모은 것은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같은 난이도의 던전을 몇 천 명이서 들어가는 것과, 소수로 들어가는 건 그 갭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니까.

    모래바람을 막아줄 천을 얼굴에 덮은 이강호가 말했다.

    “다됐으면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아퀼라의 제 3의 눈, 유세현의 마력탐지, 아린의 마나스캔, 그리고 레피아의 잠영술은 무척 뛰어나 안전하면서도 꽤나 빠르게 길을 헤쳐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지 8일째 되는 날.

    투두두두두-

    그들은 특수한 지역에 도달한 상태였다.

    말라버린 거대 수로와도 비슷한 지형.

    산 정상에서부터 쭉 이어져있는 그 틈 안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돌이 계속해서 굴러가고 있었다.

    돌이 365일 내내 물처럼 계속 끝없이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

    스톤리버(stone river).

    “허...이딴 곳이 있어? 젠장 정말 판도라는...”

    레피아가 혀를 찼다.

    불타버린 땅까지 밟아본 그녀였지만, 설마 설마 돌이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장소가 존재하리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상상력 부족일 수도 있지만, 아무쪼록 쇼크는 쇼크.

    그와 중 특정 장소를 살핀 이강호의 눈에는 이채가 어렸다.

    왜냐하면.

    ‘역시 아직 클리어 되지 않았다.’

    이곳이야 말로 이강호가 그들을 데려오고 싶었던 장소였다.

    언제 공략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회귀 전 이벨린이 조사한 바에 따르자면 이 던전은 상당히 희귀종에 속하는 던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들어가는 방법도, 발견도 까다롭다.

    보상은?

    말하지 않아도 쏠쏠할 것이다.

    레피아가 물었다.

    “여기 건너갈 거야?”

    “그럴 생각이다.”

    “알았어. 그럼 살펴보고 올게.”

    아무것도 모르는 레피아가 그림자 속으로 쏙 자취를 감춰 강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강호가 옆에 있는 유세현에게만 슬쩍 미리 일러주려 한 순간이었다.

    “야 강호야.”

    “응?”

    “레피아씨 오면 바로 들어갈 거지?”

    이강호의 고개가 한순간 갸웃 꺾였다.

    자신이 유세현에게 전부 이야기 해줬던가?

    그는 기억을 되짚었다.

    그 당시 주위에 사람이 많아 던전에 들어갈 거라는 말만 꺼냈을 뿐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단순한 감?

    ‘아니 그럴 리가...’

    유세현의 성격을 알고 있는 이강호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유세현이 그 말에 정면을 응시했다.

    뚜렷하게 보인다.

    뒤틀려있는 마력이.

    “보인다고? 아...”

    이강호는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러고 보면 유세현은 마력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었다.

    근데 그 능력으로 던전 유무까지 파악이 가능하다니.

    마력을 볼 수 있는 이는 과거를 포함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례가 없었기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강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집중해야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자신의 정보로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

    “어떻게 구동하는지도 마력으로 알 수 있을 거 같아?”

    “글쎄...”

    기억을 되짚던 유세현의 뇌리 속에 3존 리-로버리의 실험실에 들어갈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마력형식이 이것과 무척 비슷했었다.

    ‘분명...절벽에 있는 특수한 부분을 눌렀더니 통로가 나타났었지.’

    “특정 부분을 누르는 거 아니야?”

    이강호는 박수를 칠 뻔했다.

    맞다.

    정답이다.

    굴러 떨어지고 있는 저 무수히 많은 돌은 사실 전부 패턴이 존재했다.

    돌이 구르면서 땅을 전부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대로 닿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때문에 과거 이벨린은 이 던전의 발견이 정말 우연히 이루어 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마침내 레피아가 돌아왔다.

    “흠...다리 같은 건 없어. 아니 애초에 돌덩이들 때문에 다리가 있을 수 없는 구조야.”

    “뛰어서 건너야 된다는 거군.”

    “응.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여기까지 하는 게 어때? 일직선으로 너무 멀리까지 왔어. 돌아가면서 던전을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이곳만 건너보도록 하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이야.”

    “흠...그래? 뭐 그렇다면야...”

    이강호의 지휘에 따라 두 명씩 짝을 지었다.

    나머지는 전부 주위 경계.

    이강호가 유세현에게 툭 말했다.

    “네가 한 번 눌러 볼래?”

    유세현은 이강호가 이런 말은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이다.

    “오케이.”

    먼저 레피아와 이태광이 건넜다.

    이어서 김주희와 유혜인.

    마침 유세현과 루시아의 차례가 온 순간이었다.

    유세현은 굳이 직접 돌 속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미리 들고 있던 돌멩이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지면을 향해 내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돌멩이는 정확히 장치를 가격했다.

    터엉!

    한 순간에 푹 꺼지는 땅의 일부분.

    그 틈으로 작은 돌덩이들이 우르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강 옆으로 비밀의 문이 열리듯 지면이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

    레피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 이거 뭐야? 알고 있었어?”

    “아뇨.”

    “그럼 어떻게...”

    “감입니다. 그냥 이상하게 느껴져서 시험 삼아 한 번 던져봤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동그랗게 변해 유세현을 바라봤지만 하지만 딱히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 유세현의 괴물 같은 감지능력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

    < 알그하브의 부츠(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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