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03화 (303/612)
  • < 외부의 끝(4) >

    트드득-

    트드드드득-

    먼저 제일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몸집이었다.

    놈은 이전에 비해 대략 1.5배 정도 몸이 부풀어 올랐는데 드래곤의 본체처럼 거대화를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비늘의 두터움으로 보나 선명도로 보나 드래곤 특유의 신체적 특징이 한 층 더 강화된 것은 틀림없었다.

    이전의 놈의 변화가 드래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아 볼 정도였다면 지금은 완전한 반룡화를 이룬 느낌!

    그리고 그것과는 독자적으로 휘날리는 기다란 갈퀴.

    털의 색이 점점 변화한다.

    레드드래곤 특유의 붉은빛에서 본래의 빛깔인 푸른빛으로.

    트루크가 입을 쫙 벌렸다.

    “그아아아아아아!!”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

    이건 단순한 고성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가 두려워하는, 생명체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만이 내뱉을 수 있는 권위.

    [드래곤 피어.]

    울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자 호신강기가 약해져 있던 무인들의 육신이 일순간 흔들렸다.

    “크윽...이게 뭔...”

    무공의 증진을 위하여, 평생 정신수양을 하며 살아온 그들조차도 처음 겪는 이것을 완벽히 견뎌내진 못한 것이다.

    물론.

    유세현과 이강호, 두 사람은 그들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미 코앞까지 거리를 좁힌 두 사람!

    각각 좌측, 우측에 위치해 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검과 창을 내질러 트루크의 목을 노렸다.

    허무하고 자시고를 떠나 둘 중에 한 명만 성공해도 전투는 끝.

    하지만.

    “크하아압!”

    순간적으로 반응한 트루크는 도끼를 쥐고 있던 오른손으로는 이강호의 창을, 아무것도 없는 왼손으로는 주먹을 쥐어 유세현의 검을 받아쳤다.

    챙!

    지이익-

    무려 레전더리 등급까지 오른 루베르크가 두꺼운 비늘을 뚫고 주먹을 갈랐지만 안타깝게도 목까지 다다를 수는 없었다.

    쉬익-

    트루크가 잽싸게 몸을 내뺐다.

    드래곤 피어가 통하지 않아 놀랄 법도 하건만, 통달했는지 그의 얼굴은 딱히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살짝 고개를 내린 놈이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익-

    트루크의 신형의 한순간 공간에서 자취를 감췄다.

    텔레포트? 블링크?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빠르다!!’

    너무 빨라 대다수의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일 뿐.

    트루크가 먼저 노린 이는 약간 더 앞에 나와 있던 유세현이었다.

    잽싸게 반응한 유세현은 특유의 몸놀림을 선보이며 놈의 도끼를 회피했다.

    하지만 그때.

    쉬이익-

    날아오는 왼손 펀치.

    그건 유세현을 포함한 이강호 또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본래라면 1초는 더 걸릴 재생이었다. 그런데 현재 놈의 주먹은 완전히 복구되어 있었다.

    즉, 이는 재생력도 더 높아졌다는 뜻.

    퍼엉!

    루베르크의 검등과 왼팔이 맞부딪치며 어마어마한 파공성을 불러 일으켰다.

    쉬이익-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는 유세현.

    황급히 자세를 다잡은 유세현이 지끈거리는 팔의 통증에 인상을 살짝 구겼다.

    힘도, 스피드도, 재생도, 내구력도, 모든 것이 한 층 더 상승했다.

    이젠 단순 스텟으로는 그 무엇도 놈을 따라갈 수 없었다.

    ‘제길...’

    그리고 이는 곧 이강호의 위기를 의미했다.

    “이강호! 물러나!”

    단순히 실력만으로 커버하기에는 스텟의 갭 차이가 너무나도 많이 벌어졌기 때문.

    챙!

    터엉!

    이강호의 팔이 한순간 튕겨져 나가자 트루크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분한가? 실력 때문이 아닌, 스텟 하나 때문에 압도당하는 것이!!”

    콰아앙-

    “크으...”

    이강호은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서, 정말 오랜만에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러지 않았다면 도끼에 두 동강이 났을 터다.

    빈틈이 많아지는 회피기술이기에 주위에 적이라도 있었다면 엄청난 위기였겠지만, 다행히도 넓어진 트루크의 공격범위 때문에 적도 일정거리 이상 물러 난 상태였기에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주르륵-

    찢겨나간 이마에 피가 흘러내린다.

    그것은 순식간에 이강호의 왼쪽 눈꺼풀을 감쌌다.

    이강호는 황급히 손을 들어 피를 훔쳤다.

    양쪽 눈을 전부사용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그야말로 설상가상.

    ‘이젠 정말 한 방 밖에 없다.’

    마력의 손해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부의 강한 몬스터를 잡으면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으니까.

    채앵!

    어느 샌가 다가가 버티어 주고 있던 유세현이 살짝 몸을 빼 이강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강호야!”

    “그래...한 방뿐이다.”

    “크크크! 뭘 그렇게 조잘조잘 거리고 있는 거지? 이제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죽는 일밖에 없다!”

    후웅!

    슈슈슈슈슉!

    치직-

    빗겨간 유세현의 몸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이어서 도끼는 이강호의 얼굴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곡예를 펼치는 두 사람.

    그중에서도 유세현은 이강호를 위해 조금 더 많은 동작을 취하며, 빈틈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나.

    퍼억-

    이강호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트루크의 주먹.

    우득-

    우드득-

    저항력을 관통하여 보통의 인원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고통이 들이 닥쳤지만, 기절하기에는 이강호는 너무나도 많은 산전수전을 겪은 인물이었다.

    그저 표정만 굳힐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차 움직이자 트루크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크크크!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구나! 하지만 그래봤자 몸은 정직하지!”

    그리고 그 말은 전혀 틀리지 않는 것이었다.

    충격으로 인해 이강호는 몸놀림이 살짝 느려졌다.

    유세현은 어떻게 해야 될 지 생각했다.

    떠오르는 것은 역시 한 가지 뿐이었다.

    [마력재생]

    두근-

    생각하기 무섭게 마심원이 경고를 보낸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사용해봤자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남은 마력은 9%.

    그리고 천마혈사장은 최소 5%, 천마광룡참은 7%는 부어야 운용이 가능했다.

    이강호와 함께 놈을 마무리를 할 때 써야하는 것이기에 다른 스킬을 사용할 여유는 없는 것!

    ‘하지만 이대로 대치해 봤자...’

    경각심이 하늘에 달한 놈에게서 빈틈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그리고 유세현에게는 언제까지도 대치를 계속하며 빈틈을 노릴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때였다.

    유세현이 자꾸 회피하는 것이 짜증났는지 트루크가 도끼를 하늘위로 치켜세웠다.

    “끝을 내주마! 인간들아! 이것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해 봐라!”

    지이이잉-

    푸른빛의 광명이 터져 나온다.

    쿠구구구!

    동시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그 의지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대지가 공명하며 요동쳤다.

    병사들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저건!”

    “무, 물러나라! 휘말린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빠르게 트루크가 엑스자 모양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마력뿐만이 아닌, 힘과 민첩 스텟에도 막대한 영향을 받는 스킬.

    “격살참!”

    쉬이익-

    슈슉!

    궤적을 따라 흔적이 생성되며 어마어마한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건 일순간이나마 천마광룡참과도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위력은 당연하지만 가히 말 못할 수준!

    바람은 곧 검이었다.

    촤자작-

    “으으윽!”

    무수히 많은 생채기가 생기며 몸이 붕 뜬다.

    트루크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는 앞에 있는 이강호보다도 뒤에 있는 유세현을 먼저 노렸다.

    유세현의 입장에서 트루크만 죽이면 전쟁이 끝나는 것과 같이, 트루크의 입장에서는 유세현만 죽이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기 때문.

    20m.

    10m.

    트루크가 읊조렸다.

    “잘 가라. 시체술...아니, 인간의 영웅.”

    “유세현!”

    “큭!”

    유세현은 어쩔 수 없이 남은 마력 전부를 천마군림보를 운용할 생각을 가졌다. 미래를 파는 행위였지만 죽는 것 보다 더한 것은 없기에.

    허나.

    그 순간.

    쉬이익-

    익숙한 기운이 유세현의 등을 감쌌다.

    ‘이건...’

    붉은빛의 기운.

    허나, 활활 타오르는 이강호의 화염 같은 느낌은 결코 아니다.

    한없이 어두운, 어둠의 마력과 굉장히 흡사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

    악몽!

    트루크의 눈동자가 한순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부하가 날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지만 그는 이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크흐흐흐! 인간을 위해 온힘을 다한 네놈이 인간에게 버려지다니 참으로 안쓰럽구나! 나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네놈이 이걸 버틸 수...”

    그 순간 심마의 절규가 트루크에게 닿았다.

    와락 일그러지는 트루크의 표정.

    그는 전투중이라는 것도 잊고는 머리를 쥐어 잡은 채 고통을 호소했다.

    “크아아아아아악! 대체 이게 뭐냐!! 대체 이게!!”

    그리고 그 영향은 트루크 뿐만 아니라 경로에 있는 이강호와 유세현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끼쳤다.

    심마의 절규라는 스킬은, 애초 유세현의 부패의 어둠처럼 피아식별 따윈 하지 않는 난폭한 스킬이었으니까.

    “끄아아악!”

    “머리가! 머리가아아!”

    적들은 절규를 내뱉으며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놈들은 몸이 난자되고 있음에도 벗어날 생각조차 못했다.

    다급하게 빠져나온 이강호도 머리를 살짝 움켜쥐었다.

    드래곤의 10서클 정신 마법에도 면역이 있는 자신의 정신을 뒤흔들다니...

    위력과는 별개로 실로 무서운 스킬이 아닐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강호의 시선이 유세현에게 향했다.

    유세현은 피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 순간 유세현과 이강호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는 정말 살짝 인상만 구기고 있을 뿐 남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군. 그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저 힘이 유세현에게 만큼은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금이 기회다!’

    고오오오오-

    이강호는 정신력이 버텨주는 한도까지 아슬아슬하게 힘을 모았다. 그땐 유세현도 천마광룡참을 운용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스스스.

    두 사람이 병장기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움직인다.

    트루크는 그제야 자신이 크게 실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으!”

    다급하게 방향을 트는 트루크!

    그 순간 이강호와 유세현이 동시에 무공을 발산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광룡참(天魔狂龍斬)!]

    [태양신공(太陽神功) 멸천화룡(滅天火龍)!]

    쉬이익-

    늦은걸 깨달은 트루크는 대응에 나섰다.

    목을 향해 다가오는 천마광룡참을 도끼로 받았다.

    허나.

    치지지직-

    ‘크으으! 이건 또 뭐냐!’

    트루크가 경악했다.

    고위급 보존 마법을 두른 도끼다.

    본래라면 튕겨 내야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허나 지금은 도끼의 이가 나가고 있었다.

    ‘젠장! 공간을 자르는 스킬이라니!!’

    “흐아아압!”

    하지만 트루크는 그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하여 마침내 천마광룡참의 궤도를 트는데 성공했다.

    투자한 마력이 어디까지나 최소 마력이기에 가능했던 일!

    서걱-

    물론, 그럼에도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 아가리를 쩍 벌린 화염이 용이 트루크를 집어삼켰다.

    유세현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실로 대단한 화력이었다.

    “크아아아악!”

    몸부림치는 트루크의 모습이 음영으로 비쳤다.

    유세현과 이강호는 호흡을 골랐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죽어줘야 된다.

    후욱!

    그때, 화염 속에서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강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큭! 대체 화염 저항력이 얼마나 더 올랐기에!’

    3년 전 마교 때를 포함해, 제대로 스킬이 적중했음에도 죽이지 못한 것이 벌써 두 번째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상성이니까.

    놈이 섭취한 비약이 레드드래곤의 특성만 지니고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됐는데!

    재차 모습을 드러낸 놈의 몸은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전신을 새까맣게 그을렸으며 살점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고, 뼈가 비쳤다.

    “크아아아!! 이놈들!! 네놈들의 뼈와 살! 하나도 남김없이 잘근잘근 씹어 먹어주마!”

    < 외부의 끝(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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