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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99화 (299/612)
  • < 깨달음(5) >

    왜냐하면 이곳은 판도라 외부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A랭크 스텟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정상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B랭크에서 A랭크까지 스텟을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A랭크, 그것도 최상위 상태에서 더욱 증폭시켜주는 아이템이 존재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아니, 사실 명확히 따지자면 이상한 점은 처음부터 한 둘이 아니긴 했다.

    무려 6개의 종족을 묶어주는 특수한 아이템, 계약은 그야말로 사기 그 자체였으니까.

    ‘큰일이군.’

    이강호는 쥐고 있는 이프리트의 화염창에 화기를 담았다.

    한시라도 빨리 적을 처리하고 트루크에게 다다르기 위해서였다.

    쉬이익-

    눈앞의 위치한 적을 향해 맹렬하게 파고드는 창.

    그러자 평소였다면 열기 때문이라도 몸을 잠시 물렀을 놈들이 되려 기괴한 웃음을 토해내며 병장기를 휘둘렀다.

    “크흐흐흐! 그까짓 불길!”

    챙!

    이강호의 눈썹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스텟뿐만 아니라 화염 저항력까지 높아지다니?

    아무쪼록 이강호는 창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되려 더 폭풍처럼 몰아쳤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아르카드 제국식 창술!

    스르륵-

    챙!

    촤자작-

    놈들은 이강호와 비슷한 힘의 발휘가 가능했음에도 도무지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뱀처럼 유연하게 파고든 창이 매처럼 날렵하게 목을 노린다.

    “크으으윽.”

    1합.

    2합.

    웃고 있던 놈들의 눈동자에 경악이 맺히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서걱-

    기어코 한 놈의 목이 떨어져 나가 지면을 뒹굴었다.

    적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크으으으...무슨 저딴 놈이...”

    현재 그들 눈에는 이강호가 그 어떤 것보다도 더한 괴물처럼 보였다.

    어떻게 열세인 이 상황 속에서 저런 식의 싸움이 가능하단 말인가!

    연이어서 이강호가 창을 크게 휘둘렀다.

    후웅!

    쿠우우웅!

    지면에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쳐 연합군을 집어삼켰다.

    “크윽.”

    트루크가 준 비약을 먹은 최상위의 인원들은 이것을 버텨냈다.

    하지만.

    “크아아아악!”

    그렇지 못한 이들은 뼈와 살이 녹으며 죽음을 감히 면치 못했다.

    이어서 쏟아지는 무인들과 일행들의 스킬.

    퍼퍼펑!

    콰앙!

    길이 아주 조금씩 열린다.

    “놈들을 죽여라!”

    “달려들어!”

    연합군이 또다시 죽자고 달려들었다.

    서로 얽히고설켜 이뤄지는 난전.

    길이 다시 닫힌다.

    하지만 그 순간 이강호의 옆으로 이태광이 날아들었다.

    “으랴랴랴랴!!”

    바스타드 소드가 무자비하게 궤적을 가를 때마다 픽픽 쓰러져나가는 적군.

    물론, 이러한 패기는 비약을 복용한 적에게 가로 막혀 얼마 가지 못했다.

    허나 이것은 시작을 알리는 전조현상에 불과했다.

    리체, 유혜인, 이한별, 이용석 등등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적을 향해 돌진.

    이강호는 어느새 트루크에게 다다라있었다.

    트루크가 붉은 구슬을 집어삼키며 중얼거렸다.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모습의 변화.

    허나, 트루크의 변화는 보통의 병사들과는 조금, 아니 무척 달랐다.

    우선 온몸에 단단한 비늘이 돋았다. 이어서 푸른 칼퀴가 붉게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눈동자까지.

    이강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지진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으니까.

    판도라 내부 최강을 자랑하는 3개의 세력 중 하나이자 유세현을 실종시킨 종족.

    드래곤.

    흩어져 있던 퍼즐이 딱딱 맞춰진다.

    이강호는 이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연합군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인간을 말살하는데 왜 그리 집착했던 것인지.

    눈을 번뜩 빛낸 트루크가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챙!

    여타 인물들과는 한차 례 차원이 다른, 결코 무시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한방이었다.

    저릿저릿한 손.

    힘의 증폭을 체감한 트루크는 살기 가득한 광소를 내뱉었다.

    “크하하하하! 이거 정말 장난 아니구나!”

    동시에 미친 듯이 몰아치는 공격.

    그것은 이강호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견뎌내지 못했을 엄청난 압박이었다.

    이강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유세현의 암흑투기가 있음에도 이 정도다.

    그런데 만약 유세현의 암흑투기가 사라진다면?

    ‘무조건 그전에 끝내야 된다.’

    이강호는 틈을 엿보기로 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합.

    “큭큭큭! 제법 잘 버티는 구나!”

    놈의 공격을 최대한 흘리고 있던 이강호의 눈매가 어느 한 순간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트루크는 종족의 왕답게 엄청난 수준의 도끼술을 구사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이강호를 비롯한 최고수 무인 정도만이 발견할 수 있는 정말 아주 미세한 틈이었다.

    고오오오-

    화르륵-

    마력과 고육특성을 듬뿍 담은, 여태까지와는 한결 차원이 다른 청염이 용솟음쳤다.

    트루크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황급히 궤도를 틀었지만 전부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길에 휩싸이는 놈의 왼팔.

    “크으으윽!”

    트루크는 이 고통이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약섭취로 인하여 어마어마하게 화염저항력이 높아졌다.

    무려 S랭크나 되는 것!

    그런데 저항력이라는 이 단단한 갑주가 이토록 쉽게 뚫리다니!

    트루크의 팔은 이내 재가 되어 자취를 감췄다.

    “이자식이이이!”

    후웅!

    콰아앙!

    트루크의 도끼가 땅을 힘껏 내리치자 땅이 불쑥 솟아올랐다.

    특수한 스킬로 이강호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의도였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이강호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보법을 운용해 벽을 타고 접근.

    놈의 팔 한쪽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공격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에 이강호는 이번에 끝을 볼 생각을 가졌다.

    허나, 그 순간 들어온 방해.

    콰앙!

    난전이 일어나고 있기에 의도치 않게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강호는 초조해하지 않고 재차 나아갔다.

    트롤은 재생력이 상당히 높은 종족이지만, 그런다고 잘린 팔이 되돌아오는 건 아니기 때문.

    즉.

    이제는 접근만 가능하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창을 휘두르자 벽이 잘려나가며 트루크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이강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꾸물꾸물.

    불타 떨어진 팔의 단면으로부터 튀어나와있는 무수히 많은 세포.

    세포는 서로 얽히고설켜 팔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이, 이건! 재생?’

    그것도 보통 재생이 아니었다.

    드래곤, 마족, 천족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초고속 재생.

    트루크가 씨익 웃는다.

    “크흐흐흐! 내가 괜히 왕인 것 같나? 방금 전엔 실수했지만 이제는 어림없다.”

    이강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 * *

    한편 나머지 일행들도 심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강호와 트루크가 맞붙은 이후 비약을 복용한 종족의 수장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

    콰직.

    기사의 머리를 메이스로 때려 부순 리자드맨의 수장, 벨가르의 눈동자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 남성을 향했다.

    쉬이익-

    순식간에 돌진하여 다가가는 벨가르.

    남성이 다급하게 검을 들어 방어하자 벨가르가 기다란 혀를 날름 거렸다.

    “네놈이구나. 사원에서 레잔을 죽인 놈이.”

    “크윽...”

    유세현은 온 힘을 다해 밀어내려 했지만 벨가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퍽-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벨가르의 방패.

    벨가르는 메이스와 방패를 사용하는 전사였다. 그렇기에 무척 안정적이면서도 무엇보다도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동급의 적을 상대하기 힘든 현재의 유세현으로서는 정말 최악의 상대.

    압도적으로 밀린다.

    방어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적이 행해오는 공격 한 수 한 수가 유세현에게는 죽음의 칼날과도 같았다.

    유세현은 생각했다.

    마족화를 사용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마족화는 한 번에 소비되는 마력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이는 곧 몸의 부담을 뜻한다.

    암흑투기만 사용해도 이 지경인데 과연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최악의 경우는 그냥 픽 쓰러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상 전례가 있는 만큼 유세현으로서는 마족화를 사용하기가 무척이나 꺼림직 했다.

    그때였다.

    챙!

    튕겨나간 팔이 붕 뜬다.

    “오빠!”

    유혜인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에 울렸다.

    유세현은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급급하여 도와줄 수 있는 동료도 없을 터인데...

    그런데 그때 유세현의 어깨 너머에서 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루베르크와 똑같은 흑빛의 검신에 붉은 혈조.

    루시아였다.

    “후욱...후욱... 루시아씨 정말 고맙...”

    감사를 표하려던 유세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루시아의 등을 보호해주고 있는 갑주가 절반이나 날아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을 구하기 위해 전투중 등을 돌리고 달려왔기에 발생한 일!

    “선배님!!”

    흘끗 상황을 살핀 김주희가 도끼눈이 되어 연합군을 노려봤다.

    “이 자식들이 감히!!”

    슈우욱-

    정령화를 사용해 순식간에 탈바꿈한 김주희는 미친 듯이 움직이며 전장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보다도 달려드는 적의 수가 더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심을 내린 유세현이 마족화를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욱씬-

    심장, 아니 마심원이 경고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유세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용해봤자 결코 좋은 꼴은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후웅!

    벨가르의 공격이 그새 재개되었다.

    맞부딪치는 루베르크와 메이스.

    유세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평범한 검술은 벨가르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놈을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인가.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천마의 검법.’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시도해봤지만 줄곧 사용하지 못했는데?

    이 수밖에 없기에 유세현은 천마의 검법이 머릿속에 일러주는 대로 억지로 움직였다.

    허나.

    역시 맞지 않는다.

    지금의 육체로는 사용할 수 없다.

    “큭! 그 특수한 힘만 빼면 시체인...정말 별거 아닌 놈이었군.”

    노골 적으로 비웃은 벨가르의 메이스가 유세현의 머리를 향했다.

    유세현은 허탈감을 느꼈다.

    이게 자신의 한계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시간이 정지한것마냥 한 없이 느려진 유세현의 사고 속에 어떤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스쳐지나갔다.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 노인.

    노인의 얼굴에는 먹물 같은 거무틱틱한 것이 튀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다짜고짜 공격을 감행해왔다.

    필사적으로 대응하지만 실패하는 자신.

    허나, 장면 속에 보이는 자신은 당하기 직전 기지를 발휘했다.

    먹물이 씻겨 나가며 노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딱 한 번 밖에 본적이 없지만 유세현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거봐라 할 수 있지 않느냐.]

    시점이 바뀌며 천마의 미소가 눈가에 뚜렷이 비친다.

    유세현은 그 순간 뭔가 뻥 뚫린 느낌이 들었다.

    몸이 마치 급류를 탄 것 마냥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퍽-

    들고 있는 방패가 무색하게 발길질에 가격당한 벨가르가 한순간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해되지 않는 몸놀림이었기 때문.

    게다가 그 상황에서 한 손밖에 없는 주제에 방어를 성공하는데 이어 반격까지 취하다니?

    우연인가?

    더 이상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유세현의 검이 매서운 폭풍처럼 몰아쳤기 때문.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스타일에 벨가르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떠나 너무 움직임이 기묘하다.

    찌르기와 베기.

    어디로 치고 들어올지 도무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챙!

    퍽!

    재차 공격을 허용한 벨가르의 표정이 와륵 구겨졌다.

    “크으...이게 무슨...”

    그는 방패술과 둔기술에 무척이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지고 있던, 그것도 팔 하나밖에 없는 인간에게 밀리니 자존심에 금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 깨달음(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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