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4) >
‘어떻게 그럴 수가...설마 적의 스킬에 당한건가?’
정신이 번쩍 든 유세현은 다급하게 몸 상태를 체크했다.
내부 마력 상태는 그대로인지, 어디 또 잘려나간 신체는 없는지.
만약 신체의 일부를 또 잃었다면 자신은 정말 끝장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걱정된 것과는 다르게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깨지 않던 유세현을 업고 있던 이강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유세현!”
“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유세현은 등에서 잽싸게 내려왔다.
이강호가 입을 열려 한 순간이었다.
슈우웅-
콰아아앙!
상공에서 수많은 광역스킬이 서로 맞부딪치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몸을 휘감는 어마어마한 충격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팔로 모래바람을 막으며 이구동성이 되어 외쳤다.
“이강호씨! 이젠 정말 판단을 내려야 됩니다!”
“맞습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짊어지고 있는 남자 때문입니까? 아쉽지만...”
그리 말하던 남성의 입이 꾹 닫혔다.
깨어난 유세현을 본 것.
이에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단번에 캐치한 유세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호가 곧바로 지면의 특정 부분을 힘차게 짓밟았다.
쿠구구구궁!
최후의 장소, 나막산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쩌적-
쩌저적-
갈라지는 지면.
어느새 그들의 발아래로는 거대한 땅굴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드디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호흡을 골랐다.
이 전투에 생과 사가 갈린다.
이강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부를 향해 몸을 날리자 이어서 유세현을 포함한 수많은 인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동굴 내부는 폭이 무척 넓었으며 상당히 길었다.
5분 정도 지났다고 느껴질 때쯤 이강호의 시선이 밀착하여 달리고 있는 아퀼라를 향했다.
“적의 위치는?”
“아직까지는 그대로다.”
그 말에 이강호의 눈이 번뜩 빛났다.
현재 3만에 달하는 최정예 인원들이 향하고 있는 장소는 트루크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고작 3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그리고 이정도면 이강호가 예측한 오차범위 보다도 훨씬 가까운 편에 속했다.
‘게다가 세현이의 암흑투기만 있으면...’
척-
계속해서 나아가던 이강호의 발걸음이 마침내 어느 한 장소에서 멈춰 섰다.
꿀꺽-
마른침이 목울대로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해진 내부를 울린다.
다들 비장한 얼굴이었다.
트르륵-
이강호가 벽에 손을 대자 이전과 같은 거대한 진동이 내부를 울렸다.
서서히 열리는 벽.
눈에 제일먼저 비친 것은 지나가던 아라크네들이었다.
“이게 무슨...”
“전군! 공격!”
창대를 들어 올린 이강호가 달려드는 것으로 격전은 시작되었다.
* * *
“좀 뒈져라! 이 빌어먹을 괴물들아!”
“크으으!”
서걱-
촤좌좍-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피의 향연이 이어졌다.
베고 찌르고 으깨고.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뒤는 없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으니까.
대신 쏟아지는 광역 스킬을 더욱 경계하며 적을 죽이는데 온 신경을 다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를 나아갔을까.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뭐지? 왜 이렇게 적이 약해진 거지? 코인의 순도를 보아하니 분명 나랑 동급인 것 같은데...”
예상보다도 돌파가 쉬웠기 때문.
전부 유세현 덕분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런 것 하나하나는 시너지로 작용하여 좋은 효과를 만들어냈다.
“으랴라라! 모조리 죽여주마!”
이태광의 바스타드 소드가 적을 난자했다.
그는 맺혔던 동료의 한을 이곳에서 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장원석도, 이한별도 1초도 쉴 틈 없이 칼을 놀리며 적을 죽여 나갔다.
피로에 찌든 것 치고는 다들 무척 좋아 보이는 컨디션.
허나, 단 한 명은 그렇지 못했다.
“크으...”
루베르크를 휘두르던 유세현의 몸이 한순간 움찔거렸다.
꽤나 호전되어 이전처럼 마력이 미친 듯이 들끓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고통은 꽤나 상당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와 비례하여 점점 빨라지는 심장.
“크아아아! 죽어라 인간!”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하던 적이 반격을 취해왔다.
물론.
서걱-
암흑투기로 약화되어있는 만큼 그 공격이 유세현의 몸에 닿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방금 전보다도 더욱 빨라진다.
그 순간 유세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암흑투기를 거둬야 한다는 것을.
허나.
‘지금 내 실력으로 암흑투기 없이 이들 전부를 상대하며 나아 갈 수 있을까?’
그렇기에 망설여진다.
하지만 애초에 선택의 여지는 없는 상황.
유세현은 일행들을 아끼는 만큼, 스킬을 해제하기 전 미리 통보해주는 세심함을 선보였다.
후웅-
억압되고 있던 힘이 사라진다.
연합군들이 거친 포효를 발산했다.
“그 더러운 힘이 사라졌다!”
“캬아아아! 지금이다! 술자를 찾아내 죽여라!”
유세현을 발견한 리자드맨 세 마리 동시에 날아들었다.
각각 A랭크 30~35% 사이로 나름 최정예에 속하는 스텟을 지닌 병사들이었다.
그 순간 유세현의 주위에 있던 인원들이 눈을 번뜩 빛냈다.
“어딜!”
앞을 가로막아선 김주희.
그녀가 높이 치켜든 창을 내리 찍자 리자드맨은 최정예라는 것이 궁색하게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며 절명했다.
루시아도 잽싸게 한 마리를 처리했다.
이어서 아린, 이태광 등 유세현을 알고 있는 인원 모두가 몰려들었다.
허나, 대놓고 유세현을 보호하지는 않았다.
적을 돌파해야 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유세현의 성격상 싫어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정선을 유지하며 나아간다.
“죽어라아아아!”
연합군이 그런 그들을 향해 끝임 없이 달려들었다.
* * *
트루크의 시선이 함성이 울리고 있는 격전지로 향했다.
시체술사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그는 설마 적군이 쳐들어오리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었다.
허나.
입꼬리가 쓱 말려 올라간다.
그는 이 상황이 딱히 싫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드디어 결판이 날 것이기에.
그것도 연합군의 승리로.
‘정말 오래 걸렸다.’
사실 그는 드래곤과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6개의 종족이 연합을 맺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빠르게 전멸시킬 수 있었다.
막강한 스킬을 사용하는 특수종과 화염을 다루는 이강호, 그놈만 없었다면 말이다.
트루크가 포켓을 뒤적이더니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속에는 수십 개의 새빨간 구슬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들은 다짜고짜 주위에 있던 대표들과 장군급의 인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피 퀸, 시라카가 구슬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직접 읽어봐라.”
이에 정보창을 살피는 인원들.
그들은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어 감탄을 했다.
“트루크 이건!”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다니!”
“흐흐흐. 최악의 경우 때 복용해라. 놈들...아니 놈은 분명 이곳까지 당도할 거다.”
트루크가 입꼬리가 더욱 비릿하게 올라갔다.
* * *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무룡파회(舞龍破廻)!”
무림맹의 맹주, 강태령의 손에서 뻗어나간 한줄기의 용이 춤을 추며 공간을 찢어발겼다.
이어서 여타 무인들도 자신의 절기를 선보였다.
“크아아악. 빌어먹을 특수종들!!”
제대로 휩쓸린 연합군은 좀처럼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수로 압도했다.
한 명에게 세 마리, 네 마리씩 달라붙어 끝없이 물고 늘어졌다.
“크윽.”
피해가 중첩되고 있다.
그때 이강호가 상공을 향해 살짝 화염을 내뿜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때를 기다리고만 있던 근위병과 최고수 무인들이 눈을 번뜩 빛냈다.
타다닥-
진열을 이탈해 이강호를 향해 달려오는 인원들.
동시에 이강호의 창끝으로 어마어마한 열기가 집약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알아본 연합군들은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저, 저건!”
“막아라! 스킬을 날...”
허나 이강호의 창은 그들의 대처보다도 훨씬 빨랐다.
화르륵.
쿠우우웅!
불길이 서로 한데 뒤엉켜 회전하며 뻗어나간다.
흡사 태양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듯한 뜨거움.
“끄아아아악!”
수많은 적들의 비명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새까맣게 타고 남은 재 밖에 없었다.
이강호가 곧장 불길로 만들어진 길을 질주하자 유세현 일행과 최정예 중 최정예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애초에 그들은 모두가 트루크에게 당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침투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원들이 트루크를 죽인다.
이것이 원래 계획이었던 것.
500m.
200m.
송곳이 종이를 관통하듯 적을 꿰뚫으며 나아간다.
마력의 흐름을 읽고 있던 유세현의 시선이 우측으로 향했다.
적과 교차하는 시선.
트루크가 광기에 찬 눈빛을 내뿜으며 도끼를 치켜세웠다.
“크흐흐흐! 왔구나!”
동시에 연합군에서도 최정예 중에 최정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병장기와 병장기가 맞붙는다.
그리고 유세현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암흑투기를 일순간 폭발.
최정예들의 눈동자에 경악이 맺혔다.
“이, 이건!”
서걱-
촤자작-
그들은 그 말을 끝으로 너무도 허무하게 남궁제와 남궁시영, 그 외 여타 인원들에게 목을 내주어야만했다.
웃고 있던 트루크의 입이 딱 닫힌다.
씰룩이는 안면근육.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줄 알았건만...이제 와서 능력을 발휘하다니.’
말로 드는 것과 직접 체감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직접 느껴보니 압박이 상상이상이었다.
‘속인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트루크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것이 놈들의 노림수라고 할지언정, 시체들을 불리는 편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
즉 슨.
‘놈의 상태는 완벽하지 않다.’
트루크는 그 순간 그답지 않게 몸에 오한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음에도 이 정도라니.
‘트레크라에게 구슬을 미리 분배해 줄 걸 그랬군.’
트루크는 유세현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행동을 상세하게 살폈다.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어깨.
그리고 온몸을 뒤덮고 있는 땀.
달려든 적을 아슬아슬하게 베어 넘긴 유세현이 이강호를 향해 외쳤다.
“이강호!”
“봤어!”
이강호가 곧바로 트루크를 향해 몸을 틀었다. 김주희가 엄호하듯 옆에 위치했다.
트루크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놈들을 막아라.”
이에 김주희는 콧방귀를 꼈다.
방금 전에도 보았듯 유세현의 암흑투기가 발휘되고 있는 이상,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
허나.
챙!
두 마리는 신기하게도 김주희의 창을 받아냈다. 김주희의 고개가 한순간 갸웃 꺾였다.
비록 콧방귀를 뀌었으나 이강호와 함께 지내온 만큼, 그녀는 마음을 놓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상의 궤적을 찾아 공격한 것인데 막히다니?
그냥이라면 몰라도 암흑투기가 발현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채재쟁!
세 번의 공격을 더 해보고 나서야 김주희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세현의 상태를 보건데 암흑투기를 거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놈들의 스펙이 갑자기 올라갔다.
갈색 및 녹색 빛을 띠고 있던 놈들의 홍채가 점점 붉게 변화한다.
마지막으로는 동공이 도마뱀의 눈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서, 선배님! 이게 대체...”
김주희의 말에 이강호가 혀를 찼다.
모종의 아이템 때문인 것은 분명했다. 헌데, 무슨 아이템 때문인지는 이강호로서도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 깨달음(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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