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85화 (285/612)

< 역경의 길(7) >

‘산, 산건가...’

장원석이 시선이 천천히 보법을 펼치고 있는 남성에게 향했다.

무척 익숙한 얼굴.

“요, 용석이형!”

“어, 깼냐. 생존자는 너가 다야?”

“생존자...”

이용석의 말에 장원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병든 꽃처럼 변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료의 얼굴.

“응...”

“후...그렇군...”

적과의 거리를 벌린 이용석이 장원석의 몸을 나무에 조심히 내려놨다. 그는 곧장 장원석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실을 잘라냈다.

누구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인지 궁금했던 장원석이 물었다.

“형, 누구랑 이곳에 온 거...”

콰아아앙!

허나, 채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저편에서 피어오르는 어마어마한 불기둥.

일순간 터져 나온 밝은 빛이 주위를 환하게 비추자 장원석은 입이 꾹 닫힐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없어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용석의 몰골은 자신보다도 더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위에 달라붙어있는 정체모를 망자들.

“형...”

“후우...”

방금 전의 일격으로 전투는 완전히 끝이 났는지 숲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용석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야, 원석아 너 이 특수필드에서 몸 보호해주는 아이템 가지고 있냐?”

유혜인이 영상에 몰래 담아놓은 단서.

유세현은 이것을 아무 조치도 없이 무작정 달려왔을 자신을 걱정해 남긴 것이라 해석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응, 있어.”

장원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용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후우...그래? 그럼 빨리 사용 좀 해봐.”

“큭...”

별 차도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장원석이었지만, 그는 일단 아이템을 발동시켰다.

이용석이 고개가 갸웃 꺾였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으로 나타나는 아이템 정보.

이용석은 한숨을 내뱉으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옘병...”

이 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닌, 유지라니.

“아이템은 이 한 개가 전부야?”

“응...미안...”

“너가 미안할 게 뭐가 있냐...신경 쓰지 마.”

이용석은 마지막으로 머리를 휘휘 저었다.

비록 아이템의 효과는 바라고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장원석이 아이템을 지니고 있음으로서 본래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제 트레크라에게 당당히 아이템의 정보창을 띄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장원석이 재차 조심스레 물었다.

“형, 대체 누구랑 온 거야?”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했었던 만큼 이용석의 행동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생존이 최우선.

그런데 그런 성향을 지닌 남자가 아무런 조취도 없이 이런 장소에 들어오다니.

어지간히 믿을 만한 인물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 이강호인가?’

그때, 풀숲이 살짝 흔들리며 적을 전부 정리한 유세현과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해 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원구성.

장원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야?’

그때 다가온 유세현이 이용석에게 물었다.

“과대 형. 어떻게 됐어요?”

“응. 예상이 맞았어. 다만 아이템 효과가 좀 그래...”

받은 아이템을 유세현에게 건네는 이용석.

장원석은 자연스레 말을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과대.]

지금에 와서 이용석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은 이강호와 김주희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

장원석은 유세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뭔가 익숙한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거 같은 느낌.

그리고 장원석은 이내 깨달았다.

3차 튜토리얼 죽음의 숲, 그 당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키몬드를 처치한 인물이자 이강호와 함께 고블린을 깨부순 구름섬의 영웅.

유혜인의 오빠.

[유세현.]

장원석의 턱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벌어졌다.

* * *

약속 장소에 도착한 유세현.

트레크라가 홀로 나와 그를 맞았다.

“허허, 잘 왔네. 아이템은 가져왔겠지?”

유세현이 정보창을 넘겨주자 트레크라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군. 유지에 특화된 아이템은 따로 있던 거로군.’

그가 지니고 있는 것은 현상완화에 특화된 것이었다.

반면, 놈이 지니고 있는 것은 유지에 특화된 것.

‘공략할 수 있다.’

두 개의 메달의 힘을 합친다면 필히.

유세현도 곧장 일행이 무사하다는 증거품의 제시를 원했다.

“여기 있네.”

트레크라가 이전처럼 기록구슬을 건넸다.

그 구슬에는 유세현이 요구한 것과 똑같은 동작을 취한 트롤과 함께 일행이 찍혀있었다.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지만, 처음보다는 호전 된 모습.

‘아직까지 허튼 수작은 안 부린 모양이군.’

유세현은 트레크라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상태 그대로 이동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본디 오늘 이 장소에 찾아 온 이유는 거래 때문이 아닌 사전 답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트레크라가 병력들을 시켜 안개를 일시적으로 제거해놨기에 지형을 살피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편으로 보이는 이 던전의 끝.

유세현이 길의 끝에 서자, 트레크라가 물었다.

“어떤가. 만족하나?”

이에 이를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퀴린, 레잔 등 대표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재 그들에게 있어서 유세현은 막심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곳에서 없애 놔야 될 인물이었다.

그런데 만약 놈이 마음을 바꿔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현재 이 외줄타기식 작전을 구상한건 트레크라였으므로, 모든 결과는 트레크라가 진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어이없게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적의 경계를 누그러트리고자 저렇게 대담하게 행동하다니.

확신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행위.

“트루크만 없었어도 트롤의 왕은 트레크라였었겠지.”

“확실히...”

레잔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전부 세심하게 확인한 유세현은 트레크라와 거래 일정을 잡았다.

“정확히 12시간 뒤에 여기서 보도록 하지.”

“허허, 미안하지만 포로들은 그대들의 습격을 대비해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장소로 이동시킨 상태네. 오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리지.”

“좋다. 그럼 정확히 하루.”

“알았네.”

말을 마친 유세현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몸을 돌린 트레크라의 눈이 번뜩였다.

하루의 기일은 사실 유세현을 잡기위한 함정을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트레크라는 포켓에서 준비해둔 두 장의 스크롤을 꺼냈다.

한 장은 카모플라쥬로 주위와 완벽하게 동화해 모습을 위장해주는 스크롤이었고, 또 한 장은 사일런스로 소리를 제거해 주는 스크롤이었다.

적용된 병력들을 사용해 놈의 탈출을 막는다. 그리고 아이템 효과가 떨어져 약화가 되면 그때 처리한다.

메달이 파괴될 걱정이 없으니 이제까지는 자제하고 있던 최상위 스킬들을 마음대로 쏟아 부울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세워둔 비책!

마법에 적용된 연합군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거센 빗줄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미묘한 일그러짐이 발생했지만, 안개도 다시 낀 데다가 마법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너무도 높아 일반적인 시각으로 발견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었다.

트레크라는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을 자신했다.

허나.

‘역시, 이렇게 나오는 군.’

정말 안타깝게도 유세현은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고, 아니 느끼고 있었다.

* * *

적의 수작을 알았음에도 유세현은 일부러 모른 척 넘어갔다.

필드의 효과 때문에 탐지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모종의 수단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면 놈들은 깔끔하게 이 던전을 포기하고 인질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던전을 포기하진 않더라도 인질은 죽이고 장기전이 될 터.

그렇게 된다면 되려 안 좋은 쪽은 유세현 쪽이다.

그러니 놈들의 농간에 맞춰 준다.

다만.

먼저 선수를 취하는 것은 놈들이 아니라 이쪽.

인질의 교환이 이루어진 순간 모든 마력을 다 바친 광역스킬로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유세현이 절벽에 맞은편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혜인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왜...왜 왔단 말인가.

함정일 것이 너무도 뻔한데.

그녀가 원하는 것은 유세현의 생존이었다.

“세현 동생! 우리를 버려! 이건 분명 함정이야!!”

그 생각 없는 이태광도 이렇게 판단하고 있을 정도니 사실상 말은 다한 것.

이어서 이한별도 한 마디 거들었지만 유세현은 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리체가 유세현을 지그시 응시했다.

동생을 발렌의 손에서 구해낸 대단한 남자.

드래곤과의 전투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혜인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나서 또다시 동생을 구하겠단다.

자신들이 실종된 날짜를 고려하자면 생사도 확실하지 않았을 터인데.

즉, 그는 이념 하나만으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허허, 거래에 방해될 것 같으니 잠시 입을 막도록 하겠네.”

트레크라가 손짓하자 트롤들이 헝겊으로 5명의 입을 싸맸다.

그리고는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인원들을 번쩍 들어 넓적한 바위 위에 올려놨다.

이에 유세현도 자신의 앞에 있는 바위에 메달을 올려놨다.

트레크라가 먼저 수정구술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대도 마력을 불어넣게.”

이에 유세현이 마력을 불어넣자 바위는 그제야 허공에 두둥실 뜨더니 절벽 맞은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유세현조차도 인정한 트레크라가 제안한 공평한 방법!

바위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1/3 지점을 지났다.

연합군은 움직이지 않고 지켜봤다.

아직은 유세현이 회수할 수 있는 거리인 데다가 인질 5명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상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거래가 끝낸 뒤 놈들을 친다.

그런데 바위가 각 진형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유세현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분 나쁜 어둠.

트레크라를 포함한 대표들은 그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저 이빨을 드러내다니?

‘아니, 더 빨리 도망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도약한 유세현의 육신이 5명이 있는 바위에 착지했다.

유혜인이 슬픈 표정으로 유세현을 쳐다봤다.

“오빠! 왜 온 거야! 왜! 놈들은 약속을 지킬 그런 놈들이 아니...”

“혜인아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내 몸부터 붙잡아 이곳을 빠져 나갈 거야.”

“......”

똑 부러진 말에 유혜인은 그의 몸을 붙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온 힘을 다해 들러붙는 4명.

그사이 메달을 손에 넣은 트레크라의 팔이 하늘을 향했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

총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릴 생각인 것.

허나.

그보다 한차례 더 빠르게 유세현의 손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집중되었다.

핏빛의 눈동자를 번뜩 빛낸 유세현이 역경의 길 출구 근처에 잠복하고 있던 적들을 향해 팔을 힘차게 내질렀다.

콰아아앙!

검붉은 빛에서 퍼져나가는 충격파에 의해 대지가 요동친다.

트레크라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몬스터들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알고 있었던 것인가?

대체 어떻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천마의 무공은 드래곤조차도 탐내는 스킬.

모든 마력을 끓어 모은 천마혈사장은 위력뿐만 아니라 속도도 여타 스킬에 비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큭...무슨 속도가! 대응해라!”

스킬시전으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광명이 터져 나왔다.

허나, 그럼에도 피해 없이 막기란 불가능했다.

레잔이 입을 악물었다.

이전에 보았던 때보다도 훨씬 강하다.

‘위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그리고 그 순간 아린이 발동시킨 썬더스톰이 일대에 몰아쳤다.

< 역경의 길(7)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