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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81화 (281/612)
  • < 역경의 길(3) >

    연합 몬스터들의 마력이 감지 범위 내로 들어오자 이동하고 있던 유세현이 다분히 혀를 찼다.

    그렇게 빨리 올라왔는데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라니.

    생각보다 대응이 훨씬 빠르다.

    ‘변수는 사전에 제거해 두겠다는 건가.’

    게다가 이 무지막지한 병력의 수.

    보통의 경우라면 높이 도약한 뒤 천마군림보를 이용해 빠져나갈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허나, 이곳은 살짝만 높이 올라가도 벼락이 내리쳐 위치를 알려준다.

    이런 현상 때문에 이전에도 전투를 벌인 것!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기에 유세현은 일단 일행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용석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젠장, 정말 산 넘어 산이네. 어떻게 할 거냐?”

    “뚫어야죠.”

    유세현의 말에 이용석이 영혼이 반쯤 나간 얼굴이 되었다.

    거참, 옛 팀원들 얼굴 한 번 보기 엄청 힘들다.

    “하하하. 그래 뚫어야지. 암 뚫어야 되고말고. 그런데 세현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당연히 전면전이 되겠지?”

    “예.”

    “하하, 역시 그렇군.”

    과거였다면 목숨 때문에 길길이 날뛰었을 이용석이었지만, 애초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약속했던 그는 순순히 수긍했다.

    단지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현재 그들의 전력은 구울 300마리와 4명 뿐.

    파악된 병력만 만해도 수천 명인 연합 놈들을 과연 뚫을 수 있을까?

    게다가 상위등급의 적이 분명히 존재할 터인데.

    유세현이 인원들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단히 말하기 시작했다.

    최고 수준의 광역기술을 마력이 다할 때까지 남발.

    그리고 퇴각.

    1000마리 정도는 처리해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넣고 있던 이용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퇴각? 나머지는 어쩌고? 설마 혼자 잡겠다는 거냐?”

    “예.”

    “미친!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야, 유세현 아무리 네가 적을 약화시킬 수 있다지만 적도 수장이 있을 텐데. 우리가 가세해서 최대한 죽여줘도 모자랄 판에...”

    이용석의 말에 유세현이 피식 웃었다.

    “과대 형. 형 진짜 많이 바뀌셨네요.”

    “......”

    “제 성격 잘 아실 텐데요.”

    “...알긴 알지.”

    주도면밀, 지는 싸움은 하지 않거나 최대한 피한다.

    아린이 이용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세현의 말을 따르세나.”

    신뢰가 듬뿍 담긴 말투였다.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자랑하며 패도를 보여준 유세현이건만.

    설마 더 강한 스킬, 비장의 수가 남아있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눈앞에 비치는 환각.

    ‘젠장...’

    이용석은 점점 더 빠르게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길이 좁아지는 특수한 장소를 이용해 길목을 완전 장악한 울락의 군대.

    병사에게서 보고를 받은 퀴린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옆에 위치해 있던 레잔을 향해 말했다.

    “울락 녀석.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 것 치고는 꽤 센스 있는데?”

    “...인정하긴 싫지만 전투에 관해서 만큼은 상당히 뛰어난 자다.”

    “수색대를 내보낸 모양이던데 놈들이 정말 생명체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 안가서 발견할게 될 거야.”

    그들은 울락이 인간을 공격해 들어가면 곧바로 끼어들어 끝낼 생각이었다.

    허나, 상황은 그들의 예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상공에 그려지는 거대한 기하학적인 문양.

    그것은 폭풍이 치는 비속에서도 뚜렷이 보일정도로 무척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울락을 포함한 레잔과 퀴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 문양은 그들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법?’

    그것도 저급한 매직, 레어 등급 정도의 저서클의 마법이 아니다.

    모든 마력을 퍼 부울 수 있는 오리지날.

    수식과 연산으로 만들어져, 과거에는 몬스터들의 제왕 드래곤 정도만이 발현가능 했던 고서클의 에픽 등급 마법!

    [썬더스톰 (Thunder storm)]

    어마어마한 뇌전이 사정없이 오우거들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콰아앙-

    “크어어억!”

    타고 남은 연탄처럼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모되는 수백 마리의 오우거들.

    오우거들은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세계를 나아가면서 마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잘 알고 있었지만 수집루트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

    그런데 하필 인간이, 그것도 이 상황에 딱 맞게 전격 마법을 구사하다니?

    “바, 방어스킬을 사용해!”

    “방어에 모든 걸 쏟아 부어라!”

    수천 마리의 오우거들은 황급히 방어스킬을 펼쳤다.

    고작 한 명이 사용한 마법.

    본래는 손쉽게 막아야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허나, 고서클의 마법인 썬더스톰은 방어결계를 깨부수며 몸이 젖어있는 오우거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그 와중 날아온 2차 광역공격.

    발사계열 스킬은 어차피 위치가 까발려지기에 이용석이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뒤져라아아아! 쓰레기들아아아!”

    콰아앙!

    칼날이 휘몰아친다.

    루시아의 붉은검기 또한 사정없이 적의 육신에 들어가 박혔다.

    트드득!

    충격파에 의해 이리저리 비산되는 흙과 물웅덩이.

    방어경계를 펼쳤음에도 일행의 공격으로 인한 오우거 측의 사망자는 무려 2천이 넘었다.

    울락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순히 분노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운만 좋다면 이 강력한 마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

    그 순간 수많은 구울들이 치고 들어왔다.

    오우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눈에 봐도 정상이 아닌 모습.

    울락이 이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생명체가 아니라 시체를 다룰 수 있는 모양이구나! 전군! 적을 도륙해라!”

    “우아아아!”

    어마어마한 군세의 질주.

    레잔과 퀴린이 아차한 표정이 되어 황급히 군대를 움직였다.

    한 번에 놈들을 죽이겠다는 처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방금 전 발동된 고위마법을 그들도 얻고 싶었기 때문.

    허나, 그런 그들의 행보는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콰아앙!

    3차로 날아온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검붉은 빛.

    “크으! 반격해!”

    경로에 있던 오우거들이 각자의 스킬을 난무하며 받아쳤다.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이 있듯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만큼 결과는 막상막하.

    허나, 이것으로 적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유세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진정한 노림수는 오직 한 가지.

    ‘속전속결로 끝낸다.’

    어둠에 휩싸인 유세현의 몸이 적을 향해 파고들었다.

    * * *

    “저, 전군정지!”

    퀴린과 레잔의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그전부터 인원들의 움직임은 멈춰있었다.

    왜냐하면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

    주위를 강타한 강렬한 진동.

    수많은 스킬의 남발로 인해 안개가 개인 상태였기에 퀴린과 레잔을 포함한 인원들은 울락과 유세현의 싸움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얼마나 순식간에 결판이 났는지도.

    ‘울락이 뭘 해보지도 못했다.’

    그 외, 오우거 최상위 전사들도 놈의 검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버서커 모드까지 미리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레잔이 쩌릿쩌릿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 힘은 대체 뭐냐...’

    게다가 놈의 육신을 감싸고 있는 어둠.

    그리고 시체들의 지속적인 부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완벽한 밸런스 붕괴다.

    무력에 압도된 두 세력의 대표.

    “퇴, 퇴각해라! 울락님께서 당하셨다!”

    그 자존심 강한 오우거들 또한 꼬리 빠져라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세현은 그들을 추격하며 도륙을 멈추지 않았다.

    일정수준 도망치자 두 세력이 있는 장소로 시선을 돌리는 유세현.

    케잔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우리도 물러나지.”

    “그, 그래...”

    그들은 상당한 충격을 안고서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미, 미친 저건 뭐야...”

    이용석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설마 적진에 혼자 쳐들어가서 적 수장의 목을 딸 정도의 수준이라니.

    그것도 수많은 여타 오우거들을 도륙하면서 말이다.

    ‘이거 정말 도착할 수 있겠는데?’

    그 순간 이용석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가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를 악문 채 버티려는 찰나였다.

    띠잉-

    뇌리에 직접 박히는 수많은 말과 환상.

    그리고 부풀어 오른 듯 당장에 터질 것만 같은 머리.

    “끄아아악.”

    괴성을 내지른 이용석의 몸이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 * *

    “후우...젠장...”

    깨어난 뒤 유세현의 등에 업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용석은 곧장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몸은 좀 어떠신가요.”

    “어, 괜찮아. 내려줘. 걸을 테니까.”

    유세현이 이용석을 지면에 내려놨다.

    머리를 휘휘 턴 이용석이 물었다.

    “얼마나 기절해있었어?”

    “얼마 안됐어요. 한 5분 정도.”

    “그러냐...그나마 짧아서 다행이네. 시간도 촉박한데 가자.”

    이용석은 씩씩한 척 앞으로 나아갔다.

    허나, 미묘하게 육체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유세현이 눈치 채지 못 할리가 없었다.

    그는 살짝 입술을 곱씹었다.

    이용석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것은 동생 쪽도 마찬가지일터.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제발 지금 가는 곳에 혜인이가 있기를...’

    유세현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 * *

    울락의 허무한 죽음.

    그것은 연합으로서는 엄청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똑똑한 트레크라는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승리를 위한 분석을 시작했다.

    우선은 놈의 능력.

    ‘만약 그 정도의 힘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면 끝까지 추격해서 전멸시켰을 거다.’

    즉, 놈이 사용하는 힘에는 제한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도 그리 길지 않게.

    그는 다음으로 목적에 대해 생각했다.

    놈들은 과연 뭣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속 서북부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것일까.

    트레크라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너무도 알기 쉬웠기 때문이다.

    ‘합류하려는 것인가.’

    아니, 이 경우에는 구하려고 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 추리가 100%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무척 높은 상황.

    그때였다.

    내부로 들어온 병사가 트레크라를 향해 보고를 올렸다.

    “트레크라님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후후, 잘했다. 그럼 놈들을 찾아내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약 이틀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틀?”

    “예.”

    트레크라는 유세현이 입구를 돌파한 시일과 울락과 격돌한 시일을 비교해 이 근처에 도착할 날짜를 산출했다.

    4일로 그렇게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진 않았다.

    이것은 호조.

    트레크라가 말했다.

    “하루, 하루로 줄여라.”

    “예!”

    “그리고 놈들을 찾거든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예?”

    지시를 받은 병사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인간을 살려두다니?

    “쓸데가 있다.”

    “흠...그럼 몇 명 살려 놓습니까?”

    “되는대로 최대한 살려 놔라.”

    놈들이 누구를 구하러 오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확률은 일단 높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잘 만하면 이것으로 별 힘들이지 않고 놈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을 강탈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아니, 필히 지니고 있긴 있으리라.

    후발주자인 주제에 아무것도 없이 울락을 압도할 정도로 정상인건 말이 안 되니까.

    “알았나?”

    “예!”

    트롤 병사는 그때까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트레크라의 눈앞에서 다시 자취를 감췄다.

    흉계를 짠 트레크라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 역경의 길(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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