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79화 (279/612)
  • < 역경의 길(1) >

    뚝.

    유세현의 머리위로 떨어진 물방울 한 방울이 머리를 적셨다.

    솨아아-

    곧이어 폭포처럼 쏟아져 온몸을 적시는 소나기.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끈적끈적한 시꺼먼 비가 쉴 새 없이 내리고 있는 장소였다.

    [악몽의 신전, 역경의 길에 진입하셨습니다.]

    [더욱 짙은 악몽이 몸을 감쌉니다.]

    [흑운의 영향으로 탐색 및 통신 등의 감각계 스킬의 사용의 완전히 제한됩니다.]

    [역경의 길 끝에 다다르지 전까지는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알림창을 확인한 유세현은 곧바로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경계만 나뉘어있지 않다면 이제 거리와는 상관없이 집중하는 장소를 살펴볼 수 있는 그였지만 지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스킬이 아니라 완전히 제한된 건 아니지만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상황.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약 10km정도인가...’

    전부 둘러볼 수 있었다면 굳이 움직이지 않고도 수색이 가능했을 터인데.

    허나, 유세현은 되려 안도했다.

    떨어지는 빗줄기에도 굴하지 않고 주위를 꿋꿋이 둘러싼 채 시야를 차단시켜주고 있는 새까만 안개.

    그리고 사용되지 않는 탐색 스킬.

    만약 이태광이나 동생이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다면 일반적인 장소보다도 도주에 성공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약간의 걸리는 것이 있다면 많이 지쳤을 동생의 상태와 이곳에 서식하고 있었을 몬스터인데.

    유세현이 듣기로 유혜인과 리체는 레피아와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부터 차이가 있던 만큼 단순히 함께 성장을 시켰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그 외에도 김주희나 이강호가 많이 챙겨주었기 때문.

    게다가 전쟁군주 이태광도 있었다면.

    판도라 외부의 던전 한계 수준을 고려했을 때 몬스터에게 당했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때, 또다시 나타난 가짜 유혜인이 낄낄 웃었다.

    [후후후. 이곳은 그게 문제가 아니란 걸 오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무려 3달이야. 과연 이 악몽을 버틸 수 있었을까?]

    유세현은 그런 놈을 향해 부패의 어둠을 내뿜었다.

    이곳에서도 무용지물.

    [아쉬워~오빠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곧바로 올라왔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흔들림을 유발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유세현은 약간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그때 올라왔다면 지금쯤 동생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유세현은 신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였기 때문.

    동생을 믿는다.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유세현의 마음은 굳건하고 단단했다.

    그를 보호해주고 있는 권능을 제외하고도 감히 악몽이 범접하지 못 할 정도로.

    ‘그나저나 끝까지 돌파해야지만 나갈 수 있다라...’

    여태까지 그가 통과해온 던전은 중간까지 다다르면 나갈지 말지 선택권을 주었다.

    혹은 들어온 자리에 출구가 그대로 남아있다던가.

    ‘이 던전...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가짜 유혜인이 유세현을 주시하는 반면, 반쯤 붉어진 그의 눈은 시꺼먼 안개 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길을 향했다.

    * * *

    역경의 길.

    역경의 길은 5개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형식으로 2차 튜토리얼 때와 굉장히 흡사했다.

    그들은 그중에서 몬스터연합이 열어 놓은 길을 이용해 빠르게 치고나갔다.

    전부 처리하지 않았는지 간간히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짐작했던 대로 상대는 되지 않았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그러나 유세현은 결코 좋아만 할 수는 없었다.

    고스트피셔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는 일행들.

    이용석의 몸이 한순간 휘청거렸다.

    “젠장...머릿속이...”

    점점 한계에 달해가고 있는 느낌.

    가짜 유혜인이 틈을 놓치지 않고 비아냥된다.

    [저들이 죽으면 전부 오빠 탓이야. 그들은 오빠를 위해 들어온 거니까. 잘 알고 있지?]

    “......”

    처음부터 두고 왔어야 되었던 것인가.

    유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니, 애초에 조건이 갖춰져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무엇인가를 같이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고문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나저나 저 언니 대단하네. 보통 생명체라면 전투는커녕 당장에 미쳐서 길길이 날뛰어야 정상인데.]

    그렇게 말하는 가짜 유혜인은 정말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녀를 흘깃 쳐다본 유세현이 이내 시선을 옮겼다.

    이제껏 함께하면서 알게 된 놈의 특성.

    그건 마음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말을 내뱉는 것 이외에도 저런 식으로 종종 개인적인 의견을 꺼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지적인 관점에서 상대를 평가하는 식으로.

    가짜 유혜인이 처음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후후. 어쩌면 괴물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어.]

    그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 들어가는 것만큼 아주 작기 그지없었지만 정상인 유세현이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물론,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어리석게 질문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 후 일행은 발걸음 더 빨리했다.

    루시아와 아린, 이용석은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일정수준을 지나자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하는 선택지.

    이내 그들의 앞에는 단 하나의 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새까만 문의 색과 새겨져 있는 문양을 확인한 일행은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래 세 달...세 달이면 충분히 다다를 만도 하지.’

    아슬아슬하게 세이브인가.

    아니면 아웃인가.

    내부로 진입한 그들을 맞아준 것은 입구를 지키고 있던 오우거나 하피 등 서로 다른 외관을 지닌 30여 마리의 경계병들이었다.

    “저건 악몽전사?”

    “어떻게 이곳으로 넘어 온 거지?”

    유세현이 되살린 200여구의 마물을 보고 놀란 눈이 된 놈들.

    덕분에 놈들은 그 안에 섞여 있던 일행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수가 꽤 되지만...”

    “우리끼리 만으로도 충분하지.”

    “대충 보고해! 올라온 적을 처리하겠다고.”

    “알았어~”

    잽싸게 날아오른 하피 한 마리가 상공을 향해 음파가 섞인 날카로운 괴성을 지저귀었다.

    통신마법의 사용이 불가능한 만큼, 고전적인 수단과 스킬을 섞어 연락을 취한 것이었지만 효과는 폭풍을 뚫고 전달될 정도로 무척 탁월했다.

    그사이 남은 경계병들은 광역스킬을 쏘아댔다.

    쉬이이익-

    콰과광!

    꽤나 준수한 화력.

    경계병들의 능력은 A랭크로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바람의 길을 휩쓸며 올라온 유세현의 상대는 될 수 없지만 말이다.

    죽은 악몽병사의 틈으로 4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놈들의 눈은 당황을 넘어서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인간?”

    푹-

    말과 거의 동시에 쓰러지는 2마리의 리자드맨.

    “이, 이게 무슨 속도...”

    서걱-

    빛보다 빠른 섬광이 난무한다.

    경계병이 모두 전멸하기까지는 채 20초가 걸리지 않았다.

    기절시킨 하피 두 마리의 목을 양손에 움켜진 유세현.

    그가 평소처럼 이탈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허억...허억...허억...크윽.”

    이용석이 대뜸 머리를 움켜쥐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놈들에게 당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올 것이 기어코 온 것.

    “후우...후우...용석이, 자네 괜찮은가?”

    걱정하는 아린의 상태도 결코 좋지는 못했다. 루시아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상황.

    끼이이.

    투두두두.

    저편으로 부터 땅울림소리가 들려온다.

    그새 답장을 보냈는데 회신을 하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직접 찾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적의 추정 숫자는 약 300마리.

    마음만 먹는다면 놈들까지 죽이고 퇴각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유세현은 하피 두 마리를 왼팔에 몰아 든 뒤, 다른 한손으로 이용석의 몸을 번쩍 들었다.

    이용석이 당황하여 외쳤다.

    “야! 자, 잠깐만. 나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온 거 뿐이야. 움직일 수 있어.”

    그러나.

    “벗어나겠습니다.”

    유세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몸을 던졌다.

    * * *

    경계병 32명의 죽음.

    그리고 2명의 실종.

    보고를 받은 각 종족의 대표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몽 전사?”

    “예.”

    “그놈들은 약하잖아?”

    “예, 그렇죠. 하지만 그 주위에 실제로 악몽 전사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습니다.”

    “저도 직접 봤습니다.”

    각기 다른 종족의 병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증언하자 대표들은 고민에 빠졌다.

    본래 악몽전사들은 연합의 전사들을 죽어도 이길 수 없다.

    게다가 더 나아가 놈들은 대리자가 아닌 시스템적으로 존재하는 몬스터다.

    그런 놈들이 관문을 통과해 이곳으로 넘어 오다니?

    ‘병사들이 퇴각 하지 않은 것도 많이 이상하다.’

    이에 여러 종족 중 생각이 깊고 총명한 트롤의 대표, 트레크라가 말했다.

    “전사들의 시체는? 확인해 봤나?”

    “아직은...후발대가 가지고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그럼 도착하는 대로 이곳에 전부 가져와 봐라.”

    직접 살펴보기 위함.

    그러나 그때 리자드맨의 대표, 레잔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잠깐. 우리 쪽은 허락 할 수 없네.”

    애초부터 전사 집단이었던 리자드맨들은 부족을 위해 죽은 이들을 성스럽게 여기고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회수하지 못한 시체는 어쩔 수 없지만 회수한 것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곧장 화장을 해주는 것.

    “아, 거참. 또 죽은 이에 대한 예우 뭐시기 때문인가? 죽으면 끝이지 예우는 무슨 예우야. 그리고 뭐 별거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냥 죽은 도마뱀 시체 좀 보겠다는 건데.”

    오우거 대표, 울락이 어이없다는 듯 손을 치켜세웠다.

    이에 레잔이 울락을 노려봤다.

    울락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열 받나? 한판 붙어보고 싶어?”

    “...우리 동족을 모욕하지 마라.”

    “크크, 모욕은 무슨. 도마뱀을 도마뱀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부르나?”

    “...네놈, 계약만 아니었어도 넌 지금 내 칼에 목이 날라 갔을 것이다.”

    레잔이 말하자 울락이 배꼽을 쥐며 큰 웃음을 내뱉었다

    “크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대륙에 있을 때는 눈도 마주치지지 못했던 미개한 놈들이!”

    “이젠 아니지.”

    “이젠 아니긴! 너흰 아직도 한 입 거리야.”

    시선이 교차한 두 대표들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언뜻 보면 당장이라도 전투가 일어날 듯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무척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서로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

    먼저 공격한 쪽은 계약의 효과에 의해 죽거나 재기 불능이 된다.

    트레크라가 중재를 했다.

    “거기까지 하도록 하지. 어차피 지금은 겨루고 싶어도 못하지 않나. 리자드맨의 시체는 빼도록 하겠네. 혹시 또 시체를 제공하기 싫은 종족이 있는가?”

    “크! 그런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도마뱀새끼들 말고 누가 있겠어! 야! 거기 도마뱀! 지금당장 뛰어가서 도착 했나 확인하고 빨리빨리 가져와! 제공하기 싫으면 이런 거라도 해야지. 안 그래?”

    울락이 리자드맨 병사를 향해 명령했다.

    이에 레잔의 표정이 다시 험악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었다.

    공평성 또한 계약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시체를 가져오자 트레크라가 직접 나서서 살폈다.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급소 가격.

    게다가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베인 것은 맞지만 악몽 전사의 손톱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이거, 악몽전사의 짓이 아니군.”

    “동감이다.”

    살짝 심각해지는 표정.

    몬스터의 소행이 아니라면, 답은 인간세력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흠...그럼 그놈들 소행인가?”

    “아니, 그건 아니야. 놈들은 거의 한계에 달해있었어. 그때 놓친 건 정말 운이 없어서지.”

    “그렇다는 건...”

    레잔의 말에 트레크라가 눈을 번뜩 빛냈다.

    “새로운 놈들이 올라 온 게 분명하군. 그것도 악몽전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놈이...”

    < 역경의 길(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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