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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78화 (278/612)
  • < 악몽의 산맥(3) >

    유세현은 고스트피셔를 노려봤다.

    ‘이놈은 대체 뭐지?’

    시스템? 혹은 던전의 문지기?

    대개 특수한 룰은 알림창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무척 희귀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설마 함정?’

    아니, 아니다.

    함정이라면 이런 식으로 룰을 알려주진 않을 것이다.

    [어쩔 거야 들어갈 거야? 말거야?]

    “...이놈들을 살려야 된다는 건가?”

    [후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이놈들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죽지 않는 몸이 되니까. 너희들은 너희 마음대로 행동해도 돼. 그럼 알아서 이놈들이 따라올 거야.]

    “......”

    유세현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며 고민했다.

    아린에게 붙은 고스트피셔는 3마리, 이용석에게 붙은 고스트피셔는 2마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시아 붙은 고스트피셔는 무려 5마리나 되었다.

    이용석에게 이전 들었던 대로 신전내부로 들어갔을 때 이 특수한 효과가 사라진다면 들러붙은 고스트피셔는 별로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지만.

    ‘직접 붙인 이상 그렇게 될 가능성은 무척 낮다.’

    즉, 이 효과는 계속 받는다고 봐야 되었다.

    이들이 버틸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결론을 도출해준 것은 다름 아닌 가짜 유혜인이었다.

    [머리굴려봤자 너희가 현재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어차피 단 두 가지뿐이야. 들어간다.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경우의 수 같은 건 없어. 자 1분의 시간을 줄 테니 신중히 답해.]

    고스트피셔가 손을 휘젓기 무섭게 허공에 아날로그시계가 나타났다.

    째깍 째깍.

    돌기 시작하는 초침.

    [참고로 말하자면 기회는 단 한번 뿐이야. 두 번은 없어.]

    유세현은 그 말에 마음을 정했다.

    “저 혼자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곧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서 죽음의 강 반대편에 있는 세력과 합류해 계시기 바랍니다. 다 끝나면 곧장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룰이 알 수 없게 바뀌어버린 이상, 그리고 고스트피셔의 수를 보건데 이것이 최선의 수이기 때문.

    그러나.

    [흐흐흐,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4명 합쳐서 조건이 클리어 된 거니까. 다 함께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어.]

    유세현의 오른쪽 눈가가 씰룩였다. 무슨 조건이었는지 물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느새 40초가 지났기 때문.

    이제 정해야 한다.

    구현된 지드먼을 보고 있던 루시아가 말했다.

    “저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들어가요!”

    아린이나 이용석도 스스로 원해서 따라온 만큼 말을 물리는 일은 없었다.

    유세현이 10초를 남겨놓고 고스트피셔를 향해 말했다.

    “좋아. 들어가겠다. 문을 열어줘.”

    [후후, 그러도록 하지.]

    끼이익-

    시계의 초침이 멈추며 신전의 입구가 개방되었다.

    * * *

    [악몽의 신전에 진입하셨습니다.]

    [악몽이 육신을 감쌉니다. 각종 저항력이 임시적으로 일정수준 하락합니다.]

    내부로 들어서기 무섭게 나타나는 알림창.

    유세현은 이동전 스테이터스창을 켜 떨어진 수치를 확인했다.

    마법, 물리 방어력을 제외한 속성저항력의 상당치가 깎여나가 있었다.

    물론, 그래도 어둠속성 저항력만큼은 변함이 없었지만.

    사실 문제는 저항력이 아닌 다른 것에 있었다.

    [루시아. 네 어미는 너 때문에 죽었다. 너만 없었다면...]

    지드먼의 형상을 한 고스트피셔가 차분한 어조로 읊조렸다.

    뜨끔한 루시아가 시험 삼아 검을 휘둘렀으나 통과하여 애꿎은 허공만 벨 뿐 전혀 무용지물이었다.

    불사라더니 아예 건드릴 수가 없게 된 것!

    [아린,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었었잖아. 왜 나를 외면한 거야? 도대체 왜...]

    [용석오빠. 왜 나를 붙잡지 않았어?]

    각자의 대상을 향해 끝없이 내던지는 말.

    그것은 모든 것을 떠나 무척 정신사납기 그지없었다.

    어느 틈엔가 유세현의 옆에 달라붙은 가짜 유혜인이 킥킥 웃었다.

    [히히히. 어때 오빠. 저들이 과연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그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응이 불가능할 때는 역시 무시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

    허나.

    “에이 썅!”

    이용석이 잔뜩 일그러진 인상이 되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여성이 물체를 통과할 수 있는 특수성을 살려 난데없이 얼굴을 불쑥 들이댄 탓이었다.

    “대체 왜 이 여자가 내 앞에...”

    이용석으로서는 깔끔하게 맺고 끊었던 인연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작전에 참가했다가 죽은 것이었으니까.

    물론, 마지막까지 막지 못한 것이 아주 약간 후회로 약간 남아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라우마는 절대 될 수 없다.

    ‘룰이 살짝 바뀐 건가?’

    그 순간 이용석은 놈들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려는 거로군. 틈이 생기면 파고 들 생각인가 본데...’

    사람 잘못 봤다.

    자신은 과거 탐욕에 눈이 멀어 인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까짓 것에 휘둘릴 인물이 아니라는 말씀.

    이용석은 장담했다.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그때 주위를 살핀 유세현이 질문을 해왔다.

    “과대 형, 이곳이 형이 알고 있는 그 신전 맞나요?”

    “글쎄...익숙하긴 한데...”

    이용석은 확실하게 답하지 못했다.

    봉인된 신전이라고 명시되어 있던 이전과 달리 악몽의 신전이라고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

    구울은 조건이 맞지 않아 데리고 들어오지 못했기에 일행은 일단 유세현과 이용석을 선두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귓가로 들려오는 말을 애써 무시해가며 지형지물을 유심히 살피던 이용석의 눈가에 이채가 맺혔다.

    “야, 세현아. 이곳 내가 아는 신전 맞아.”

    “오 그런가요?”

    “응.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 따지면 99.99%.”

    “그럼, 안내해 주세요.”

    “오케이. 그런데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 속도는 일정수준만 유지한다?”

    “예.”

    5초도 안되어 짜여지는 방향.

    이용석이 달리기 시작하자 일행이 곧바로 뒤를 따랐다.

    * * *

    신전에 돌입한지도 3일.

    최하층에 도착할 때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력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인 유세현이었지만, 트랩이나 장치로 추정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새까맣게 칠해져 있는 철문 앞에 멈춰선 이용석.

    “후우...이 앞이 장치가 있는 장소야.”

    내부에서는 생명체 특유의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어 재꼈다.

    제일먼저 눈동자에 비친 것은...

    퀭한 눈가를 꾹꾹 누른 뒤 앞을 살핀 아린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찢겨진 걸레조각 마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육신 파편과 지면에 눌러 붙어 변색된 피.

    가짜 유혜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어때 오빠. 지금도 살아 있을 거 같아?]

    “......”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쳤다.

    당한건가? 여기서?

    [마녀! 너만 없었으면! 우리는 이렇게...]

    유세현이 한순간 망설이자 머리를 휘휘저어 고스트피셔의 말을 애써 떨친 루시아가 입 열어 말했다.

    “시신이 있는지 찾아보죠. 저는 세현씨의 동생분이 당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

    네 명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시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용석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죽어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태광의 팀원이라는 것을.

    유세현은 제발 동생의 시신이 이곳에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확인해 나가던 그의 시야 속에 꽤나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이 남자는...’

    이름도 기억한다.

    김길태.

    이태광의 오른팔이었던 남자.

    그리고 그런 김길태의 시신 옆으로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시체 한 구가 엎어져있었다.

    동생과 무척 비슷한 키와 체구. 그리고 헤어스타일.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젠장...제발 아니기를...’

    유세현은 아주 조심스럽게 시신을 넘겼다.

    코부터 시작해 오른쪽 안구까지 함몰되어 있는 얼굴.

    눈알이 터지고 뇌수가 흘러나와 있는 터라 그 모습은 무척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지만 구더기 같은 것은 없었기에 다치지 않은 곳의 피부는 꽤나 멀쩡했다.

    이에 유세현은 황급히 왼쪽 눈꼬리 끝을 살폈다.

    유혜인이라면 애교점이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없을 터다.

    “후우...”

    이윽고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

    그 후 일행은 샅샅이 뒤졌지만 다행이도 유혜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스킬로 인해 형체가 아예 날아간 시신 몇 구가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배제하기로 했다.

    이유는 이태광이나 리체의 시체 또한 발견 되지 않았기 때문.

    이용석이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별씨의 시신도 없었어! 어디론가 빠져 나간 게 분명해! 유세현! 넌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지? 그래서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 거 맞지?”

    “예.”

    고개를 끄덕인 유세현이 일정한 간격으로 묻어있는 있는 혈흔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3개의 방을 지나 액자 앞에서 멈춰선 유세현.

    액자에는 역경을 표연한 듯한 어두우면서도 칙칙한 벼랑길이 그려져 있었다.

    기억을 되짚은 이용석이 진중한 표정이 되어 턱을 짚었다.

    ‘이런 건 저번엔 없었는데...설마?’

    유세현이 마력이 일그러진 부위에 손을 살짝 갖다 대자 그림이 뒤틀리며 소용돌이 쳤다.

    점점 공간이 넓어지며 눈앞으로 생겨나는 검은 포탈.

    내부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옆에 있던 가짜 유혜인이 읊조렸다.

    [들어가려고? 오빠는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아닐 걸?]

    “......”

    유세현은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세 명을 살폈다.

    고작 3일, 고작 3일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몰골은 무척 초췌해진 상태였다.

    자나 깨나 무한이 반복되는 속삭임 때문.

    귀를 막아도 마음속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기에 소용이 없다. 방해도 불가능하다.

    놈들은 유세현을 제외한 세 명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덕분에 죄책감이 없는 이용석도 지금은 다크서클이 약간 내려온 상황.

    [후후,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에도 갈 거라면 다 같이 가야돼. 하지만 돌아가고 싶다면.]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반대편에 익숙한 문이 나타났다.

    [이곳을 통해서 나가면 돼.]

    “......”

    [자~어떻게 할 거야?]

    그 말에 답한 것은 이번에도 루시아였다.

    “가요.”

    [호오...정말 괜찮아? 내가 보기에 제일 괴로워 보이는 건 언니 같은데.]

    5마리의 고스트피셔에게 항시 둘러 쌓여있는 그녀.

    놈들은 여전히 싸늘한 비수를 순차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상관없어.”

    [후후후, 그거 참 대단하네. 자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도 1분 안에 정해.]

    다시금 나타나 돌아가는 초침.

    [아, 참고로 말하자면 이 내부 공간의 힘은 이곳보다도 더욱 강해.]

    가짜 유혜인이 말을 덧붙였다.

    이에 유세현이 싸늘한 눈동자가 되어 그녀를 바라봤다.

    “너...대체 정체가 뭐지? 뭔데 나한테 붙어있는 거지? 답해라.”

    쿠구궁.

    암흑투기가 가짜 유혜인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싱글 생글 웃을 뿐이었다.

    [후후, 지금 그게 중요해? 50초 남았어. 오빠.]

    유세현은 역시나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이 장소에서 이놈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칫!’

    혀를 차며 시선을 돌리자 아린과 이용석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윽고 넷은 천천히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 환경이 녹아내리며 바뀌기 시작한다.

    더 어둡고 더 음습하게.

    그리고 마침내 배경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 그들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후후, 네 명 모두 역경의 길에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 악몽의 산맥(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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