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72화 (272/612)
  • < 난세(1) >

    “크윽!”

    극심한 고통에 라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라캄.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허나.

    “이, 이게 무슨...”

    일으키는 것은 둘째 치고 사지가 움직여지지도 않는 육신.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뇌리 속에 그제야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허...”

    그래, 분명 제대로 한방 먹긴 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자신이 기절을 했다는 것인가?

    우월한 물리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자신이?

    그때,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 유세현이 라캄을 향해 말했다.

    “너에게 몇 가지 물어볼게 있다.”

    이에 라캄이 이를 으득 갈았다.

    “큭! 네놈!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어떻게 나를 단 한방에...”

    퍽-

    “크헉!”

    동문서답을 좋아하지 않는 유세현이 순식간에 발을 놀려 라캄의 몸을 짓밟았다.

    꾸꾸국.

    지그시 힘을 가하자 눈에 띄게 일그러지는 라캄의 표정.

    사지가 전부 잘려있는 덕에 그는 그 흔한 반항조차도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력을 전부 쏟아 부어 스킬이라도 난사하고 싶지만.

    관통당한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출혈 때문에 운용할 겨를이 없다.

    그는 깨달았다.

    완전히 패배했음을.

    자신은 이곳에서 죽는 다는 것을.

    유세현의 착 가라앉은 싸늘한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

    잠시 꾹 닫힌 라캄의 입.

    허나, 그것도 잠시.

    그의 입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크크크.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아둔한 놈이구나. 내가 네까짓 놈의 질문에 답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말하지 않으면 곱게는 죽지 못한다.”

    “크크크, 그래! 바로 그거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결국 죽는 건 똑같지. 마음대로 해봐라! 나는 위대한 리자드맨의 전사! 네까짓 것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

    유세현은 잠시 라캄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짓밟으며 툭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이다. 이 너머에 악몽을 꾸게 해 대리자를 죽게 만드는 산맥이 있다는 걸 안다. 거기서 최근 너희들이 펼친 작전에 대해 아는 데로 말해라.”

    “크크크, 무슨 질문을 할까 했더니. 뜬금없이 악몽의 산맥? 거긴 왜? 혹시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이 실종 되기라도 한 건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정말 좋겠군!”

    “......”

    -퍼버벅.

    유세현의 주먹이 라캄의 육신을 난타했다. 허나.

    “크크크. 정곡인가?”

    “......”

    유세현은 그 이후 라캄이 딴말을 할 때 마다 고문을 가했다.

    검으로 피부조각을 벗겨내고, 부패의 어둠으로 육신을 부패시키고.

    그렇게 2시간.

    유세현이 가하는 고통은 너무도 극심한 것인지라 이젠 편해지고 싶을 만도 하건만, 라캄은 굴하지 않았다.

    이에 유세현은 라캄 대신 케샤를 깨웠다.

    똑같이 이어지는 질문.

    “흥! 내가 내까 짓 놈의 말 따위를...”

    퍼버버벅-

    유세현은 때리고 또 때렸다. 온몸이 난자되어 피멍으로 물든 케샤가 중얼거렸다.

    “주...죽여! 네깟 놈들에게 말해 줄 것 따위는...”

    “......”

    비아냥거리는 것을 듣고 있자면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그러나 유세현은 냉정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되려.

    “영감님 놈들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그 말은 놈들을 경악케 하기에는 충분했다. 생명이 다할까봐 치료를 해주고 고문을 이어나가다니!

    그렇게 반나절.

    “커어...커어억...주...죽여...”

    케샤가 한계에 달했는지 중얼거렸다.

    허나. 유세현은 결코 그들의 목숨을 끊지 않았다.

    괴롭히고 괴롭힌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끝없이.

    질문을 던진 그가 한 번 더 주먹을 내리꽂으려는 찰나였다.

    [숨겨진 던전.]

    케샤의 마음속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마왕 루시뷀트. 그리고 일부 신만이 지니고 있는 통찰력이 발동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가 계속해서 고문을 한 이유였다.

    유세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케샤에게 캐물었다.

    “크...네까짓 놈에게 말해줄...”

    케샤는 계속 반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정보는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게리오그 산맥에 위치해 있는 신전의 최하층.

    그곳에 숨겨져 있는 특수한 던전.

    확실하진 않았으나, 시간상 타이밍이 얼추 겹치는 느낌이 있었다.

    유세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

    제발 아니기를 바랐는데. 살아있을까?

    그는 고개를 휘휘 털며 애써 생각을 접었다.

    아직 놈들에게 물어볼 것이 더 있기 때문.

    “첫 번째 질문은 됐다. 답을 들었으니까.”

    “...?!”

    그 말에 라캄과 케샤의 눈이 한순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인가?

    “하...뭐라는 거냐. 그딴 말로 우리를 동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천만의 오산...”

    “숨겨진 던전의 클리어.”

    단 한 문장에 불과했지만 라캄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최고 기밀사항이라 자신들을 제외한 부대장들도 모르는 사실이건만 어떻게 그것을 놈이 알고 있단 말인가?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동요.

    유세현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실 그가 질문하고 싶었던 핵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네놈들 어떻게 연합 상태를 이렇게 잘 유지하고 있는 거지?”

    에반에게서 전해들은 이강호의 말.

    [지금 상황은 말이 안 된다.]

    유세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강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내부로 같이 나아갈 수 없는 만큼, 놈들의 연합은 사실상 허례허식이어야 하기 때문.

    즉, 마지막에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데 타 종족을 위하여 전력을 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렇지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완벽한 상호보완 플레이.

    당연히 수상하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연 어느 놈이, 무슨 수로 이렇게 잘 연합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것일까?

    “하! 무슨 개소리를...”

    라캄이 반박했지만 동요가 더 커져서 그런지 생각을 읽는 것은 이전보다 편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계약.]

    유세현이 중얼거리자, 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 자식 설마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가?’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유세현의 시선과 마주한 라캄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어느 틈엔가 붉은빛으로 변한 눈동자.

    흡사 정신이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눈빛이었다.

    유세현은 좀 더 깊이 파고들려했다.

    허나, 놈들도 계약이란 것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모양인지 더 이상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부수적인 수확이 있었는데.

    [트롤의 왕 트루크.]

    놈이 계약을 주도한 인물인 것 같았다.

    유세현은 이어서 현 상황과 대략적인 병력배치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캐내었다.

    라캄과 케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으...네노옴...”

    그들은 분했다.

    스스로 죽지 못한 것이, 놈을 죽일 수 없는 것이.

    “네놈...절대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여왕님께서 네놈을 씹어 먹어...”

    온갖 이어지는 악담.

    유세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검을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툭 말했다.

    “넘겨준 정보는 고맙게 잘 쓰도록 하지.”

    “크아아아! 인가아아안!”

    서걱.

    촤자작.

    유세현은 둘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고문을 즐기는 이였다면 더 가지고 놀았겠지만 유세현은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스.

    코인을 흡수하기 무섭게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아린이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자네 그 능력은...”

    “아...가끔 발동되는 능력입니다. 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 것 같지만...역시 꺼림직 한가요?”

    유세현이 볼을 긁적였다.

    즉답한건 루시아였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

    조곤조곤하지만 특유의 신뢰가 듬뿍 담겨있는 말투였다.

    아린도 솔직히 답했다.

    “허허, 나는 솔직히 심리적으로는 좀 그렇네만. 뭐 자네이니...이것 참 괜한 말을 했구먼. 스스로도 많이 의식하고 있었을 터인데. 내 미안허이.”

    “......”

    유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그리 생각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

    그런면에서 루시아의 무조건적인 신뢰는...

    김주희랑 이강호를 보는 느낌이다.

    유세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키메라화 되는 두 개의 개체. 그가 절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계속 가도록 하죠.”

    * * *

    바람의 길에 들어선 알데우스 로아드와 길드장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선발대에게서 적이 한 마리도 없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국군의 군세에 밀려 적이 물러난 것인가?

    단연코 말 하건데 아니었다.

    그랬다면 전갈이 왔을 테니까.

    이윽고 중간지점에 들어선 그들의 눈에 전투의 흔적이 비쳤다.

    완전히 개박살난 지형지물.

    반면 시체는 눈에 띄게 적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시체를 살폈다.

    만약, 그가 진짜 이곳을 지나간 것이라면...

    터지고 짓이겨져 전부 거동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체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때 알 수 있었다.

    유세현, 그가 통과했다는 것을.

    “허...”

    혀를 지그시 찬 알데우스가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상처는 전부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고통은 남아있는 느낌.

    그는 그때의 기억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왜 그런 말을 지껄였을까 후회가 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후...웬만하면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알데우스가 외쳤다.

    “진군한다!”

    그들은 만약의 기습에 주의하며 절벽으로 이루어진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잔당이 남아있을까 그런 조취를 취한 것이지만.

    그들은 그 지역을 나설 때까지 단 한 마리의 적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 * *

    통칭, 악몽의 산맥.

    유세현이 가려는 이 산맥은 죽음의 강 위에 위치해있다.

    터널처럼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강이 통과하고 그 위를 땅과 숲이 뒤덮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

    모닥불 앞에 앉아 지도를 펼친 유세현이 턱을 짚었다.

    현재 지도에는 라캄과 케샤에게서 알아낸 적군의 위치가 대략적으로 명시되어있었다.

    그는 그것을 토대로 최대한 적을 피해 길을 찾으려 했다.

    스텟의 증가도 좋지만, 지금은 동생의 생사가 우선이기 때문.

    허나.

    “난잡하네요. 만약 이게 맞다면 피해갈수는 없을 것 같아요.”

    루시아의 말에 아린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직선거리로 나아가세나.”

    “쩝. 그 편이 났겠군요.”

    유세현은 지긋이 혀를 차며 지도를 접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세 명의 시선이 저 먼 북동쪽을 향했다.

    * * *

    “허억...허억...젠장! 빌어먹을 제국군새끼들!!”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하고 있는 인원들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무척 안 좋은 의미로 어마어마한 수의 대군이 뒤따르고 있었다.

    몸집만 4m가 넘는 오우거와 거미의 하반신과 여성의 상체가 합쳐져 있는 아라크네.

    본래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제국군과의 협공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제국군은 약속을 어기고 잽싸게 내뺀 상태였다.

    한 길드원이 앞에 있는 남성을 향해 외쳤다.

    “이용석 길드장님! 이젠 어떻게 합니까! 곧 따라 잡힙니다. 이대로 튀기만 하는 건 의미가...”

    “으으으! 이런 씨바아알! 쿠르네 백작. 이개새끼가아아아!! 각 길드장에게 전달해! 저 고지 위에서 항전 하자고! 그리고 이 말도 똑똑히 전해! 혼자 도망가 봤자 전멸이니까 괜한 허튼짓 말고 죽을힘을 다해 쳐 싸우라고!”

    “예!”

    이용석은 이마에 핏대가 솟을 정도로 온힘을 다해 달렸다.

    < 난세(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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