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상(3) >
중간지대로 빠져나가는 6개의 출구 중 한 장소.
-캬아아아.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의 형태를 띠고 있는 약 2500마리의 구울들이 광기어린 모습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투두두두!
흡사 개미떼를 연상케 하는 밀집도.
그런 그들의 최후미에는 키메라화가 이루어진 특이개체 한 마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혼자만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는 것이, 키메라는 마치 모두를 이끄는 장수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적을 속이기 위해 유세현이 일부러 연출한 장면이었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적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착각한 것.
행여나 병력이 더 나올까 잠시 지켜보던 지휘관 리자드맨이 마침내 공격명령을 내렸다.
“벌레 놈들을 모두 처단해라!”
“캬하하! 모두 죽여라!”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빗발치는 스킬.
이에 모든 생명체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은 구울들이 몸을 홱 돌려 리자드맨과 하피를 향해 달려들었다.
A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기에 엄청난 속도.
구울은 그 강한 스텟을 이용해 스킬을 버텨내며 파고들었다.
“크아악!”
알비론의 검에 잘리고 스카이레블의 갈고리에 찢겨져나가는 리자드맨과 하피.
허나, 구울은 놈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수준이 높은데다가, 인원들 또한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
푹-
결국 전투는 키메라가 당하는 것으로 꽤나 허무하게 끝이 났다.
키메라를 처리한 지휘관 리자드맨이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지면을 향해 침을 뱉었다.
전달받은 정보처럼 정말로 코인을 주지 않았기 때문.
특이개체가 꽤나 강했다는 것을 고려하건데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쳇, 완전 손해만 봤군.”
“그러게 말이야.”
어느새 옆에 내려앉은 하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고요해진 출구를 응시한 리자드맨이 툭 말했다.
“이게 놈들의 전부려나?”
“흠, 그렇지 않을까? 놈들은 항상 우르르 몰려다니잖아. 튈 때도 같이 튀고 죽을 때도 같이 죽고. 그리고 뭐 더 있어도 상관은 없지. 어차피 수색조와 경계조를 또 꾸릴 거니까.”
“하긴...”
리자드맨은 몸을 휙 돌렸다.
이곳은 자신들이 완전히 점거한 상황.
지형지물을 모르는 알베타스는 쉽게 들어올 수도 뚫을 수도 없다.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보고를 받은 라캄과 케샤는 곧바로 통로에 수색조를 파견했다.
행여나 알베타스가 남아있을까 했기 때문.
허나, 유세현과 구울은 이미 레피아가 알려준 특수한 장소를 찾아 은, 엄폐한 후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그들은 인원 배치를 다시 정상화시켰다.
B랭크 병력 1000명을 죽이는데 A랭크 병력 2500명이 동원된 것이라면 쥐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된 격.
즉, 경계조가 전멸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던 만큼, 긴급태세를 해제한 것이다.
마력의 배치를 살핀 유세현의 입가에 미미한 호선이 그려졌다.
비록 유용한 병력 2500마리를 아깝게 보내긴 했지만, 작전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기 때문.
역시 직접적으로 바람의 길을 공략하지 않은 놈들은 수없이 많은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 비밀공간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추후를 고려하자면 대놓고 대기하고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피해가 적을 것이다.
육포를 하나 꺼낸 유세현이 입에 넣기 전 말했다.
“내일 놈들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 * *
적을 의외로 손쉽게 격파한 라캄이었지만 그의 기분은 별로 좋지 못했다.
에반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고 싶은 기분.
그러나 연합에서 그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아니, 허락해주기야 하겠지만 그건 북쪽의 인간을 완전 멸살한 이후일 터.
그때였다.
“라캄님! 적습입니다!”
허겁지겁 달려 온 부하로부터 갑작스러운 보고가 이어졌다.
라캄은 차분하게 반응했다.
이전처럼 대응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 대응하면 되지 않느냐. 이전처럼 인원들 불러 모아!”
“그, 그게 불가능 합니다.”
“...뭐? 그게 뭔 소리냐?”
라캄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부하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노, 놈들은 이미 통로를 빠져 나왔습니다!”
“뭐라고?”
라캄의 눈에 불신이 어렸다.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길목에 경계조가 위치해 있건만 이미 통로를 넘어섰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디 쪽이냐!”
“D-1303 통로입니다!”
“D-1303?”
“예!”
D-1303은 3일전 알베타스가 넘어온 통로 중 3번 출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케샤에게 향했다.
“케샤! 놈들이 이곳까지 들어왔다는데 그동안 아무런 보고도 듣지 못한...”
다분히 질문한 그가 채 말을 끝마치지도 못했을 때였다.
파앗.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검붉은 빛.
이어서 강렬한 후폭풍이 그들의 위치해 있던 장소에까지 밀려 들어왔다.
라캄은 마치 뇌전이라도 맞은 듯이 몸이 쩌릿쩌릿 했다.
방금 전의 그 광역스킬은 대체 뭐란 말인가?
“케샤!”
“알고 있어! 가자!”
그들은 일단 지니고 있는 병력 1만을 이끌고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눈앞으로 펼쳐지는 전투의 현장.
케샤와 라캄의 동공이 한순간 파르르 지진을 일으켰다.
동족인 하피와 리자드맨 그리고 인간과 벌레들이 자신의 병력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마치 한마음은 한뜻을 가지게 된 것처럼.
“감염충인가?”
케샤의 중얼거림에 라캄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보만 지니고 있는 케샤와 달리 감염충에 감염된 동족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만약 감염되었다면 촉수에 둘러싸이고 피부가 으스러져 제 형태도 유지하지 못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되는 전투력 저하.
그런데 이놈들은...
-캬아악.
차원이 다르다. 이성은 잃었지만 제대로 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상어같이 날카로운 라캄의 이가 으득 갈렸다.
‘뭐냐, 이건...대체 어떻게...’
무슨 영문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때 라캄과 케샤의 망막에 충격적인 장면이 들어와 맺혔다.
코인을 내뱉고 죽은 동족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것.
무려 10초전까지 만해도 적을 향해 공격하던 동족은 어느새 놈들과 동일한 존재가 되었는지 동족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라캄과 케샤는 그때 깨달았다.
저건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현재 자신들이 적대하고 있는 이는 알베타스가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종족? 아니면...
‘설마?’
라캄의 눈이 씰룩인 순간.
적들 사이에서 생겨난 기다란 선 하나가 그가 위치해 있는 장소를 향해 날아왔다.
파공성도 그 흔한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라캄과 케샤를 포함한 정예병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위험하다!’
순식간에 산개해 회피하는 이들.
몇몇은 자신이 있는지 광역스킬을 이용해 대적하려 했지만 결과는 무척 좋지 않았다.
스윽-
“어?”
베인지도 모른 채 잘려나가 땅을 뒹구는 육신.
“크으으! 무슨!”
하반신을 잃은 리자드맨 투사들은 황급히 몸을 갖다 붙이려했다.
그들의 높은 회복력이라면 생명이 다하기 전 어느 정도는 이어붙이는 게 가능하니까.
허나.
“크으...왜...왜!”
단면을 갖다 대도 붙지 않는다.
이번에는 케샤와 라캄이 반격을 가하기 위해 각자의 병장기 끝에 마력을 모았다.
후우웅!
쿠아아앙!
바람을 가르며 뻗어나가는 두 줄기의 섬광.
각기 유니크 A, S 랭크의 스킬로 실로 굉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스킬이었다.
라캄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와라!’
허나, 당연히 유세현이 반응할리가 없었다.
-캬아아악
순식간에 시선을 돌린 구울들이 괴성을 지르며 라캄의 병력이 있는 가파른 절벽을 향해 도약했다.
이에 라캄과 케샤 그리고 휘하 장군과 정예병들은 그 속에서 이 시체를 일으킨 적을 찾기 위해 모든 집중을 쏟아 부었다.
역지사지.
자신이 적이라면 분명 시체들의 틈에 섞여 목을 노릴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2m가 넘는 알비론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린과 루시아.
무려 A랭크 68% 힘 스텟을 지니고 있는 라캄의 눈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역시 인간이었나!”
그는 리자드맨 특유의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루시아를 향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이전의 전투로 힘 스텟이 20%정도까지 오른 그들이지만 반응하기에는 너무도 차이나는 격.
허나, 그 순간 어마어마한 압박이 라캄을 포함한 일대의 모든 적을 짓눌렀다.
심장을 포함한 체내의 모든 장기가 내려앉는 감각.
‘이, 이게 무슨!!’
지금까지 판도라를 헤쳐 오며 수많은 종류의 디버프 스킬을 받아본 적 있는 라캄이었지만 이런 감각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온몸에 족쇄를 채운 듯한 감각.
그의 눈앞으로 그새 목이 잘려나간 정예병의 육신이 비쳤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칠흑의 검도.
‘빌어먹을!!’
라캄은 한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모든 스킬을 사용했다.
허나, 그럼에도 눈앞의 인간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허벅지.
유세현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마치, 놀랍다는 듯.
그리고 실제로 그는 놀라고 있었다.
알베타스와는 달리 너무도 쉬웠기 때문이다.
“이놈이!”
순식간에 날아든 케샤가 유세현을 향해 양손에 쥐고 있는 단검을 휘둘렀다.
루시아가 잽싸게 방어막을 쳐주었지만 딱히 필요는 없었다.
몸을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여유롭게 회피.
유세현은 라 아닐더를 운용해 케샤의 날개와 함께 팔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라캄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지면으로 움푹 박히는 라캄의 발.
“무, 무슨!”
“말도 안돼! 라캄님이...”
“케, 케샤님!”
리자드맨과 하피들은 가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람을 길을 지키고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강한 두 사람이다.
스텟이 스텟인 만큼 그들과 1:1로 승부를 벌여 이길 수 있는 자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고작 인간 한 명에게 놀아나다니!
“끄윽...이 스킬은 대체...”
원인은 알지만 막을 수가 없다.
게다가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압박감이 왠지 모르게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라캄이 힘겨운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어떻게 너 같은 놈을 내가 지금까지 모를 수가...”
그러나 유세현은 결코 답할 사람이 아니었다.
질문을 하는 것은 자신.
“일단 자고 있어라.”
콰앙!
유세현이 주먹을 내리 꽂자 절벽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 * *
전투는 유세현의 승리로 끝이 났다.
뒤늦게 다수의 지원군이 도착했지만 라캄과 케샤가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에게 퇴각이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코인을 흡수한 아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허...그 힘 정말 장난이 아니구먼.”
“저도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루시아도 옆에서 그녀 특유의 조심스러운 어조로 동의를 표했다.
이에 유세현이 실소를 내뱉었다.
“저도 이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실 아까도 그랬든 제일 많이 놀란 것은 본인 스스로였다.
레전더리 급으로 올라간 암흑투기.
설마 그 정도로 위력이 올랐을지는 차마 짐작하지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상대가 암흑투기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알베타스가 아니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세현은 시선을 옮겨 사지가 전부 잘린 채 쓰러져있는 케샤와 라캄을 슬쩍 살폈다.
전부 처리했으니 이제 할 일을 할 생각인 것.
그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영감님, 루시아씨 잠시 자리를 좀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나름의 배려였다.
허나.
“같이 있을게요.”
“나도 마찬가지네.”
갑주를 툭툭 턴 루시아와 아린이 유세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둘 다 이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고려하건데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유세현이 둘 중 먼저 라캄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 북상(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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