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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70화 (270/612)
  • < 북상(2) >

    구울은 그 특성상 다소 불합리한 작전도 펼칠 수 있는데 그 이점을 이용해먹으려는 것.

    허나.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유세현이 그의 말을 따라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제국군인 반면, 자신은 팀이었기 때문.

    그리고 팀은 개인적으로 성과를 올릴 자격이 있다.

    레피아가 잠입을 해서 군락지를 부수고 다녔던 것처럼.

    딴 장소로 도망치는 거라면 몰라도, 북상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굉장히 단편적인 부분이고 이전 다짐을 한 유세현은 룰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었다.

    즉, 사실상 뭘 해도 마음을 먹은 그를 막을 수는 없는 것.

    회유가 소용없자 알데우스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래서 빌어먹을 천민이 싫었다.

    좋게 좋게 대해주면 기고만장해지니까.

    분수를 모르고 그 알량한 잣대를 들이대니까.

    “그럼...”

    유세현과 아린, 루시아가 옆으로 통과하려던 순간이었다.

    알데우스가 갑자기 검을 빼들더니 그의 앞을 막아섰다.

    “현재 자네의 병사는 굉장한 전력이네. 현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낭비하게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 무력으로라도 자네를 막을 것이네.”

    그 말에 옆에서 보좌하던 알라함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는 알데우스에게 충언을 한 상태였다.

    유세현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작자인지.

    ‘젠장.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군체호위병과 전투하는 것을 잠시만이라도 봤었다면 이런 말이 안 나왔을 것이다.

    허나, 아쉽게도 그들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유세현은 룰 위반을 운운하려다가 쉽게 쉽게 가기로 했다.

    “제가 후작님을 쓰러트리면 두말없이 보내주시는 겁니까?”

    “기꺼이.”

    알데우스는 이참에 기고만장해진 놈을 찍어 눌러 주리라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 승산은 차고 넘쳤다.

    남궁시영이나 레피아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그 또한 군을 다스릴 정도의 무척강한 강자였으니까.

    유세현이 툭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그러지.”

    답한 알데우스가 실소를 내뱉었다.

    무방비한 유세현의 상태 때문이었다.

    ‘검도 뽑지 않고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그는 순식간에 오른팔을 잘라내고 굴복시킬 생각을 가졌다.

    허나.

    쿠웅!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속박력.

    그리고 놈의 몸을 감싸는 어둠.

    무려 A랭크 47%의 힘 스텟을 지니고 있는 그였지만 반응할 틈 같은 것은 없었다.

    빠아악-

    흡사 공간을 무너트리는 듯 울려 퍼지는 둔탁하면서도 육중한 타격음.

    단순한 발길질이었지만 알데우스의 몸은 물수제비를 하듯 퉁퉁 땅을 튕기며 수많은 나무를 작살냈다.

    쾅!

    마침내 암벽에 들이받아 멈춰선 알데우스.

    “커헉...커허헉...”

    초인적인 육체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는 연신 헛구역질과 피를 토해냈다.

    오장육부가 완전 아작 난 것!

    “어...”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결과에 사라들은 그저 멍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제국군의 지휘관이다.

    그런 그가 힘도 써보지 못하다니?

    ‘젠장...망했다.’

    알라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또 엄청 깨지겠지.

    순식간에 마족화를 해제한 유세현이 주위 사람들에게 별 대수롭지 않은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끝난 것 같으니 저희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이 손을 올리기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대군.

    압도된 그들은 한동안 알데우스를 챙길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점점 멀어져가는 유세현의 등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 * *

    일행은 걷고 또 걸었다.

    그들이 현재 향하고 있는 곳은 3개의 길목 중에서도 최고 우측에 위치한 에반과 병력들이 넘어온 장소였다.

    레피아의 말처럼 제국군이 맞서 싸우고 있을 이 장소가 그나마 제일 넘어가기 쉬울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

    그렇게 20일.

    “도착한 모양인가 보구먼.”

    아린의 말에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앞에는 지역을 가르는 단순한 경계선이 아닌, 일그러진 균열이 있었다.

    유세현은 갑작스런 기습을 대비해 구울 두 마리를 먼저 들여보냈다.

    30초 뒤 미리 받은 명령에 따라 무사히 귀환한 구울.

    안전을 확인한 유세현이 신호를 내리자 일행과 키메라 3마리가 내부로 진입했다.

    후우우웅-

    제일먼저 그들을 반겨 주는 것은 세찬 강풍.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었다.

    통칭, 바람의 길.

    낭떠러지에 걸쳐선 유세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발 아래로 보이는 것은 숲이나 들판 같은 것이 아닌 짙은 어둠이었다.

    만약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다른 장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절벽을 끝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적의 방해만 없다면, 스카이레블이 있는 그들은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허나, 아쉽게도 이 절벽은 단순히 오르기만 해서는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일정 높이를 벗어나면 공간들이 뒤엉켜있어 처음으로 되돌아 와버리는 것.

    아니, 되돌아오면 다행이다. 잘못하면 이곳이 아닌 다른 이상한 장소로도 떨어질 수 있었다.

    지형이 대개 거기서 거기처럼 생겼기에 한번 길을 잃으면 다시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런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유세현은 절벽 곳곳에 뚫려있는 수많은 통로를 살폈다. 이 수많은 통로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해서 나아가면 중간지점까지 도착이 가능하다.

    물론, 이상한 함정만 가득하고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장소도 있기에 유세현은 레피아가 일러준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진입한 장소로부터 11시 방향에 위치해 정확히 30번째에 달하는 통로.

    타다닥-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순식간에 뛰어오른 유세현.

    아린과 루시아가 각기 플라이마법과, 장벽발판을 만들어 그 뒤를 따랐다.

    30개째 되는 통로는 무려 3000m나 되는 높이에 위치해 있었다.

    에베레스트가 약 8800m인 것을 고려하자면 상당히 높은 장소였지만 순식간에 오른 그들의 이마에는 단 한 방울의 땀조차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명령을 받들어 미친 속도로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알비론과 혼종.

    유세현은 구울을 뒤로한 채 내부에 적이 없기만을 바라며 발을 뗐다.

    * * *

    북쪽으로 넘어간 인간세력을 몰아붙이고 있는 몬스터 연합.

    에반의 말에 따르자면 놈들은 오우거, 리자드맨, 하피, 트롤 등 알테리아 대륙인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바람의 길을 점거하고 있는 종족은 하피와 리자드맨이었다.

    상공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감시하고 있는 하피 여러 마리를 확인한 유세현이 살짝 혀를 찼다.

    레피아가 추천해준 통로는 총 6개였다.

    원래부터 그녀가 사용하던 곳과 에반이 이번에 내려오면서 새롭게 개척한 길.

    그런데 지금은 6개가 전부다 점거당한 상태였다.

    뚫어야 되는가. 아니면 다른 장소로 돌아가야 되는가.

    고민은 짧고 결정은 빨랐다.

    어차피 엄청난 대군.

    언제 가는 반드시 들키게 되어있다.

    게다가.

    유세현이 손짓을 하자 구울이 광기어린 눈빛이 되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스카이레블도 날아올라 특기공격을 펼쳤다.

    쿠구궁!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는 일대.

    “끄아아아.”

    기습당한 리자드맨 몇몇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전투를 벌이고 있던 하피가 잽싸게 그들을 도왔다.

    운 좋게 죽음을 면한 리자드맨이 분노 담긴 눈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크으으으. 지겨운 벌레 놈들!”

    “이곳까지 오다니!”

    그들의 분노는 오직 알베타스만을 향해있었다.

    그렇다.

    외관이 알베타스니까, 유세현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은 당연하게도 구울을 알베타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이것은 꽤나 차이가 크다.

    놈들은 당분간 인간이 아닌, 알베타스의 행동양식에 맞춰 대응을 할 터이니 말이다.

    때문에 유세현은 일부러 사람형태의 구울은 뒤로 빼놓았다.

    “크윽! 뭔 힘이...”

    알비론 한 마리가 검을 들이대자 리자드맨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평범한 알비론과 달리 어마어마하게 강했기 때문.

    -캬아아아!

    어느새 접근한 다른 한 마리가 리자드맨의 목을 물어뜯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만족스러운 성능이다.

    무려 6일을 투자한 보람이 있다.

    “죽어라! 벌레들아!”

    하피와 리자드맨은 스킬을 난사하며 분전했다.

    그러나 스텟의 한계와 물량의 차는 분명했고, 결국 소수만이 살아서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니, 일부러 놔주었다.

    얽히고설켜 있는 이 미로 같은 길을 놈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가도록 하죠.”

    “그러세나.”

    타다닥-

    일행은 놈들을 뒤쫓는 구울의 틈에 섞여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바람의 길 중간지점.

    특수한 파장을 받은 하피 한 마리가 몸을 움찔거렸다. 천천히 펼쳐지는 날개 모양의 손.

    황갈색을 띄고 있는 하피들과 달리 짙은 핑크색의 깃털을 지니고 있는 그녀가 옆에 위치한 리자드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벌레 놈들이 이곳까지 쳐들어왔다.”

    “...벌레라고? 인간이 아니고?”

    “그래, 벌레.”

    그 말에 리자드맨, 라캄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본래, 이곳이 뚫린 이후 에반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고 놈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친히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벌레 놈들이라니.

    “인간이 밀린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최근, 그들은 다시 바람의 길에서 인간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인간이 특단의 조취를 취했던 것처럼 연합도 어마어마한 병력소모를 감수하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이제는 인간을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

    요상한 기술을 사용하는 특출난 인간들이 없었다면 벌써 끝을 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막았나?”

    “아니, 뚫렸다.”

    “뚫렸다고? B랭크 최상급의 병사를 1천이나 배치 시켜놨는데도?”

    “물량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놈들의 질도...”

    “흠...또 정예를 투입한 건가?”

    라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본디 연합은 알베타스를 그렇게 경계하지 않았었다.

    무척 많지만, 어차피 단 하나의 종족.

    게다가 대다수는 스킬도 사용하지 못한다.

    수적으로도 밀리지 않고 스텟도 B랭크로 어중간하니 그들에게는 잡아먹기 딱 좋은 상대였던 것.

    그런데 이변은 갑자기 발생했다.

    파편의 소유자, 오우거 대장군 오르베르크의 죽음.

    빠른 진압을 위해 참전한 그의 목이 떨어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연합은 알베타스를 다시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수준은 어느 정도 인 것 같지?”

    “최소 A랭크.”

    “전부 말인가?”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이전 전례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지.”

    라캄이 턱을 짚었다.

    A랭크.

    분명 강하다. 허나, 이쪽의 병력이 더 강했다. 이쪽은 뭐니뭐니해도 에반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병력이 있으니까.

    또한 놈들이 강하다는 건, 전멸시킨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질의 코인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그때.

    재차 파장을 받은 하피, 케샤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너무도 특이한 정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놈들도 있다고 한다.

    마치, 살아있지 않은 듯.

    이에 라캄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래서야 싸워봤자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

    “특이개체의 짓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흠...”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진군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라캄과 케샤의 시선이 교차했다.

    지금 그들은 하나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차라리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군.”

    “동감이야.”

    그들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마어마한 대군이 중간지점으로 몰려들었다.

    < 북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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