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상(1) >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죽은 것인가.
유세현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해 아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죽었다면 분명 코인이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을 테니까.
그는 루시아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갑주를 조심스레 벗긴 뒤 상처부위를 살폈다.
뒤틀려 찢겨나간 살갗 너머로 보이는 부서진 심장.
체력이 좋은 상태에서만이 회복이 가능해 보이는, 그 정도로 심각한 치명상이었다.
“으으...”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뒤척이는 루시아. 그녀의 고운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지속되고 있는 출혈.
이대로라면 죽는다.
회복스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세현이 아는 사람 중 회복스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대마법사, 아린 하이워커.
당장이라도 쓰러져 쉬고 싶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든 유세현이 그를 찾아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전투가 끝이 났다. 그리고 알베타스의 위협도 완전히 끝이 났다.
놈들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놈들이 이곳에 존재했다는 흔적 뿐.
화르륵.
앉아 있는 유세현의 눈동자에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일렁였다.
지금 그의 옆에는 루시아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린을 가까스로 찾아내는데 성공해 위기의 순간을 넘긴 것이다.
유세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레피아, 남궁시영 등 전부다 무사했으나 표정은 결코 좋지 못했다.
내부로 떠난 알베타스. 그리고 검성 에반 비텔스바흐의 실종.
사실상 말이 실종이지 정황으로 봤을 때 그의 죽음은 확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당하다니...’
유세현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판단력, 위기대처능력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어찌 보면 내 탓인가?’
도망치던 사람들의 일부는 보았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쏟아지는 에너지의 구체를.
에반이 대놓고 맞아줬을 리는 없을 테니 분명 카르베스라는 놈이 미끼역할을 자처한 것이리라.
그리고 놈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알베타스를 몰아붙였기에.
물론, 결정적인 잘못은 에반에게 있었다.
알베타스는 군체 종족.
모든 것이 군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놈들의 특이성을 알고 있는 만큼 자신감을 죽이고 좀 더 여러 변수를 생각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
그들은 지친 만큼 하루를 야영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끼룩 끼룩.
날이 지자 풀벌레와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숲에 메아리쳤다.
유세현은 루시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하리만큼 흰 피부와 머리카락.
묘한 기분이 목끝을 타고 얼굴로 올라온다.
팀원들에게 마음을 연 이후 유세현은 팀원들이 죽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구하려 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디까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것.
이강호나 김주희, 유혜인에 비해서 마음을 차지하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유세현에게 있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할 수는 있지만, 목숨까지는 바칠 수는 없는 존재.
때문에 루시아도 놓고 가려 했었다.
자신과 그녀가 죽음의 위기에 닥쳤을 때 자신은 그녀를 버릴 테니 말이다.
마치, 카르베스에게 쫓기던 강가에서 마지막 순간 부녀를 두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던 것처럼.
그리고 루시아도 이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온 거지?’
루시아가 다시 한 번 더 몸을 뒤척였다.
서서히 뜨이는 눈.
잠에 취한 듯한 굉장히 몽환적인 눈빛이었다.
주위를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이내 툭 튀어나오는 말.
“아...다행이다.”
“......”
유세현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살아남아서 하는 말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말처럼 너무도 포근하게 느껴졌기에.
부상 정도를 모르는 루시아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세현은 조심히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심장이 많이 손상됐습니다.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지만 당분간 거동은 힘드실 겁니다.”
“...아...”
그 말에 루시아가 그제야 손만 움직여 상처부위를 더듬었다.
그래, 분명 방어막이 뚫렸었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긴 것인가?
질문에 유세현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그럼 놈들은...”
“놈들은 판도라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
루시아는 잠시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복수는 하지 못한 것이구나.
허나, 그럼에도 그녀는 내심 안심했다.
그가 살아남아 주었으니까.
그때 유세현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루시아씨. 루시아씨가 와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니, 죽었을 것이다.
권능을 개화할 때와 달리, 그 스스로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3차 권능을 개화하기위한 조건.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개화한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죽음의 순간을 겪고 이겨내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유세현이 권능을 개화하지 못한 이유이자, 마지막순간 권능 개화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루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제가 원해서 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했다.
그녀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유세현은 묵묵히 루시아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 여자는 자신을 목숨을 바쳐도 괜찮을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김주희처럼 활발하지도 않고 잘 표현을 하지 않기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희미하게 맺히는 미소.
현재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쁘지 않는 기분이었다.
* * *
에반의 실종은 생존자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그가 해온 업적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
대대적으로 3일간의 수색작업이 이루어졌다.
허나,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유세현은 그것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유세현은 다른 것에 힘을 썼다.
바로 언데드화!
알베타스가 남기고간 그들의 사체와 인간의 시체, 이들은 아주 뛰어난 극상의 병력이 될 것이다.
유세현은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언데드 레이즈를 사용했다.
스스스스.
시체의 산에서 몸을 일으키는 수많은 구울.
그는 곧바로 마력재생을 개방했다.
그리고 천마군림보의 운용하며 최대한 되는대로 되살렸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지도 꼬박 6일.
그의 주변에는 무려 6천 마리에 달하는 수많은 구울이 즐비해 있었다.
이전보다 적은 숫자이고 시간도 무척 많이 소비됐지만 무력과 지속력은 차원이 다른 수준.
터덕. 터덕. 터덕.
구울이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요동쳤다.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유세현이 진지로 돌아오자 경계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친...”
“오메...저걸 전부...”
그들은 그간 함께 해오며 구울이 능력이 본체의 스텟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어렴풋 눈치 챈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모체가 된 놈들의 육체가 얼마나 강한지도 몸소 체험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고, 몸체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제치고도 몸이 자연스레 수그러들 정도의 위협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발울림을 듣고 뛰어나온 나온 지휘관들도 몸을 움찔거렸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쳐도 스카이레블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아직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
허나, 이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유세현은 곧바로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특이개체를 분류하는 것.
특이개체는 지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구울화를 유지하는 것보다도, 키메라로 합성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여러 개의 신체부위를 이용해 조각조각 짜 맞춰지는 특이개체.
한껏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레피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세현. 잠시 괜찮아?”
“예.”
“회의의 결과가 나왔어.”
“......”
유세현은 묵묵히 레피아를 응시했다.
말해보라는 뜻.
“사람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14일 동안 더 머무르며 안정화 시킨 뒤 정확히 15일째 되는 날 북상하기 시작할 거야.”
“흠...느리군요.”
“그렇지. 사실 알베타스가 완전히 사라진 이상 안정화를 시키는 건 다른 진지의 인원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럼 왜...”
“자신들도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싶다...이거겠지.”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몇 개월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싸움만 해왔다면 그러할 만도 하리라.
유세현이 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레피아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먼저 떠날 거야?”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이었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휴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
“목표지점은 역시...”
“예. 게리오그 산맥으로 갈 겁니다.”
동생이 행방불명된 장소.
솔직히 지금 가봤자 의미가 있겠냐만은 마땅한 단서가 없는 이상 그곳부터 뒤지는 게 맞았다.
이에 레피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려봤자 갈 거지?”
“예.”
“후...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정말 미안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따라가 주고 싶긴 한데...”
레피아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팀의 팀장이었다.
군락지 토벌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닌 이상 당연히 무작정 행동할 수는 없는 것.
그리고 이는 남궁시영도 만찬가지였다.
유세현이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건 굉장히 사적인 일이다.
게다가 향하는 곳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곳으로 악명이 자자한 악몽의 산맥.
그렇기에 그는 그 누구에 도움도 바라지 않았다.
허나.
저벅. 저벅.
레피아의 뒤로 두 명이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동이 가능해진 루시아와 아린이었다.
아린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것 참. 말 안하면 또 두고 갈 생각인가? 이 늙은이는 정말 섭섭하구먼.”
“......”
“내, 두 번 말하지 않음세. 함께 가겠네.”
“저도요.”
이에 유세현이 묵묵히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응시했다.
그리고 안 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악몽의 산맥에 대한 건 이전에 한 번 들어 알고 있네. 알고 가는 것이니 너무 염려 말게. 아니면 우리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겐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불쾌해하지 않고 기꺼이 빠져주겠네. 우리도 자네의 발목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허나, 그런 게 아니라면...”
아린이 말꼬리를 흘리자 레피아가 이어 말했다.
“케드리나도 가고 싶어 했지만 능력이 안 될 것을 알고 알아서 빠졌어.”
“......”
유세현이 상념에 잠긴 것 마냥 살포시 눈을 감았다.
엄청난 마법에 이제는 높은 스텟까지 보유한 아린이 도움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고유특성을 지닌 루시아도 마찬가지.
위험할 걸 알면서도 도와준다는 것인가.
염치없지만 여유가 없는 만큼 호의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유세현의 입가에 맺히는 미미한 미소.
“감사합니다.”
“좋아, 결정 됐으면 잠깐만 따라와 봐. 루트를 알려 줄 테니까.”
레피아가 손짓했다.
임시 천막으로 들어간 그녀는 자신이 다녔던 길을 시작으로 해서 에반이 지나온 루트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다양하게 일러 줄 테니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서 지나가보라는 의미였다.
“만약에 안 되겠다 싶으면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15일 차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떠날 채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육포와 물만 있다면 이 세계는 어디든 쏘다닐 수 있으니까.
그들은 곧바로 진지를 벗어나려 했다.
허나, 그런 그들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에반이 실종된 덕에 지휘권을 갖게 된 알데우스 로아드와 다수의 장군들.
“지금 어딜 가려는 건가?”
“북상하려고 합니다.”
“안되네.”
이유는 당연히 유세현이 지닌 군사력 때문이었다.
< 북상(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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