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68화 (268/612)
  • < 예기치 못한 결전(7) >

    “큭...”

    더더욱 느려지는 그녀의 육신. 유세현은 몸을 움직였다.

    부하에 견디지 못한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져날 것 같았고 삐걱거리는 육체는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인내했다.

    콰앙!

    치지직-

    맞붙는 두 개의 검.

    알베타스는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까지 실력 면에서는 계속 밀렸던 그녀다.

    압도적인 스텟의 차로 찍어 누르고 있었던 것인데.

    ‘이건 위험하다.’

    알베타스의 구조요청 신호가 전 병력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 *

    퍽-

    “으윽!”

    알비라스와 남궁시영의 전투.

    그녀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놈의 높은 스텟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지니고 있는 스킬이 너무도 괴상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공으로도 커버가 불가능하다니 이런 괴물은 처음 만나본다.

    아까 전까지는 약간이나마 암흑투기가 눌러주고 있어 그나마 버티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인데.

    [끄끄끄끄끄.]

    알비라스는 남궁시영이 유세현의 안위에 대해 걱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순간 목이 날아갈 것이다.

    힘겹게 이어가는 합.

    위이이잉-

    알비라스의 피부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퍼버벙.

    “끄아아악.”

    휘말린 생존자들은 사망 아니면 중상.

    남궁시영은 제왕검형과 파뢰기를 사용해 어떻게든 막는 데는 성공 했지만 상태는 결코 좋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달려들던 알비라스의 몸이 한순간 움찔거렸다.

    이내 화등잔만하게 커지는 눈동자.

    괴물의 형태이기에 미처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으나 놈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던 남궁시영은 대번에 눈치 챘다.

    파앗-

    순식간에 방향을 꺾어 자취를 감추는 알비라스.

    동시에 거칠게 몰아치던 알비론과 혼종, 특이개체도 방향을 틀었다.

    생존자들은 기뻤지만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을 받았다.

    유리한건 분명 놈들이건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퇴각을 하다니?

    아니, 이건 퇴각도 아니다.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다.

    마치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하늘을 올려다본 그들의 눈에 저편으로 떼지어 날아가고 있는 스카이레블이 눈에 비쳤다.

    * * *

    쉬이익-

    유세현이 검이 기묘하게 알베타스에게 파고들었다. 검 끝에서 흩날리는 부패의 어둠.

    어둠은 알베타스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괴사되어 부서져 내리는 육신 파편.

    알베타스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과연 호위병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답은.

    채재재쟁.

    촤자작.

    유세현의 실력을 고려 컨데 [힘들다]였다.

    그의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끝에 다다른 촛불처럼 거세졌고, 알베타스는 점점 반응하기도 힘들었다.

    알베타스는 실소를 내뱉었다.

    설마 이러한 변수가 존재할 줄이야.

    ‘안일했군.’

    바로 앞에 있는 인간을 어떻게든 가지고 싶은 마음에 눈이 멀었다. 그리고 이 위기의 순간에도 알베타스는 정말 우습게도 여전히 눈앞의 인간이 무지하게 가지고 싶었다.

    치지직-

    콰과광!

    유세현이 사용한 흑뢰검이 알베타스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 * *

    쉬익-

    에반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상공에 떠있던 스카이레블이 일자로 잘려나갔다.

    잽싸게 회피한 베아렉클은 혀를 찼다.

    유세현 말고도 이정도로 강한 놈이 있었다니.

    ‘하지만 그래봤자다!’

    위이잉-

    콰과광-

    초토화 되는 일대.

    이어서 카르베스의 바람 마법 또한 에반이 위치해 있는 장소를 덮쳤다.

    카르베스가 재차 창을 내지르려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떨어지는 정보.

    재빨리 모든 것을 종합한 카르베스는 지금 달려가 봤자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놈의 예기치 못한 각성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왕을 살릴 수 있을지.

    과연 살릴 방도는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방도는 무엇인가.

    에반의 검이 날아오는 시간까지 0.2초

    수없이 되풀이되는 생각.

    있긴 있었다.

    알베타스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아니지만.

    100%.

    그녀를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카르베스가 알베타스를 향해 날아가려는 베아렉클을 향해 말했다.

    [멈춰. 지금 가봤자 늦었다.]

    [......]

    그 말에 베아렉클이 일순간 카르베스를 쏘아봤다.

    베아렉클에게 있어서 알베타스란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

    늦던 빠르던 일단 구하러 가야되는 존재인 것이다.

    에반의 검을 쳐낸 카르베스가 말했다.

    [내게 방도가 있다.]

    그 말에 베아렉클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뭐지? 빨리 말해봐라!]

    카르베스의 눈이 에반을 응시했다.

    [놈이 왕을 시해하기 전에 우리가 눈앞에 있는 인간을 처리하면 된다.]

    [......]

    이유 같은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할 뿐더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베아렉클이라면 단번에 알아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카르베스의 생각대로 베아렉클은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너...]

    [일격. 일격에 처리해라. 그렇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카르베스가 자세를 다잡았다.

    에반이 곧바로 치고 들어왔다.

    슈우욱-

    쇄도하는 검.

    에반은 그때까지만 해도 놈들 중 한 마리는 더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베아렉클은 지니고 있는 스킬과 특이한 신체구조상 1:1 지상전투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즉, 베아렉클이 공격을 가해오기 위해서는 카르베스가 자신을 떼어놔야 된다.

    그렇다면?

    카르베스에게서 안 떨어지면 그만이다.

    챙!

    창과 검의 충돌.

    창을 쳐낸 그는 기회를 엿봤다.

    허나, 카르베스도 무척 강한 강자였다.

    무공도 없는 주제에 놈의 바람 스킬은 절기의 파괴력과 비슷했고, 창술 또한 꽤나 일품이라 파고들 틈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이상하게도 힘과 속도가 더 빨라졌다.

    “쯧.”

    에반은 아쉬웠다.

    소 대가리가 아닌 이놈부터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더라면 지금 훨씬 수월했을 터인데.

    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그때였다.

    챙! 챙!

    치지직.

    열심히 검을 놀리고 있던 에반의 눈에 미세한 틈이 비쳤다.

    그건 평범한 이들은 공략 불가능한, 오직 자신만이 노릴 수 있는 그런 틈이었다.

    순식간에 파고드는 검.

    그는 곧바로 검에 고유특성을 부여했다. 그리고는 거기에 절기를 덮었다.

    쉬이이익-

    [구하청풍(九夏靑風) 섬(殲).]

    카르베스가 아차한 표정이 되어 황급히 방어자세를 취했다.

    지이익-

    싸늘한 음색과 함께 케레누프의 도끼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종잇장이 찢겨지듯 창대가 잘려나간다.

    에반이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살며시 올라가는 카르베스의 입꼬리.

    [네가 만든 틈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구나.]

    “?!”

    투웅!

    육중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어느 샌가 상공을 광활하게 메운 노란빛.

    깜짝 놀라 상공으로 시선을 살짝 돌린 에반의 눈에 거대한 구체가 비친다.

    현재 에반의 검은 카르베스의 몸을 반 정도 가른 상태였다.

    ‘무, 무슨!’

    같은 팀이 있는데 쏘다니?

    게다가 저건 딱 봐도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젠장, 일부러 틈을 보인 거였나!’

    서걱.

    카르베스의 몸을 완전히 두 동강 낸 에반이 황급히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모든 것을 쏟아 부운 절기로 대응을 한다면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해도 일부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기에.

    그는 청성파의 최고 비전절기를 운용했다.

    [대라무위신공(大羅無爲神功) 제 12식 청운구검호(靑雲九劍濩).]

    에반이 들고 있는 검신에서 새하얀 안개가 소용돌이 쳤다.

    그가 그대로 검을 내지르려던 찰나였다.

    [어딜!]

    카르베스가 남아있는 한손과 부리를 들이댔다.

    그 덕에 경로를 살짝 이탈.

    쿠와아아앙-

    거대한 산맥전체를 진동시킬 정도의 폭발이 일대를 광활하게 메웠다.

    * * *

    움푹 파여 마치 황량한 대지처럼 변해버린 산맥.

    “허억...허억...”

    피투성이가 된 에반은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 몸을 숨긴 채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절뚝거리는 발을 움직였다.

    카르베스를 포함한, 죽어나간 몬스터와 생존자들의 코인이 몸속으로 스며들어왔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었다.

    설마 스스로 미끼가 될 줄이야.

    갑자기 잘 싸우다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택한 것이란 말인가.

    10초.

    평소였다면 벌써 빠져나갔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현재 그는 100m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스스슥-

    주위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폭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법저항력을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을 상정했을 때 놈은 틀림없는 적.

    ‘젠장...’

    그의 몸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발각된다면 100%의 확률로 죽을 것이기에.

    그렇게 3초.

    마침내 지나간 모양인지 더 이상 인기척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저편으로 풀숲이 보인다.

    앞으로 50m.

    평소에는 코 닿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던 것이 지금은 너무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걷고 걸어 마침내 도달한 숲.

    그가 발을 내뻗은 순간.

    후웅!

    인기척이 다시 느껴진다.

    뒤쪽이었다.

    그가 반응하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렸지만...

    상자의 모양을 한 괴물은 쫙 찢어진 거대한 아가리를 이미 에반의 몸을 향해 들이밀고 있었다.

    * * *

    촤자자작-

    “후우...후우...”

    신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와 썩어 들어가고 있는 살.

    유세현이 체력적으로 한계였다면 알베타스는 육체적으로 한계였다.

    유세현은 곧바로 자세를 다잡았다.

    마족화도 슬슬 막바지.

    이번이 마지막 공격이다.

    이번으로 완전히 끝을 내고 빠져나간다.

    그가 움직인 순간이었다.

    몸을 살짝 움찔거린 알베타스가 중얼거렸다.

    “카르베스...너의 노고는 잊지 않겠다.”

    갑작스레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광명.

    유세현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허나.

    스스슥.

    마치 형체가 존재하지 않듯 검이 그대로 스쳐지나간다.

    ‘무, 무슨!’

    유세현은 당황했다.

    이런 스킬도 지니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진즉 사용하지 않았던 거지?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리위로 떠오르는 문양.

    문양의 모양은 유세현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깃털.

    개수는 총 6개로 무척이나 잘 정갈 되어 있었다.

    흐릿해지는 손을 본 알베타스가 말했다.

    “간발의 차였구나.”

    “......”

    유세현은 연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천마광룡참까지도 사용해 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유세현은 잽싸게 시선을 상공으로 돌렸다. 스카이레블의 주위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설마 이제 막 6개를 모은 것인가?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에반이 당했다고?’

    이강호와 거의 마지막까지 함께한 그가 여기서?

    알베타스가 경악어린 표정이 된 유세현을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나는 내부로 향한다. 본래라면 진입하기 전 그대를 얻고 싶었지만...정말 아쉽구나.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질문을 건넨 알베타스의 몸은 점점 더 빠르게 흐려지고 있었다.

    침묵으로 답하자 알베타스가 실소를 내뱉었다.

    “후후후. 알려주기 싫다는 것이냐. 뭐, 그래 되었다. 알아낼 방도는 있으니. 만약 훗날 마음이 바뀌게 되면 나의 충졸에게 너의 이름을 말하라. 그렇다면 내 기쁘게 너를 맞아주도록 할 것이다.”

    “......”

    “그럼...먼저가 있도록 하지.”

    알베타스는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휘이잉-

    머리칼을 스쳐지나가는 서늘한 바람.

    산맥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스카이레블의 지저귐도 알비론 특유의 콧소리도, 그 어떤 것도 이제 더는 들리지 않는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유세현.

    그는 재빨리 루시아를 향해 달려갔다.

    < 예기치 못한 결전(7)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