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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65화 (265/612)
  • < 예기치 못한 결전(4) >

    당연한 말이지만 케레누프와 카르베스에게 적중하지는 못했다.

    대놓고 맞추기에는 그들은 일반적인 몬스터와 격이 다른 존재였으니까.

    [틈을 만들도록 하지!]

    이번에는 역으로 케레누프의 도끼가 강렬한 빛을 발했다.

    콰과과과-

    모든 것을 갉아먹으며 에반을 향해 곧게 뻗어나가는 빛의 구체. 보통의 인간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을만한 광폭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속도를 지니고 있는 스킬이었다.

    이건 단순히 방향을 틀어서 회피할 수 없다.

    도약해야 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카르베스가 곧장 구체의 뒤를 따랐다.

    곧 생기는 단 한순간의 틈.

    그것을 놓치지 않고 놈의 목을 쟁취하기 위해서.

    10m, 5m, 1m.

    마침내 에반이 도약했다. 카르베스가 이미 예측했던 장소였다.

    다분히 올라가는 입꼬리.

    고오오오-

    그의 손에 소용돌이치는 기다란 바람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까지 그 어떠한 것도 조각조각 찢어버린, 그 만이 지니고 있는 비전스킬.

    ‘파멸의 창!’

    쐐애액-

    0.3초.

    창이 에반에게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공중이라 피할 수도 없고, 물질이 아니기에 창을 자를 수도 없다.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 하나. 아니, 이제는 두 가지.

    이 창보다도 더 강한 바람계열의 스킬이나 혹은 유세현의 그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기묘한 힘.

    그것만 아니면 끝이다.

    그리고 카르베스는 확신했다.

    끝났다고.

    왜냐하면 스킬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

    허나, 바로 그 순간.

    창을 향해 몸을 돌린 에반이 그 자세에서 검을 일자로 세웠다.

    케레누프가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껏 카르베스와 함께하면서 단순히 무기로 방어하려던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봐왔기 때문.

    그런데 에반은 그런 일반적인 자들과는 상황이 너무도 많이 달랐다.

    지이익-

    검에 닿기 무섭게 반으로 잘려져 나가는 창.

    카르베스와 케레누프의 눈가가 한순간 꿈틀거렸다.

    이어서 검 끝에서 광활하게 뻗어 나오는 참격.

    콰과광-

    그것은 추격해오던 카르베스 뿐만 아니라, 뒤쪽에서 추격해오던 알베타스의 병력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캬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추락하는 스카이레블.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회피한 카르베스의 창이 에반을 향했다. 에반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놈을 처리할 생각으로 일부러 틈까지 만들어 시전한 절기인데 이것을 회피해 내다니.

    ‘저놈...미노타우르스같이 생긴 놈보다도 강하다.’

    에반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방어했다.

    챙!

    치지직.

    맞닿기 무섭게 주위로 울려 퍼지는 마찰음과 이리저리 튀는 불똥.

    카르베스의 눈이 에반의 검신을 향했다.

    무척 예리하다.

    한 눈에 봐도 최소 유니크 A랭크는 되는 명검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검이 파멸의 창을 자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특수한 스킬이 내제되어있는 건가?’

    아무쪼록 방금 전 것은 무척 위험했다. 자신이 아니라 날개가 없는 케레누프였다면 높은 확률로 당했으리라.

    [이 자식이!]

    그때 순식간에 다가온 케레누프의 육중한 도끼가 에반의 등을 노렸다.

    에반은 잽싸게 반응했으나 속도가 있기에 완벽하게 회피하기란 불가능했다.

    쉬익-

    처저적.

    일자로 길게 잘려나가는 사슬갑주와 레더아머.

    그 틈으로 익숙한 문양이 군체호위병들의 시야에 비쳤다.

    깃털 하나.

    이전 같았으면 광소를 터트릴 정도로 기뻐했겠지만 그들은 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판도라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성물 파편은 6개.

    이미 5개를 모은 상태다.

    유세현만 잡으면 끝인 것.

    게다가 놈은 2:1을 버틸 정도의 강자다.

    그러니 놈이 파편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되려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직속호위병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한다.

    콰쾅!

    그때 전투를 펼치고 있는 그들의 뒤편으로 난데없이 커다란 파공성이 일었다.

    * * *

    두근두근.

    유세현의 심장이 폭동을 일으키듯 미친 듯이 펌프질을 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처음 사용하는 검법.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재현할 수 있을까.

    파앗.

    유세현의 검이 독사처럼 매섭게 알베타스를 향해 파고들었다.

    첫 공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똑같다.

    이에 알베타스는 지금까지 해온 같은 방법으로 쳐냈다.

    이것을 방어해낸 뒤에는 틈이 발생해 자신이 공격할 찬스가 오기 때문.

    허나.

    “?!”

    유세현의 몸이 순간적으로 180° 회전했다.

    머리의 위치에 다리가, 다리의 위치에 머리가 온 것.

    한 팔로 지지를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자세였지만, 유세현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떨어지는 자세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발목.

    흑뢰검이 담겨있기에 적중당하면 알베타스라고 하더라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그녀는 날갯짓을 하며 다리를 들어올렸다.

    이것으로 인해 자세는 무너지지도 않았고, 반격을 취할 형태가 나왔다.

    그녀가 검을 내려 그은 순간이었다.

    터더덩!

    유세현이 재차 발을 박찼다.

    천마군림보에 의해 법칙이 전환되며 유세현의 신형이 순식간에 좌측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번의 발길질.

    1초도 지나지 않아 유세현은 헤드리아의 눈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헤드리아의 눈동자에 비치는 칼날.

    그녀는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회피하기 위해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허나.

    퍼억-

    발이 날아와 정확히 안면을 가격한다.

    검을 휘두른 것은 페이크였던 것.

    쉬이익-

    뒤로 날아가는 알베타스의 육체.

    유세현이 따라 붙자 그녀는 깃털을 내뿜었다. 거기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연계기술, 매의 발톱.

    발톱의 형상을 한 무수히 많은 마력의 응집체가 유세현을 향해 쏟아졌다.

    유세현의 눈에 경로가 비쳤다.

    실수하는 순간 최소 다리불구 확정인 그런 아슬아슬한 방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천마군림보를 운용해 공중으로 우회하고 싶은 기분.

    허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천마의 검법이 알려주는 대로 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5개의 발톱을 쳐낸 유세현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쉬이익-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며 허벅지에 미세한 자상이 길게 남는다.

    알베타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많은 것을 전부 뚫고 들어왔다고?

    유세현은 검을 역수로 바꿔 쥐기 무섭게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너무도 빨라 대처수단은 마땅치 않은 상황.

    결국 알베타스는 황급히 파동을 발산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피어오르는 흙먼지.

    자세를 다잡은 알베타스가 유세현을 노려봤다.

    어떻게 갑자기 저런 움직임을 취할 수 있는 것이지?

    짜증보다는 가지고 싶은 욕구가 더더욱 솟아오른다.

    그사이 유세현은 숨을 골랐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아까보다도 더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

    허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시선을 끄는 것만이 아닌, 이곳에서 놈을 처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고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마족화가 끝나면...마력재생을 사용한 그때 승부를 본다.

    유세현이 자세를 다잡았다.

    그때, 문득 좌측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3개의 마력.

    ‘이건...’

    유세현이 자리를 벗어나기 무섭게 폭발과 함께 3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파이어 월.”

    영창과 동시에 공간을 반으로 가르는 불의 장벽.

    아린이 시전한 마법의 여파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캬아악

    괴성을 지르며 죽어나가는 알비론.

    아린의 옆에 위치해 스카이레블을 격추시킨 루시아의 시선이 마치 무엇이라도 찾는 것 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실제로 그녀는 한 남자를 찾고 있었다.

    알베타스와 함께 사라진 유세현.

    그녀는 그가 걱정되었다.

    알베타스의 왕에게 밀리는 것이 너무도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이 등장한 이후로는 그의 암흑투기도 잘 통하지 않는 느낌.

    루시아가 아린을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 세현씨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가보려는 겐가?”

    “예, 숨어서 보조만 할 거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

    아린이 잠시 루시아를 지긋이 응시했다.

    본래라면 막아야하는 게 정상이었다.

    허나, 대마법사답게 그 또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알베타스의 등장으로 인해 계획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그리고 그 미묘하게 비틀린 것으로 인해 몇 안 되는 그들의 동료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레피아, 남궁시영.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무인들과 검은꽃.

    루시아의 방어마법이라면 분명 유세현에게 큰 도움이 될 터다.

    마나스캔으로 주위를 탐지한 아린이 말했다.

    “3시 방향으로 쭉 뛰어가게. 그곳에 세현이 있을 거네. 군체호위병도 있으니 절대 걸리지 말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루시아가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린이 케드리나를 향해 말했다.

    “케드리나. 나도 레피아를 돕도록 하겠네. 자네는 일단 계속 도망치도록 하게.”

    “......”

    케드리나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그녀도 싸우고 싶었다.

    허나, 지금의 자신은 방해.

    “...무사하셔야 돼요.”

    “허허, 걱정 말게나.”

    아린도 이내 방향을 틀고 레피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에반과 함께 두 마리의 군체호위병이 등장하자 유세현이 지긋이 혀를 찼다.

    하필 몰아붙이려는 찰나에 도착하다니.

    이정도로만 만족하고 역시 죽이는 것은 포기해야 되는가?

    유세현은 적어도 두 명의 군체호위병 중 한 마리 정도는 자신에게 달려들 것을 예상했다.

    허나.

    “하압.”

    에반이 날린 검기를 카르베스가 방어했다.

    곧바로 측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케레누프.

    알베타스의 명령을 받은 두 마리는 유세현을 조금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유세현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뭐지?’

    분명히 놈은 자신에게 밀려 당황해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꿍꿍이가 남아있는건가? 아니면...’

    유세현은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놈들이 자신을 견제하지 않는 것은 기회였으므로.

    마력 재생이 시작되자 주위로 어둠이 흩뿌려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미약하게나마 놈들의 힘을 조금 더 약화시켰다.

    다시금 시전된 마족화.

    어둠에 둘러싸인 유세현을 본 에반의 눈이 움찔 거렸다.

    그는 사실 지금까지 유세현이 버티고 있던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스텟에서 완벽하게 압도당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므로.

    ‘이런 비장의 수를 남겨두고 있었군.’

    자신도 질 수는 없다.

    놈들의 대한 분석은 여기까지.

    에반이 우측에 위치해 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자, 카르베스와 케레누프의 몸이 한순간 주춤거렸다.

    이제와 전투방식을 바꾸다니?

    그것도 쌍검술?

    생각할 틈도 없이 에반이 달려들었다.

    쾌검을 보는 듯한 매서운 속도.

    허나, 그것에는 남궁세가 검법의 묘리를 보는 것처럼 중(中)이 담겨져 있었다.

    쿠웅-

    도끼를 치켜세워 일격을 방어한 케레누프의 무릎이 굽혀진다.

    이전 에반이 양손으로 검을 쥐고 내려찍었을 때보다도 더한 압박감이었다.

    [이놈이!]

    케레누프는 밀쳐 내려 했으나 자세가 불안정해 할 수 없었다.

    카르베스가 돕기 위해 재빨리 창을 내뻗었다.

    공중에 발이 떠있기에 회피하기에도 급급해야 되는 것이 정상이건만.

    에반은 빙그르르 회전하며 창을 쳐냈다.

    챙!

    한순간 붕 떠오르는 카르베스의 팔.

    에반은 그때 깨달았다.

    ‘이놈들 아주 미세하지만 약해졌다.’

    이것은 더 큰 기회.

    [네놈...나에게 이런 수치를!]

    알베타스, 왕의 앞에서 치욕을 보인 케레누프가 이를 부득 갈았다.

    붉은빛을 발하는 도끼와 순식간에 팽창되는 근육.

    케레누프는 도끼를 높이 치켜세웠다.

    산까지 주저앉힐 정도의 파괴력이 응집되어있는 힘.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박살이다. 아니, 그야말로 산산조각.

    허나 그 순간.

    팔을 내리고 올려 베기 자세를 취한 에반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스스로 주다니.

    이윽고 케레누프가 있는 힘껏 내리쳤다.

    후웅!

    쾅!

    풀숲, 나무, 주위에 있던 모든 것이 폭사되듯 터져나갔다. 에반의 몸도 같이 폭사되었어야 정상.

    허나.

    서걱.

    싸늘한 음색이 울려퍼진다.

    에반의 몸은 어느새 케레누프의 뒤로 통과해 있었다.

    툭 떨어지는 도끼에 날.

    케레누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어, 어떻게...]

    그가 보고 있던 풍경이 종잇장이 갈라지듯 사선으로 잘려나갔다.

    < 예기치 못한 결전(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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