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64화 (264/612)
  • < 예기치 못한 결전(3) >

    반발로 인해 서로 튕겨나가는 육체.

    스텟은 유세현이 더 낮았지만 더 멀리 밀려난 것은 알베타스 쪽이었다.

    알베타스의 눈이 아직도 떨림이 남아있는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그 어떤 직속호위병보다도 높은 스텟을 지니고 있는 그녀다.

    그리고 그녀는 종족의 왕이다.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기분이 나쁠만한 상황인 것.

    허나.

    “흐흐흐...”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아니, 입이 쫙 찢어지고 눈가가 비틀린 것이 이전보다도 더 괴상한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이러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듯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뭐 어때서 그러느냐? 함께하는 자들이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

    알베타스가 떠들던 말던 유세현은 차분히 잔여 마력양을 살폈다.

    30%.

    역시 마력재생이 없을 때의 마족화는 너무 많은 마력을 잡아먹는 게 흠이다.

    게다가 놈의 반응속도.

    타다닥-

    유세현은 천마군림보를 활용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그녀의 목을 향해 날렵하게 쇄도하는 검.

    다른 평범한 이들이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음에도 알베타스는 이 공격을 검을 치켜드는 것으로 손쉽게 방어했다.

    치직-

    챙!

    마족화로 인해 30%가량 증가된 스텟.

    그리고 암흑투기로 인한 보정 때문에 스텟이 낮아졌을 것을 고려하자면 도저히 믿을 수없는 반응 속도였다.

    유세현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음속으로 드는 확신.

    ‘역시, 전혀 안 통한다.’

    마왕의 권능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 몫을 다해주던 암흑투기가 놈에게 만큼은 아예 듣질 않았다.

    ‘왜지? 놈의 특수특성 때문인가?’

    그것밖에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알베타스의 특수특성은 그 많은 수의 병력을 자신의 아래 하에 두는 지배력.

    정신력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드래곤, 마족, 천족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아니, 단순히 정신력만 높아서는 직속호위병처럼 미약하게라도 약화가 된다.

    암흑투기의 힘의 원천은 마왕의 권능인 죽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면 무조건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신에 대한 그 어떤 것의 간섭도 차단하는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유세현의 귀에 다시 한 번 그녀의 말이 들어와 박혔다.

    “어차피 욕심 많은 인간에게는 승산이 없다. 내, 그대만큼은 특별대우를 해주겠다. 제약적인 자유를 주지. 그러니까 나에게로 와라. 나의 충복이 되어 모든 것을 누려라.”

    “......”

    챙!챙!챙!

    유세현은 대답대신 검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허나, 완벽하게 방어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때때로 허를 찌르는 반격까지.

    알베타스의 검이 유세현의 목젖을 향했다.

    만약 꿰뚫리게 된다면 엄청난 치명상.

    귓가로 거슬리는 말이 계속 들려온다.

    “아니면 그대는 인간이 정녕 하나로 뭉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쉬이익-

    터엉!

    공중제비를 돈 유세현의 발이 검을 냅다 후려쳤다.

    유세현은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악물고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설마, 암흑투기가 아예 안 통할 줄이야...’

    전혀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군체가 직접 등장하리라는 것 또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안위를 생각해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텟을 올리고, 호위병을 죽인다.

    형세가 애매하면 그냥 퇴각한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작전이었다.

    허나, 암흑투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애매한 게 아니라 확 밀리게 되는 것이니 놈들은 분명 끝까지 따라붙을 확률이 무척 높은 것.

    ‘젠장...너무 안일했던 건가?’

    유세현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자책하는 것을 멈췄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이건 분명 유세현의 명백한 실수였다.

    만회해야 된다. 어떻게든.

    그리고 유세현은 만회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해야 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놈에게 일격을 가해야 된다.’

    군체호위병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도록.

    허나.

    ‘단순하게 싸워서는 흠집도 낼 수 없다.’

    마족화를 했음에도 스텟의 차이가 월등히 난다.

    최소 20%에서 시작해 최대 25%까지.

    마족화와 천마군림보라는 신법의 운용.

    그리고 스킬을 쳐낼 수 있는 천마반탄기와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흑뢰검을 이용해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진즉 한방 크게 먹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싸워서는 안 된다.

    직속호위병에게 들어가는 암흑투기가 약해진 이상, 에반이야 그렇다 쳐도 남궁시영과 레피아는 엄청난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당할 확률이 무척 높은 것.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몰아 붙여서 만들어 내야 된다.

    운만 좋다면 놈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조차 있는, 드래곤조차도 발광하게 만들었던 천마광룡참과 부패의 어둠, 이 두 스킬을 놈의 몸통에 꽂아 넣을 찬스를.

    그리고 유세현의 뇌리 속에는 오직 단 한가지의 방도가 떠오르고 있었다.

    천마의 검법.

    무수히 많은 변수를 창출하지만 그만큼 되돌아오는 리스크가 무척 큰 검술.

    그렇기에 좀처럼 사용하지 못했던 검술.

    상당한 연습을 했지만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많이 불안하다.

    허나, 유세현은 해야 될 때를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 좋은 검법을 묵혀두고만 있을 수도 없다.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쏟아 붙는다. 쟁취한다.

    유세현의 자세가 기이하게 바뀌었다.

    * * *

    “으아아아! 피해!”

    “젠장! 무슨 파도가...”

    높은 해일이 일대를 다시 한 번 크게 집어삼켰다. 병사들이 다급하게 도약하여 자리를 회피하려 했으나 너무도 빨라 무용지물.

    알비론과 함께 휩쓸린 그들은 너무도 허무한 죽음을 맞아야했다.

    이에 남궁세가의 당주, 남궁오를 포함한 9명의 무인들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허억...허억...무슨 이런 스킬이...”

    안 그래도 스텟의 차가 너무도 커 단순한 무력만으로도 벅찬 상대다.

    그런데 놈은 사용하는 기술도 유별나기 그지없었다.

    에우로네가 손짓을 하기 무섭게 파도가 무인들을 향해 재차 쏟아졌다.

    이 공격으로 인해 진형은 완전 붕괴.

    여기까지였으면 무인들은 말도 안 꺼냈을 것이다.

    대륙의 붕괴이후 이곳까지 도달하면서 물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놈들도 제법 상대해봤으며, 진형을 부수는데 특화된 특수한 스킬 사용자도 처리해봤으니까.

    허나, 에우로네의 스킬은 완전히 달랐다.

    한 번 날리면 끝나는 소모성 스킬인 마법과 다르게 에우로네가 다루는 물은.

    콰과과과과.

    피, 살점 온갖 것이 뒤섞인 액체가 다시 두둥실 솟아올랐다.

    수십 갈래로 나뉘어져 공격해 들어오는 물줄기.

    그 모습은 마치 물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자아낸다.

    “큭!”

    남궁오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제는 얼음마녀라는 이명으로 더 잘 알려진 대리자, 김주희.

    에우로네가 사용하는 능력은 김주희의 스킬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아니, 모습도 액체의 형태로 변하는 것이 완전 똑같다.

    ‘크윽...그녀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적이라니...’

    수세에 몰린 무인들.

    허나, 상황이 안 좋은 인원들은 역시나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챙!

    치이익-

    헤드리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레피아.

    콰앙!

    헤드리아의 거대한 검에 맞대응 한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암흑투기의 속박이 약해진 덕에 이전보다도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놈의 힘.

    레피아는 입술을 악물고 버텼다.

    ‘젠장...’

    사실, 어느 정도의 스텟 격차는 무공으로 극복할 수 있다.

    아니, 30%까지도 극복이 가능하다.

    그만큼 그녀가 익힌 당가의 무공은 위력적이고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허나, 지금 그녀는 도무지 당해내지 못했다.

    상대가 너무 좋지 못했기 때문.

    인간 중에서 무공과 마법을 익힌 자가 특이케이스라면, 놈들은 그냥 태생부터가 특이케이스였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스킬들.

    극산성의 독액에 의해 검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헤드리아의 팔에서 검 하나가 새로 돋아났다.

    힘겹게 무기를 제거한 당사자로서는 너무도 어이없는 노릇.

    퍼억!

    “꺄악!”

    알비라스의 발길질에 날아간 남궁시영의 육신도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상황은 그만큼 최악.

    아니, 정말 딱 한 명.

    여전히 우위인 채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물이 있긴 있다.

    검성, 에반 비텔스바흐.

    ‘청풍구검(靑風九劍) 제 2식 파풍격(波風擊).’

    눈을 부릅뜨고 찌른 그의 검 끝이 정확히 케레누프의 도끼날을 향했다.

    케레누프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믿을 수 없는 동작이었다.

    콰아앙!

    한 순간 붕 뜨는 케레누프의 팔.

    당황어린 케레누프의 얼굴이 에반의 눈에 깃든다.

    [어떻게 이걸!]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끼날을 받아 칠 수 있단 말인가?

    “하압!”

    실력을 간과한 대가는 무척 컸다.

    목을 향해 나아가는 검.

    청풍구검(靑風九劍) 제 2식 파풍격에서 이어지는 제 3식 풍아(風牙)였다.

    케레누프의 일그러진 안면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력한 연속 절기이기에 이건 단순히 피부표피 조직으로는 막을 수 없다.

    100% 죽는다.

    에반도 스스로의 승리를 확신했다.

    허나, 그 순간.

    에반의 발 바로 아래에 생성되는 아주 미세한, 그냥 지나쳐도 될 것 같은 회오리.

    허나, 에반은 황급히 하던 행동을 끊고 자리를 이탈했다.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 본능이 경고를 보냈기 때문.

    이윽고.

    콰아아앙!

    회오리는 0.5초도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칼날 폭풍으로 변모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케레누프.

    그가 카르베스를 향해 말했다.

    [후우. 고맙다 카르베스. 이것 참 면목이 없군.]

    [...놈이 여기서 제일 강하다. 도와주지.]

    카르베스가 창을, 케레누프가 도끼를 다잡았다.

    에반은 땀으로 범벅된 금빛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후우...두 놈이라...”

    그의 눈동자가 잽싸게 주위 전황을 살핀다.

    서로 뒤엉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병력들.

    끝없이 밀려올라오고 있는 알비론과 혼종.

    그리고 적 군체호위병에 밀리고 있는 인원들.

    에반이 계획대로 크게 외쳤다.

    “전군! 퇴각하라!”

    “퇴각! 퇴각!”

    퇴각이라는 말이 울리기 무섭게 생존자들은 진형 붕괴 스킬들을 구사했다.

    “대지 가르기!”

    “용솟음치는 암석!”

    갈라지는 땅과 솟아나는 바위.

    그것은 아린이 이전 사용한 어스퀘이크에 비해 스킬 하나하나의 범위는 무척 작았지만 100명, 1000명 쌓이고 쌓이니 곧 어마어마한 파도가 되었다.

    솨아아아-

    휩쓸려 내려가는 알비론과 혼종.

    에반이 매서운 속도로 이동을 시작하자 군체호위병 두 마리가 잽싸게 그를 뒤쫓았다. 사실 그가 도망치는 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그가 가는 장소가 군체가 위치해 있는 곳의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뒤를 흘깃 바라본 에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는 사실 아직 군체호위병 사냥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1 대 2.

    스텟으로도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지만 자신의 검술이라면 극복이 가능하리라.

    그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이유?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자신감.

    그렇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을 당해낼 수 없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은 여태까지 틀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미 케레누프를 한 번 압도함으로써 증명했다.

    지이잉-

    고요한 진동을 일으킨 그의 검에서 한줄기의 푸른 검기가 뻗어나갔다.

    < 예기치 못한 결전(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