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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57화 (257/612)
  • < 미끼(4) >

    손쉽게 들어온 루시아와 유세현.

    콰광!

    콰과과광!

    두 사람이 혈흔이 난무하는 전장을 뒤로하고 묵묵히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를 우연히 발견한 병사 한 명이 황급히 뛰어가 알라함에게 보고를 올렸다.

    “뭐? 벌써 들어왔다고? 확실한 것이냐?”

    “예!”

    알라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디냐!”

    “저쪽입니다.”

    알라함의 눈이 잽싸게 유세현을 향했다.

    그사이 거리가 제법 멀어진데다가 인파가 많아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착용 장비로 보나 인원수로 보나 유세현이 확실했다.

    그는 유세현을 예의 주시했다.

    지금이야 난전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급습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난전이 펼쳐진다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알라함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두 사람이 점점 멀어져간다.

    ‘뭐지? 왜?’

    그러고 보니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인파에 숨어 있는 게 더 적절했다.

    ‘혹시 광역기술을 사용하려고?’

    알라함에게 있어서 유세현은 싸이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남궁시영의 빽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야말로 인류의 적이 되어버리는 것.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바에는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훨씬 나을 터다.

    그리고 자신이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유세현과 루시아는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문득 뇌리 속에 내려치는 한줄기의 벼락.

    “...설마?”

    그냥 이곳을 벗어나려는 것인가?

    이런 짓을 벌인 것으로 만족한 채?

    혼란스럽다.

    그때, 한 귀족이 알라함을 향해 다가왔다.

    수발을 그렇게 잘 들어주던 마첸 케그라니 자작이었다.

    “적의 동향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어째 이쪽으로만 몰려오는 듯한...”

    “그렇군.”

    유세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던 알라함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때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질문.

    “알라함 백작님께서는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버틸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굉장히 쓰잘데 없는 질문이었다.

    알비론들이 나타나지 않아 아직 본격적인 전투도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 이유를 알라함은 곧 알 수 있었다.

    “하하, 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알라함 백작께서 계시니...”

    이 틈을 타 아부를 해보려는 것.

    너무 노골적이라 무시하려던 알라함이 눈을 번뜩 빛냈다.

    유세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수가 생각 난 것.

    게다가 이런 짓을 벌였는데 놈도 싸워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 자신을 기습할 공격할 찬스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알라함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내가 있으면 웬만한 건 전부 막아 낼 수 있지. 그런데 케그라니 자작.”

    “예.”

    “내가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 게 있네만.”

    “예? 어떤...”

    “아주 쉬운 것이네.”

    말을 들은 마첸 케그라니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새까만 그림자가 상공뿐만이 아닌 지면 또한 광활하게 메웠다.

    엄청난 수의 알비론.

    그러나 신기하게도 알비론이 노리는 장소는 오직 한 곳이었다.

    “젠장! 저 새끼들 무슨 이쪽으로만...지원 요청해!”

    “이미 오고 있답니다!”

    콰과광!

    울려 퍼지는 폭음에 루시아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유세현이 선택한 작전은 치고 빠지기.

    뒷일을 생존자들에게 감당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생존자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될 터지만, 작심한 유세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이강호가 간간히 내뱉던 말이었다.

    이유는 발전이 없기 때문.

    그래서 억지로라도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대륙을 일정 시간을 두고 붕괴시키려 했던 것이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좋던 싫던 더 강해지겠지.

    유세현은 올라가면서 보기 위해 스테이터스 창을 띄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7]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28.3% [A Rank]

    민첩: 17.3% [A Rank]

    체력: 3.2% [A Rank]

    내구력: 9.4% [A Rank]

    어둠의 마력: 0.3% [A Rank]

    <저항력>

    물리저항: 11.3% [A Rank]

    마력저항: 10.2% [A Rank]

    <속성저항>

    화: 52.2% [B Rank]

    수: 41.8% [B Rank]

    풍: 40.4% [B Rank]

    독: 77.3% [B Rank]

    어둠: 100% [SSS Rank]

    <스킬>

    프로즌 디퓨전 [매직 F Rank][숙련도: 100%]

    암흑투기 [유니크 SSS Rank][숙련도: 99%]

    언데드 레이즈 [유니크 A Rank][숙련도: 98%]

    키메라 제조술 [레전더리 E Rank][숙련도: 77%]

    마족화 [레전더리 D Rank][숙련도: 96%]

    천마신공(天魔神功) [에픽 SSS Rank][평균 숙련도: 25%]

    <특수특성>

    마(魔)

    이번전투로 인해 힘이 무려 8%나 올랐다.

    민첩은 6%.

    일반적인 B랭크 최상급 마수를 수만 마리 잡아도 1%올리기 힘든 것을 감안하자면, 감히 상상도 못할 증가량이었다.

    스텟이 낮은 루시아는 다른 스텟을 제쳐 두고도 힘만 4% 가량 오른 모양.

    유세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들어가는 힘 자체가 달라진 것이 똑똑히 느껴진다.

    특이개체 40마리.

    그 정도만 더 잡는다면 놈들을 압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유세현의 시선이 스킬창으로 향했다.

    암흑투기.

    유니크 SSS 랭크.

    숙련도는 99%.

    드래곤의 정신력조차 뒤흔든 이 암흑투기는 루크루크의 팔찌로 강화가 되었음에도 알베타스의 병사에게는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생명체로서의 원초적 본능인 공포심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본능이 약간 존재는 하되 전투시에는 그것이 제어가 되었다.

    마치 마약성 자극제를 투여 받은 사람이 용감해지는 것과 같이.

    그런 의미에서 직속호위병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귀찮은 존재다.

    지성을 분명 지니고 있는데 잘 통하지가 않으니까.

    하지만 암흑투기의 등급이 레전더리로 오른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것이다.

    공포심을 제외하고도 순수한 위력이 강해질 테니까.

    문제는 숙련도 99%에 봉착한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줄곧 멈춰있는 상태라는 것.

    이유는 당연히 유세현도 알 수 없었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가 가진 마심원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인지.

    ‘아니, 한계는 아니야.’

    한계라면 프로즌 디퓨전처럼 100%를 찍었을 것이다.

    ‘역시 권능 때문인가?’

    강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의 핵심.

    어느새 끝에 다다랐는지 나무의 저편으로 솟아있는 능선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거의 다가온 직속호위병의 마력도 똑똑히 느껴졌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달려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서는 병사와 귀족.

    “나는 A-3부대의 지휘관 마첸 케그라니 자작이다.”

    “......”

    “전투가 한창 인데 귀하는 어딜 가려는 거지?”

    유세현은 눈동자만 살짝 돌려 응시했다.

    마첸 케그라니 자작,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허나,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

    유세혀은 마치 별 대수롭지 않은 것 마냥 입 열어 말했다.

    “산을 넘어가려 합니다.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덕분에 놀란 것은 알라함의 지시를 받은 마첸 케그라니.

    이렇게 당당하다니?

    “지금 도망을 치겠다는 것인가?”

    유세현은 그 말에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계획은 완성되었기 때문.

    정식 절차를 밟아 떠난 것으로 인해 서류상 그는 이곳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졌다.

    더 나아가 이곳에서 받은 것이 없고, 군락지 임무까지 성공한 이상 이곳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전투참여는 완전 유세현의 개인적인 마음이다.

    요약해서 간단히 풀어 설명하자 마첸 케그라니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트집 잡을 것이 없다.

    정말 완벽하다.

    결국, 그가 꺼낼 수 있는 말은 굉장히 진부한 말 뿐이었다.

    “지금은 긴급 상황입니다. 적이 오면 당연히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막아야...”

    말투도 마치 지금에서야 알아챘다는 듯 존댓말로 바뀌어져 있었다.

    유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문득 떠올라 버린 것.

    마첸 케그라니 자작.

    게릭이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 일러주었던 도망자.

    죽었다고 생각되어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 당시 스텟이 제법 높았던 만큼 어떻게든 적색의 땅을 빠져나와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정식 작전에서의 도주는 군법으로 치자면 사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증명해줄 사람도 없을 뿐더러 갈 길이 바쁘다.

    “한 번만 더 말하겠습니다. 비켜주시죠.”

    “......”

    마첸의 시선이 알라함을 향했다.

    절레절레 반복되는 고개.

    그러자 유세현에게 살인의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알라함이 그제야 다가왔다.

    “자네 지금 어딜 가려는 겐가?”

    마첸과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뜻.

    유세현은 그게 너무도 우스워 오직 그에게만 암흑투기를 쏘아댔다.

    지금까지 줄곧 알베타스의 일원들에게만 겨냥되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압박감이 몸을 옭아맨다.

    게다가 그는 알베타스처럼 통합되어 제어 받지도 않는 존재.

    저항력을 뚫어버리는 권능과, 루크루프의 증폭.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즉시 나타났다.

    “허억...허억...”

    가슴을 움켜쥐는 알라함.

    그는 현재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 이게 무슨...’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알라함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유세현의 스킬이라는 것을.

    유세현의 마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왜, 이탈했냐.

    왜, 도망친 것이냐.

    갑작스럽게 이상증세를 보이는 알라함의 모습에 마첸이 당혹어린 표정이 되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때였다.

    지잉-

    슈우웅!

    상공에서 발사되어 인간진지로 날아오는 거대한 마력의 구체.

    구체는 눈부실 정도의 광활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알베타스가 스킬을 사용하는 경우를 그들은 아직 못봤기에.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메아리쳤다.

    직접 닿는 곳은 증발, 주위는 초토화 시킬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덕택에 직격당한 생존자들은 비명한번 내지르지 못했다.

    꽁꽁 얼어붙는 마첸과 병사들의 표정.

    반면, 유세현은 묵묵히 고개를 돌려 적을 응시했다.

    베아렉클.

    그리고 카르베스.

    두 놈이 찾아왔다.

    [찾아내라! 반드시!]

    -캬아아아!

    명령을 받은 알비론과 혼종들은 인간진형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뭐, 뭐야 저 괴물은!”

    “젠장! 광역스킬이라니!”

    이곳저곳에서 경악이 잇따른다.

    움찔거리는 마첸 케그라니 자작과 병사들.

    그들은 이미 길을 터주고 있었다.

    아니, 이대로 같이 도망칠 기세였다.

    유세현이 마첸을 향해 한마디 툭 내뱉었다.

    “안 내려가십니까?”

    “아...아...”

    주춤거리는 몸.

    유세현은 고개를 끄떡이며 마첸의 갑주를 집어 들었다. 갈 땐 가더라도 이놈을 전장으로 돌려보내줄 생각인 것.

    동명이인일 경우, 무척 억울하겠지만 작위가 있는 이상 그러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한 말은 지켜야지.

    유세현의 시선이 전장을 향하자 마첸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지, 지금 이게 뭐, 뭐하는 짓입니까!”

    유세현이 한마디 툭 말했다.

    “있어야 될 장소로 보내드리려는 것뿐입니다.”

    “무슨!”

    마첸이 놀라 외쳤으나 이미 그의 시야에 유세현은 없었다.

    나무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진 마첸의 육신.

    “어...어...”

    유세현이 당혹어린 표정이 된 병사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안 따라 가십니까?”

    하지만 그가 마첸처럼 병사들을 집어 던지는 일은 없었다.

    유세현의 시선이 다시 알라함을 향했다.

    보고 있는 사람이 오싹해질 정도의 무척 차가운 눈동자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파앗.

    그는 별 말도 않고 나무가 우거져있는 장소를 지나쳐 순식간에 능선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콰쾅!

    콰콰쾅!

    유세현이 나오길 바라는 두 직속호위병에 의해 폭격과 폭풍이 몰아친다.

    허나, 알라함은 더 이상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괴물보다도 유세현이 더한 괴물처럼 보였기에.

    ‘젠장...’

    알라함은 떨리는 손을 움직여 이마의 식은땀을 땀을 닦아냈다.

    좀 더 쉽게 살아남기 위해 내렸던 판단.

    비록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겠지만, 그는 머릿속에서는 인생 최대의 오판이었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 미끼(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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