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9화 (249/612)
  • < 전멸(1) >

    “헉!”

    “어떻게 케레온씨가...”

    주위는 삽시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지만 그 강한 케레온이 뭣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다니.

    주춤 거리기 시작하는 생존자들.

    스텟의 격차가 다르다.

    유세현이라는 자의 말이 결코 허구가 아니었다.

    온 몸에 돋아있는 칼날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는 헤드리아의 눈동자가 주위를 쓱 훑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한 그런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생존자들은 몸이 그대로 꽁꽁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강렬한 살기.

    그것이 실체화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심장이 세차게 뛰고, 숨이 차오른다.

    저릿저릿한 손까지.

    헤드리아가 발현시킨 스킬.

    [절대적인 공포]

    “이, 이런 빌어먹을 알베타스새끼아아아!”

    한 생존자가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공격을 감행했다.

    밝은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미늘창.

    순식간에 좌우로 갈라져 도합 3개로 분열한 미늘창은 생존자가 내지르는 공간을 연이어 갈랐다.

    지금까지 모든 역경을 이겨내게 해준 그의 최고 스킬이었지만.

    챙! 챙! 챙!

    헤드리아가 손을 뻗기 무섭게 그녀의 견갑골에서 튀어나온 사슬칼날이 앞을 가로 막아섰다.

    파르르 흔들리는 생존자의 눈동자.

    “무, 무슨...어떻게 등에서 무기가...”

    푸부부북-

    그게 생존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비수처럼 날아간 칼날이 순식간에 온몸을 꿰뚫는 것으로 생존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미친.’

    ‘이건 아니야...’

    생존자들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베아렉클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거니와 아주 가끔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런데 저런 괴물은 처음 본다.

    어째서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

    답은 간단하다.

    나타난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던 놈이 하필 왜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가장 안 좋은 타이밍에.

    대체 뭘 위해서.

    헤드리아의 자세를 낮췄다.

    딱 봐도 돌격할 느낌.

    생존자들은 허겁지겁 자세를 다잡았다. 뒤로 빼기는 글렀다는 것을 깨달은 것.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모든 것을 퍼부어야 한다.

    쉬이익!

    쇄도해오는 헤드리아의 육신.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높은 민첩 스텟을 지니고 있는 그들의 눈에 잔상이 비칠 정도였다.

    그 순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 이건 무리야 반응할 수 없어.’

    여기가 자신들의 묘지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

    헤드리아의 고개가 갑작스럽게 좌측으로 휙 꺾였다.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헤드리아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자리를 이탈했다.

    “......”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이들.

    그들은 순간적인 환경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왜 안 죽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것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캬아아악.

    알비론들이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다시 정신없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달려드는 알비론을 순식간에 베어버린 알라함의 눈이 우측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레피아와 검은꽃들이 전장을 누비며 적을 휩쓸고 있었다.

    내심 터져 나오는 감탄.

    ‘역시 실력 하나 만큼은 예술이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느낌.

    토벌조 중에서 지금까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팀은 레피아의 팀뿐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 그 개차반 같은 성격이 커버 되는 것이지.

    ‘더 열심히 싸워라. 그리고 뚫어라.’

    알라함은 나서지 않고 자신의 체력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자신하나 더 열심히 싸운다고 해서 전투의 양상이 확 바뀌는 것도 아니었고,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가 알비론을 한 마리 더 벤 순간이었다.

    쿠우웅!

    알라함의 전방, 유세현의 우측으로 하나의 인형(人形)이 뚝 떨어졌다.

    일대를 자욱하게 메우는 흙먼지.

    알라함 대부분의 시선이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흙먼지 속으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놈이 있다니.

    [후후후.]

    내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음이 미미하게 섞인 듯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먼지 속으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육신.

    헤드리아의 팔에는 제국군 한 명이 붙들려 있었다.

    무기를 쥐고 있는 오른팔과 목을 제압당한 모습.

    “커...컥...”

    그는 남아 있는 왼주먹으로 거칠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헤드리아는 아무렇지도 않는지 반응이 없었다.

    아니, 되려 돋아 있는 칼날 때문에 치면 칠수록 스스로 상처를 더한 꼴이 되었다.

    알라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강할 거라는 것을 진즉 듣긴 했지만 A랭크의 병사를 장난감 취급하다니?

    헤드리아가 그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그 말에 알라함을 포함한 주위 생존자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완벽한 언어 구사력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물론 그것도 놀랍긴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놈이 말한 내용.

    이 말도 안 되는 특이개체와 구면인 자가 여기 존재한다고?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레피아였다.

    이곳에서 그녀보다 강한 자는 없을뿐더러 직속호위병이라는 주제도 거론한 적이 있기 때문.

    허나, 헤드리아가 응시하고 있는 방향을 확인한 그들은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헤드리아는 레피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헤드리아의 시선이 향해있는 쪽은 흑빛의 검과, 몸에 딱 달라붙는 요상한 갑주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

    유세현.

    ‘또 저놈이냐...’

    유세현은 묵묵히 전투를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너를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아느냐?]

    헤드리아가 마치 화풀이를 하듯 천천히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뚜둑.

    뚜두둑.

    덜덜 발작을 일으키는 병사의 몸.

    헤드리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병따개를 따듯 병사의 목을 잡아 뽑았다.

    코인이 터져 나오고, 피분수가 흩뿌려져 주위를 가득 메운다.

    그런 헤드리아의 옆으로 다가와 자리 잡는 특수개체.

    몰려다니기만 하고 제각각의 움직임을 보여주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알라함은 이를 뿌득 갈았다.

    설마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놈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도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전부 유세현 때문이라는 것인가?

    이놈만 없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분이 차오른다.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둘러싼 적보다도 원인을 제공한 유세현에게 더 화가 났다.

    “......”

    한편, 유세현은 레피아를 향해 살짝 눈짓을 날렸다.

    협공의 신호.

    파앗!

    검은꽃들과 레피아, 유세현이 동시에 헤드리아와 특이개체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암흑투기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움직임이 굼떠졌을 터이니, 잘만 싸운다면 스텟이 높은 레피아가 마무리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 판단하고 있었다.

    헤드리아의 견갑골과 이어져 있는 사슬칼날이 유세현의 앞을 막아섰다.

    아무런 처리도 가하지 않은, 피부와 비슷한 경도의 칼날이었지만 헤드리아는 충분히 방어해낼 수 있다 생각했다.

    이전 특이개체로 얻은 정보 때문이었다.

    유세현의 검은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

    조심해야 될 것은 여자 쪽.

    헤드리아는 오른쪽 손목에서만 특수한 검을 뽑아 대응했다.

    -치이이익.

    레피아의 검은 예상대로 막혔다.

    하지만.

    루베르크의 검신이 칼날에 닿기 무섭게 동그랗게 커지는 헤드리아의 눈.

    [...?!]

    취합되어 있던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상상도 못할 날카로운 예기였다.

    헤드리아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팔을 스쳐 지나가는 검.

    [호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허용한 셈이라 인상이 구겨질 만도 하건만, 헤드리아는 되려 웃고 있던 입 꼬리를 더욱 올렸다.

    마치 이정도가 아니면 재미가 없다는 듯.

    그녀의 시선이 주위를 훑는다.

    주위를 장악하는 [절대적인 공포].

    모든 이들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사람은 오직 유세현 뿐이었다.

    유세현은 레피아의 움직임이 굼떠졌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레피아씨.”

    “젠장, 저놈 너랑 비슷한 스킬을...”

    [키히히!]

    특이개체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끄아악!”

    하나 둘 쓰러져 나가는 인원들.

    헤드리아의 스킬, 절대적인 공포는 암흑투기보다 범위도 좁고 효과도 많이 덜했지만, 암흑투기 덕분에 간신히 이겨내고 있는 생존자들의 판을 뒤엎기에는 충분했다.

    나아가는 발걸음이 멈춘다.

    빠르게 바뀌는 전투의 양상.

    간신히 마법을 쏘아내고 있는 아린이 눈에 비쳤다.

    “뒤! 뒤 조심해 케드리나!”

    “으윽!”

    그 옆에서 온 힘을 다해 분투하고 있는 카텐과 케드리나도.

    루시아, 지드먼, 캐시 등, 팀원 모두가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거닐고 있었다.

    유세현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헤드리아와 대치한지도 1분 째.

    어찌어찌 틈을 만들어 처리해보려 했지만 헤드리아가 저런 스킬을 지니고 있는 이상 육탄전은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건 시간낭비.

    그는 지금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뒤에서는 다른 놈이 따라오고 있으니까.

    육탄전이 안 되면 스킬로 커버한다.

    유세현이 손을 펼쳤다.

    다음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헤드리아의 몸이 한순간 움찔거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번에 날아올 기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콰아앙!

    일대에 넓게 휘몰아치는 검붉은 빛.

    잔여 마력의 전부를 흡수한 천마혈사장은 대기가 무너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아냈다.

    분쇄되어 사라지는 알비론과 스카이레블.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놈들도 결코 무사하지 못했다.

    후폭풍에 육신이 버티지 못하고 찢어발겨 진 것.

    그리고 휩쓸린 것은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헤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헤드리아는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스킬을 전개했다.

    쉬이이-

    빛이 수그러들자 피비린내가 나는 공허한 바람이 불었다.

    유세현의 전방으로는 그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도, 들판도, 벌레도, 풀 한포기도.

    있는 것이라고는 손바닥 모양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길 뿐.

    잠시 넋이 나가있던 알라함이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외쳤다.

    “뛰어라!”

    모든 힘을 다해 질주하는 생존자.

    알베타스가 곧바로 추격을 시작했지만, 피해 범위가 무지하게 넓어 스카이레블을 제외한 나머지는 좀처럼 따라 붙기 힘들 정도였다.

    잽싸게 달라붙은 레피아가 말했다.

    “야! 너 이래도 돼? 잔여 마력 다 사용한 거 아니야?”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계속해서 구울을 되살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력의 총량은 60%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암흑투기로 5%를 사용하고 방금 전 55%를 전부 소진한 것.

    이걸로 헤드리아를 죽였으면 했지만...

    까득.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확인한 헤드리아가 입을 악물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면에서 월등한 속성저항력과 뛰어나게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다.

    그런데 마력의 60% 이상을 쏟아 부운 방어스킬을 뚫었을 뿐만 아니라 본체에까지 이정도의 타격을 입히다니...

    이 정도일 것까지는 군체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내려오는 명령.

    [어떻게든 놈을 포획해라.]

    헤드리아가 쥐었던 손을 좍 폈다.

    허물이 벗겨지듯 탈피가 이루어진다. 어느새 새롭게 돋아나 있는 칼날 피부.

    그녀는 미리 부른 스카이레블의 등위에 올라탔다.

    높이 올라가자 도망치는 놈들이 보인다.

    허나, 헤드리아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놈도 이번공격에 마력을 다 쏟아 부었을 것이기에.

    덕분에 피해를 많이 입긴 했지만.

    괜찮다.

    아직 차고 넘치는 게 병력이니까.

    그리고 지원군도 있고.

    후웅! 후웅!

    그녀를 태운 스카이레블이 날갯짓에 박차를 가했다.

    < 전멸(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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