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3화 (243/612)
  • < 군락지(2) >

    그녀가 레피아를 반갑게 맞았다.

    “잘 돌아오셨어요 언니.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물론이지, 너도 잘 지냈어?”

    “여기야 항상 그렇죠 뭐.”

    무척 친근한 어조.

    대륙의 붕괴 이후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나가며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남궁시영의 눈이 일행을 향했다.

    “이분들은?”

    유세현이 있는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습.

    어쩌면 꾀죄죄한 모습 때문일 수도 있었다.

    레피아가 씨익 웃었다.

    “후후, 누굴 거 같아?”

    “...예?”

    이내 시작되는 소개.

    남궁시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살짝 벌어진 입가에서 비쳐 보이는 속마음.

    게릭부터 시작해서, 전부 한결같은 반응이었기에 유세현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그녀가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없었다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날의 암담했던 상황을...붕괴되는 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달리면서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던 여자의 표정을...

    이에 주위에 있던 그 행동에 무림인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소, 소가주님! 무슨!”

    누가 대 남궁세가의 소가주의 머리를 굽히게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몇몇은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남궁제의 천뢰경을 직접적으로 받아낸 남자! 그리고 남궁표의 모략에서 남궁시영을 구해준 자들의 동료.

    어떻게 감히 잊을 수 있겠는가.

    남궁시영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유세현과 레피아를 오두막집 내부로 안내했다. 특별히 거쳐야 되는 절차가 있는지 팀원은 그녀의 수하가 다른 장소로 인솔했다.

    “대접해 드릴게 물밖에 없네요. 미안해요.”

    “아뇨. 충분합니다.”

    세 명은 대화를 나눴다.

    적의 동향, 접점 상황.

    “후우...웰로스계곡 쪽이 밀렸다고?”

    “예. 이번전투에서 특이개체가 다수 참여한 거 같아요. 발 빠르게 퇴각해서 피해는 별로 입지는 않은 모양인데...”

    “바위산쪽은?”

    “거긴 가까스로 되찾았어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역시나 인간측이 밀리고 있었다.

    특이개체를 거론했지만 꼭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의 막대한 물량.

    그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는 알비론과 더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혼종이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혼종.

    알비론 보다 기본 스텟은 낮지만 지능이 제법 높고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개체.

    놈들은 죽인 생존자들의 아이템을 바로 재사용하기 때문에 성장하면 상당히 귀찮아진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도 새내기들이 계속 붙잡히고 있으니...”

    “......”

    “젠장, 그때 역시 어떻게 해서든 잡았어야 했는데...”

    레피아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때 내부로 울려 퍼지는 노크소리.

    “소가주님 알라함이 찾아왔습니다.”

    “아, 들여보내세요.”

    남궁시영이 허락하자 문이 열리며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은빛의 갑주를 입는 백인 남성이 내부로 들어왔다.

    이 둥지를 지키는 세력은 무림인, 길드, 제국군으로서 총 3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르카드 제국군 소속 사령관인 알데우스 로아드를 보필하는 보좌관이었다.

    그의 눈이 남궁시영을 향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이내 툭 튀어나오는 말.

    “무림 대표님. 생존자 팀과는 분명히 동시 접촉하기로 되어있었을 텐데요. 이건 명백히 룰 위반입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위로 올려 보냈어요. 이분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잠시 모신 거고요. 개인적인 친분은 딱히 상관없는 걸로 압니다만?”

    남궁시영은 조곤조곤 차분히 대답했다.

    잠시 깊은 정적이 이어졌다.

    알라함의 눈이 슬쩍 유세현을 향했다.

    진실 여부 확인.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그렇게 말하신다면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만...일단 그 또한 위로 올려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라함이 몸을 홱 돌려 집안을 떠났다.

    유세현은 슬쩍 레피아를 쳐다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달라는 뜻.

    레피아가 혀를 찼다.

    “에휴, 이 썩을 귀족 놈들은 아무리 함께해도 정이 안 간단 말이지...”

    그녀는 이어서 상황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 설명했다.

    알베타스의 진형에서 구출된 사람들은 대다수 팀이 파괴된 상태다.

    즉 다시 어딘가에 들어가거나 창설해야 된다는 것인데, 이때 각 세력은 능력 있는 자들이 있으면 적당한 조건으로 스카웃을 제의한다.

    그런데 먼저 접촉해서 채가면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 동시에 접촉을 하기로 한 것.

    “그런데 저놈은 그거 때문이 아니고 괜히 맘에 안 드니까 트집 잡는 거야. 그리고 무림세력은 진짜 거의 스카웃을 하지 않거든.”

    “......”

    레피아는 덧붙여 왜 트집을 잡는 것인지도 설명했다.

    세 개의 세력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지만, 사실상 이 지역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공이라는 엄청난 스킬을 지니고 있는 무림인 때문이었다.

    이곳이 아무리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라고 할지언정 알베타스의 군세는 그만큼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림인들에게 인망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귀족들은 단지 자신이 다루는 제국군이 무림인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꼬운 것이다.

    레피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움직이자.”

    셋은 나뭇가지 위를 걸어 솟아오른 땅에 만들어져 있는 인공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상당한 넓이였는데 그곳에는 유세현과 레피아의 팀 말고도 다른 생존자들이 들어서 있었다.

    군락지에서 퇴각해 온 이들과 둥지를 지키는 길드연합의 팀장들.

    “아 저기 세현씨 오셨네요.”

    “아, 저분이...”

    케드리나가 고개를 돌리자, 모든 팀장들의 목도 같이 돌아갔다.

    ‘저자가...’

    유세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에서는 강한 열의가 발산되고 있었다.

    평소와 많이 다른 반응이었다.

    본래라면 적당히 했을 텐데...

    키메라를 보았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안전 확인 명목 하에 인원들과 붙어 있는 키메라의 상태를 대충이나마 확인했다.

    ‘이 피부...내구력이 장난이 아니다. 만약 전투가 가능하다면...’

    스텟은 일정 구도에 오르면 고착화 된다. 코인의 순도 때문이었다.

    죽이고 계속 죽여야지만 레피아 정도의 스텟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반면 스킬은 조금 다르다. 무공처럼 정말 좋은 스킬의 경우 스텟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더군다나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죽으면 그 스킬코인을 떨어트릴 가능성도 있으니 팀에 있어서는 손해될게 없는 것.

    “이 괴물을 당신이 다룰 수 있다고 하던데...”

    핵탄두라는 팀의 팀장이 물었다.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불안해서 그런데 움직여 볼 수 있겠습니까.”

    알라함을 포함한 사람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너무도 뻔히 보이는 의도.

    유세현은 또다시 엎드려뻗쳐정도만 시켰다. 스펙을 알 수 없게 숨긴 것이었지만, 그들은 움직였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다루거나 소환하는 스킬을 지닌 인원은 아무도 없기 때문.

    아니, 한 명 있긴 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여자.

    얼음마녀 김주희.

    ‘무조건 영입해야 된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무수히 많은 팀장들.

    알라함도 적절한 비책을 생각했다.

    마침내 시작된 제의.

    목청을 가다듬은 그들은 자신의 팀으로 오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유세현에게 열심히 어필했다.

    “레어 S랭크 무기를 지급해드리죠. 스텟이 낮다면, 성장을 빨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와이번의 둥지는 지원이 끊긴 현 인간세력에게 있어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

    비록 무림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 또한 한 명 한 명이 전부 A랭크에 달하는 최고 정예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 이루어진 팀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알라함이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검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레어 SSS랭크의 검을 하사하도록 하지. 그리고 내 개인 부대에 넣어주겠네.”

    무려 SSS랭크.

    능력이 아닌 순수한 절삭력만으로는 유니크 C~D급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 보통사람의 입장에서는 꽤나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이정도면 얌전히 넘어와라.’

    그러나 언제나 인생은 뜻대로 안 되는 법이다.

    “거절하겠습니다.”

    그가 개인팀을 만들자, 제국군의 알라함이나 여타 팀의 팀장은 믿기지가 않았다.

    고작 해봐야 10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팀을 이룬다는 건 안 그래도 희박한 생존률을 더욱 희박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허세? 아니면 더 좋은 제안을 해달라는 건가?’

    그들은 그가 자신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허나, 그런 두 세력과 달리 군락지에서 유세현을 봤던 인원들은 판단을 달리했다.

    그들은 생존자들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어떻게 거기서 무사히 빠져 나온 거지? 아니...더 나아가 이정도의 인원을 살려오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알라함이 지그시 경고했다.

    “나중에 후회할걸세.”

    “......”

    유세현은 무시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제의는 우스갯소리였다.

    지금 중요한건 어느 팀에 들어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해야 되는가이다.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이들.

    유세현이 남궁시영에게 대놓고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삐잉- 삐잉- 삐잉-

    전 지역에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싸이렌 소리.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음량이었다.

    “?!”

    눈이 동그랗게 변한 남궁시영이 순식간에 바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굳이 누군가에게 듣지 않아도, 인원들의 분주한 움직임만으로 추측이 가능했다.

    알베타스가...쳐들어왔다.

    내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탄.

    “이런 씨~펄! 간신히 복귀해서 이제 좀 쉬나 했더니!”

    “염병할 우리도 가자! 재수 없게 여기 밀리면 진짜 끝장이야.”

    타앗!

    순식간에 좁은 길목을 통과한 사람들.

    그들은 이내 경사로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유세현과 레피아 또한 서로를 응시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린이 툭 말했다.

    “가세나. 우리는 이미 준비가 되었네.”

    * * *

    푸른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그림자.

    스카이레블은 가루다와의 전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정말 미친 듯이 많았다.

    “요격해라!”

    “스킬발사!”

    각 단장의 명에 따라 광역기를 사용하는 인원들.

    마력으로 구현화 된 스킬이 저마다 오색찬란한 빛을 발산하며 스카이레블에게 날아갔다.

    슈슈슝!

    퍼벙!

    콰과광!

    동체가 박살나 추락하는 스카이레블.

    그러나 놈들은 한차례 밀린 것으로 도망치거나 하지 않는다.

    2차, 3차

    끝없이 공격이 이어진다.

    더 나아가 점점 강해지기까지

    처음에는 약한 놈들을 고기방패로 사용한 것이었지만 이는 오래 버텨온 생존자들도 알고 있던 바

    놈들의 진짜가 등장했다면, 이쪽도 진짜가 등장할 시간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무림인과 정예기사, 각 팀의 리더급 되는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휘이잉.

    집약되는 마력.

    일격필살.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그들이 동시에 횡으로 병장기를 휘둘렀다.

    피잇!

    날아가는 비전절기.

    어떤 것은 용의 형상을 취하고도 있었으며 어떤 것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스카이레블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콰과과곽

    터지고, 조각나고, 갈가리 찢겨 비산하는 육신의 파편.

    휘양찬란한 오색의 코인이 지면으로 떨어진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흡수하러 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신법이라고 한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밟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허나, 여기 오직 한 사람, 아니 세 사람 만큼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완벽한 방어 덕에 아직까지는 딱히 나설 필요가 없는 카텐과 아린, 그리고 유세현이었다.

    그들은 접근해 흡수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티끌모아 티끌이라지만 티끌이 집채만큼 많이 쌓여있다면 꽤나 도움이 될 터이니까.

    그때 아래쪽에서 괴성이 울렸다.

    -캬아아아!

    알비론과 혼종. 그들이 절벽이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흥!”

    콧방귀를 뀐 무림인들과 다수의 기사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벌어지는 근접전.

    혼종은 무림인들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 군락지(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