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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42화 (242/612)
  • < 군락지(1) >

    김주희를 의식하게 되고, 유혜인을 찾게 되었을 때부터 때때로 들었던 생각이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잃을 것 또한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기에.

    냉정함과 합리적이라는 강철로 포장되어 있는 유세현.

    그런 그의 속은 아끼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하고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 못했다.

    그들이 죽는 것을 볼 바에는 자신이 죽는 게 낫다.

    ‘......’

    유세현의 눈이 팀원을 향했다.

    팀원들을 그 정도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들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일 이들 중 누군가가 전투 중 죽는다면 마음이 쓰라리리라.

    유세현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누구를 잃지 않기 위한 답은 역시 자신이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판도라 외부에서의 스텟 성장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약 2년 반이 흘렀음에도, A랭크 35%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레피아가 엄연한 증거.

    그렇기에 현재로서 눈에 띄게 강해질 수 있는  스킬 숙련도와 고유 특성의 개화 그리고...

    유세현은 스테이터스 창을 켰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수 특성, 마(魔).

    고유특성은 억지로 발현시키려고 해서 발현되는 게 아니다. 스킬의 숙련도 또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아니, 무공이야 깨달음을 얻는다면 가능도 하겠지만 아쉽게도 유세현은 천재가 아닐 뿐더러, 만일 얻는 다 하더라도 위력이나 효율이 더 좋아지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새로이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특수 특성은 조금 다르다.

    2차 권능이 개방됐을 때 유세현은 마력재생이라는 상상도 못할 능력을 손에 넣었다.

    만약 3차 권능을 개방시킨다면?

    분명 더한 능력을 얻을 터.

    단서는 이미 손에 있었다. 아니 데레아펜다에게서 정보를 빼냈을 때부터 이미 살짝 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뭔가가 부족해....’

    그 부족함을 채운다면 3차 권능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과연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눈을 질끔 감았다 뜬 유세현.

    그의 눈이 일시적으로 붉은빛을 발했다.

    * * *

    유세현의 손이 2구의 알비론과 1구의 혼종 그리고 레브레스에게 향했다.

    조각조각 나뉘기 시작하는 구울들의 육신.

    눈알, 위, 창자 등이 삐져나와 나뒹구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했지만 레피아와 팀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놀라기엔 겪어온 것이 너무 많은 탓.

    그들은 유세현이 사용한 스킬이 비로소 해제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일어난 이변.

    트득.

    트드득.

    조각난 신체가 서로 들러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레이커드만에게서 얻은 스킬, [키메라 제조술]

    어느새 그들의 앞에는 완성된 키메라가 서 있었다.

    혼종과 알비론으로 구성된 2개의 머리.

    그리고 4개의 팔과 등에 달려있는 4개의 검까지.

    기본적인 형태는 레브레스를 많이 닮아있었으나, 망가진 신체부위가 없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유세현은 곧장 레브레스의 움직임을 실험했다.

    죽은 지 상당히 시간이 지나 불안했는데,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역시 레전더리 스킬.

    키메라는 어둠의 마력이 다하면 움직임을 멈추는 구울과 달리, 음식물을 제공하면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좋다.

    다만 약물을 사용하는 정통 방법이 아닌, 마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치는 편법이기에 합성시 어마어마한 마력이 드는 것이 단점이라면 큰 단점.

    때문에 전투 중에는 없는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은 동이 틀 때까지 휴식을 취한 뒤 이동을 개시했다.

    -키리릭.

    알비론 특유의 괴성이 들려온다.

    벌써 5번째였다.

    처리해도 될 정도의 숫자였지만, 그들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유는...

    후웅! 후웅!

    날갯짓 소리가 상공을 가득 메웠다.

    비행형 마물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알베타스의 공중형 전투체.

    스카이레블.

    레피아가 손톱을 잘근잘근 곱씹었다.

    “엠병...저놈들 완전 작정을 했는데?”

    알베타스는 현재 넓게 병력을 분포시켜 윈트산맥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때마침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

    유세현의 눈이 스카이레블 제일 후미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괴물에게로 향했다.

    통상의 스카이레블보다도 3배는 커다란 육신과 온 신경을 찌릿찌릿하게 만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마력량.

    ‘베아렉클...’

    지나갈 것 같던 베아렉클이 일행의 바로 위에서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던 생존자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설마 발각당한 것인가?

    만약 발각 당했다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아니, 도주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를 으득 악문 레피아의 손이 단검으로 향했다.

    유세현과 아린 또한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지이잉-

    베아렉클의 꼬리에 모이기 시작하는 밝은 빛.

    “?!”

    깜짝 놀란 레피아와 아린은 선제타를 가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유세현이 두 사람을 제지했다.

    화등잔만하게 커지는 눈동자.

    왜 그러냐는 뜻이었지만 유세현은 검지를 입술에 대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마침내 발사되는 마력포.

    치지잉-

    콰과과과과광-

    마력포는 마치 채찍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행의 후미에 있던 숲을 휘저었다.

    [......]

    무반응.

    베아렉클은 이내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팀원들은 놈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상공을 바라보고 있던 레피아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너, 저놈이 저럴 줄 알고 있었어?”

    “예.”

    사실 확률은 3/4정도였다.

    마력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았기에, 찔러보기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었으니까.

    물론, 만약 저 마력포가 정면에서 날아왔다면 천마혈사장으로 곧바로 대응 했으리라.

    그렇게 5일.

    그들은 마침내 산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무너진 도시나 녹빛의 호수는 발각 될 확률이 무척 높았기에, 그들이 적색의 땅을 우회하는 것을 선택했다.

    감염충만이 득실한 숲을 지나, 망자에 땅에 들어선 일행의 눈에 엄청난 양의 사람들이 비쳤다.

    새내기였다.

    레피아는 딱 한마디만 했다.

    “못 구해.”

    “......”

    그 말과도 같이 일행은 새내기와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다가온 제국군이 새내기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함께 자취를 감췄다.

    팀원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기 때문.

    아무런 반응도 없는 이들은 레피아와 유세현, 루시아, 지드먼 정도뿐이었다.

    “이동하죠.”

    그들은 그렇게 3일 정도를 더 걸어 대기하고 있던 레피아의 팀과 합류할 수 있었다.

    * * *

    알베타스와 인간의 경계를 나누는 구역.

    [와이번의 둥지]

    개척 당시, 와이번들이 서식하던 곳이라 지어진 이름이었지만, 이제 이 절벽에 남아있는 와이번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절벽 앞에 선 레피아가 말했다.

    “이걸 오를 거야.”

    팀원들은 고개를 들어 높이를 살폈다.

    이전 지배자의 섬에서 겪었던 절벽과는 차원이 다른 높이의 절벽이었다.

    바로 아래 줄기차게 흐르고 있는 급류.

    “급류에 떠내려가면 지옥행인 것만 알아둬.”

    레피아는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은밀함과 신속함을 더한 당가의 신법, 추혼만리보(趨渾萬里步)였다.

    그녀는 뒤를 흘끗 살폈다.

    자신의 팀원보다도 훨씬 앞에 서서 엄청난 속도로 뒤쫓고 있는 한 명이 보였다.

    유세현이었다.

    ‘호오 이걸 따라와? 스텟의 차이가 그렇게 큰데?’

    그녀는 마력을 개방해 속도를 더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토록 소문이 자자한 천마신공의 신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유세현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긴 안전하다...이건가.’

    절벽위에 있는 마력의 흐름을 읽고 판단을 내린 유세현 또한 마력을 개방했다. 처음 마교에서 테스트를 한 뒤 숙련도가 제법 올랐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 번 정도 더 테스트 해볼 필요성은 있는 것.

    빨려 들어가는 마력.

    쌔애액-

    폭발적으로 유세현의 신형이 치솟자 레피아의 팀원들은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 수 없었다.

    순수한 스피드로 그녀를 쫓아갈 수 있는 이를 지금까지 몇이나 봤는가.

    검은꽃을 제외한 인원들은 지금까지도 레피아가 왜 목숨을 걸고 유세현의 팀을 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팀원은 경신술도 익히지 않은 생 초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팀의 리더가 어떻게 이런 무공을?

    절벽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보초병이 기겁을 했다.

    무엇인가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던 탓!

    “이런 씨팔. 저거 뭐야? 레브란! 빨리 확인해봐!”

    다급한 외침에 옆에 있던 레브란이 황급히 확대 스킬을 사용했다.

    “저, 저분은...레피아! 레피아님이시다!”

    “뭐? 레피아님? 확실하지?”

    “확실해!”

    “후우...그럼 다행이고...”

    보초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레피아가 지면에 착지했다.

    직후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세현.

    보초병이 조심스럽게 질책했다.

    “레피아님. 아무리 레피아님이라도 그런 속도로 올라오시는 건 좀...적이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아, 미안. 미안.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그러나 레피아는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건성건성 대답하는 그녀의 정신이 팔려있는 곳은 유세현의 무공.

    ‘이게 천마신공이라는 건가...’

    실로 엄청난 보법이었다.

    천마신공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천마를 직접보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감탄하는 동안 유세현은 잔여 마력량을 살폈다.

    그 잠깐 사이에 마력을 무려 7%나 까먹었다.

    스텟을 능가하는 스피드를 얻는 것은 여전히 상당한 부담을 동반하는 것.

    다시 임무로 돌아간 보초병들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억소리가 터져 나왔다.

    키메라를 확인한 탓!

    “저건 알베타...”

    “그런 거 아니야.”

    레피아가 아니었다면 난리 났을 것이다.

    “...저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봐도 몬스터 같은데...”

    그럼에도 불안한 표정.

    결국 키메라는 엎드려뻗쳐까지 하고 나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절차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레브란이 이물질 탐지장치로 인원들의 머리를 살폈다.

    뇌가 감염충에 감염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괜찮군요. 들어가셔도 됩니다.”

    “레피아님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수고해라.”

    레피아가 손을 한번 휘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레피아의 직위, 혹은 인지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가파른 비탈길을 한 번 더 올랐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어...”

    주위를 둘러보기 무섭게 점점 커지는 팀원들의 눈동자.

    그들의 목이 점점 하늘을 향했다.

    나무처럼 우뚝 솟아있는 땅.

    땅의 겉면에는 나무의 잔가지가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있는 조악한 오두막집.

    그들은 시선을 내려 이번에는 나뭇가지와 연결되어 있는 길을 살폈다.

    딱 한 발 들어갈 정도의 좁은 폭.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았지만 폭이 넓은 것은 없었다.

    갈라진 틈사이로 보이는 지상.

    “떨어지면 끝이야.”

    “......”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조심조심 움직였다.

    레피아가 나뭇가지에 올라서자, 오두막에서 걸어 나오는 한 여성.

    유세현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질끈 묶어 올린 머리카락.

    남궁세가의 차녀 남궁시영.

    < 군락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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